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2
“항복해라!”
한제가 낮게 외쳤다. 그의 손에 쥐어진 빛에서 나타난 수많은 잔혼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었다. 끝없이 떨어지는 천둥번개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반짝이는 빛은 결국 펑 하고 무너져 내렸고 한제의 손에는 길이는 7척, 폭은 3척 정도 되는 은검 하나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피어올랐던 수만 개의 잔혼은 곧장 달빛과 같은 은색 빛을 내뿜는 그 검으로 스며들었다.
‘九(구)’자가 새겨진 이 검은 웅웅 우는 소리를 내며 한제에게 굴복했다.
한제는 검을 가볍게 두드려 그 안에 신식의 낙인을 남겼다. 순간 바르르 진동한 검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 검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확실히 좋은 검이로군!’
한제는 흡족한 마음을 안은 채 다시 몸을 날려 곧장 다음 검을 노렸다.
살역계 수련자들은 한제를 저지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살두성병으로 나타난 혼백들에 둘러싸인 데다가 천둥번개가 끝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발 내딛은 한제가 허공을 꽉 움켜쥐자 또 하나의 비검이 발버둥 치며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 검은 붙잡힌 것이 엄청난 치욕이라도 된다는 듯 심지어는 검기까지 쏘아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 순간, 나머지 아홉 자루의 빛이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들던 이 아홉 자루의 검들은 도중에 하나로 합쳐져 날카로운 검광을 발산하며 곧장 찔러 들어왔다.
“보면 볼수록 재밌는 검들이로군.”
한제는 여유롭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에 붙잡힌 비검은 더욱 격렬하게 난동을 피웠으나, 한제는 코웃음을 치며 왼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금제가 허공에서 줄기줄기 나타나 그 비검에 떨어졌다. 한제는 이 비검을 당장 굴복시키는 대신 봉인하기로 했고 곧장 저물대에 쑤셔 넣었다.
이때, 하나로 합쳐진 아홉 개의 검이 휘황찬란한 검광으로 둘러싸인 채 이미 한제에게 바짝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 짙은 검기에서 배어나오는 서늘함이 육신을 뚫고 곧장 원신으로 쳐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살역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평지에서 암적색 빛이 번득이며 나타나더니 붉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사내는 곧장 몸을 훌쩍 날리더니 전장이 된 살역계의 중심에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들었다.
뒤이어 그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네 개의 백옥 호리병에서 나타난 여인들의 허상이 그 사내의 힘에 이끌려 갖가지 장애물을 뚫고 곧장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 줄기 붉은 연기가 된 중년 사내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숨어 있으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허목이라는 자가 두렵긴 했으나, 그렇다고 감히 청수에게 덤벼들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사방의 수련자들을 돌아보던 그는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신마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당시 연맹에서 정열기 수련자들을 소집했을 때 응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돼. 그 소집에 응했다면 이런 상황에 봉착하지는 않았을 텐데…’
순간,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하나로 합쳐진 아홉 자루의 검을 스쳐 지나가며 결인을 그린 손을 뻗었다.
“호풍(呼風)!”
순간 사방에서 검은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세 마리의 흑룡이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고 한제의 사방을 에워싸며 곧장 달려들었다.
네 여인의 허상이 한 마리의 흑룡을 둘러싸자 흑룡의 음산한 두 눈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나머지 두 마리 흑룡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붉은 연기가 되어 달려들고 있는 중년 사내에게로 향했다.
“크하하! 귀여운 도마뱀들이로구나!”
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붉은 연기가 펑 하고 흩어져 사라지면서 중년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형형한 눈을 번득이며 몸을 날렸고 그와 동시에 투명한 상태가 되어 두 흑룡을 그대로 관통하더니 한제를 향해 굉장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허목! 수준을 숨기려 들지 마라. 이토록 많은 수련자들을 손쉽게 처리한 것을 보면 분명 정열기 수준 수련자겠지!”
그 적의(赤衣)의 사내를 본 순간, 한제는 쇄열기 수준의 수련자와는 분명 다르지만 규열기 수준의 수련자를 월등히 능가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정열기 수준인가!’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살역계에는 정열기 수련자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의 신식이 아직 규열기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터라 정열기 수준 수련자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정열(淨涅)의 조짐
한제의 두 눈이 전의로 번득였다. 그는 이전에도 정열기 수련자와 맞붙은 적이 있다. 이미 혈조와 대적한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기운은 혈조만큼 강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정열기 초기 수준!’
적의의 사내는 오른손을 옆으로 휘둘렀다. 순간 아홉 개의 검이 합쳐져 이루어진 한 자루 검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그의 곁을 맴돌며 우우 우는 소리를 냈다.
‘저자를 통해 나의 진정한 실력을 확인해봐야겠군!’
한제는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오른손을 꽉 움켜쥐며 곧장 돌진했다.
한편, 적의의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이었으나 실은 불안했다. 상대를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 저자는 규열기 초기 수련자에 불과해 보였으나, 그를 본 순간 심장이 세차가 뛰었다. 상대의 체내에 극강의 기운이 숨겨져 있는 듯했고 그 기운은 무척 꺼림칙했다.
‘저자는 분명 진짜 수준을 숨기고 있어.’
중년 사내는 한제를 자신과 같은 수준의 수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사방에 나타난 수많은 반짝이는 빛들이 그의 손바닥에 몰려들었다.
‘자연의 힘을 뽑아내다니!’
이를 본 한제의 동공이 바짝 졸아들었다. 정열기 수준 수련자는 규칙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원력을 추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정열기 수련자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언제든 세상의 원력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으니 원력이 바닥날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중년 사내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낮게 외쳤다.
“홍택황사(洪澤荒沙)!”
그의 손으로 응집된 빛들이 번쩍 하고 검은 모래가 됐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모래 같았지만 한 알 한 알의 모래알에는 극강의 원력이 깃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진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제가 주먹을 쥐자 미간의 세 번째 눈 아래에 숨겨진 고신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그의 팔로 스며들었다.
한제가 주먹을 휘두른 순간, 고신의 주먹이 나타났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고신의 힘이 사방을 뒤덮은 홍택황사와 가까워진 순간 중년 사내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홍택의 허상이여, 실체가 되어라!”
그러자 끝없는 홍택의 모래가 순간 한데 모여들더니 한제가 소환한 고신의 주먹과 그 모양과 크기가 똑같은 주먹이 되었다.
“내가 깨달은 규칙은 바로 허상의 규칙이다!”
이것이 바로 중년 사내의 진정한 신통력이었다.
중년 사내는 두 팔을 양옆으로 펼쳤다가 휘둘렀고 그러자 홍택의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이 돌진했다.
콰쾅!
거대한 폭발음이 살역계 전역에 울려 퍼졌고 엄청난 기세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 여파를 피하지 못한 수련자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피 안개가 되어 폭풍에 녹아들었다.
폭풍의 중앙에서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를 이루던 주먹이 무너져 다시 모래로 되돌아갔다.
한제 역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오른팔이 마비된 듯 저려왔고 격한 통증이 느껴졌다. 몸 역시 뒤쪽으로 끝없이 떠밀려갔다.
‘이것이 정열기 수련자의 힘인가!’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한편, 중년 사내는 상대가 진정한 수준을 숨기고 있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않다면 방금 일격을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중년 사내는 두 손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그러자 체내의 원력이 솟아오르면서 폭풍에 휘말려 나가던 모래들이 순식간에 다시 응집되더니 이번에는 거대한 학의 형상을 이루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학은 길게 울며 날개를 퍼덕여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멀리 떨어진 평지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청의의 노인이 나타나 질주했다.
‘연맹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은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수가 나타난 만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겠지. 허나 환허자와 허목이 싸우고 있는 틈에 생겨난 공을 세울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지!’
노인, 신마자는 엄청난 속도로 한 줄기 빛이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두 덩어리의 녹색 화염을 손바닥에 응집시켰다.
그는 평생 수련을 해오면서 항상 신중하게 굴어왔으며 확신 없는 일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수련성에 있었을 당시에는 그가 수천 년간 수많은 수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단약과 법보를 빼앗는 동안에도 그 누구도 그의 진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신중함은 살역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살역계에서는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나선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마자는 순식간에 한제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체내의 원력을 발산했고 이에 사방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래도 축지성촌을 쓰는지 보자.’
신마자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몸을 날리면서 두 손을 휘둘렀다.
한데 그 순간,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에 피어올랐던 보라색 안개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보라색 빛으로 휩싸인 일곱 갈래의 인영이 땅으로 뚝 떨어져 내렸고 뒤이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더니 결국 단 하나의 인영만 남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인영은 살역계의 계주인 능운자였다.
그는 낯빛이 창백했고 입가로는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붉은 번개가 하늘을 덮은 보라색 안개 속에서 떨어져 내렸다. 허나 그 번개가 노리는 대상은 능운자가 아니라 한제에게로 달려들고 있는 신마자였다.
“헛!”
신마자는 헛숨을 삼키며 기겁해 도망치려 했으나 감히 청수가 쏘아 보낸 극의 경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번개 형태의 극의 경계는 곧장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크으…”
노인의 두 눈은 곧장 어두워졌고 그의 육신은 펑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 긴 세월을 그토록 신중하게 굴었건만 마지막 순간은…’
의식이 흩어져버릴 때까지 그는 끝없는 우울함을 느꼈다.
신마자의 몸을 꿰뚫은 붉은 번개는 멈추지 않고 사방을 휩쓸었다. 펑, 펑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순식간에 주위의 수련자 대부분은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바로 청수가 가진 극의 경계의 힘이었다.
신마자의 기습에 세 번째 눈에 깃든 본원의 힘으로 대적할 준비를 해두었던 한제는 청수의 도움 덕에 기운을 차리고는 곧장 환허자를 향해 돌진했다.
한편, 하늘에 떠 있던 보라색 안개는 용솟음치며 급격하게 수축하더니 결국 주먹만 한 공이 되어 청수의 손바닥 위에 떠올랐다. 이때 청수의 주위에서는 봉황이 조각된 보라색 비녀 하나가 맴돌고 있었다.
그 비녀를 바라보는 청수의 눈빛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다시 살역계의 수련자들에게로 향했을 때, 그 눈빛에는 끝없는 냉랭함만 흘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능운자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아래쪽의 허공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