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76
한제는 긴장한 모습으로 저물대에서 당시 청수가 주었던 환우(喚雨)의 결정을 꺼내 쥐었다.
청수는 이 결정에 그가 직접 만든 세 가지의 환우술(喚雨術)이 봉인되어 있다고 했다.
청수의 수준으로 발휘하는 환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에 한제는 지금껏 아껴왔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를 아낄 때가 아니었다.
거대한 손가락이 내리누르는 위압감에 귀안성에서는 커다란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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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성과 제법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천운성의 세력 범위에 속한 대나(大羅)라는 이름의 수련성이 있다. 이곳의 유일한 문파가 바로 대나검종(大羅劍宗)이다.
대나검종의 세력 범위는 수십만 리에 이르렀고 이는 천운종보다 훨씬 넓은 것이었다.
능천후는 일평생 대나검종에 들이는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았기에 대나검종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었다.
이 대나검종 곳곳에는 영산(靈山)이 있었고 수많은 누각이 있었으며, 일정 거리마다 하늘을 뚫을 듯 높은 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이 탑의 수는 총 999개로 거대한 하나의 진을 이루었다.
그중 다른 탑의 열 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하고 형태도 다른, 특별해 보이는 탑이 하나 있었다.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높은 이 탑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위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높은 탑의 꼭대기에는 능천후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네 자루의 원신검(元神劍)이 사각형을 이룬 채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날카로운 검기가 사방으로 발산되면서 대나성을 거친 검기로 가득 채웠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능천후는 돌연 서늘한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미소를 지었다.
“스승과 제자가 반목하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천운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정말 즐겁군. 한데 이한제는 주작의 서열에 든 자다. 연맹 장로단의 구성원이라도 함부로 처리할 수는 없지. 당시 곤허(昆虛) 성역의 우두머리였던 사성종(四聖宗)을 건드리고 싶은 자는 없을 테니까! 이한제, 네가 천운자의 신통력 앞에서도 살아남는다면 내 언제고 너를 한 번 도와주지!”
능천후의 냉소는 더욱 짙어졌다. 천운자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길수록 그는 즐거워졌다.
난제
손가락이 떨어져 내리면서 대지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그 중심의 산골짜기에는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더 많은 균열이 동시에 나타나자 산골짜기는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고 흘러넘칠 듯 강렬한 위압감에 가루로 변해버렸다.
한제의 사방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거대한 손가락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고 한제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일어난 짙은 먼지는 엄청난 위압감에 솟아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붙은 채 흩어졌다.
이때 귀안성에서 일곱 명의 수련자가 튀어나왔다. 그중에는 진도삼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거대한 손가락에서 번득이는 일곱 빛깔 광채는 주위의 어둠을 완전히 뒤덮은 상태였다.
일곱 수련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귀안성의 서로 다른 곳으로 달려가더니 일제히 낮은 기합을 넣었다. 이에 귀안성의 중심에서 솟아오른 한 줄기 빛기둥이 귀안성을 뒤덮더니 그대로 도시를 들어 올렸다.
커다랗고 둥그런 접시와 같은 도시는 콰르릉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남쪽으로 이동했다. 허나 거대한 손가락에서 풍기는 위압감 때문에 이동 속도는 느렸고 끊임없이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균열이 일기도 했다.
귀안성의 몇몇 수준 높은 수련자들은 불안한 낌새를 느꼈지만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 거대한 손가락이 천운성의 지존인 천운자의 것임을 모르는 사람 역시 없었다.
‘천운자가 이한제를 죽이려 하는 것인가?’
진도삼자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귀안성을 어느 정도 이동시킨 일진자는 이내 이를 악물고 발을 내딛더니 곧장 거대한 손가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손가락이 얼마나 큰지 더 확실히 느껴졌다.
그가 다가간 것은 한제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열기 수준 수련자와 쇄열기 수준 수련자의 전투를 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아직 어려 보이지만 노련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흑의의 청년 역시 손가락을 향해 돌진했다.
그 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귀안성에 박혀 있었다.
일진자는 흑의의 청년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귀안성의 성주(城主)는 역시 담이 크군!’
한편, 한제는 두 팔을 벌린 채 좀 전까지만 해도 산골짜기였던 붕괴의 중심에 섰다.
멀지 않은 곳에는 얼음 결정이 된 백미가 있었다. 이미 죽은 상태였지만 그 육신은 천운자의 신통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 아래에서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한제 앞 허공에서는 환우의 결정이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선형으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그 결정을 맴돌았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손가락에서는 이제 지문까지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개미를 눌러 죽이는 어린아이의 손가락처럼 다가오는 손가락을 보며 한제는 낮게 외쳤다.
“환우!”
그 순간, 한제의 뒤쪽에서 한 사람의 허상이 나타났다. 용모를 정확히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그 서늘한 기운이 누구의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허상은 환우의 결정에 남겨놓은 청수의 환영이었다.
청수의 환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결인을 그린 뒤 한제를 통과하여 환우의 결정을 가리켰다.
순간 그 결정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한 줄기 눈부신 빛이 되어 거대한 손가락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환우의 결정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밝은 빛이 발산되었다. 너무나 강력한 빛이라 일반인이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 눈이 녹아내릴 것이 분명했고 수련자라 해도 극심한 통증을 느낄 터였다. 수준이 부족하다면 육신까지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고신의 육신을 가진 한제조차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 빛을 목격하자 두 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전투를 관람하던 일진자 또한 수많은 바늘이 두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재빨리 체내의 원력을 가동하고도 한참 뒤에야 겨우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 귀안성의 성주인 흑의의 청년은 수준이 양의에 불과한 터라 그 빛을 보자마자 질끈 눈을 감았지만 엄청난 통증과 함께 비명을 내질렀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저물대에서 단약을 하나 꺼내 먹은 뒤 눈을 감은 채 좌선했다. 그러면서도 신식을 펼쳐 조심스레 눈앞의 전투를 관람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편, 환우의 결정은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3할 정도가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라진 3할 정도의 결정은 한 방울의 빗물이 되어 환우의 결정으로부터 떨어져 내렸다.
그 빗방울은 떨어져 내린 순간 바르르 진동하면서 끊임없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전방에 수없이 많은 빗방울을 퍼뜨렸다.
청수의 허상이 소매를 휘두르자 그 빗방울들은 한꺼번에 거대한 손가락을 향해 달려들었고 사방의 원력은 응집되면서 빗방울들에 녹아들었다.
쾅!
빗방울들과 거대한 손가락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소리가 천운성 상공에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충돌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하늘이 진동했고 거대한 손가락은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면서 움찔 멈추었다.
하지만 일곱 빛깔의 광채가 퍼져나가면서 손가락과 충돌한 빗물들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손가락 역시 잠시 멈춰 있다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압박해왔다.
빗방울들은 전부 무너져 내렸고 그 손가락은 어느새 환우의 결정에 닿았다.
그때, 한제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크게 외쳤다.
“환우!”
그 순간, 환우의 결정이 갈라졌다. 동시에 한제의 뒤쪽에 나타난 청수의 허상이 앞으로 한 발 내딛으며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갈라진 환우의 결정에 녹아들어 수많은 빗물로 흩어졌다. 그러더니 반경 수만 리까지 퍼졌다가 일제히 거대한 손가락을 향해 몰려들었다.
좀 전과 달리 이번에는 단 한 방울이었다. 이 한 방울의 빗물은 붉은 빛으로 반짝이면서 곧장 거대한 손가락에게로 돌진했다.
날카로운 기운을 발하는 붉은 빗방울은 회오리 모양을 이룬 채 끊임없이 회전하는 송곳처럼 곧장 그 손가락에서 발산되는 일곱 빛깔의 파문에 달려들었다.
쾅!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소리와 함께 일곱 빛깔의 파문은 진동하면서 일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빛들은 서로 다른 색을 띤 일곱 마리의 용이 되어 거대한 손가락의 사방을 맴돌며 성난 포효를 내질렀다.
그때, 피처럼 붉은 빗방울이 천운자의 손가락과 충돌했다.
쾅! 쾅! 쾅! 쾅!
거대한 손가락은 한제를 으스러뜨리려는 듯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허나 그 중심부에는 미세한 붉은 점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이는 붉은 빗방울에 관통된 것으로 빗방울은 손가락을 파고들어가 그 내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중이었다.
내리 떨어지는 손가락을 보는 한제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세를 느꼈다.
‘천운자는 극양을 내놓으라는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더 있는 게야.’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전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듯 두 눈을 번득이더니 저물대에서 손바닥만 한 조각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나천성역에서 공을 세우고 염뇌자에게서 받은 조각으로 그는 이것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때, 거대한 손가락이 더욱 빠르게 내리 떨어지면서 광풍(狂風)이 몰아쳤고 이에 한제가 선 땅은 다시 한 번 무너질 듯한 소리를 냈으며, 한제를 중심으로 반경 몇 리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는 구덩이 안으로 깊이 처박혔지만 두 눈만은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빛났다.
“하아앗!”
한제는 포효하며 결인을 그린 손을 위로 뻗었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선계의 조각이 솟아오르면서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이 대륙은 방패처럼 거대한 손가락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콰쾅!
거대한 손가락과 선계의 조각이 닿은 순간, 거대한 소리가 온 천운성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선계의 조각에는 쩌적 하고 균열이 일었지만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손가락은 살짝 위로 솟았다가 다시 한 번 떨어져 내렸다.
그때, 안을 파고들어간 환우의 결정이 폭발하면서 붉은 빛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줄기줄기 쏘아져 나왔다.
동시에 손가락에 가득했던 원력은 맹렬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붉은 빛에 휩싸인 거대한 손가락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무너져 내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선계의 조각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제가 튀어 오르면서 서늘한 눈빛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한제는 주먹을 휘두름과 동시에 체내의 원력을 가동했고 고신의 육신이 가진 힘까지 결합시켰다.
그의 주먹에 담긴 힘은 거대한 손가락의 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한 차례 폭풍이 일며 성난 용으로 변해 포효를 내지르더니 붕괴하고 있는 손가락을 집어삼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