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1
이곳은 황량한 곳이긴 했지만 수많은 마수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지능이라고는 없이 오직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마수들이었다.
길이가 수십 척에 달하는 뱀도 날개가 달린 맹호도 울창한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한제는 어느 산봉우리에 자리를 잡았다. 기이하게도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봉우리는 마치 하늘을 뚫고 오를 듯 우뚝 서 있었다.
타산이 주먹을 꽂자 산봉우리에 동굴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때, 하늘에서 대여섯 갈래의 검광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이 수련성을 지키는 수련자들로 한제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그들은 얼른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뇌선을 뵙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선술을 수련하려 하니 방해하지 말도록.”
이에 수련자들은 얼른 대답하더니 포권을 한 뒤 물러갔다.
그들이 모두 물러간 뒤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파멸 심금을 소환하여 그 금제로 사방에 낙인을 찍었다. 이에 이 산봉우리를 둘러싼 공간 곳곳에 금제의 흔적이 남았다.
금제를 배치함에 따라 부근에 있던 마수들은 먼 곳으로 떠나갔다. 그들에게는 지능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산과 소년은 멀리 떨어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계를 섰고 뇌길 역시 적당한 위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천부적인 신통력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뇌길은 침묵에 빠진 채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했다.
한제도 두 눈을 감고는 청수가 전승해준 두 개의 선술을 떠올렸다.
환우와 살두성병.
일전에 한제는 호풍(呼風)을 발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몇 방울의 비를 응결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환우의 느낌을 약간이나마 얻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빗방울을 응결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청수로부터 전승을 받았기에 한제는 자신이 호풍을 발휘하다가 우연히 빗방울을 응결시켰던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호풍과 환우는 사실 깊은 연관이 있어 두 가지 술법 중 하나를 발휘하다 보면 그것이 다른 하나로 전환되고 중첩될 가능성이 있었다.
고민하던 한제는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침착하게 환우를 느껴보았다.
환우는 세상의 원력을 응집시켜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며 법술의 파동에 따라 빗물을 응결시키는 것이었다. 각각의 빗방울에는 짙은 원기가 포함된다.
말하자면 그것 자체가 규칙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어가는 와중에 한제의 상공에는 언제부턴가 대량의 어두운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구름은 넓게 퍼져 있다가 한참 뒤 빗방울을 뿌렸다.
한데 그때, 돌연 빗방울들이 우뚝 멈추더니 두 사람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이들이 나타남에 따라 떨어지던 빗방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짙은 안개로 변해 확산되었다. 이에 허공에서 나타난 두 사람의 몸에서는 빗물에 젖은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허목, 네가 네 죄를 알렷다!”
둘 중 한 사람이 낮게 외쳤다. 뇌선전에 적이 있는 노인으로 뇌선전의 형벌 장로였다.
그의 곁에는 염뇌자가 음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제를 보는 그의 눈빛은 싸늘했다.
빗물은 그의 주위에서 안개가 되었으며, 마치 그 안에 타오르는 화염이라도 깃든 듯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염뇌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의 주위를 감싼 이 안개는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죄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노인을 마주보았다.
“묻겠다. 우리 나천성역의 수련자들이 연맹성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넌 어디에서 무얼 했느냐? 정뇌선이라는 자가 전선에 모습도 비추지 않고 죄가 없다 할 셈이냐!”
노인이 호통을 쳤다.
염뇌자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갈수록 냉랭해졌다.
지난 며칠 동안 신식을 넓게 펼쳐놓았던 그는 단 한 번도 한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아주 먼 곳까지 신식을 펼치기에는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컸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수련자 연맹 살역계의 살시 우비를 죽이러 갔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흠칫 놀랐고 염뇌자의 눈은 밝게 번득였다.
“살역계? 살시? 우비?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허목, 나를 무슨 세 살 아이로 보는 것이냐?”
노인은 어두운 눈빛을 번득이며 호통을 쳤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그 노인은 무시한 채 염뇌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염뇌자의 냉랭한 얼굴은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수련자 연맹에는 분명 살역계가 있고 또 혼시와 살시도 존재하지. 허나 그 우비라는 살시가 네 손에 죽었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느냐?”
염뇌자의 말에 곁에 있던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물대에서 반만 남았으나 여전히 전광이 흐르고 있는 뇌수(雷樹)의 가지를 꺼내 염뇌자에게 던졌다.
콰르릉!
염뇌자는 천둥소리가 울리는 나뭇가지를 잡아채 자세히 살폈다. 그는 그것이 당시 살역계에 있던 보물 중 하나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그 위에서 두 가지 힘이 충돌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한제의 것임도 파악했다. 나머지 하나의 힘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기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래, 틀림없이 살역계 부존(副尊)급의 살역 검기로군.”
한제를 향한 염뇌자의 눈빛은 어느덧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다시 한제에게로 던지며 웃었다.
“좋다. 안심하고 이곳에서 수련하도록 해라. 한 달 뒤 나천성역으로부터 지원이 오면 곧장 연맹성역 북쪽 영역으로 진격한다!”
한제는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고는 다시 좌선하며 눈을 감았다.
염뇌자는 흐뭇한 듯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바라보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머리 큰 소년을 힐끗 보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의 곁에 있던 노인도 황망히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내 저 먼 곳으로 사라졌다.
한제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연맹성역 서쪽 구역으로 와 나천성역의 세력 범위에 진입한 것은 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비와의 전투 중 위험을 무릅쓰고 뇌수의 가지를 손에 넣은 것 역시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한편, 우주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염뇌자의 얼굴에서는 좀 전의 흐뭇한 표정이 싹 사라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이에 곁에 있던 노인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전주(殿主), 제가 보기에 허목 저자는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소년 역시 천강(天罡) 중의 한 명인데 지금은 허목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염뇌자는 싸늘한 눈으로 노인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은 심신이 진동하는 느낌에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노인으로부터 시선을 거둔 염뇌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허목, 그 녀석은 범상치 않다. 그자의 미간에는 네 갈래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내 수준으로는 그중 한 갈래밖에 파악하지 못했어. 아마도 네 갈래의 힘 중 가장 약한 것이겠지!’
그에게 익숙한 그 힘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주작의 문양이었다.
‘분명 연맹성역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주작의 문양⋯⋯. 좋다, 그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 관둬야겠군!’
염뇌자는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순간 그와 곁에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허목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넓게 퍼져나가 이제 거의 모든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소식을 가장 불쾌해한 것은 허정이었다. 그는 부하를 데리고 곧장 수련자 소대에서 튀어 나갔다. 화풀이를 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한제가 자리 잡은 황량한 수련성에는 우기가 찾아온 것처럼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수련성의 절반 정도가 물안개로 가득 덮였고 시선 역시 가려지고 비틀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꿰뚫어볼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빗물에 바닥에는 줄기줄기 고랑이 파였다. 빗물은 그 고랑을 따라 흐르면서 작은 진흙 알갱이들을 옮겼다.
톡. 톡.
빗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잎사귀 위로 떨어졌다.
수많은 마수들은 보금자리를 찾아 비를 피했다. 오직 물을 좋아하는 작은 마수들만 쏟아지는 빗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녔다.
천부적인 신통력
한제가 기거하는 산봉우리는 물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산봉우리의 금제는 떨어지는 빗물까지 막아주지는 않았기에 이 산봉우리의 꼭대기 역시 비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소년은 쏟아지는 빗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그는 장마철이면 이렇게 멍하니 비를 바라보곤 했다.
‘내가 쫓겨난 것도 비 내리는 밤이었지. 어린 나이에 당황하고 두려운 가운데 대문 밖으로 쫓겨나 진흙탕에 처박혔어.’
그 당시에도 그는 여전히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만 그 웃음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진흙탕에 처박혀 옷이 빗물로 젖어가는 가운데 하늘을 가로지르며 우렁찬 소리를 내는 천둥번개를 바라보던 그는 가슴 저미도록 사무치는 슬픔을 느꼈다.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미움받지 않으려고 항상 웃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욕하고 때릴 때에도 그는 언제나 웃었으며, 또래의 친구들이 그를 놀리고 업신여길 때도 웃었다. 하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가문에서 쫓겨나던 그날 밤, 그의 얼굴에서는 점차 웃음이 사라졌고 그는 비틀거리며 비에 젖은 밤거리를 걸었다. 그의 몸은 천둥소리에도 쓰러질 듯 왜소했다.
상념에서 깨어난 소년은 타산과 뇌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그는 마음이 약간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 자폭하려던 자신을 한 쌍의 손이 끌어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끌려 나온 그의 시야는 한제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뇌길 역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자신의 천부적인 신통력을 느끼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그도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거마성(巨魔星)에서 쫓겨나던 당시 그는 깊은 원한에 사로잡혔다. 같은 거마족 사람들과 함께 거마성에서 빠져나온 그는 황망하게 우주를 유랑했다.
당시의 그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피가 들끓었으나 하늘을 뒤집을 힘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저 고향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떠나야 했고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영원히 거마성을 다시 밟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될 터였다.
혼란한 가운데 그의 부족 사람들과 함께 주작성에 도착했다.
당시 주작성의 주작이었던 양무환은 사람들을 선동해 수련성의 원주민이자 문양을 잘 다루는 선유족과 큰 전쟁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