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3
전방을 빽빽하게 채운 수많은 허상의 인영들의 눈동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는 저물대에서 소환 옥패를 꺼내 으스러뜨렸다.
뒤이어 곧장 뒤로 물러나며 신통력을 발휘하려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전방의 수많은 허상 중 반이 갈라져 나와 그를 에워쌌고 나머지 반은 그 뒤에 선 나천성역 수련자들에게로 달려들었다.
“크아악!”
“끄윽!”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법술의 파동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육지(六指)의 수련자는 황망한 얼굴로 빠르게 후퇴했지만 그 순간 수많은 검은색 허상들이 곧장 그를 따라잡더니 끊임없이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하나하나의 인영이 녹아들 때마다 여섯 손가락의 수련자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수십 척 뒤로 물러났다.
눈에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가 원상태로 돌아온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흡족한 듯 웃었다.
“이 몸, 꽤 마음에 드는군!”
그의 뒤로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다가왔다. 한데 그들의 얼굴에도 모두 기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현전(地玄殿)의 나천 학살 계획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허목뿐만 아니라 이들을 전멸시키는 껏! 흑살마존(黑煞魔尊)과 도원천존(道元天尊)께서 출동하셨으니 나천성역 녀석들도 별수 없을 것이다!”
★ ★ ★
청수의 전승을 통해 한제는 선제 백범의 신통력인 호풍과 환우, 그리고 살두성병 중 살두성병의 위력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술법은 당시 선계에서도 꽤나 유명세를 날렸던 신통력으로 청수도 무척 아꼈다.
그런 만큼 한제의 기대는 매우 컸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머릿속으로 청수가 전승해준 살두성병을 자세히 파악했다.
체내에서 갓난아이 주먹만 한 선원(仙元)의 결정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량의 선기가 체내에서 맴돌았고 점차 체내의 원력은 느릿하게 가려지면서 오직 짙은 선원으로 가득 차게 됐다.
지금 한제의 온몸은 대량의 선기로 가득해 진정한 선인을 방불케 했다.
머리 큰 소년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제가 어떻게 선원을 얻었는지 파악하지 못했으나 직접 물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는 경지를 포기하고 선원을 얻었는데 저자는 경지와 선원을 동시에 가졌구나.’
체내의 선원이 회전을 하던 그때, 한제는 전승받은 살두성병의 수련 방법에 따라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살두성병을 위해서는 일단 윤회를 열고 그 안에서 자신이 죽인 자들의 혼백을 뽑아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현공(玄空)이라는 공간에서 그 혼백을 응결시켜야만 살두성병을 실현할 수 있다.
이 신통력의 강력함은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예컨대 백범이 한 번 살두성병을 발휘하면 그 위력은 하늘을 뒤덮었으며,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는 굉장히 적었다.
반면 청수가 발휘할 때면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육이 이 신통력을 채웠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에 대항하는 대신 굴복하는 편을 택했다.
결인을 그린 찰나, 한제 체내의 선원이 콰르릉 하고 울리더니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내 그의 손가락을 타고 모여든 선기의 줄기가 느릿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회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더니 결국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듯 빨라졌다.
쉭,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이 회오리는 더욱 넓게 확산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 전방에는 수십 척에 달하는 거대한 회오리가 생겨났다.
이 회오리의 회전 속도는 너무도 빨라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선유족의 땅 지하 열일곱 번째 층에 이르기 이전의 선원으로는 회오리가 지금의 반에 이르기도 전에 콩 모양의 선원이 무너져 내리고 체내의 선원은 그대로 바닥나 버렸을지도 몰랐다.
허나 선원의 기운을 흡수해 콩알만 하던 선원이 갓난아이 주먹만 해진 상태였음에도 선원이 지금처럼 빠르게 흘러나간다면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사흘 정도밖에 안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 회오리가 선원의 힘으로 열린 자신의 윤회이긴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통로에 불과했다.
이 신통력은 기억을 발판 삼아 발휘되는 것으로 이 신통력을 발휘한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자신이 죽인 이들의 혼백을 하나하나 뽑아내도록 만들었다.
단지 기억에 불과하나 이 신통력 아래에서 그 혼백은 실체화되어 생전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신통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선원의 소모가 커졌다. 사흘이 지난 뒤에도 살두성병을 깨닫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체내의 선원이 바닥나고 회오리도 무너져 내릴 터였다.
이 회오리가 나타난 순간 한제의 미간에서는 태고의 뇌룡 모습을 한 원신이 튀어나와 곧장 그 회오리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회오리는 곧장 줄어들면서 한제의 미간에 찍힌 채 끊임없이 회전했다.
한제의 원신은 세월의 통로 안에서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잠시 후, 그 통로의 끄트머리가 원신의 시야에 들어왔고 그곳으로 빠져나오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고개를 숙인 한제는 눈앞에 펼쳐진 주작성의 대산파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두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든 채 인력술(引力術)을 발휘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그 인력술에 몸을 통제당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의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는데 그 끝은 인력술을 발휘하는 소년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 소년은 도끼를 들어 올려 청년의 머리를 매섭게 내리쳤다.
“크아악!”
한제는 비참한 비명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한 줄기 혼백이 그곳으로부터 튀어나와 한제의 원신 안으로 빠르게 녹아들었다.
“저자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닌데 어째서⋯⋯?”
고민하던 한제는 자신을 이끄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눈을 돌렸다.
순간 눈앞이 이지러졌고 곧 길 하나가 나타났다.
그 길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법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에 맞선 것은 한 중년 사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년 남자는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그 중년 사내 곁에는 어두운 표정의 청년이 서 있었는데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저자는 지묵 노인의 제자야! 빨리 도망쳐야 해!”
사망한 중년 남자의 혼백이 날아와 한제의 원신에 녹아들었다.
눈앞의 광경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숲속 어느 동굴 안 모습이 떠올랐다.
한제는 과거의 자신이 등력의 축기를 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력의 혼백도 날아와 그의 원신에 녹아들었다.
광경은 계속해서 전환되었다. 조나라에서 시음종(尸陰宗)에 이르기까지, 다시 결명곡(決明谷), 역외 전장, 화분국(火焚國)을 지나 수마해(修魔海)에서 용의 힘줄로 1천 구의 시체를 옭아매었을 때와 만마백일주살(萬魔百日誅殺)에 시달렸던 때까지…
이어서 조나라로 돌아와 등가를 멸문시켜 가문의 원수를 갚았던 장면과 설역국(雪域國)에서의 전투, 우(雨)의 선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았고 다시 설역국 장로와 거마족 선조를 죽이고 선유족과 주작국 사이의 전쟁을 거쳐 주작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천운종(天運宗)과 요령의 땅을 지나 살육 선검으로 세상을 휩쓸고 나천성역으로 넘어와 환가의 선조를 만난 일, 뇌(雷)의 선계, 혈조, 지하 마수 안에서 선인을 죽이고 나천성역 서쪽 구역에서 요가 사람들을 죽인 일, 뇌선전의 일선천(一線天)을 거쳐 선인에 봉해지기까지의 일들 역시 눈앞에 펼쳐졌다.
마침내 인생 전부를 훑은 기억의 흐름은 멈추었고 한제는 원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막강한 힘이 자신을 움켜쥔 채 끊임없이 하늘 위로 들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와중 두 눈을 번쩍 뜬 한제의 온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시야에는 산봉우리 위의 광경이 다시 들어왔다.
그가 정신을 차린 순간, 미간의 회오리는 회전을 멈추고 줄기줄기 선원의 기운이 되어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갓난아이 주먹만 했던 선원의 결정은 6할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일생 동안 저질렀던 살육이 연기처럼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지금, 한제는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치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강력한 선술이로군!”
한제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선제 백범의 선술은 모두 수많은 선술을 융합한 뒤 그 정수만을 응결시켜 만들어낸 것으로 수련의 성공 여부는 오직 경험에 달려 있었다.
한제는 이미 살두성병의 두 번째 단계에 대해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다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순간 그의 상공에 황천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원망의 기운이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허나 한제의 통제 아래 황천은 머리와 꼬리가 한데 섞여들면서 하나의 원을 이루더니 하늘을 찌를 듯 강렬한 기운을 퍼뜨렸다.
한제는 황천을 응시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봉선인(封仙印)을 토해냈다.
눈부신 빛을 번득인 봉선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라 황천과 융합됐다.
그리고 그 순간, 봉선인의 수십만 개 금색 문양이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곧장 황천에 녹아들었다.
동시에 황천은 끓어오르는 듯 금색 문양과 끊임없이 섞여들면서 놀랄만한 변화를 일으켰다.
온 황천은 수십만 개의 금색 문양과 뒤섞인 채 하늘을 가로질러 봉선인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봉선인과 완벽하게 융합되는 사이 한 줄기 검은 빛으로 이 황량한 수련성에 압박감을 내뿜었다. 이 압박감은 봉선인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봉선인 또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겉에 존재했던 금색 문양은 남김없이 사라져 새카맣게 변해 있었는데 극강의 기운이 그 빛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수많은 원혼이 그 안에서 포효를 내지르며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더 놀라운 것은 표면에 고리 형태의 흔적이 여러 갈래 생겨나 봉선인을 열여덟 개의 층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각 층에서는 짙은 원망의 기운이 흘러나왔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그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이것은 한제가 살두성병을 위해 제작한 자신만의 세상이었다.
백범에게 현공계가 청수에게는 살육계가 있다면 한제에게는 봉선인을 바탕으로 한 열여덟 층의 지옥윤회계(地獄輪回界)가 있는 것이다.
봉선인을 대지로 금색 문양을 봉인으로 황천을 윤회로 삼아 원망의 기운을 불어넣어 만들어진 18층의 지옥이었다.
열여덟 개의 층중 뒤로 갈수록 수용할 수 있는 혼백은 더욱 강했다. 허나 15층 아래로는 어떤 영혼도 수용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14층에는 단 하나의 영혼만 수용되어 있었다. 피 안개로 뒤덮인 채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렬한 원한을 드러내는 이 혼백은 혈조의 것이었다.
13층에는 선유족 땅에서 한제에게 죽어간 1백 명이 넘는 선인들의 혼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이 완벽하고 철저한 봉인을 뚫고 나오지는 못했다.
그중에는 당시 한제에게 죽임을 당했던 요가 사람의 혼도 있었다. 나천성역에서 한제의 손에 목숨을 잃은 양의 수준 이상의 수련자들의 혼도 같은 층에 있었다.
한제는 허공에 떠 있는 18층의 지옥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에서 회오리가 나타나더니 원신이 튀어나와 원신의 정기 한 움큼을 불어넣었다.
정기에 깃들어 있던 수많은 검은 기운이 곧장 18층의 지옥으로 달려들었다.
이 검은 바람들은 한제가 죽였던 이들로 그것들은 각각의 수준에 맞는 층으로 수용되었다.
이어서 한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들더니 망설임 없이 흔들었다. 그러자 그 깃발에 봉인되어 있던 혼백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연맹의 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