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5
깊은 균열처럼 벌어진 입으로 포효를 내지른 망월은 폭풍과 함께 달려들었다.
나천의 반격
분노에 찬 망월의 포효는 너무나 강력해 우주를 붕괴시킬 정도였다. 앞을 가로막던 균열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 뒤로 떠밀렸다.
허나 거목은 순간 노란 빛에 감싸이더니 포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한데 그때, 공간이 비틀리는가 싶더니 백의(白衣)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수련자 연맹의 사존(四尊) 중 하나인 도원천존(道元天尊)으로 지금은 표정이 무척 어두웠고 무언가 난감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원천존은 온 우주를 꿰뚫어볼 법한 눈으로 돌진하는 망월을 바라보다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 참천거목이 맹렬히 다가왔고 그 위에 올라 있던 향가 노인과 공손가의 중년 사내가 달려 들었다.
“도우,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가!”
향가 노인이 길게 웃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붉은 바람이 불어닥쳐 반경 1만 리를 뒤덮었다.
전투는 연맹성역 서쪽 구역과 북쪽 구역을 전장으로 삼아 치열하게 전개됐다. 격렬한 충격음이 사방에서 울렸고 수많은 법보가 신통력을 발휘하면서 번쩍번쩍 빛을 발했으며, 줄기줄기 법력의 파동이 응집되면서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이 전투에 가담한 모든 수련자는 자칫했다가는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다. 특히 끊임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망월의 공격에 연맹성역 수련자들은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이 거대한 고대 마수는 수련자들을 식별하는 것인지, 공격 대부분이 연맹성역 수련자들만을 향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연맹성역은 열세에 처하게 됐다.
한편, 이 무렵 한제 역시 연맹성역 서쪽 구역에 있었다.
뇌길은 몸을 줄인 채 앞장섰고 머리 큰 소년은 한제의 뒤에 섰으며, 옆에 선 타산은 서늘한 눈빛으로 사방을 면밀하게 경계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연맹성역 수련자들을 종종 마주쳤는데 한제 일행의 수준을 파악한 대부분은 곧장 방향을 틀어 달아났다.
간혹 수준이 제법 높거나 규모가 큰 무리인 경우 달려들기도 했으나, 이들은 여지없이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한제는 조금의 살기도 드러내지 않은 침착한 모습이었지만 다른 셋은 예리한 검처럼 짙은 살기를 남김없이 뿜어냈다.
한제는 익숙했던 공간이 무너져 내린 것을 보았고 이따금 균열이 이는 소리도 들었다.
연맹성역 서쪽 구역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였는데 기이하게도 이 균열들은 한제 앞에서는 길을 내주듯 스르륵 밀려났다.
만약 규열기 이상의 수준에 이른 수련자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균열이 수련자를 피하는 것은 상대가 규칙을 파악했을 때에만 일어나는 현상인데 규열기 수준은 규칙을 접하는 단계에 불과하며, 이를 파악하는 것은 정열기 수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제는 비록 아직 정열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천역주로 인한 깨달음으로 매우 미약하긴 해도 정열기 수준에 해당하는 기운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저 멀리 우주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묘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씁쓸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를 받친 검광은 미약하여 언제라도 흩어질 것 같았다. 뒤로는 중년 사내를 필두로 한 몇 명의 연맹성역 수련자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그때, 신식을 통해 그녀를 발견한 한제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저 여인은⋯⋯?”
서자봉은 절망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서쪽 구역의 대대적인 붕괴로 인한 여파에 가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그녀가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 폭의 지옥도(地獄圖)와도 같았다.
그러던 중 연맹성역 수련자들에게 발각되어 쫓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붕괴의 충격으로 심신에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를 해 도망치다 보니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그녀를 뒤쫓는 중년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저물대에서 금색 바늘을 하나 꺼내 내던졌다. 그 바늘은 금빛을 번득이며 튀어나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곧장 서자봉을 향해 돌진했다.
“저 여인으로 내 아홉 번째 단로(丹爐)를 만들어야겠어. 나천성역 여인을 맛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 기회가 왔군. 크하하!”
금색 바늘이 막 등 복판에 꽂히려던 찰나, 서자봉이 몸을 홱 돌리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빛의 장막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쾅!
하지만 바늘의 위력은 상당해 빛의 장막은 순식간에 폭발했고 서자봉은 그 충격에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낭자 어딜 그리 도망가는 게요? 잠시 담소라도 나누자니까! 하하하!”
중년 사내는 비열하게 웃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와 서자봉을 낚아채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극도로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러나라!”
그 짧은 말 한마디는 마치 수만 갈래의 천둥이 동시에 내리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우렁차게 울렸다.
이에 중년 사내는 두 귀가 웅웅 울리는 것을 느끼며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온 세상과 단절된 듯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들려왔다.
사방에서 울리던 날카로운 목소리는 마치 예리한 검처럼 그의 몸을 관통했다.
“우웩!”
사내는 피를 토하며 뒤로 나자빠졌고 순식간에 극도의 두려움에 잠식되어 육신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됐다.
순간 마치 누군가가 무정하게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만 같은, 평생 처음 경험하는 느낌에 휩싸인 채, 그는 끊임없이 저 멀리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서자봉을 쫓던 다른 수련자들도 다른 누군가의 의지에 속박된 듯 조금의 반항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그중 몇몇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의지의 강림에 무너져 내리면서 피 안개로 터져나갔다.
심지어 원신 역시 육신이 와해됨과 동시에 소멸했고 혼백은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는 대신 그대로 뽑혀 나와 검은 빛줄기로 변해 한제의 체내에 녹아든 뒤 18층 지옥에 봉인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을 잃고 있던 서자봉에게 누군가 기척도 없이 다가왔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빠르게 물러나고 있는 수련자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에는 자신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규칙이 배어 있었다.
한편, 수련연맹의 중년 사내는 주체할 수 없이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상대가 나천성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수준 높은 수련자라 확신했고 이에 대해 자신이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을 떠올린 찰나,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정도 수준의 수련자는 한제 앞에서 한낱 미물만도 못한 존재였다. 당시 요령의 땅에서 산마(散魔)의 냉소 한 번에 한제의 육신이 무너져 내릴 뻔했던 것처럼, 지금의 한제는 손짓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둘 수 있었다.
중년 사내의 원신이 스르륵 빠져나와 빠르게 흩어졌는데 그 원신이 거의 죽음에 이른 그때 돌연 허공에서 음산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나천성역의 정뇌선(正雷仙) 허목답군!”
그 순간, 저 멀리 허공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낯빛이 흙처럼 누런, 짙은 남색 옷차림의 중년 사내였다.
그의 뒤로는 줄기줄기 검은 허상이 옷자락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육지(六指)의 수련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녹아들며 방금 죽음을 맞이한 중년 사내의 원신이 한제의 의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이에 중년 사내의 원신은 빠르게 튀어나왔다. 허나 이미 많이 붕괴된 듯 상당히 허약해진 상태로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겁에 잔뜩 질린 중년 사내의 원신은 얼른 도망치려 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한 번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광풍이 불어닥치며 응결되더니 수많은 참라결(斬羅訣)이 한 가닥으로 합쳐지면서 중년 사내의 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육지(六指)의 수련자는 기이한 미소를 띤 채 한제처럼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뒤에서 나부끼던 검은 허상의 일부가 곧장 참라결을 향해 돌진했다.
콰르릉!
참라결과 수많은 허상은 중년 사내의 원신 주변에서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참라결은 한제가 규칙의 일부를 파악한 뒤 전보다 그 위력이 증폭된 상태였다. 이전까지는 무의식적으로 이 술법을 발휘해왔을 뿐, 그 규칙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그 위력이 완벽하게 발현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참라결은 모든 규칙을 베어 없애며 튀어나갔고 검은 허상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흩어져 사라졌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 모든 허상들이 사라졌고 참라결은 곧장 중년 사내의 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표정이 변한 육지(六指)의 수련자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뒤에 있던 검은 허상들이 곧장 수축하여 삽시간에 응결되더니 검은 빛을 발산하는 작은 공이 됐다.
그 공은 심신을 뒤흔드는 기운을 내뿜으며 빠르게 참라결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허공을 관통하듯 순식간에 참라결과 충돌했고 그 순간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검은 기운으로 흩어졌다가 참라결을 겹겹이 에워쌌다.
“이것도 한 번 받아보게! 하하하!”
육지(六指)의 수련자는 길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엄청난 힘이 튀어나와 잔뜩 놀란 중년 사내의 원신에 떨어졌고 그 순간 원신은 마치 질주하듯 뒤로 밀려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우주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이 혼시(魂侍) 주천이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지!”
자신을 혼시 주천이라 밝힌 육지(六指)의 수련자가 비릿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제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더니 발아래 나타난 파문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광경에 주천은 흠칫 놀랐고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한편, 멀리 떨어진 우주로 날아간 중년 사내의 원신은 한시름 놓고는 기뻐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한데 그때, 바로 앞에서 파문이 일렁이더니 어느새 한제가 나타나 주먹을 가볍게 휘둘렀다.
콰르릉!
순간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우주가 뒤흔들리면서 사방으로 파문이 뻗어 나갔다.
“부서져라!”
한제가 가볍게 외치자 사내의 원신은 격하게 경련하더니 순식간에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를 본 주천의 눈빛은 한층 더 기이하게 빛났다.
그는 한손을 들어 올려 멀리서 멍하니 서 있던 서자봉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검은 허상 몇 갈래가 튀어나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구하려던 자를 네가 죽였으니 나 또한 네가 구하려던 여인을 죽이겠다!”
주천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몇 갈래의 검은 허상이 순식간에 서자봉 바로 곁에 이르렀다.
서자봉은 창백한 얼굴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주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돌아봤으나, 상대의 표정에서는 기쁨도 분노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한제의 얼굴은 고요한 수면처럼 한없이 잔잔했고 그저 냉랭한 눈으로 주천을 바라보며 한 발 앞으로 내딛었을 뿐이다.
순간, 주천은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더니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재빨리 뒤로 몸을 물렸다.
그 순간, 서자봉의 곁에 파문이 일었고 그곳에서 한제가 빠져나와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자봉을 향해 달려들던 허상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를 죽이든 말든 난 상관치 않는다. 허나 내 앞에서는 안 된다!”
한제는 덤덤하게 말을 마친 뒤 살기 어린 눈빛으로 곧장 주천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