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47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청수를 다시 보게 됐다는 점이었다. 어째서 그가 여태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편,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한제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쿵쾅! 쿵쾅!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심장이 뛰는 소리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 현보 상인이 그린 결인이 아주 깊이 새겨졌다.
‘천보 상인의 제자였구나! 네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나비는 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천보 상인이 만들어낸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아! 다만 저 결인은 조금만 더 살펴본다면 파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제는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호풍과 환우에 휘말린 청수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수많은 빛들이 그의 손에 응집됐다가 흩뿌려졌다.
살두성병!
수많은 반짝이는 빛들이 퍼져나가면서 하나하나의 허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살두성병으로 소환된 이들은 모두 극강의 기운을 발산하며 수천 명 규모의 병사가 되었다.
청수의 손짓에 앞으로 일제히 날아간 이 허상의 병사들은 곧장 호풍과 환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현보 상인은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 허상의 병사들 중에는 그가 아는 이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 옛날 함께했던 벗들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그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났고 두 눈은 점차 잔인하게 물들어갔다. 그러더니 두 팔을 벌리며 낮게 외쳤다.
“청수,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해온 법보의 힘을 보여주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보들은 본원의 힘을 한 줄기씩 가지고 있지. 이 본원의 힘을 나는 수만 년간 연구해왔고 그 길을 힐끔 들여다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보 상인은 두 팔을 벌린 채 각종 결인을 그려내더니 손을 휘둘렀다. 순간 보이지 않는 파문이 그의 체내에서 발산되어 퍼져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만 리는 이 파문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존재하는 법보들은 모두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놀란 주인들이 허둥대는 사이 그 법보와 주인 사이의 연결도 끊어져 버렸다. 심지어 이미 죽은 수련자들의 법보도 현보 상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이 순간 현보 상인이 세상 모든 법보의 주인이 된 것처럼, 그의 부름 아래 모든 법보는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저물대도 반응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저물대 역시 법보의 한 종류였기 때문이다.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의 저물대가 통제에서 벗어나 곧장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심지어 도중에 저절로 열리면서 그 안의 법보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제의 저물대도 반응을 보였다. 한제는 표정이 급변해 얼른 손을 뻗어 저물대를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한제의 손이 저물대에 닿은 순간, 기이한 힘이 저물대를 뒤덮으면서 그의 심신을 태워버릴 듯했다. 손을 떼지 않았다가는 원신까지 까맣게 타버릴 것만 같았다.
다른 수련자들도 같은 일을 겪었는지 눈만 휘둥그레 뜬 채 멀어져 가는 자신의 저물대를 바라보았다.
허나 한제는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미간의 세 번째 눈을 떠 붉은 빛으로 저물대를 비추었다. 붉은 빛 안에 깃든 약간의 본원의 힘에 저물대를 뒤덮었던 기이한 힘은 점차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한시름 놓으며 저물대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 무렵, 현보 상인 근처에 모여든 수많은 법보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때마다 하얀 기운이 한 줄기씩 흘러나왔다. 그 기운들은 현보 상인의 사방을 맴돌았다.
청수의 살두성병이 달려든 찰나, 현보 상인은 두 팔을 양옆으로 펼치며 크게 외쳤다.
“법력(法力) 공열!”
그 순간, 현보 상인의 주위를 맴돌던 하얀 기운들은 튀어나가면서 청수의 살두성병에게로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쾅!
하늘을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우주 공간은 더욱 넓게 무너져 내렸다. 원래는 1만 리 반경의 범위만 뒤덮고 있던 회오리가 끊임없이 퍼져나가자 미처 피하지 못한 수련자들은 돌연 나타난 거대한 균열에 빠져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우주가 붕괴되면서 형성된 회오리 속 허공에 빠지면 살아 나오기는 매우 힘들었다.
한데 그토록 격렬한 우주의 진동도 망월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두 눈이 새빨개진 망월은 자신에게 부상을 입히고 수많은 작은 망월들을 죽인 현보 상인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한을 품은 상태였다.
온몸의 촉수로 응집시킨 고신의 팔은 청수가 등장하면서 잠시 멈칫한 상태였지만 망월은 이내 다시 고신의 팔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어딘가에서 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염뇌자는 소매를 휘둘러 무동선을 저 멀리 떠밀어 버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앞쪽에 선계의 조각 허상 수십 개를 소환해냈다. 이 조각들은 1천 리 반경을 뒤덮는 회오리를 형성했다.
짙게 발산된 선기(仙氣)가 이 회오리에 막강한 힘을 불어 넣어주었고 곧장 현보 상인을 향해 돌진했다.
“청수 선군, 내가 도와주지!”
무동선 또한 현보 상인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빠르게 따라붙었다.
한편, 현보 상인은 머리가 저릿해진 상태였다. 이 전투는 선계가 붕괴할 당시를 제외하면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위기 상황이었다.
앞에는 청수가 뒤에는 망월이, 위에는 염뇌자가 버티고 있었다. 도망은 불가능했다.
위기의 순간, 현보 상인의 체내에서 거대한 선원(仙元)이 회전하면서 밖으로 발산되어 수많은 방어막을 형성해주었다.
‘이 위기만 버텨내면 살아남을 수 있어!’
그가 선원의 힘으로 몸을 뒤덮은 그때, 망월이 소환해낸 고신의 팔이 닥쳐들었다.
쾅!
그 한 번의 충돌로 현보상인을 보호하던 보호막들이 층층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청수가 다가왔다. 동시에 여러 개의 붉은 번개가 현보 상인에게 떨어졌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현보 상인은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그 순간, 선제의 조각들이 그에게 일제히 모여들었다.
쾅!
현보 상인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붕괴 직전의 상태인 원신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의 원신에 걸쳐진 금색 옷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충격에 찢겨나갔다.
이 급격한 변화에 사방의 우주는 갈라지기 시작했고 붕괴는 빠르게 확산되어 반경 수만 리는 동시에 파괴됐다.
수많은 수련자가 그 기세에 휘말려 사라져갔다.
한제는 고신의 솥을 이용해 계속해서 자리를 바꾸어가며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두 눈은 망월에게 고정돼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청의의 여인은 놀란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녀 곁의 금빛 연시 또한 냉랭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다시 복잡하게 빛났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군께서 소첩을 알아보실지⋯⋯.”
그녀 곁에 있는 연꽃은 끊임없이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 죽음의 기운이 얼마나 짙은지 거의 안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여인은 고운 손을 느릿하게 들어 금색 시체를 가리키더니 가볍게 외쳤다.
“봉인 해제!”
그 한 마디에 기이한 두 개의 결인이 형성되며 금색 시체에 찍혔다. 그러자 금빛 시체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그의 정수리 위에서 회전하던 다섯 장의 부적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금빛 연시가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밝은 빛이 번득였다.
“크아아!”
금빛 연시의 포효가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은 끊임없이 불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금빛으로 번득이는 한 마리 용이 됐다. 허상이 아닌, 진정한 피와 살을 가진 용이었다.
“캬오오!”
용은 포효하며 훌쩍 튀어나갔다.
작게 한숨을 내쉬던 청의의 여인은 저 멀리 떨어진 한제를 바라보면서 점차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망월의 입으로
용은 포효를 내지르며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녀석의 정수리 위에는 다섯 장의 노란 부적이 억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장에 이른 용은 온몸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독화(毒火)!”
그러자 머리 위 부적 중 하나에서 불빛이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용의 온몸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맹독이 깃들어 있는 불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독이 전신을 뒤덮는 사이, 금룡은 곧장 현보 상인의 원신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다.
한데 바로 그때, 우주의 붕괴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참천거목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나의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뒤이어 한 줄기 푸른 빛과 함께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청의(靑衣)의 노인은 나타나자마자 금룡의 근처에 이르러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그의 앞에 허상의 거목 한 그루가 나타나더니 내리 떨어졌다.
“난 원고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련자 가문의 9대 장로 일목자다. 이번에는 어찌 도망칠 셈이냐?”
금룡은 허상으로 나타난 거대한 나무에 가로막힌 상태에서도 눈을 번득이며 입을 벌려 검은 흙을 토해냈다. 그 흙속에는 짙은 죽음의 기운이 어려 있었다.
“장토(葬土)!”
청의의 노인, 일목자는 짧게 외치며 손을 펼쳐 허공을 후려쳤다. 순간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폭풍이 생겨났고 노인은 소매를 휘둘러 그 뒤에 참천거목들을 소환해냈다.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큰 거목들은 이 우주 공간에서 밀집된 방어막을 이루어주었다.
“도망치지 못한다! 하하하!”
일목자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거목이 휙 하고 날아들었고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금룡은 끊임없이 뒤로 물러섰다.
이때 가까이 다가온 무동선이 현보 상인을 도우려 했지만 어느새 청수가 붉은 눈을 번득이며 달려 나갔다.
염뇌자 역시 두 손을 휘저어 선계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회오리를 몇 배로 부풀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망월이 소환해낸 고신의 팔까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다만 잔뜩 분노한 망월은 이성을 잃은 상태라 현보 상인뿐만 아니라 사방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위력을 떨쳤다.
고신의 팔이 현보 상인에게 가까워진 그때, 망월은 포효를 내지르며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순간 고신의 손이 펼쳐지면서 앞쪽을 가로막은 모든 사람들을 치워내고 곧장 금룡과 현보 상인을 붙잡았다.
“캬오오!”
고신의 손은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하더니 금룡과 현보 상인을 망월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망월은 현보 상인을 단번에 죽여서는 그 분노를 다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을 다치게 한 다른 수련자들까지 삼켜 소화할 생각이었다.
금룡과 현보 상인을 삼킨 망월의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이전의 맑은 눈빛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