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77
이는 철저히 계산된 주먹질이었다.
그 순간, 한제의 주먹이 거대한 손가락의 끝에 꽂혔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몸을 바르르 떤 한제는 곧장 뒤로 물러나면서 선계의 조각에서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마다 땅에는 그의 발자국이 깊게 남았다.
그 무렵, 거대한 손가락에서 쏘아져 나오던 붉은 빛은 더욱 많아져 이제는 거의 빽빽해진 상태였다. 특히 한제의 주먹에 가격당하면서 손가락 끝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몇 걸음 물러난 뒤 오른발을 디뎌 멈춰선 한제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향해 돌진하며 멈추지 않고 연달아 네 번이나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주먹이 내리꽂히자 거대한 손가락 끝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원력의 줄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 순간, 천운종의 일곱 빛깔 광채로 뒤덮인 산꼭대기에 가부좌를 튼 천운자가 다소 허탈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녀석에게 저런 법보까지 있을 줄이야.”
그는 이내 오른손을 들어 올려 휘둘렀고 한 줄기 광풍이 일었다. 일곱 빛깔 광채를 번득이는 이 바람은 순식간에 일곱 빛깔의 용이 되어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거의 찰나의 순간에 저 멀리 떨어진 한제 앞에 다다랐다.
한제는 한층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 일곱 빛깔의 용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바람으로 이루어진 용은 그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저것은 단순히 신통력으로 이루어진 용이 아니다. 저 안에는 진짜 용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한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천운자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극양에 관한 그의 예언은 과연 맞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천운자만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려도 결과적으로는 천운자의 계획을 벗어나지 못했다.
천운자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내가 이 극양을 받지 않았다면 도심에 그늘이 졌겠지. 하지만 내가 극양을 손에 넣은 것도 그의 계획에 포함된 것만 같다. 극양을 취했든 취하지 않았든 결과는 같았을 것만 같은 예감이야. 그자의 목적은 대체 뭐지? 백미도 그의 계획을 틀어지게 하려고 돌발적인 행동을 해왔겠지만 그 역시 천운자의 계획의 일부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이 극양은 내 손에 있든 천운자의 손에 있든 내 도심에 흠을 낼 것이 분명해. 대체 어떻게천운자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한제는 순식간에 달려드는 용을 보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극양을 버린다 해도 소용없다. 그런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어. 내버린다 해도 나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야. 그렇다고 천운자에게 갖다 바치는 것도 불가능해. 그건 완벽한 나의 패배일 뿐이다. 그럴 생각이라면 애초에 백미에게서 받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백미에게서 극양을 받지 않았다 해도 천운자의 계획에서 벗어난 행동은 아니었을 거야.’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면 할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심정이었다
‘꼭 모든 것을 계획해둔 채 나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만 같군! 천운자가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어쩌면 이 역시 그가 세운 계획의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백미가 극양일(極陽日)에 태어난 것이 이 모든 상황의 전초였던 것처럼…’
‘천운자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항한다면 그의 계획을 어느 정도 헤칠 수는 있겠지. 그럼 완벽한 천운자에게도 허점이 생기는 것이고 나는 그 허점을 통해 이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터!’
회색 옷의 천운자
그 무렵,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용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깨뜨리고 천운자의 계획을 망친다!’
한제의 머릿속은 폭발할 듯 각종 생각이 요동을 쳤다.
잠시 후, 하늘은 용의 몸에서 발산되는 일곱 빛깔로 뒤덮였다.
용은 입을 쩍 벌리며 곧장 한제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만약 그 용이 온전히 신통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저항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용의 체내에는 진짜 용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왕관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저 먼 곳에서 돌연 불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불바다 위에서 붉은 기린이 달려왔다.
기린의 등에는 비쩍 마른 노인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검존 능천후였다.
능천후의 곁에서는 네 자루의 원신검이 맴돌면서 날카로운 검기를 번득였다.
거친 눈빛을 번득이는 기린은 한제를 본 척도 않고 일곱 빛깔을 번득이는 용만을 노려보며 낮게 포효했다. 능천후만 아니었다면 진즉 그 용에게 달려들었을 기세였다.
몸을 훌쩍 날려 기린의 등에서 내린 능천후는 허공에서 크게 웃었다.
“하하! 이런 우연이 있나! 이쪽을 지나가던 참에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그가 내리자마자 기린은 길게 포효하며 불바다를 일으키더니 곧장 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용은 맹렬하게 몸을 돌려 맞섰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제는 당황했으나 내색하지 않은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능천후에게 포권을 했다.
“검존 선배님을 뵙습니다.”
능천후는 대견하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았다.
“천운자의 찬천운(簒天運)을 버텨내다니, 훌륭하구나!”
일곱 빛깔 용과 기린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면서 거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일곱 빛깔의 용은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고 기린은 더욱 맹렬하게 온몸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기린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 화염은 모든 것을 태울 듯 퍼져나갔다. 용을 이루는 바람은 그 화염을 흩어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불의 기세를 더욱 강하게 돋웠다.
하지만 일곱 빛깔의 용은 본래 바람으로 이루어져 형태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져 내렸다가도 잠시 후면 다시 응집되었다. 마치 불멸의 존재 같았다.
두 마수의 전투는 막상막하의 형세를 이루었다.
선계의 조각을 밟고 선 한제가 발을 구르자 순간 그 선계의 조각은 축소되어 그의 몸을 맴돌면서 방어막이 되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저로서는 무엇 때문에 스승님께서 화가 나신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능천후는 피식 웃었다.
“흔한 일이지. 난 아주 여러 번 봐왔다. 당시에는⋯⋯.”
한데 능천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노련하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후, 말이 많군! 자네가 뭘 하든 다 참아줄 수 있지만 천운종 내의 일에는 끼어들지 말게. 즉시 떠나지 않는다면 내 직접 보내주겠네.”
능천후는 눈을 흘기며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호통 치듯 말했다.
“하! 내가 그런 협박을 두려워할 것 같은가? 얼마든지 해보게. 당시보다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보고 싶군!”
한제는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비록 천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단숨에 이곳에 나타날 수 있을 터였다.
한제는 사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능천후는 염뇌자나 청수 등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으나 천운자와는 천지 차이가 난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천운자를 당해내기는 힘들어 보였음에도 능천후는 수만 년간 내내 그에게 맞섰다.
게다가 천운자의 말투를 보니 꼭 능천후에 대해 계속해서 참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 둘 사이에는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한제는 말없이 상황을 관찰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참인가!”
천운자의 목소리에는 기쁨도 분노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희끄무레 밝아오던 하늘이 다시 어두워졌다.
서서히 솟아오르던 태양이 완벽하게 가려졌지면서 세상은 어둠에 휩싸였다.
능천후는 엄숙한 표정으로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맴돌던 원신검들이 우는 소리를 내며 곧장 하늘을 찔러 들더니 강렬한 검기를 형성했다.
“지키지 않겠다면 어쩔 셈인가? 천운자 회색 옷을 입은 자를 불러낸다 해도 내가 두려워할 것 같은가?”
능천후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결인을 그린 손으로 전방의 검기를 가리켰다. 순간, 그 검기가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검광으로 변해 하늘을 뒤덮었다.
줄기줄기 검광 아래, 어두웠던 세상에는 약간의 빛이 생겼다.
그때, 하늘 저 끄트머리에서 옅은 회색 옷을 입은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에서는 약간의 쓸쓸함과 고고함이 느껴졌다.
그는 한 걸음씩 능천후를 향해 걸어왔다.
한제는 그 인영을 본 순간, 심신이 경련했다. 그 인영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살육 선결을 전수해준 회색 옷의 천운자였던 것이다.
천운자의 냉랭한 눈에는 고고하고 도도한 빛이 어려 있었다. 아직 가까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가 허공을 움켜쥐자 세상을 채운 끝없는 어둠은 꿈틀거리듯 일제히 그 손을 향해 몰려들었다.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어떻게 어둠이 응집될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지금 분명 그 어둠이 응집되고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능력!”
한제의 눈빛이 충격으로 뒤덮였다.
짙은 어둠이 천운자의 오른손에서 한 자루의 검은색 세검(細檢)이 되었다. 천운자는 폭이 겨우 손가락 하나 정도에 달할 정도로 얇은 그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육의 기운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열 가닥에 달하는 진정한 살육의 기운!’
당시 한제가 배웠던 불완전한 살육의 기운이 아니었다. 살육 선결을 수련한 사람이 그 선결을 어느 정도까지 수련한 뒤 육신과 원신을 녹여내어 만든 1백만 개 이상의 기운을 하나로 결합한 진정한 살육의 기운이었다.
한제는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회색 옷의 천운자와 열 가닥의 살육의 기운을 바라보았다.
당시 상황을 빠르게 깨닫지 못했다면 벌써 회색 옷을 입은 천운자의 손에 쥐어진 살육의 기운 중 한 가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막 이런 생각을 했을 찰나,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번개가 번쩍 내리쳤다. 뭔가를 깨달은 듯 그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천운자의 예언이 여태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그가 내게 저 살육의 기운을 전수해주었던 데에는 분명 더 깊은 이유가 있었을 거야. 말하자면 그건 마치 백미가 태어난 날을 극양일로 정했던 것과 같이 내 몸에 그가 남겨놓은 표식 같은 것. 당시의 천운자는 정말로 완벽한 존재였다. 그의 예측에는 허점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지. 하지만 난 요령의 땅에 있었을 때 고요(古妖)의 무의식적인 도움 아래 살육 선결의 흠과 폐단을 찾아냈다. 고요의 도움으로 천운자의 계획에 흠을 낸 거지!’
한제는 요령의 땅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 후 산마(散魔)가 나타나 천운자의 계획은 또 다시 일그러진 것이다. 나는 살육 선결의 인과를 명백하게 확인했고 그 강력한 살육의 기운을 포기했다! 이것이 바로 천운자의 계획에서 벗어난 나의 첫 번째 행동이었던 거야!’
한제의 두 눈이 밝게 번득였고 머릿속이 확 트인 듯했다.
‘천운자는 이미 나에 대한 예언 중 하나가 틀렸다. 그러니 내가 천운성으로 돌아올 날짜는 정확히 예언했다 해도 나의 진정한 수준은 파악하지 못했던 거야!’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