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6
“왔군!”
천운자는 침착한 얼굴로 웃으며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능천후와 세 명의 노인 그리고 아름다운 중년 여인은 순간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이들만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던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천운자의 눈길을 따라 하늘 끄트머리로 향했다.
‘이한제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 ★ ★
천운종 광장. 백미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제가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녀 곁에는 안색이 상당히 어두운 사내가 있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그는 전광이 쏟아질 듯 번득이는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한제, 살아 있다 하더라도 이 조성살을 만나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백미는 옆에 선 중년 사내를 조심스레 살폈다. 사실 그는 자신의 대사형을 두려워했다. 지난 시간 동안 조성살은 폐관수련을 통해 깨달음에만 정진해왔고 문정기를 돌파해 이제는 음의까지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태였다. 그리고 30년 전, 천운자가 거느리는 일곱 명의 정식 제자 중 한 명이 됐다.
‘둘은 원수 같은 사이였으니 대사형이 그를 보면 당장 죽이려 들 거야.’
한편, 두 사람 곁에는 여인도 한 명 있었다. 그녀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상황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듯했다.
이 여인은 당시 자계(紫系)의 넷째, 즉 한제의 네 번째 사저로 조성살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신통력을 이용해 한제를 묶어놓았던 장본인이었다.
한제가 그 속박에서 벗어난 후로 이 여인에게 대나이술(大挪移術)을 전수받았으니 그런대로 빚은 청산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약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남색 옷을 입은 그의 가슴팍에는 세 마리의 남색 용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쳤다.
특히 눈 부분에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당시 자계의 넷째 사저와 함께 한제를 구속했던 남계(藍系) 제자 사마여풍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단 한 가지, 만약 한제가 나타난다면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는 생각을 같이했다.
그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바로 그곳에서 하얀 인영 하나가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태양을 등진 채라 얼굴은 명확히 볼 수 없었으나, 백의에 흑발을 휘날리며 다가오는 그에게서는 선인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또한 1천 년은 족히 무르익었을 법한 고독감도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는 여유롭게 움직이는 듯했으나 어느덧 천운종 근처에 이르렀다.
“이한제다!”
“이한제야!”
한제를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의 아름다운 눈도 한제를 본 순간 밝게 빛났다.
능천후는 날카로운 눈길로 한제를 흘겨보더니 잠시 후에는 충격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규열기 초기! 당시 영변기에 불과한 애송이가 그 짧은 시간에 저토록 높은 수준에 이르다니, 천운이 따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한데 미간의 저 표식은⋯⋯?’
능천후 옆에 선, 언덕과도 같은 거구의 노인도 시체처럼 비쩍 마른 노인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조롱박 위에 앉은 노인도 흠칫 놀라긴 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두 눈에서는 심사를 파악할 수 없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주작의 표식!’
아름다운 중년 여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한제를 자세히 살폈다.
그곳에 모인 자들 중 한제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한 이는 결코 많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한제에게서 발산되는 묵직한 압박감만 느꼈을 뿐이다.
한편, 분홍색 옷차림의 여인은 흥미로운 눈으로 한제를 살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살피는 동안 한제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여유롭고 침착한 표정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천운자를 향해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제자 이한제, 스승님을 뵙습니다!”
천운자는 기이한 눈으로 한제의 미간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럽게 답했다.
“잘 왔다, 한제야. 마침 몇몇 선배들이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하니 잘 답해 드리거라.”
그때, 능천후 뒤에 있던 중년 사내가 일갈했다.
“이한제 이 자식,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돌아온 게냐! 당시 네가 요령의 땅에서 죽인 우리 대나검종 사람들에 대해 목숨으로 보상해야 할 것이다!”
사내의 말에도 한제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두 눈은 얼음장만큼 서늘했다.
“능천후 선배님, 선배님의 제자가 제게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한제의 말에 능천후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제의 미간에 드러난 표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식은 그를 두렵게 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의 미간에 또 다른 두 가지 힘이 있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능천후는 소매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좀 전에 소리를 질러대던 사내가 몸을 바르르 떨더니 뒤로 밀려났다.
“저자가 네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 그나저나 벌써 규열기에 이르다니, 묵은 원한을 차치하고 말하자면 정말 놀랍구나!”
능천후의 덤덤한 목소리가 퍼진 순간,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끓는 기름 솥에 물을 붓기라도 한 듯 수련자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크게 변했다.
“규열기⋯⋯.”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백미의 곁에서 조성살이 경악한 듯 중얼거렸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거의 모든 수련자들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한제, 묻겠다. 당시 어째서 우리 앞에서 그 회오리 안으로 도망친 것이냐? 우리에게 무엇을 숨기려 든 것이냐?”
능천후의 물음에 한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제가 요령의 땅에서 화를 불러일으킨 바 있어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뭐지?”
비쩍 마른 노인이 다소 음산한 목소리로 호통 치듯 물었다.
“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혈조의 딸을 감금했었습니다! 당시 여러 선배님들과 혈조가 저를 추격해오는데 어찌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한제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 말에 거구의 노인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 선부(仙府)의 영패는 가지고 있느냐?”
“선부의 영패요? 그게 대체 뭡니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제가 가지고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한제는 거구의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상대는 정열기 초기였고 당시 자신을 추격해왔던 이들 중 분명히 저런 노인은 없었다.
한제의 시선에 거구의 노인은 심신이 바르르 떨려왔고 안색이 변했다.
한데 이번에는 천운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좋다, 한제야. 이번에는 내가 물으마. 선부의 영패를 가지고 있느냐?”
한제는 천운자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스승님께서 물으신다면 이 제자가 어떻게 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 요령의 땅에서 전 분명 선부의 영패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눈이 번득였다. 적막과 함께 그들에게서 피어오른 압박감이 한제의 몸에 집중됐다.
“이한제, 그 영패를 내놓는다면 목숨을 살려주마!”
조롱박 위에 앉아 있던 노인이 한제의 미간에 새겨진 표식을 보며 말했다.
“애송아, 너는 그 영패를 가질 자격이 없다!”
거구의 노인이 한제를 조롱하듯 말했다.
그때, 능천후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끼어들었다.
“영패가 저 녀석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쓸데없는 말들 마시게!”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자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검기가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검기가 달려든 순간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르릉!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검은 회오리 하나가 한제의 주먹에서 튀어나가 능천후의 검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때, 천운자가 소매를 휘둘러 일곱 빛깔의 바람을 한 줄기 소환했다.
바람은 곧장 능천후와 한제 사이에 떨어지더니 한제의 주먹에서 튀어나간 검은 회오리를 흩어버림과 동시에 능천후의 검기를 가로막았다.
“능천후, 우리 천운종 내에서 나의 제자를 공격하는 것을 내가 좌시할 줄 알았는가?”
천운자의 꾸짖음에 능천후는 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천운자 아직도 저자가 자네 제자인가?”
그 순간, 능천후의 등에 달린 원신검(元神劍) 네 자루가 번득이며 튀어가나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인정
“종파를 배반하지 않았다면 이한제는 여전히 우리 천운종 제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