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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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비검을 밟고 있던 한 여자가 ‘마량’이라는 말에 안색이 변했다. 안색이 어두워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잠시 멈칫하더니 방향을 틀어 다가왔다.
젊은 부인 차림의 그녀는 옥처럼 둥글고 흰 얼굴에 자태가 고왔다. 바로 마량이 오랜 시간 구애해왔으며 역외 전장에서도 단 한 번 잊은 적 없던 시아였다.
그녀는 우선 청현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냉담한 얼굴로 마량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온 악당이기에 감히 우리 전신전 사람을 흉내 내느냐? 청현 사형, 저를 대신하여 저 자를 죽여주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2촌 길이의 검은색 깃털 바늘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 그녀가 손을 살짝 휘두르자 그 바늘은 곧장 폭풍처럼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바늘이 일으키는 거센 바람이 회색빛을 띠었고 그 회색빛은 검은 비로 변하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한제에게 쏘아졌다.
청현은 흠칫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한제의 빈틈을 살폈다.
그러나 한제는 여유가 넘쳤다. 속으로는 시아의 공격을 비웃고 있기까지 했다. 그는 소매를 한 번 휘둘러 허공에 거대한 무형의 손을 만들어 가볍게 그 깃털 바늘이 일으킨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고는 살짝 코웃음을 치며 상대의 법보가 가진 신식을 지워버린 뒤 그것을 자신의 저물대 안에 넣고 침착한 얼굴로 시아를 똑바로 쳐다봤다.
시아의 아름다운 얼굴이 창백해지며 붉은 입술 사이로 한 줄기 피가 흐르더니 그녀의 가녀린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그녀의 발밑에 있던 비검이 순간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마량의 실력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수련자 대군 중 전신전이 있는 위치에 빠르게 세 개의 검광이 날아들었다. 이곳에 도착한 검광은 세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중 한 사람은 양웅이었다.
양웅은 시아를 한 번 훑어본 뒤 청현에게 돌아서 포권을 취했다.
“청현 도우, 수고하십니다. 마량 사제는 분명 우리 전신전의 제자가 맞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의미심장한 눈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살펴보던 청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검을 밟고 사라졌다.
얼마 후, 고개를 살짝 돌린 그는 한제의 곁에 서 있는 양웅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흠칫 놀랐다. 허나 잠시 고민하던 그는 방향을 틀어 낙하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양웅은 옆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한제의 앞으로 나서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주인님, 봉란 시조님을 아십니까? 오색찬란한 전차 위에 있는 저 분이 바로 시조님이십니다. 저 분께서 제게 주인님을 모시고 오라 하셨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수련자 대군을 바라보았다. 전신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의 중앙에는 양웅이 말한 대로 오색찬란한 전차 하나가 있었고 그 전차 위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궁궐 복장 차림의 그녀는 한제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한제와 눈을 맞췄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명백하게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봉란이라는 시조는 일전에 주자홍의 정혈을 받아 간 그 여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제는 양웅을 따라갔다. 시아의 곁을 지나던 찰나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 신식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몸에 1개월 뒤 발효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흔적을 남겼다.
그는 조나라에서의 죽음 뒤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자라면 뿌리를 뽑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먼저 공격한 것은 시아였으니, 자신을 무정하다 탓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양웅은 한제를 안내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두가 지도를 베끼고 있던 그때 봉란 시조님께 발각돼 지금 그 지도는 시조님에게 있습니다. 임두 역시 벌을 받게 되었지요. 만약 이번 이주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녀석은 10년 동안 갇혀 있었어야 할 겁니다.”
한제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경계심은 한층 더 커졌다.
전차에 이르자 양웅은 걸음을 늦추었고 한제는 침착한 표정으로 전차에 올라서는 여인의 앞에 섰다.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이한제가 선배님을 뵈옵니다.”
여인은 전방의 전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한제를 몇 번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한제, 그게 자네의 본명인가?”
한제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이름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상대에게 발각되는 것보다는 직접 밝히는 편이 나을 터였다.
여인은 끊임없이 앞으로 향하고 있는 사방의 수련자 대군을 바라보며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지금 화분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선무국에서는 더 큰 전쟁이 일어나겠지. 네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그만두고 더 이상은 이 일에 나서지 마라. 만약 누가 널 귀찮게 군다면 한 번은 널 보호해줄 것이다. 자홍의 정혈을 돌려준 공은 그걸로 끝이야.”
봉란이 말을 막 끝낸 그때,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멀리 떨어진 전장에 있는 10여 개의 거대한 화산이 몇몇 원영기 수련자가 사용한 법력에 의해 지면에서 떠올랐다.
이어 허공으로 둥둥 떠오른 거대한 화산이 무자비하게 던져졌다. 산에 휩쓸린 화염 요괴들은 분분히 도망쳤고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 요괴들은 산에 깔려 곤죽이 돼버렸다.
기회를 잡은 수련자 대군은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한제를 뒤쫓던 대략 2만 마리 정도의 화염 요괴들은 수련자 대군에 의해 틈이 벌어지고 말았다. 검광들이 그 사이를 오갔고 화염 요괴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수련자 대군의 목적은 상대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포위를 뚫고 나가는 것이었다.
중년 문인
봉란은 멀리 떨어진 전장을 바라보며 전차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수련자 대군을 따라 괴물들을 향해 내달렸다.
16마리의 거대한 화염 요괴들은 각각 원영기 고수들에게 붙잡힌 채 포효하며 결국 움직임을 멈추더니 냉랭한 눈빛으로 끊임없이 밀고 나가는 대군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기괴한 자세로 두 손을 모으며 포효했다. 곧이어 붉은 색 얇은 선들이 그들의 머리에서 발산돼 하나로 모이더니, 거대한 불의 고리를 이루었다. 이 불의 고리가 나타나자 거대한 화염 요괴 16마리는 경건한 표정으로 구슬프게 소리쳤다.
“으아아아악”
그들의 몸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여위기 시작하더니 암적색의 빛이 그 몸에서 발산돼 불의 고리로 섞여 들어갔다.
이 과정이 거의 한 시진 정도 지속되었다. 수련자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방향을 틀어 그들을 막으려 했으나, 1백 장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고 파멸적인 힘에 부딪혀 재가 되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수련자들은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 시진 뒤, 16마리의 거대 괴물들의 몸은 천천히 사라져 완전히 불의 고리에 녹아들었다.
그 불의 고리는 크기가 변하지는 않았으나 피처럼 붉어진 상태였다. 마침내 그 고리가 깨지기 시작하더니 붉은 점이 되어 흩어져버렸다.
이때 온 화분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화염 요괴들은 일체의 행동을 멈추고 땅에 엎드려 웅얼거리는 듯 포효했다.
순간 그중 어느 한 괴물이 땅에 쓰러져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녀석의 이마에 붉은 점이 하나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녀석의 몸은 빠르게 부풀더니 2각도 채 되지 않아 1백 척 높이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괴물들의 이마에도 붉은 점이 나타나더니 역시 빠르게 몸이 부풀었다.
두 시진 만에 온 화분국 안의 화염 요괴들은 한 차례의 탈변을 거쳐 몸집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고 힘 역시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탈변을 마친 요괴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선무국으로 향하던 수련자 대군의 뒤를 쫓았다.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좀 전의 전투에서 선봉에 나섰던 원영기 고수 열 명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복귀한 상태였다.
전신전 소속의 네 사람 역시 자신들의 문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가 전차에 타고 있는 한제를 발견했다. 그중 한 백발노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저 요괴들을 이끌고 온 놈이 네 놈이냐?”
한제는 차가운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손을 뻗어 한제를 잡아챘다. 한제의 곁에 서 있던 봉란이 살짝 구겨진 얼굴로 전차를 두드리자 순간 다섯 빛깔의 새가 전차 안에서 나와 날갯짓을 해 고리 모양의 오색 파문을 일으켰다.
노인은 손을 거두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봉란에게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란! 이게 무슨 짓인가? 저 녀석은 우리 전신전 제자의 몸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저 화염 요괴들을 끌고 오기까지 했어! 저들과의 전투에서 우리 제자 수천 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봉란은 주위를 둘러보며 결심을 내린 듯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있는 한 이 녀석을 죽일 수는 없어.”
백발노인, 주진은 봉란을 노려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마량도 아니고 우리 전신전의 제자도 아니야. 저 자를 죽이지 않더라도 우리 전신전 소속이 아닌 자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어!”
봉란이 한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제,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하나?”
한제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진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서늘한 눈빛으로 봉란을 노려봤다. 봉란은 그와 마찬가지로 원영기 초기의 수준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인 양삼은 원영기 중기 수준이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녀석을 처리하겠다고 두 원영기 고수에게 미움을 살 필요는 없었다. 주진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봉란 자네가 굳이 그자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면 나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이렇게 크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과연 저 녀석이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군.”
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한 번 휘둘러 자리를 떠났다.
나머지 세 명의 원영기 수련자 중에서도 둘은 쓴웃음을 지으며 떠났고 한 명의 중년인만 봉란 곁으로 다가왔다. 주진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 두려워하던 바로 그 양삼이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봉란, 어째서 이렇게까지…?”
봉란은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이 자가 아니었다면 자홍이는 역외 전장에서 죽었을 거야. 애초에 당신이 아니었다면 자홍이가 어떻게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갔겠어?”
중년의 문인은 한참 침묵한 뒤 한제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킨 그는 저물대에서 옥패 한 조각을 꺼내 오른손으로 문지른 뒤 그것을 한제에게 건넸다.
“이 옥패는 내가 일찍이 정련해두었던 원영기급의 법보다. 내 신식은 이미 거두었으니 제대로 다룬다면 이 위험한 전쟁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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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기쁜 마음에 옥패를 받아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중년의 문인은 옥패를 건넨 뒤 한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도 않고 전차 안으로 들어가 봉란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제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차에서 내려 재빨리 수련자 대군에 동참했다.
화분국의 수련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가족을 이끌고 선무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탈변을 마친 화염 요괴들은 일반인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수련자 대군 사이에 숨어든 한제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련자 대군을 뒤쫓던 화염 요괴들의 추격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수련자들이 느끼는 압박도 점차 커졌다.
수련자 대군이 화분국 국경의 거대한 분지에 이르렀을 때, 4대 종파와 비교적 큰 규모의 수련 가문 출신 원영기 수련자 총 19명이 비밀스러운 회담을 열었다.
회담을 마친 뒤 이들은 수련자 대군 사이로 날아가 분지 상공에 바람과 벼락을 일으켰다. 그중 낙하문 소속의 한 원영기 수련자가 말했다.
“이곳은 우리 낙하문이 오랜 세월 정탐해온 곳으로 화산 지대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며, 저 화염 영수들의 탄생지임을 확신합니다. 만약 이곳을 봉인한다면 모든 화산도 봉인될 것입니다. 또한 화분국의 선배들이 수천 년 전 설치해둔 쇄국용 진에 힘입어 저 화염 요괴들을 화분국에 가둬놓을 수 있을 겁니다.”
붉은 머리의 한 사마종 수련자가 분지를 훑어보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