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8
“이게 무슨 일인가?”
열운자는 미간을 팩 구기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전방에 공간의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푸른색의, 평범하게 생긴 옥패 하나가 빠져나왔다.
열운자는 망월을 향해 옥패를 내던졌다. 순식간에 망월 근처에 이른 옥패는 펑 하고 무너져 내렸고 그 순간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아들기 힘든 목소리였다. 사방의 어떤 수련자도 그 목소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허나 한제는 달랐다.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고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뜻까지 파악한 한제는 심신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 우(雨)의 선계 아래의 성역을 파괴하면 네게 육신을 주고 네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이것이 바로 그 고대 신의 언어가 의미하는 바였다.
망월의 눈에서 점차 멍한 빛이 사라지고 밝은 빛으로 대체됐다. 포효도 잠잠해지더니 망월은 참천거목를 지나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보면 망월의 거대한 몸과 그 위의 수많은 촉수가 하늘거리는 모습은 마치 무궁무진한 먹구름 같았다. 쉭, 쉭 소리를 내는 녀석의 기세는 참천거목에 비해서도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열운자는 한제를 힐끗 보았다. 방금 부서진 옥패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뒤 한제의 표정이 급변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허나 한제는 철저한 사람답게 재빨리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마수가 품은 한이 저렇게 깊을 줄을 몰랐습니다. 당시 저 녀석을 이용해 요가의 추격에서 벗어난 적이 있는데 저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열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교전이 일단락된 후에는 날 찾아와 다른 전(戰) 족자를 보는 것을 잊지 말게나.”
한제는 공손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때, 신공가의 선조가 불쑥 입을 열었다.
“허목, 신공호의 도념을 내놔라!”
그 말에 한제는 망설임 없이 미간을 두드려 신공호의 도념을 꺼냈다. 그 도념은 휙 날아가더니 신공가 선조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그것을 체내에 거둔 뒤 한제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뒷짐을 졌다.
한편, 망월은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녀석의 몸에서 하늘거리는 수많은 촉수는 연맹성역 수련자를 마주칠 때마다 옭아맸고 그 수련자들은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오그라들어 한순간에 목내이(木乃伊)처럼 변해버렸다.
모든 것을 다 빨아 먹힌 수련자의 몸이 망월의 촉수에서 떨어져 나오면 나천성역 수련자가 다가가 저물대와 법보를 챙겼다.
극현천
참천거목은 연맹성역 북쪽 구역으로 향하는 망월의 뒤에 바짝 붙어 질주했다.
망월과 참천거목의 속도는 보통의 수련자들에게는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음파를 폭발시켰고 그 소리는 아주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한편, 이때 연맹성역 북쪽 구역에서는 한 차례 대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연맹성역 수련자들은 수련자 연맹의 사존(四尊) 중 하나인 흑살마존을 따라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 채 서쪽 구역을 파괴했다. 또한 그들은 퇴로를 막아 북쪽 구역의 나천성역 수련자들을 고립시켜둔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두 성역 사이에서 벌어진 첫 번째 전투에서 연맹성역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열여덟 개의 나부(羅浮)를 이용한 염뇌자의 반격으로 북쪽 구역의 전세는 역전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맹성역 서쪽 구역의 단절이 참천거목에 의해 뚫렸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북쪽 구역의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고립 상태에서 벗어났고 조금만 버티면 지원군이 속속 도착할 터였다. 말하자면 지금은 나천성역 측이 월등한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흑살마존의 안색은 어두웠다. 염뇌자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게 둘 수는 없었지만 지금 그는 혈신자와 맞붙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전투는 그 기세가 엄청나 사방을 뒤흔들었다. 심지어 그 파동의 영향으로 그 자리에서 죽은 수련자도 있었다.
“도우들, 이 사람이 우스운 꼴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게!”
흑살마존은 쓰게 웃으며 오른손을 휘둘러 대량의 비린내가 풍기는 바람을 소환했다.
두 손을 흔드는 사이, 그는 이 비릿한 바람에 휩싸인 채 거대한 고래가 되더니 입을 쩍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순간, 이 공간에 존재하는 원기는 그 거대한 고래의 체내로 흡수됐다.
고래는 곧장 혈신자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는 끝없이 긴 한 줄기 보라색 빛기둥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황의(黃衣)를 입은, 준수한 외모의 이 중년 사내가 밖으로 나온 순간, 두 마리 거대한 용이 소환되어 포효하기 시작했다.
“염뇌자…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름이지! 난 연맹에서 새롭게 승급된 운룡요존(雲龍妖尊)일세!”
염뇌자는 눈을 번득였다. 한데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의 곁에 있던, 선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문의 선조 세 사람이 동시에 운룡요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련자 연맹의 사존은 모두 쇄열기 중기의 수준이로군. 혈신자의 수준은 알 수 없지만 저들에 능히 대항할 수 있을 터. 나머지 세 도우는 모두 쇄열기 초기 수준이니 힘을 합쳐야 가까스로 상대할 수 있어! 허나 저들은 이 전투에 참여한 이들 중 최강의 실력자는 아니지.’
눈을 번득이던 염뇌자는 운룡요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연맹의 사존들은 절대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지. 극현천, 어찌 자네는 여태 숨어 있는 겐가?”
말을 마친 염뇌자가 앞으로 한 발 내딛어 하늘에 떠 있는 열여덟 개의 나부 곁에 나타나 두 손가락을 매섭게 휘둘렀다.
“크하하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온 우주에 울려 퍼지더니 염뇌자의 두 손가락이 닿은 지점에 수많은 균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균열 안에서 백옥처럼 깨끗하고 하얀 손이 하나 쑥 빠져나와 염뇌자의 두 손가락과 부딪혔다.
쾅!
온 북쪽 구역이 진동했다. 염뇌자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 전방에 나타난 균열에서도 하나의 인영이 뒤로 밀려났다. 여인의 형상인 그 인영이 날카롭게 외쳤다.
“염뇌자 돌아올 낯짝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보군!”
귀가 아플 정도로 너무나 날카로운 그 목소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원력의 파동이 어려 있었다. 이에 주위의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그중 몇몇은 피를 토해내면서 체내의 원력을 잃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하늘에 떠 있던 열여덟 개의 나부 중 하나도 이 날카로운 목소리에 펑 하고 무너져 내려버렸다.
순간, 죽어간 수련자들의 체내와 붕괴한 나부로부터 무궁무진한 원기가 튀어나와 모두 그 여인의 인영에게 흡수됐다.
“극현천, 오랜만일세. 여전히 남자도 여자도 아니로군!”
염뇌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오른쪽 소매를 휙 휘둘렀다. 순간 끝없는 불바다가 사방에 나타나 퍼져나가면서 거대한 추진력을 형성해 나천성역 수련자들을 10만 척 밖으로 밀어냈다.
10만 척이라고 해도 여전히 나부가 떠 있는 범위 안이었기에 이들은 나부의 영향에 분전하여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전투는 혼란한 상황이었다. 자칫했다가는 육신이 무너져 내리고 원신이 소멸되기 십상이었다.
사실 원래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연맹성역 수련자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으나, 나부의 작용 덕분에 양측은 그런대로 비등한 상태를 이룰 수 있었다. 이에 전투의 승패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기 힘들었으나, 연맹성역이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한 연맹성역 수련자가 피를 토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는 1백 척도 채 물러나지 못하고 휙 날아든 검 한 자루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육신에서 빠져나온 원신은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그마저도 신통력의 파문에 뒤덮여 무너져 내렸다.
그 앞에는 나천성역 수련자 세 명이 새빨간 두 눈을 번득이며 법보로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달려들어 그들을 차례로 관통했고 이에 세 사람은 몸을 격렬하게 떨면서 숨을 거두었다.
한 줄기 빛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허나 그도 곧 붉은 빛에 뒤덮이더니 비명을 내지르며 핏물로 변해버렸다.
이 모든 것이 혈신자와 흑살마존의 교전이 미친 영향 때문이었다.
양측 수련자가 한 명 죽을 때마다 그들의 피는 모두 위로 솟구쳐 이제는 열일곱 개가 된 나부로 스며들었다.
큰 부상을 입어 육신에서 빠져나온 원신 중에도 나부에 흡수되는 자들이 있었다. 수많은 피와 원신을 흡수함에 따라 나부는 점점 기이하게 변해갔다.
쉴 틈 없이 수련자들이 죽어나갔다. 수만 명의 수련자들이 모인 이곳의 전투는 그야말로 세상을 뒤흔들었고 피로 이루어진 강이 거꾸로 솟아 나부로 흘러드는 모양새였다.
수많은 법보가 계속해서 빛을 번득였다. 곳곳에서 포효가 들려왔고 날카로운 비명도 끊임없이 울려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었다.
교전이 점점 격렬해지면서 우주에는 수많은 균열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균열에서 불어닥치는 음산한 바람도 전화(戰火)를 끄기는커녕 오히려 그 불을 더욱 돋우기만 했다.
이 전장의 중앙에서 염뇌자는 온몸을 화염으로 뒤덮은 채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맞은편에 선 극현천의 몸은 무궁무진한 한기로 뒤덮여 있었고 쩌적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동시에 수많은 빙하가 웅장한 기세를 뽐내며 나타났다. 극현천은 그 빙하들을 뿔처럼 주위에 두른 채 염뇌자를 마주보았다.
“염뇌자 넌 이미 수만 년 전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도망쳤다. 오늘은 중현자를 다시 부를 필요도 없이 내가 너를 처리하겠다!”
극현천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마치 얼음 칼날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음산한 한기와 살기를 풍겼다.
극현천은 아름다운 여인처럼 보였지만 가슴팍은 평평했고 작긴 했지만 단단한 목젖도 분명 존재했다. 그는 분명한 사내였다.
염뇌자는 극현천의 도발에도 아랑곳 않고 덤덤하게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사방의 원기가 응집되더니 그의 손바닥 안에서 하얀 불의 공을 이루었다.
“내가 떠나갈 때 분명 말했을 텐데? 언젠가 돌아와 반드시 수련자 연맹을 파멸시키겠다고…”
★ ★ ★
망월과 참천거목은 연맹성역의 서쪽 구역에서 점점 북쪽 구역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목 위의 한제는 말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망월을 향한 그의 눈빛이 불규칙적으로 번득였다.
‘고신의 아이⋯⋯.’
한제의 눈에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서늘한 빛이 스쳐갔다.
염뇌자는 오른손에 응결된 불의 공을 던지지 않고 손에서 으스러뜨렸다.
펑!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 불의 공은 수많은 불새가 되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극현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마든지 와라! 내가 상대하마! 하하하!”
극현천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웃으며 두 팔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뒤에 나타난 거대한 얼음 칼날들이 진동하더니 굉음과 함께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신통술을 발휘했다. 순간 하늘과 땅이 뒤바뀌기라도 한 듯 원력의 파동이 멀리 퍼져나갔다. 이에 온 북쪽 구역은 혼란에 휩싸였다.
염뇌자는 눈을 번득이며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순간 선계의 조각 여러 개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선계전륜(仙界轉輪)!”
그 말에 사방에 떠 있던 선계의 조각들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서로를 맴돌며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강력한 폭풍이 일어났으며, 이에 주위의 모든 수련자들은 일제히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