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7
천운자는 다소 어두운 안색으로 답했다.
“천운종 제자는 지켜야 하고 우리 대나검종 제자들은 헛되이 죽어도 된다는 것인가? 검초십이자(劍肖十二子) 중 살아남은 것은 진룡 하나뿐! 나머지는 모두 저자의 손에 죽었다! 그 원한을 생각하면 저놈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으나, 자네 체면을 봐서 조건을 하나 걸겠네. 저자가 나의 세 갈래 검기를 버텨낸다면 당시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 허나 천운자 자네가 끝까지 나를 방해하려 한다면 자네가 나와 혈투를 벌여야 할 걸세!”
능천후는 살기(煞氣)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시선은 한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던 한제가 거구의 노인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불쑥 말했다.
“선배님은 방금 제게 그 영패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하셨지요. 후배가 감히 묻건대, 선배님은 검존(劍尊)의 검기를 얼마나 버텨낼 수 있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노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대답 대신 살기 어린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그런 노인을 약올리기라도 하듯 피식 웃은 한제는 능천후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선배님, 한 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미 한제가 조건을 받아들인 이상 천운자도 더 이상 끼어들지 못하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능천후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네 개의 검의 원신 중 하나가 한 줄기 검기를 발산했다. 무지개 같은 검기였다.
능천후가 당시 요령의 땅에 들어서던 제자들에게 주었던 검기의 위력만 해도 막강했으니 그가 직접 사용하는 검기의 위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검기는 한 마리 용이 된 듯 포효하며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심지어 하늘조차 그 검기의 위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폭발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대나검종 제자들은 모두 흥분된 기색으로 그 검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검기가 달려든 찰나, 한제는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쾅!
달려들던 검기와 한제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허공이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한제는 휘청이더니 뒤로 두 걸음 물러난 후 평온한 얼굴로 능천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첫 번째 검기였습니다!”
능천후의 첫 번째 검기는 무너져 내리면서 폭풍을 형성하여 휘몰아치려 했다. 한데 그때 천운자가 소매를 휘둘러 폭풍을 연기처럼 흩어버리고는 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능천후는 곧장 오른손을 다시 휘둘렀다. 순간, 그의 곁에 맴돌던 검의 원신 하나가 바르르 진동하더니 하늘을 가르는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얼마든지 받아주마.’
한제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주먹을 바르쥐었다. 그러자 흘러넘치는 듯 강력한 힘이 미간에서 손으로 흘러들었고 주먹이 반짝이는 빛으로 휩싸였다. 그 상태로 주먹을 뻗자 그 반짝이는 빛도 주먹을 따라 쏘아져 나갔다.
한제는 천운성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겸손하게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요령의 땅으로 돌아가려면 영패를 가질 자격을 얻으려면 천운성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오늘 이 자리에서 확실한 실력을 보여야만 했다.
한제는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왼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삼구지검(三九之劍)!”
그 순간, 은색 빛이 줄기줄기 저물대에서 튀어나왔다. 각각의 빛에서 발산된 수많은 혼백이 우짖는 소리를 내면서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이 모두 나타난 순간, 한제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 스물일곱 자루의 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능천후에게 달려들었다.
이 광경에 천운자조차 크게 놀랐다. 그는 이미 이 전투의 결과를 예지한 상태였지만 그 과정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한제의 미간에서 여러 갈래의 힘을 목격했고 심지어 그중 세 갈래는 자신조차 두려워지게 만드는 것임을 확인했다.
‘저자가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지. 감히 돌아온 것은 분명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일 터! 미간에 새겨진 주작의 표식도 그중 하나겠지.’
한편, 소박한 옷차림의 중년 여인도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연기(煉器)에 종사하고 있는 그녀는 스물일곱 자루 비검의 비범함을 알아보았다.
‘재질도 범상치 않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살기가 깃들어 있다. 분명 엄청난 살육 아래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제련된 것이겠지. 한 자루만으로도 절대적인 흉기가 될 수 있을 터. 하물며 스물일곱 자루를 모두 동원하여 형성할 검진(劍陣)의 위력이란⋯⋯.’
그 무렵, 조롱박 위의 노인도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규열기 초기 수준일 리는 없어.’
거구의 노인 역시 화들짝 놀라 그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과 한제를 번갈아 보았다. 등을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내가 저자를 과소평가했구나!’
검존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으니만큼 능천후는 검과 관련된 법보에 특히 민감했고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을 보자 눈이 반짝였다.
“이런 비검으로 검진을 만들다니! 네놈은 나와 맞붙을 자격이 있구나!”
호탕하게 외친 능천후는 두 손을 크게 휘둘렀고 그러자 남아 있던 세 자루의 원신검(元神劍)이 동시에 튀어나가더니 회전하며 검기를 줄기줄기 쏘아냈다. 이 검기들은 서로 얽히며 그물을 이루어 전방을 뒤덮었다.
한편,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은 한제의 신식을 통한 통제 아래 그의 주먹에서 발휘된 바람을 뒤따르며 폭풍의 핵을 이루었다. 수많은 진법까지 깃든 그 폭풍은 이내 회전하고 있는 능천후의 네 자루 원신검과 충돌했다.
쾅! 쾅! 쾅!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은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능천후의 원신검 역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잠시 후,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은 모두 나가떨어지더니 다시 한제의 근처로 돌아와 맴돌았다. 그리고 이때, 고신의 주먹질로 형성된 폭풍이 흘러넘칠 듯한 힘을 폭발시켰다.
펑!
엄청난 충격에 능천후의 원신검 네 자루는 바르르 진동하며 뒤쪽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능천후와 한제가 대등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제는 능천후가 여태 어떤 신통력도 발휘하지 않고 그저 보통의 검술로만 공격해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한제를 배려하려는 것이 아니라 겨우 규열기 초기에 불과한 상대에게 신통력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능천후의 눈이 순간적으로 기이하게 번득였다.
“크하하! 네놈은 내 신통력을 받아낼 자격이 있구나! 내 신통력은 단 세 가지뿐이다. 명(明), 동(洞), 파(破)! 명검(明劍)의 첫 번째 형식, 이혈주검(以血鑄劍)을 보여주마!”
길게 웃음을 터뜨리던 능천후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의 백발이 미친 듯 휘날렸고 두 눈은 점점 기이한 빛을 띠었다.
한편,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능천후가 그토록 이름을 날린 것은 그가 한 종파의 종주(宗主)이자 엄청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매우 적었고 대부분은 천운자와의 결투에서만 사용했다.
한데 그 능천후가 지금 고작 규열기 초기 수련자와의 전투에서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제는 승패와 상관없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될 터였다.
능천후가 오른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네 자루의 원신검은 한 데 합쳐지더니 한 자루 허상의 검이 되어 작열하는 기운을 발산했다. 그리고는 허상에서 액체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햇빛 아래에서 다채로운 색을 번득이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당황한 기색 없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외쳤다.
“오구검진(五九劍陣)!”
순간 은색 빛줄기들이 그의 저물대에서 튀어나와 스물일곱 자루의 비검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총 마흔다섯 자루가 된 비검은 회전하면서 회오리를 형성했다.
“참라결(斬羅訣)!”
한제 체내의 원력이 가동되는 속도는 절정에 이르면서 참라결이 그 검의 회오리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회오리는 한제의 손짓에 따라 바르르 진동하며 전방으로 돌진했다.
한제는 천운종으로 오는 동안 살역계에서 얻은 검들 중 마흔다섯 자루의 검을 제련했고 외형까지 완벽하게 바꿔놓은 상태였다. 살역계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본질을 파악하기란 어려울 터였다.
수많은 참라결의 위엄을 품은 회오리는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순식간에 능천후의 신통력과 충돌했다.
콰르릉!
한 번의 충돌로 하늘과 땅의 기색이 뒤집히고 바뀌었다. 거대한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만약 천운자가 두 팔을 벌려 그 충격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지 않았다면 천운성은 진즉 무너져 내렸을 터였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무렵, 한제는 뒤로 한참이나 밀려나 있었다. 마흔다섯 자루의 비검 중 손상된 것은 없었지만 전보다 약간 어두워진 상태로 한제에게 돌아와 그 곁을 맴돌았다.
맞은편에는 능천후의 검이 다시 네 자루의 검으로 갈라져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문 채 한제를 바라보던 능천후가 돌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는 대결이었다. 이한제, 너와 우리 대나검종 사이의 원한은 이걸로 끝이다. 난 더 이상 그 영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네가 네 운을 통해 얻은 영패이니만큼 그 선부로 무얼 하든 역시 신경 쓰지 않겠다.”
뒤이어 몸을 돌린 능천후는 하늘로 떠올랐고 그의 제자들은 화들짝 놀라 스승을 따라 멀어져갔다.
‘아주 의미심장한 거동이군.’
한제는 감탄과 놀라움이 뒤섞인 눈으로 능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천운종 제자들도 다른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데려온 이들도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저자는 능천후와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구나!’
백미의 눈에 흥분이 담겼다. 그는 눈앞에서 보고도 방금 일어난 일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조성살은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한제에 대한 반발심과 분노가 사라졌고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한편, 어떤 것에도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료해 보이기까지 했던 자계의 넷째조차 지금은 날카로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날 돕는다면⋯⋯?’
여인은 모종의 결단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한제는 곁에서 맴돌고 있는 마흔다섯 자루의 비검을 거두지 않고 사방을 훑어보다가 거구의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덤덤하게 물었다.
“선배님, 다시 묻겠습니다. 제게 자격이 없습니까?”
노인은 당황한 듯 잠시 대꾸하지 못하더니 천운자를 향해 포권을 했다.
“천운 도우, 마저 제련해야 할 단약이 있어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그가 손짓을 하자 그의 제자들이 그를 들고 천천히 자리를 떠나갔다.
조롱박 위의 노인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더니 헤죽 웃었다.
“이 도우, 아주 잘도 숨기고 있군. 난 기몽담이라고 하네. 나중에 시간이 나거든 우리 몽성(夢星)에도 한 번 들러보시게.”
말을 마친 그도 천운자에게 포권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고 시체처럼 비쩍 마른 노인이 그와 함께 자리를 떴다. 이 비쩍 마른 노인은 시종일관 냉담한 얼굴이었고 천운자에게 작별도 고하지 않고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촌부처럼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중년 여인은 웃으며 한제에게 다가왔다.
“이 도우의 비검들은 살기(煞氣)가 너무 짙어서 통제조차 하기 힘들어 보이더군. 언제 우리 자하성(紫霞星)에도 한번 들러주게.”
말을 마친 그녀는 천운자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때 여인의 뒤를 따르던 분홍색 옷의 여인이 떠나기 전 웃으며 말했다.
“이 도우, 법보 제련에 있어서는 스승님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비용도 비싸지 않고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중년 여인은 제자를 타박했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가볍게 웃었고 다른 여인들도 역시 입을 가리며 곱게 웃었다. 그중 녹의(綠衣)의 여인이 한제를 보는 눈빛은 어딘가 남달랐으나,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어쩌면 벌써 내 이름은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당시 그에게 그 일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을 테니… 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은인이야.’
여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