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7
순식간에 나천성역 수련자 한 명이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갔고 이에 일고여덟 명 정도 되는 나천성역 수련자들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일찍이 내상을 입은 데다가 모든 기력이 쇠한 상태라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 멀리서 호랑이의 포효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흘러넘칠 듯 강렬한 신식이 휩쓸고 지나갔다. 이에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심정으로 외쳤다.
“뇌선(雷仙) 허목!”
“정뇌선 허목이다!”
이 무렵, 연맹성역 수련자들도 나천성역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노인은 그 안에 허목이라는 이름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순간 노인은 표정이 급변했고 곧장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자는 규열기 수련자다! 우리로서는 대적할 수 없어! 다들 얼른 물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세 명의 수련자가 맞붙고 있었다. 셋 다 음의의 수준으로 두 명은 나천성역 수련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연맹성역 수련자였다.
허나 연맹성역 수련자들은 워낙 교전에 익숙한 터라 혼자서 둘을 상대하면서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중 나천성역 수련자 하나는 신식으로 한제가 있는 쪽을 살피더니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뇌의 선계에서 허목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한편 그들과 교전 중이던 연맹성역 수련자는 허목이라는 이름에 표정이 이내 크게 변했다.
연맹이 발송한, 나천성역 수련자를 가장 약한 1급부터 가장 강력한 7급까지 일곱 등급으로 구분한 자료가 떠올랐다.
허목은 그중 5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감히 맞붙을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때, 한제가 나타났다.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한제와 천호(天虎)를 보고 잔뜩 흥분하여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한제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빛이었다.
“뇌선을 뵈옵니다!”
얼마 전 서쪽 구역의 붕괴로 수많은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죽었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 와중에 연맹성역 수련자들이 급습해오면서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큰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푸른 옥패
한제의 태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두 성역 수련자들의 교전이 있을 때마다 한제는 연맹성역 수련자들을 처리했고 그의 곁에는 점점 많은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큰 무리를 이루게 됐고 그때부터 한제는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곁에 있는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알아서 적들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연맹성역 서쪽 구역에는 뇌선전의 사자와 108명의 선인, 수련자로 이루어진 여러 무리가 있었으나, 그중 한제의 무리가 가장 규모가 컸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제의 명망은 높아져갔다.
한제 무리가 연맹성역 서쪽 구역 중심에 이르렀을 때, 돌연 우주가 기이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먼 허공으로부터 파문이 줄기줄기 쏘아져 나왔다.
이 파문에는 사람의 심신을 뒤흔들 법한 기운이 깃들어 있어 한제 주위에 자리한 수련자들을 받친 검광이 일순 불안정해졌다.
심지어 한제 역시 신식으로 사방을 살피고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저 멀리 길이가 10만 척에 이르고 굵기가 1만 척에 달하는 참천거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거대한 나무는 원신을 뒤흔들 정도로 격렬한 소리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을 발산하며 돌진해왔다.
참천거목 사방에는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빽빽하게 모여든 채 짙은 살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그 거목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비린내 어린 기운이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기운이 똑똑히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거목 아래 목숨을 잃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거목의 모습에 한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저 거목에 충돌했다가는 자칫하면 그대로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
축지성촌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거목 앞에서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허나 정작 한제의 넋을 놓게 한 것은 거목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존재, 바로 망월(望月)이었다.
거대한 수련성 같은 망월은 수많은 촉수를 하늘거리며 분노한 듯 끊임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그 포효에 온 우주가 진동했다.
그 순간, 한제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고신의 육신에서 기인하는 떨림이었다. 또한 그의 미간에서는 고신의 반점이 보일 듯 말 듯 드러났다.
한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떨림을 억누르고 고신의 반점도 숨겼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촉수를 하늘거리는 망월을 본 한제의 마음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망월의 몸을 빌려 요가의 추격을 떨쳐냈을 때 나천성역 수련자 하나가 저 녀석에게 눈독을 들이긴 했지. 한데 대체 누가 망월을 법보로 삼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단 말인가? 설마⋯⋯ 그자인가?’
찬 숨을 들이마신 한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를 본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 처음은 청수와 혈신자의 전투 때였고 다음은 108선인으로 발탁된 뒤 두 성역을 잇는 통로를 뚫을 때였다.
참천거목이 점점 더 가까워졌고 그 충격의 파동이 이는 가운데 한제 뒤에 모여 있던 대량의 수련자들이 환호를 내지르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몰려갔다.
한제 또한 잠시 망설이다가 참천거목으로 다가갔다.
이 거대한 나무는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강렬한 충격과 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수많은 수련자가 각종 법보에 오른 채 거목 주변에 달라붙어 있었다. 또한 1백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련자는 거목 위에 올라 있었는데 전가의 선조 열운자와 신공 가문의 선조가 선두였다.
뒷짐을 진 채 거목의 머리 부분에 선 그들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들 뒤로 선 수련자는 대부분 108선인에 속한 이들이었는데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허나 그들에게서도 원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모두 수준 높은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중 규열기 수준 수련자는 열 명이 조금 넘었는데 그 외에도 한제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세 명 더 있었다.
한 사람은 거목의 오른쪽에 가부좌를 튼 흑의의 노인이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그의 얼굴에는 몇 갈래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상처는 기이하게도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어 소름이 끼쳤다.
한제의 시선을 느꼈는지 노인이 서늘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며 웃었다.
다른 한 사람은 봄철 복숭아처럼 아름답고 가을 국화처럼 산뜻한,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눈은 반짝였고 코는 오똑했으며, 뺨에는 보조개가 있었다. 또한 피부는 희고 눈은 바다처럼 짙푸른 색이었다.
옅은 녹색 바탕에 꽃무늬가 수놓인 궁복의 겉에는 얇은 금색 면사가 둘러져 있었으며, 품이 넉넉한 옷에는 보라색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삼단 같은 머리는 하나로 묶어 올렸는데 잔머리가 양 뺨으로 흘러내렸다. 이마 가운데에는 작고 붉은 보석 하나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빛냈다.
한제의 시선을 느낀 여인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귀하고 우아해서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제의 시선을 사로잡은 마지막 사람은 백의의 청년이었다. 청년 주위에는 세 개의 대나무 피리가 맴돌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다.
청년은 한제의 시선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고하고 오만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들이 한제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세 사람의 수준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제가 거목 위의 사람들을 관찰하던 그때, 그 수련자들도 대부분 한제를 살피고 있었다. 나천성역 전역에 유명세를 떨친 탓에 그들은 단박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거목을 따라 여기까지 온 이들 역시 나천성역 수련자 대열이었지만 수십 명에 불과해 일견 초라해 보였다.
반면 한제를 중심으로 모인 수련자들의 수는 수백에 달했다. 그렇게 많은 수련자들이 모여 있는 것은 허목의 존재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제에게 집중됐으나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허목, 이리 와라!”
열운자가 냉랭한 얼굴을 살짝 누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거목으로 향했다.
그때, 거목에서 쉭 소리와 함께 거대한 저항력이 발산됐고 한제는 마치 진흙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나 그는 침착하게 체내의 원력을 거의 멈추다시피 느릿하게 가동하다가 그다음 순간 폭발시켰다.
순간 체내의 원력은 단숨에 절정에 이르렀고 한제의 몸에서 극강의 기세가 발현되면서 공간을 무너뜨릴 듯 격렬한 소리가 울렸다.
쾅!
굉음과 함께 주위 공간이 왜곡됐고 한제는 여유롭게 거목에 착지했다.
그 순간, 거목 위 수련자들의 눈빛이 굳어졌다. 한제의 강력함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직접 목격하고 보니 놀라울 정도였던 것이다.
한제는 몰랐지만 거목에 오르는 것은 귀하고 높은 지위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오직 스스로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으나, 끝내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은 이 1백여 명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온갖 법보와 신통력을 발휘한 끝에 겨우 오른 것이었다.
그러니 한제가 너무도 쉽게 거목에 오르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열운자와 신공가의 선조를 제외하면 이토록 쉽게 오른 것은 한제가 네 번째에 불과했다.
‘뇌선 허목! 과연 허명이 아니었군!’
주위에 대나무 피리가 맴돌고 있는 백의의 청년도 두 눈을 번쩍 떠 한제를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궁복 여인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반면 흑의의 노인은 표정이나 눈빛에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이 세 사람은 이미 규열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고 그런 그들은 방금 한제가 보인 한 수에 규칙에 대한 깨달음도 배어 있었음을 눈치 챘다.
이에 비록 한제가 자신들에 못 미치는 수준임은 알고 있었지만 동등한 위치로 보았다. 규열기 수련자 중 규칙을 모색하는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수련계에서는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는 것은 같은 수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한제는 열운자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뒤이어 한제는 몸을 돌린 뒤 신공가의 선조를 향해서도 포권을 했다.
그때, 빙긋 웃으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열운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거목 뒤를 내내 잘 따라오던 망월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발광하듯 격렬하게 포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오오오!”
망월은 흐릿한 빛과 또렷한 빛이 교차하며 번득이는 눈으로 거목 위의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 우렁찬 포효는 음파의 폭발을 일으키듯 거목 아래 수련자들의 심신을 떨리게 만들었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망월을 힐긋 보았다. 그는 애초에 망월에게 정체를 들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망월은 자신을 분노케 한 존재는 절대로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한제는 그런 망월을 벌써 두 번이나 분노하게 했으니 망월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던 망월이 달려들며 거목을 향해 촉수를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