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49
허이국을 불러낸 것은 뇌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뇌수를 위로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허이국과 뇌수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후 뇌수의 표정은 누그러졌고 눈에 드러난 의심의 빛도 점점 옅어졌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자 약간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허이국과 대화를 나누듯 낮게 그르렁거리기까지 했다.
결국 뇌수는 허이국을 자신의 몸에 태웠고 심지어는 허이국이 자신의 뿔에 걸린 고리를 만지작거려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지금 자신의 모습이 퍽 만족스러운 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광경을 본 한제는 내심 허이국에게 감탄했다. 당시 주작성의 주작묘에서 그 굽은 칼의 혼을 맞닥뜨렸을 때부터 허이국에게 이런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허이국은 뇌수의 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의기양양해져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허이국이 얼마나 훌륭한지 이게 알았겠지? 이런 일에 있어서는 이한제 네놈보다 훨씬 낫다고!’
뿌듯해진 그는 쇠고리를 조금 힘주어 움켜쥐었고 이에 뇌수는 그르렁거렸다.
허이국은 얼른 가볍게 그것을 토닥이며 뇌수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러자 뇌수는 눈웃음을 치며 머리를 흔드는 와중에도 곁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당시의 그 고고하고 오만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뇌수의 위풍당당한 태도와 그 불굴의 의지가 깃든 눈빛, 그리고 고고한 포효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뇌수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약 마음을 통해 느껴지는 감응이 없었다면 이 뇌수가 사신차로부터 만들어진 자신의 그 뇌수라는 것조차 믿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씁쓸한 마음으로 오른손을 휘두르자 뇌수는 곧장 전광이 되어 저물대로 들어갔고 허이국은 얼른 뒤로 물러나 알랑거리며 웃었다.
“주인님, 오랜만에 절 부르셔놓고 곧장 들여보내시는 건 아니겠지요? 여긴 별로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데 조금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시지요.”
한제는 허이국을 힐끔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곳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다. 얼른 돌아가!”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고 이에 허이국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감히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하고 그저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그럼에도 표정에서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고 그는 순순히 한제의 저물대로 돌아갔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망월의 체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신식을 온몸에 펼쳐놓고 매우 신중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이 망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제는 고민도 않고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전이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망월의 체내에 수많은 작은 망월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망월들은 모두 죽은 상태였으니 위험은 어느 정도 줄어든 셈이었다.
허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한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망월이 회오리 속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내내 모종의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이전에 망월의 체내에 들어왔을 때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원력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의 원력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에 한제의 마음은 묵직해졌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심지어 자신의 체내에서도 원력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허나 얼른 자신의 체내를 살핀 한제는 원력이 정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힘에 억제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됐다.
그 압박은 마치 하나의 봉인처럼 작용했고 속도는 느렸지만 언젠가 온몸의 원력이 전부 봉인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망월과는 무관한 일이다. 망월의 체내에서도 이렇다면 몸 밖으로 나갔을 때 이 봉인은 더욱 빠르게 작용할 거야!”
잠시 고민하던 그의 눈빛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래도 고신의 육신이 가진 힘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군!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내가 우위에 설 수 있겠어!”
고민하던 한제는 곧장 전방으로 향했다.
“이 봉인, 선유족(仙遺族)의 종이 부적과 비슷한 데가 있는데⋯⋯.”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체내의 원력을 조심스럽게 통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망월의 뼈 부근에 이르렀다.
한데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한제의 표정이 곧장 굳어졌다. 망월의 뼈에서는 원래 대량의 영력(靈力)이 흘렀지만 지금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보아하니 봉인은 원력뿐만 아니라 영력까지 제압하고 있는 모양이군! 수련자들이 흡수할 수 있는 기운이라면 모두 봉인되는 모양이야. 하지만 내가 가진 고신의 육신에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않아! 다른 자들도 같은 상황에 봉착해 있다면 오래 버틸수록 내가 우위에 설 수 있어!”
한제는 두 눈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망월의 뼈를 따라 나아갔다. 목표는 당시 그가 발견했던 고신의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
한데 그때, 돌연 전방에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격렬한 파동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망월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 발아래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살로 이루어진 벽에 딱 달라붙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그 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방에서 느껴지는 어렴풋한 신통력으로 인한 충격에 한제는 이동을 멈췄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옆에 달라붙어 눈 깜짝할 사이 망월의 살 속에 파묻혔고 마치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큰 원을 그리며 빙 돌아 천천히 이동했다.
한데 신식을 펼쳐 신중하게 주위를 관찰하던 그는 굳은 얼굴로 우뚝 멈춰 벽에 딱 달라붙은 채 바깥을 관찰했다. 그러더니 곧장 뒤로 물러나 망월의 뼈 근처까지 도망쳐온 후에야 멈췄다.
‘여기 들어온 자들 중 내가 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허나 내게도 승산은 있다. 저자들의 원력이 많이 소모될수록 난 우위를 차지하게 돼!’
좀 전에 전방으로 신식을 펼친 한제가 발견한 것은 1천 척 크기의 빈 공간이었다. 사방은 망월의 살로 에둘러져 있었지만 그 육벽(肉壁)은 꿈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의 무동선은 보라색 옷의 곳곳이 터지고 해진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고초를 겪은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여전히 극강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예리한 검처럼 어떤 사람의 접근도 가로막는 날카로운 기운이었다.
그자의 뒤쪽 육벽에는 하나의 입구가 나 있었다. 고신의 아이가 있는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무동선의 맞은편에는 일목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 열시 창백했으나 두 눈은 침착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법력의 파동이 일렁이면서 그 공간을 임시적인 전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제의 신식은 두 사람의 눈을 피하지 못했지만 둘 다 한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 허무의 공간에서 너와 나의 원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곳에 온 것은 그 망할 선인 때문이 아니야. 청수와 싸우고 있는 현보나 가서 도울 일이지 이곳에서 날 가로막다니, 이제 무슨 헛짓이냐?”
무동선은 대꾸 없이 냉랭한 눈으로 일목자를 노려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오색찬란한 기포 하나가 그의 손바닥에서 피어올랐다.
그 기포를 바라보던 무동선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현보 상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 말에 일목자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앞에 거대한 나무의 허상이 나타나 돌진했다.
“이곳에서 많은 원력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 속전속결로 끝내주마. 최대한 빨리 망월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만 대장로께서 맡기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니까!”
일목자의 앞에 나타난 거목이 콰르릉 소리를 내며 달려든 순간, 무동선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색찬란한 기포가 곧장 날아들어 그 거대한 나무의 허상과 충돌했다.
펑!
기포는 터져나가면서 허상의 나무 역시 바르르 진동하며 흩어져 버렸다.
일목자는 두 손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손을 휘둘렀다. 이에 손가락만 한 푸른색 나뭇조각이 허상으로 나타나 날아들었다.
“일목(一木), 일계(一界)!”
일목자가 외친 순간 푸른 나뭇조각이 바르르 진동하며 삽시간에 확대됐고 그 위에서 흐르던 반짝이는 녹색 빛은 눈 깜짝할 사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녹색 기운은 이곳을 외부와 단절된 세상으로 만드는 봉인을 형성하더니 무동선의 사방을 맴돌았다.
이때를 틈타 일목자는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리더니 무동선을 빙 둘러 곧장 그 뒤편의 입구로 사라졌다.
일목자가 사라지기 직전, 무동선의 온몸을 뒤덮은 녹색 기운 안쪽에서 기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포 하나하나가 터질 때마다 녹색 기운의 일부가 흩어져 버렸고 일목자가 입구로 사라진 후 한 호흡쯤 지났을 무렵에는 녹색 기운과 기포도 전부 사라졌다.
무동선은 일목자가 사라진 입구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추격을 시작했다.
★ ★ ★
한편, 망월의 뼈 근처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뒤이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그가 한 줄기 신식을 녹여내자 검은 곧장 앞으로 돌진했다.
한제는 신식으로 그 검을 통제하여 동굴 입구로 들어가게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우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나는 한 마리 개미만도 못한 존재야!’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검을 통해 동굴 안의 광경을 또렷하게 살폈다.
‘허나 저들은 내가 가진 고신의 힘이 이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게다가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저들의 원력이 얼마 남지 않게 되면 개미만도 못한 내가 어부지리를 얻게 될 수도 있다!’
비검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전방에서는 각종 신통력의 파동이 끊임없이 전해져왔다.
한제의 신식도 그 영향을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이 공간의 압박감이 신통력의 영향까지 억눌러준 덕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검은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한제의 눈앞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났다.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는 회오리에서는 무궁무진한 흡인력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 회오리 안은 고신의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
일목자나 청수 등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이내 비검을 통제해 회오리 안으로 들어섰다.
화지위뢰(畵地爲牢)
‘저들이 원력을 더욱 빠르게 소모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나의 퇴로도 남겨놔야 한다.’
한제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저물대에서 열 자루가 넘는 비검을 꺼냈다. 이 비검들은 모두 일전의 큰 전투에서 손에 넣은 것들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각 비검에 원력을 쏟아 넣고 끊임없이 압축했다. 하나의 비검이라도 자폭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일 터였다.
한제는 비검들을 사방으로 퍼뜨려 망월의 체내 민감한 곳들로 향했다. 이제 때가 되면 비검들을 자폭시킬 것이고 그러면 분노한 망월의 체내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는 망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제가 아니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생각이었다.
한편, 회오리 안으로 달려든 단검은 그 안으로 진입한 순간 흘러넘칠 듯 강렬한 원력과 충돌하여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순간 안색이 변한 한제는 곧장 그 비검에서 자신의 신식을 빼낸 뒤 곧장 물러났다. 그 갑작스러운 원력의 충격을 피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원력은 마치 맹렬한 마수처럼 폭풍을 이끌고 튀어나와 비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펑!
폭발음과 함께 비검은 그 끝부터 마디마디 무너져 내려 순식간에 검의 자루까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빠른 반응 덕에 한제의 신식은 검이 무너지기 직전에 빠져나왔고 곧장 도망쳤다. 그럼에도 반 정도는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망월의 뼈 근처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느릿하게 회복됐다.
‘엄청난 파동이군. 튕겨 나오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신식이 남김없이 파괴됐을 거야!’
더구나 방금 그 회오리에서 튀어나온 원력은 단지 여파에 불과했을 것이다.
저물대를 두드린 한제는 또다시 한 자루의 비검을 꺼내 신식으로 뒤덮었다. 그러자 비검은 긴 빛을 그리며 전방으로 달려들었다.
잠시 후, 비검은 다시 회오리 근처에 이르렀지만 곧장 들어서는 대신 잠시 기다리며 원력의 여파가 더 느껴지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 후에야 한제는 비검을 회오리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거대한 흡인력 덕분에 따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비검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한제에게 익숙한 통로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