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
손을 흔들자 그 천은 천천히 떠올랐다. 한제는 옥패 안에 기록된 반응로 제작 방법을 되뇌었다. 반응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수의 두개골로 본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를 두드려 물통만 한 굵기에 머리가 연결된 뱀의 시체를 떠오르게 했다. 이 뱀의 시체는 소표의 저물대에서 발견한 것으로 그는 이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여태까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물건이었지만 반응로를 제작하는 데 써볼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뱀의 머리를 잘라낸 한제는 가죽과 살을 발라냈다. 타원 형태의 두개골에 들어 있는 붉고 흰 뇌와 뇌수까지 긁어내고 나자 반응로의 본체가 될 재료가 갖춰졌다.
이어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조심스레 영력의 막을 천천히 반응로의 본체 위에 붙였다.
쩍그러자 두개골에 균열이 나타나더니 균열은 점점 더 커졌고 뱀의 두개골은 결국 수많은 조각으로 깨져 바닥에 떨어졌다. 영력의 막도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실패였다.
한제는 쓰게 웃었다. 실망스럽긴 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던 일이기도 했다. 옥패에는 반응로 제작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고 기록돼 있었다. 그 낮은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력의 실을 잘 통제해야 하고 특히 반응로의 본체가 될 재료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리고 강력한 영수의 두개골 일수록 좋다고 했다. 만약 황수의 두개골을 쓴다면 성공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었다. 영수가 아닌 일반 요괴의 두개골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반응로의 질은 앞으로 법보를 어떻게 단련시키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옥패에서는 여러 번 강조했다.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반응로 제작은 실패했고 그의 저물대 안에 들어 있던 유일한 영수도 써버렸으니, 이제 반응로 제작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한제는 다시 뒤로 물러나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자 철조각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쇳물을 한 방울씩 흘렸다. 철조각은 조금씩 작아졌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펑그러다 마침내 터지는 소리를 내며 완전히 녹아버렸다. 이제는 땅에 고인 쇳물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 철조각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마혼은 빛을 깜빡거리며 한쪽에 서서 한제를 훔쳐보았다.
녹색 비검의 그림자가 천천히 그 쇳물 속에서 나타나 한제의 곁을 맴돌았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검은색 비검을 꺼내들었다. 이는 손유재의 것으로 지금의 한제에게 딱 알맞은 물건이었다.
한제가 녹색 비검의 그림자를 가리키자 그 그림자는 곧장 검은색 비검 속으로 녹아들었다.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법보를 단련시키는 방법이었다. 심지어 이 방법은 연기술로 쳐주지도 않았다. 마치 수련자가 다른 수련자의 몸을 빼앗는 것처럼 겉모습만 바꾸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시험해본 결과 새롭게 만들어진 비검의 속도는 이전의 철조각보다 훨씬 빨랐다. 조나라에서 사용했던 비검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부족했으나,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였다.
마혼은 한제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순순히 그 비검 안으로 들어갔다.
비검을 챙긴 한제는 잠시 시간을 계산한 뒤 휴식을 취하며 호흡하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땅을 박차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그가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에 집중한 지난 며칠 동안 화분국에서 어떤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변화는 낙하문의 원영기 수련자가 화산을 봉인하던 때 시작됐다. 그가 막 봉인을 마친 화산 하나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용암이 반경 백여 장 범위까지 퍼져갔다.
동시에 검은 연기도 뭉게뭉게 피어올라 온 하늘을 뒤덮었다. 여기까지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 원영기 수련자를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폭발한 그 화산으로부터 용암을 타고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화염 요괴들이었다.
그 화염 요괴들 중 유난히 몸집이 큰 어느 녀석은 그 원영기 수련자들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원영기 수련자는 적수가 되지 못했고 온몸에 잔뜩 부상을 입은 채 도망쳤다. 화염 요괴는 그를 뒤쫓지 않고 다른 화산 분화구로 뛰어들어 봉인을 해제했다.
그렇게 온 화분국의 화산이 연이어 폭발했다. 화분국 전역에 포악한 불 속성의 영기가 충만하게 차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호흡했다가는 마가 들리거나 심하면 불타오를 터였다.
따라서 화분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일반 백성들은 분분히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 다음으로 곤경에 빠진 것은 크고 작은 각각의 수련 가문이었다. 이 가문들은 4대 종파로 시선을 돌리며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를 고민했다.
4대 종파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모두 전신전에 모여 이 일에 대해 상부 수련국에 보고한 뒤 과감히 이주 명령을 내렸다. 결정이 내려지자 이곳에 파견 나와 있던 모든 외부 수련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문파로 돌아갔다.
4성 수련국이 언제 지원을 해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금만 늦어도 이곳은 결국 화염 요괴들에 소멸당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화분국의 힘 역시 큰 손상을 입고 2성 수련국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화분국의 변경은 다른 3성 수련국인 선무국(宣武國)과 맞닿아 있었다. 선무국은 국내의 세력이 복잡하고 문파도 다양했다.
한제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마침 4대 종파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온 문파가 이주하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사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화염 요괴들의 기습까지 더해져 각 문파 사람들은 싸우면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4대 문파가 정리를 마치고 크고 작은 수련 가문들까지 더해져 2만 명이 넘는 수련자 대열이 갖춰졌다.
화염 요괴들은 이미 화분국의 모든 화산의 봉인을 풀어, 10만 마리가 넘는 대군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수많은 화염 요괴들은 포위망을 펼친 채 수련자들을 위협했다.
몇 차례 커다란 전투를 거친 끝에 수련자 대군은 마침내 화염 요괴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은 화염 요괴에 저항할 일부 사람들을 남겨둔 채 빠른 속도로 선무국으로 향했다.
★ ★ ★
동굴 밖으로 나온 순간 한제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하늘 위에서 일고여덟 명의 수련자가 한 무리의 화염 요괴들에게 뒤덮여 선혈을 흘리며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한제는 발을 박차고 곧장 토둔술을 펼쳐 전신전 방향으로 내달렸다. 이동하는 동안 신식을 펼친 그는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는 화염 요괴들을 살피며 갈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그는 곧장 방향을 바꿔 임두를 찾지도 않고 마량의 기억에 근거해 변경 쪽으로 향했다. 화분국에는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스친 후 빠르게 물러났다가 몰려들었다. 한제는 깜짝 놀라며 그것을 신식으로 살폈다.
하늘에 덮인 구름층 위, 16마리의 거대한 화염 요괴가 둥그렇게 대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 대형 가운데 불의 고리 하나가 떠 있었다.
붉은 색의 얇은 실들이 불의 고리에서 뻗어 나와 거대한 화염 요괴 16마리의 머리에 연결돼 있었다. 거대한 신식은 바로 이 불의 고리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16마리의 거대 화염 요괴들이 연합하여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제를 발견한 순간, 이 16마리 화염 요괴들의 두 눈에는 서늘한 빛이 드리워졌다. 그들은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한제 쪽으로 돌진했다.
“으아아아악”
한제는 속도를 높여 땅에 숨은 채 질주했다. 16마리의 거대 요괴들은 포효하며 대량의 용암액을 분출했다. 지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곳곳에 균열이 일었다.
이미 그들에게 추격을 당한 적 있는 한제는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없었다. 거대한 괴물들이 용암액을 분출한 순간, 그는 곧장 땅속에서 빠져나와 긴 무지개를 그리며 날아갔다.
16마리의 거대 요괴들은 그런 그를 끝까지 쫓았다. 화산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그들이 이렇게 튀어나온 이유는 단 하나, 한제를 찾아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한제 때문에 이들은 모든 수련자에게 한을 품은 상태였기에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도 손실은 작지 않았다. 수준이 높은 수련자가 법보를 이용해 부리는 법술에 다치고 죽은 화염 요괴도 셀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화염 요괴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비검으로는 그들을 해칠 수 없었다. 강력한 법보를 통한 공격만이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수적으로 너무 많았다. 아직도 크고 작은 화산들 안에서 화염 요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석주가 흡수한 화염 요괴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한제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그를 뒤쫓는 요괴들은 용암 속에서와 달리 밖에서는 한제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저 거리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기를 쓸 뿐이었다.
허나 한제 역시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사방에 가득한 광폭한 불 속성 영기 때문에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온몸이 타는 듯 고통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뒤쪽에 있는 요괴들의 포효를 듣고 새로운 요괴들이 끊임없이 한제를 저지하러 나섰고 그를 뒤쫓는 요괴의 수도 점점 많아졌다. 멈추는 순간 저 요괴들에게 따라잡혀 갈기갈기 찢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누군가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월등히 수준이 높았던 등력이 추격해왔을 때도 오히려 그를 죽이지 않았던가?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는 영력 액체가 들어 있는 나무통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 소모된 영력을 보충했다. 이어서 저물대 안에서 검은색 빛 한 줄기가 떠올랐다. 반짝이던 그것은 제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뒤쪽에 있는 화염 요괴들 앞에 나타나 보통 크기의 화염 요괴를 찔렀다.
쨍그랑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 화염 요괴는 가슴팍에 상처를 입은 채 저 먼 곳으로 나가떨어지더니 몇 바퀴 구른 뒤 포효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내심 실망이 컸다. 화염 요괴는 신식 공격도 소용이 없었으며 육체적 능력도 막강해서 비검으로 찔러도 상처만 입을 뿐 죽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상처도 경상에 불과한 듯했다.
요동치는 형세
한제는 날아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비검으로 괴물들을 기습했다. 비검의 순간이동 속성을 이용해 신출귀몰하게 공격을 하던 중, 한 화염 요괴의 미간을 찔렀다.
그러자 그 화염 요괴는 경련을 일으켰고 머리가 폭발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발산시켰다. 그 열기에 한제의 머리카락이 타들어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희색이 어렸다. 화염 요괴에게도 약점은 있었던 것이다.
이어진 추격에서도 한제는 계속해서 비검을 통제했고 화염 요괴들은 하나하나씩 그의 비검에 목숨을 잃었다. 이 보통 크기의 화염 요괴는 한제의 추측에 따르면 응기 수준이었다. 다만 그들은 신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도 튼튼해 죽이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비검 하나로 싸우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고 화염 요괴들은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요괴들이 죽어도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순간이동을 너무 많이 한데다가 비검의 영혼이 진정으로 다른 비검을 정복한 상태가 아닌지라 비검은 이미 비정상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겉면에는 움푹움푹 홈이 파였고 심지어 이미 완전히 녹아버린 부분도 있었다. 비검의 전 주인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그것이 자신의 비검임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한제는 이 상황을 오래 끌고 갈 수 없음을 느꼈다. 그 역시 영력 액체로 영력을 보충하고 있기는 했지만 액체가 떨어지고 영력이 모두 소모되면 곧 화염 요괴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한제는 이를 악물고 방향을 들어 선무국으로 향하지 않고 전신전 쪽으로 내달렸다. 그는 전신전이 소멸됐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주라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만약 바로 움직였다 해도 속도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동굴 안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을 한 기간은 8일에 불과했다. 그 며칠 만에 모든 철수 작업을 마쳤을 리는 없었다. 그보다도 더욱 확실한 증거는 체내의 정혈을 통해 양웅과 임두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한제가 방향을 바꾸자 화염 요괴들은 즉각 거리를 좁혀오면서 끊임없이 용암액을 분출해댔다. 몇 번이나 그 용암액에 맞을 뻔한 위험을 넘기며 한제는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는 충만한 기운이 먼 곳에서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신식으로 그쪽을 살핀 한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수련자 대군이 천천히 먼 곳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1만 개가 넘는 빛이 하늘을 달리는 장면에 내심 놀랐으나, 한제는 곧장 마음을 다잡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 수련자 대열 중에는 수많은 전차도 포함돼 있었다. 강력한 영력 파동은 바로 그 전차로부터 발산되고 있었다.
한제를 뒤쫓던 화염 요괴들은 곧장 움직임을 멈추었다. 16마리의 거대한 괴물들은 포효하며 수련자 대군을 막아섰다. 수련자 대군은 멈추지 않고 수천 갈래의 검광을 날렸다. 10여 명의 원영기 수련자의 지도 아래 그 검광들은 요괴들과 교전을 벌였다. 이어 대군 중 두 개 조가 앞으로 나왔다. 약 2천 명의 수련자가 그 전투에 동참했다.
한제가 대군 쪽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곳에서 10개가 넘는 검광이 빠져나와 한제에게서 10여 장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중에는 묘령의 아가씨도 한 명 섞여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미간에는 살기가 번득였다. 그녀는 한제 뒤에 있는 화염 요괴들을 보며 표정에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우는 어느 문파의 제자이지? 그리고 이름은 뭔지 빠르게 고하도록!”
한제는 아직도 두려운 기색으로 얼른 포권을 했다.
“전신전의 제자 마량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한제를 훑어본 뒤 차갑게 말했다.
“청현, 이 자를 전신전 대열로 데리고 가서 신분을 확인해. 만약 전신전의 제자가 아니라면 죽여 버려.”
사람들 가운데 한 청년이 나오더니, 한제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고는 검광으로 변해 대군 쪽으로 날아갔다. 한제는 여자를 향해 포권을 해보인 뒤 청년의 뒤를 따랐다.
수련자 대군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1만 명 규모의 사람들이 하늘을 뒤덮고 날아가는 모습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영력 파동은 이미 두려울 정도로 짙은 상태였다.
온 하늘은 비록 화산에서 분출된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 수련자 대군이 영력 파동을 일으키자 거대한 장검이 하늘을 둘로 가른 듯 중간부터 검은 연기가 갈라지며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천천히 흩어지면서 수련자들의 전진을 더 이상 막지 못했고 수만 개의 비검에서 발산되는 검의 기운은 영력의 파동보다 더욱 짙고 반짝였다. 이 비검 아래, 형세가 요동쳤다.
비검은 호탕하고 가지런하게 날며 땅을 부수고 하늘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를 드러냈다. 특히 동이 트고 있는 지금, 검은 연기가 뒤로 물러나면서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한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큰 규모의 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는 전체가 힘을 모아야만 펼칠 수 있는 것으로 개인으로서는 절대 낼 수 없는 힘이었다. 또한 오직 화염 요괴들만이 이런 기세에 필적할 수 있었다.
한제가 정신을 차린 것은 청현이라는 청년을 따라 수련자 대군의 중앙 대열에 도착했을 때였다.
“정찰 대대 낙하문의 제자 청현이다. 이 마량이라는 자에 대해 전신전 도우들에게 신분 확인을 받고 돌아가 보고하려 한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일전에 원영기 여인은 그를 죽이거나 해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듯한 기색까지 보였다. 그랬기에 한제도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게다가 사실 이곳은 화염 요괴들의 추격 아래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중한 성격의 한제는 뭔가 좋지 않은 낌새가 보이면 곧장 도망칠 준비를 한 상태였다.
전방에서는 화염 요괴들과 교전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지금 도망친다 해도 그를 뒤쫓는 데 집중할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원영기나 결단기 수련자들은 화염 요괴들을 상대하기에 바쁠 것이고 축기 수준의 수련자들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으니 한제는 두려울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