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2
영력으로 충만했던 이 수련성은 그 커다란 전투로 반쯤 폐허가 되어버렸다.
뇌길은 양무환 곁에 있던 자를 떠올리고는 치를 떨었다. 그가 그토록 싫어한 그자의 이름은 사도환이었다. 그자는 오만하고 포악했다. 주작성으로 이주해온 자신들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선유족이 사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비교적 안전한 넓은 땅까지 내준 양무환과는 딴판이었다.
뇌길이 도끼를 들고 선유족과 싸운 것은 양무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옛 시절을 떠올리던 뇌길은 감개무량한 감정에 젖어갔다.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수만 년 동안 많은 일을 목격해왔다. 다만 시음종에 붙잡혀 오랜 세월을 갇혀 보내다 보니 지능이 약간 흐릿해지고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똑똑했던 그는 망설임 없이 한제의 탈것이 되기로 결심했고 한제와 함께하다 보면 거마성으로 돌아가 복수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특히 일전의 전투에서 한제가 고신의 고함을 내질렀을 때, 뇌길은 전율했다. 그 순간 남은 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 기인한, 선조로부터 전승받은 의지뿐이었다. 고함을 내지른 사람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의지였다.
진심으로 한제를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진 것 역시 그 순간이었다.
‘그저 탈것의 역할만 해서는 안 돼. 거마족의 신통력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뇌길은 두 눈을 감고 계속해서 자신의 체내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신통력에 집중했다.
한편, 한제 역시 비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빗물의 한기가 체내로 스며들어갔다.
천천히 호흡하던 그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신식을 확산시켰다. 신식을 빗물에 녹여 넣어보았으나, 이렇게 녹아든 신식은 빗방울이 대지로 스며들면 흩어져 버리곤 했다.
빗물은 한제의 신식에 아무런 저항력도 갖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자연적인 힘에 의해 빗물이 대지에 떨어지면서 흩어지는 것을 한제도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한제는 계속해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끊임없이 빗속에 신식을 녹여 넣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자 그의 귓가에는 아주 오래전 그가 얻었던 깨달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 비는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으며 그 중간의 과정은 곧 인생과 같다. 내가 하늘과 땅이 아닌 이 빗물을 보는 것은 비의 인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이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삶과 죽음은 완벽하게 깨달았어. 이제 남은 것은 그 빗물의 본원이다!”
고민에 잠긴 듯한 눈으로 내리던 비를 바라보고 있던 한제의 머릿속에서 청수가 전승해준 환우의 술법이 메아리쳤다. 한제의 두 눈은 점차 밝아졌다.
“이 빗물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비가 하늘에서 기인한다는 것뿐이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구름을 바라보았다. 대지를 뒤덮은 비는 그 구름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것은 구름뿐!”
비는 구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한제는 신식을 빗속이 아닌, 하늘을 채운 구름층에 녹여 넣어 퍼뜨렸다. 그리고 한제는 그 안에서 대량의 원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원기는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로 빠르게 충돌했고 그때마다 대량의 빗방울이 구름에서 튀어나와 대지로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곧장 산봉우리 위로 솟아올랐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듯 한 걸음씩 올라가던 그는 이내 구름층에 이르렀다.
그 순간, 구름층 안에서 전광이 흘렀고 콰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름층 안에 발을 들인 한제는 신식을 더욱 짙게 발산하여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어갔고 입가에는 점차 미소가 번져갔다.
잠시 후 구름 안에서 걸어 나온 그는 한달음에 이 수련성의 반대편 끝으로 향했다.
그곳의 허공에서는 대량의 수증기가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수증기는 형태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한제도 신식을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었다.
위쪽으로 솟아오르던 수증기는 하늘에 이르러 옅은 구름이 되었다. 눈으로는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아주 어려울 만큼 옅은 구름이었다.
“그렇군! 하하하! 바로 그거였어!”
길게 웃음을 터뜨린 한제는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쳐 아래로 눌렀다. 체내의 원력이 발산되면서 주위의 수증기는 더욱 짙어졌고 마치 한제에게 통제되듯 대지로부터 빠르게 응집되었다.
하늘에 떠오른 한제의 두 손에 의해 공간이 약간 왜곡되는가 싶더니 잠시 후 어두운 구름이 한 덩어리 나타났다.
이 어두운 구름은 나타난 순간 빠르게 응결되면서 한제의 두 손에서 점점 불어났다.
그 안에 신식을 넣어 살핀 한제는 허공에서 나타난 천둥번개가 그 구름 속에서 흐르다가 자신의 신식에 따라 구름층 안에서 콰르릉 하고 울리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대량의 비가 그 구름층 안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규열기 수련자는 규칙에 집중해야 했다. 규칙이야말로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의 진정한 힘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규칙은 모호하고 흐릿하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규칙을 연구하고 수준도 상당히 높은데도 결국 진전을 얻지 못하는 두 번째 단계 수련자도 더러 있다. 허나 이들이 발휘하는 신통력은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규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은연중에 어떤 규칙의 가장자리를 더듬은 한제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갔다.
그가 두 손을 펼치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구름층은 점차 투명해지면서 결국 흩어져 사라졌다.
“하하하핫!”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원래의 산봉우리로 돌아온 한제는 그 위에 서서 하늘의 구름층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한제로부터 3촌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순간 수증기로 흩어져 버렸고 이에 그의 근처에서는 점차 안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일전에 허공에 나타난 염뇌자가 빗물을 안개로 만들어버린 것과 똑같았다.
다만 한제의 근처에 나타난 안개는 매우 옅고 안정적이지 못해 온 세상을 단번에 무너뜨릴 듯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염뇌자의 그것에 비하면 형편없어 보였다.
허나 만약 염뇌자가 지금 이 모습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한제의 안개는 체내의 원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불분명한 규칙을 통해 구현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규칙의 힘이었다. 이 힘은 주위의 공간을 부지불식간에 변화시키면서 한제 근처로 떨어지는 빗물을 안개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이 안개 자체가 무궁무진한 위력을 가진 신통력이라 할 수 있었다.
‘선제(仙帝) 백범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한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술 환우는 청수가 준 것으로 선제 백범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술법을 깨달은 순간 자연스럽게 한제는 규칙까지 모색할 수 있었다.
이는 절대 일반적인 선술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선술은 극히 드물었다.
‘비는 구름에서 오고 구름은 물이 응결하여 만들어진다. 다만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름은 응결될 수 없어!’
청수로부터 이 선술을 전승받은 한제는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한 상태로 그저 규칙만을 이해했을 뿐이었다. 덕분에 한제는 청수에 대해 더욱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당시의 사도환도 규칙을 파악하고 있었단 말인가? 상상도 못했군.’
한제의 머릿속에는 일전에 천역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도환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흩어져라!’라고 외쳤던 것이 떠올랐다. 그 순간, 빗물을 뿌리던 구름과 안개는 빠르게 흩어지면서 맑은 하늘이 드러났었다.
그때 한제는 사도환으로부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하늘을 통제하는 능력이라니, 세상 만물이 사도환 앞에 엎드려 굴복한 것 같았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도 한제가 받은 느낌은 그것뿐이었다. 당시 한제의 수준은 근본적으로 규칙을 모색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하니 사도환은 그때 이미 규칙을 분명히 깨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랬던 거로군.”
침묵하던 한제는 1천 년 전 자신이 우연히 손에 넣었던 천역주에 구름이 그려져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 구름은 이 세상의 수증기를 흡수하게 해야만 늘어났다.
당시를 회상한 한제는 이제야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상황에 쓰게 웃었다.
사실 수많은 것들은 줄곧 그의 곁에 있었다. 다만 그의 수준이 이르지 못해 발견하지 못하고 또 보더라도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야 한제는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1천 년이 흐른 오늘에야 천역주의 물 부분에 존재하는 규칙을 깨닫게 될 줄이야⋯⋯. 그것은 천역주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었지. 한데도 난 지금까지도 모든 것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그저 그 가장자리만 더듬었을 뿐이야.”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한탄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빗물을 바라보던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살짝 휘두르며 가볍게 외쳤다.
“흩어져라!”
손짓 한 번에 한제 주위에 피어올랐던 안개는 빠르게 흩어졌고 빗물은 바르르 떨리면서 대량의 안개가 되어 폭풍처럼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던 구름은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 울려 퍼지던 천둥소리는 거대한 손에 휩쓸린 듯 빠르게 밀려나면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온 하늘이 한순간에 말끔해졌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면서 대지에서는 흙과 초목의 향기가 피어올랐고 풀과 나무에서는 많지 않은 물방울들이 똑똑 떨어져 내렸다.
하늘 가장자리에는 무지개가 하나 걸려 있었다. 선경(仙境)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마수들도 포효하는 대신 하늘을 향해 낮게 그르렁거리기만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새 몇 마리가 기쁜 듯 지저귀면서 하늘을 선회했다. 한참이나 내리던 비에 날개를 펼칠 기회를 내내 노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덤덤한 눈빛의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그의 앞쪽에 검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두 마리의 흑룡이 나타났다.
흑룡이 내뿜은 음산한 바람은 안개와 융합하면서 안개 안에 물방울을 응결시켰다. 사방에 존재하는 원력이 순간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한제가 원하기만 한다면 안개 속에 응결된 물은 곧 대지로 쏟아져 내릴 것이었다. 드디어 환우를 깨달은 것이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안개는 흩어져 사라지고 흑룡도 종적을 감추었다. 모든 것은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뇌길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규칙의 힘… 일전에 어느 수준 높은 수련자가 발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이 순간, 뇌길은 한제에게 더욱 감탄하게 됐다.
반면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환우의 깨달음에 이어 그는 더욱 관심이 가는 살두성병를 연구할 생각이었다.
나천 학살 계획
한편, 연맹성역 서쪽 구역과 북쪽 구역의 경계에 한 줄기 허상의 인영이 우주를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인영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주를 가르는 빛은 하나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빽빽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우주에는 파문이 일었고 그 파문이 퍼져나가는 사이 그들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들이 연맹성역의 서쪽 구역으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앞에 한 무리의 나천성역 수련자가 나타났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지(六指)의 수련자로 그가 이끄는 소대는 북쪽 구역을 향해 진격하는 중이었다.
이때 연맹성역의 서쪽 구역은 이미 모두 나천성역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고 육지(六指)의 수련자는 북쪽 구역으로 향하는 선봉에 서게 됐다.
서쪽 구역으로 진입한 허상의 인영들은 육지(六指)의 수련자와 1백여 명의 수련자들을 목격한 순간 방향을 틀어 돌진해왔다.
육지(六指)의 수련자는 마주 돌진해갔지만 심장이 쿵쾅대게 만드는 기운과 함께 오른손의 여섯 번째 손가락 끝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