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0
언젠가 나천성역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올 가능성이 있다 보니 높은 지위에 있는 열운자의 소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열운자를 만나는 것이 자신에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두 번째 족자를 살피면서 본원의 힘 한 줄기를 더 얻었을 뿐만 아니라 전(戰) 족자의 내력도 알게 됐고 나부까지 획득한 상태였다.
한제는 좀 전의 일을 다시 따져보다가 평정심을 되찾고는 몸을 훌쩍 날려 속도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는 우주를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 하나를 찾아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청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뒤, 전방에 파문이 일더니 청수가 나타났다.
그 순간, 짙은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풍겼다. 청수의 뒤로는 척 보아도 수백 개는 될 법한 머리가 따라붙었다.
청수의 수준은 열흘 전보다 훨씬 더 높아져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수많은 수련자들을 흡수한 결과일 터였다.
“이 녀석들은 모두 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살역계 수련자들이다. 살역계에 들어가려면 이들의 머리가 필요하지!”
말을 마친 청수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뒤에 있던 머리들이 둥실 떠오르면서 고리 형태를 이루었다.
“선술(仙術), 유명(幽冥)!”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청수의 체내에서 선원이 가동됐다. 그가 앞으로 손을 뻗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하나가 피 안개로 터져나갔고 뒤를 이어 고리 형태를 이룬 머리들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짙은 피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청수는 한손을 휘둘러 그 피 안개를 회전시켰다. 그 회전은 점차 빨라졌고 터져나간 머리의 주인이었던 수백 명의 잔혼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제의 심신을 흔들었다.
“유명(幽冥)의 인도!”
청수가 냉랭한 목소리로 외친 순간, 그 잔혼들의 울부짖음은 더욱 격렬해졌고 그 소리는 회오리 깊은 곳으로 응집되어 검은 동굴을 형성했다.
살역계와 관련한 이 모든 잔혼들의 기억이 한데 응집되면서 길이 하나 나타났다. 수많은 수련자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통로였다.
“이것이 바로 선술 유명의 인도다. 실용적인 선술이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술법이기도 하다!”
청수의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검은 동굴은 회전하면서 끝없이 늘어났다. 그 찰나의 순간, 허공이 깨져 나가며 검은 동굴 안에서 암적색 세상이 드러났다.
하나하나의 거대한 검 같은 건물들이 허공에 떠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살육의 기운이 훅 끼쳐왔다. 정중앙에는 탑이 하나 있었는데 높이만 1만 척이 넘을 듯했고 수많은 검은 쇠사슬로 다른 건물들과 이어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살역계였다.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인 청수는 옥패 하나를 꺼내 유명의 인도의 구결을 기록한 뒤 한제에게 건네더니 망설임 없이 회오리 안으로 몸을 던졌다. 한제는 피식 웃고는 청수의 뒤를 따랐다.
‘곧장 상대의 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사형이 좋아하는 모양이군.’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회오리에 살역계 수련자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그 회오리로부터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뇌(雷)의 선계의 청수다. 오늘 나는 나의 것을 찾고 이곳을 파괴하러 왔다!”
그 목소리는 울려 퍼진 순간 살기 어린 살육의 바람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쾅! 쾅! 쾅! 쾅!
찰나의 순간, 수많은 검 형태의 건물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며 폭발했다.
‘이 살역계에 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기에 사형은 현보 상인의 기억을 확인한 뒤 이렇게나 분노한 것인가!’
한제는 수련자 연맹의 여덟 개 계(界) 중 하나인 살역계를 들여다보았다.
살역계(殺域界)
두 개의 전(殿), 네 개의 존(尊), 그리고 여덟 개의 계(界)로 나뉘어 있는 수련자 연맹 중 살역계는 그들만의 세상을 이루어낸 상태였다.
수만 년 전, 살역계의 첫 번째 계주(界主)는 우(雨)의 선계가 붕괴하던 당시 남긴 균열을 바탕으로 삼아 천하의 정철(精鐵)을 채집하여 99개의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99자루의 검은 살역계 안에서 가장 독특한 건축물이 됐다.
수련자 연맹에서 살역계는 명성이 자자했다. 수만 년간 수련자 연맹을 위해 수많은 공적을 세워온 그들은 사성종(四聖宗)과의 전쟁이나 후기 시음종(尸陰宗)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6급 수련성까지는 살역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7급 이상 수련성에서는 살역계에 대해서는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을 수밖에 없었다.
7급 수련성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수련을 하면 자신들의 명혼(命魂)을 다른 사람의 통제 아래 두지 않으려 했고 이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살역계에서 담당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들이 일으키는 피바람은 다른 수련자들에게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살역계로서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수련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에 대한 처리는 연맹 내의 다른 세력이 맡았다.
살역계는 수련자 연맹의 대외적인 칼이었고 이곳에 선택된 사람들은 살육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됐다.
수만 년간 살역계는 99명의 핵심 수련자를 유지해오고 있었으며, 그중 누군가가 죽으면 곧바로 보충했다. 이 99명의 핵심 수련자 외에 수많은 외래 제자들도 있는데 이 수많은 제자들은 99개의 조로 나뉘어 각 조장의 통솔에 따랐다. 그리고 가장 위에는 정계주(正界主)와 부계주(副界主)가 있었다.
말하자면 살역계는 하나의 수련자 문파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파보다 훨씬 강해 연맹성역에서 감히 이들과 적이 되려는 이는 없었다.
제아무리 수준 높은 수련자라 해도 살역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살역계 사람들은 엄청난 살육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은닉술에도 뛰어나 여차하면 모든 흔적을 지우고 멀리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살역계가 생겨난 이래 한 번도 누군가가 그 안으로 난입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청수의 음산한 목소리에 고고한 살육계에는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수많은 검 모양 건축물들이 곧장 무너지면서 수많은 돌조각들에 끼어 있던 정철 사슬이 떨어져 나오더니 한 차례 폭풍이 되어 살역계를 휩쓸었다.
여기저기서 기합과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수많은 검은 그림자와 함께 흑의의 수련자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준은 음의에서 규열기 중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나 대부분은 음의나 양의 수준이었다.
“사제, 저 조무래기 녀석들을 맡아주겠나?”
청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흑의의 수련자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겨울 꽁꽁 언 얼음처럼 서늘하고 냉랭했다.
한제는 적의 수가 적지 않았지만 고신의 육신을 가진 그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청수가 도울 것이 분명했다.
“사형은 걱정 놓으시고 볼일을 보십시오!”
말을 마친 한제 역시 앞으로 한 걸음 나섰고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음파가 폭발했고 허공 곳곳이 무너져 내리면서 균열이 뻗어 나갔다. 이 한 번의 주먹질로 형성된 폭풍은 한곳으로 응집되며 돌진했다.
규열기 후기의 수련자조차 이 폭풍에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허나 미처 그 폭풍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음의 수준 수련자들은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피 안개를 내뿜었다. 특히 가장 앞에 있던 수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부근에 있던 수련자들은 심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힘에 묶인 상태라 그야말로 꼼짝할 수 없었다.
펑! 펑! 펑!
여기저기서 수련자들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고 중상을 입은 채 튀어나온 원신은 한제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자는 나천성역의 정뇌선 허목이다!”
누군가가 한제를 알아보고 외쳤다.
한제는 냉랭한 얼굴로 눈앞의 수련자들을 바라보았다. 수는 많았으나 딱히 눈에 띄는 자는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 수련자들에게 감히 저항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5성급 왕족 고신이 된 지금은 달랐다.
한제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발아래에서 파문이 일렁이며 나타났고 그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축지성촌!”
한 규열기 초기 수준 수련자가 경악하며 외쳤다. 그는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혼비백산하여 곧장 뒤로 물러났다.
“축지성촌이라니! 우리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저자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때, 사라졌던 한제가 한 음의 수준 수련자 뒤쪽에 나타나더니 주먹을 아주 살짝 앞으로 뻗었다.
상대는 피하기는커녕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 채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그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자신의 뼈가 마디마디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내 펑 하고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수련자의 원신을 손에 쥔 한제는 곧장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진을 펼쳐라!”
두 눈이 새빨개진 규열기 중기 수련자가 외쳤다.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치기가 부섭게 표정이 급변하더니 맹렬하게 몸을 돌리며 한 줄기 붉은 빛을 토해냈다.
그 빛 안에서 긴 검이 나타나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갔다. 그러는 와중 수천 개의 혼백이 피어올라 곡성을 내며 검의 위력을 더욱 강화했다.
“나쁘지 않은 검이로군!”
냉랭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한제가 나타나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 손은 몇 배로 불어나 고신의 손바닥이 되더니 그 비검을 잡아챘다.
“크윽!”
비검을 토해낸 수련자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영혼과 연결된 법보인 비검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큰 중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비검을 잃었다는 아쉬움보다 두려움이 컸다.
‘도대체 허목 저자의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 규열기 중기 수련자는 살역계 내에서 제법 유명한 인사로 살시(殺侍) 우비보다도 지위가 높았다.
그런 그가 잔뜩 겁을 먹었다. 특히 일전에 겨우 살역계로 도망쳐온 우비가 소용돌이 안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손에 죽임을 당한 때가 떠올라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나며 저물대에서 여러 옥패들을 꺼냈다.
“폭발!”
옥패들은 폭발음과 함께 연이어 자폭하면서 거대한 위력을 형성했다.
모든 것은 전광석화처럼 일어났다.
한편, 비검을 거둔 한제는 곧장 튀어나갔다. 수많은 옥패가 폭발하며 형성된 위력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규열기 중기 수련자는 이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달려든 한제는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상대의 미간을 두드렸다.
펑!
짧은 폭발음과 함께 상대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원신 역시 한제에게 붙들렸다.
이 순간 한제는 자신의 변화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한 강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한편, 이때 청수는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곧장 살역계 중심의 높은 탑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가 근처에 이른 순간, 높은 탑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흑의의 노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살역계의 부계주인 흑의의 노인은 지금의 광경에 심신이 바르르 떨렸으나 몸을 훌쩍 날리며 둘로 나누었다.
똑같이 생긴 흑의의 노인 중 하나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다. 이 균열의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작은 회오리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