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80
그때, 수만 명의 수련자들 중 수십 명이 빠르게 능천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중 몇 명은 당시 능천후를 따라 천운종에 왔던 이들이었기에 한제를 알아보고는 의아해했다.
능천후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앞으로 나아가더니 단숨에 가장 높은 탑 위에 이르렀다.
“앞으로 이한제를 우리 대나검종의 장로에 임명한다!”
그 말만을 남긴 채 몸을 훌쩍 날린 능천후는 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장로 난 몇 달 동안 폐관수련을 할 것이네. 그동안 자네는 우리 대나성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야.”
능천후가 신식을 통해 전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울렸다.
‘능천후가 이렇게 많은 비밀들을 알려준 것은 주작 서열에 든 내게 호감을 표현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겠지!’
한제는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능천후가 높은 탑에 들어가자 사방에 자리한 수많은 대나검종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제에게 쏠렸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폭풍과 같은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었다.
이곳의 대나검종 제자들 중 규열기 초기 수준의 신식에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없었기에 사방을 거칠게 훑는 한제의 신식에 모두 놀란 표정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머물 곳은 어디지?”
한제의 물음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1백 척 앞까지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저는 주수연이라 합니다. 장로님께서 예고 없이 오신 터라⋯⋯ 머물 곳은 보통 장로님께서 직접 고르시는 편인데⋯⋯.”
주수연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1천 리 떨어진 곳을 에워싸고 있는 높은 탑 근처에 나타났다.
한제는 그곳을 슬쩍 훑어보고는 그 앞에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서 심드렁하게 오른손을 휘두르자 순간 그 사방에 금제가 배치되었다.
대나검종 제자들은 저마다 한제가 있는 곳을 힐끔거리며 수군댔다.
할 일을 마친 한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다 천운자의 계획대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내딛는 걸음걸음도 모두 천운자의 계획대로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천운자 예전에도 그랬듯 또다시 네게 실패를 안겨줄 것이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극양을 꺼냈다. 그 엄청난 작열감에 감히 그것을 움켜쥐지는 못하고 그저 허공에 둥실 띄워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움켜쥐었다가는 손이 불타버리고 어쩌면 원신까지도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그가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터였다.
‘내 고신의 육신이 조금만 더 강하다면 움켜쥘 수도 있을 텐데…’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능천후가 신식을 통해 극양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이 극양은 천운자의 계획을 통해 생성된 것으로 다른 사람이 빼앗아간다면 그 또한 천운자의 계획 아래에 놓인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허나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천운자가 상상치도 못한 일을 통해 상대의 예측을 완전히 일그러뜨려야 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를 악물고 그 극양을 미간으로 꾹 밀어 넣었다. 순간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극양은 이내 한제의 이마 속으로 녹아들면서 이내 사라졌다.
한제의 체내에서는 마치 불바다가 인 듯 상상을 초월하는 작열감이 차올랐고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온 듯했다.
한편, 능천후의 미간에서는 이미 닫혔던 균열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한제가 있는 쪽을 응시하던 그는 흠칫 놀랐다.
“저건⋯⋯ 극양?”
능천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천운자는 저 극양으로 대체 무얼 하려던 것일까?”
고민에 잠겨 있던 능천후는 한참 후에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천운자 내가 저 극양을 취하기를 바랐던 것인가?”
그 무렵, 한제의 체내에 일어난 불바다는 끊임없이 타올랐고 이에 한제의 몸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의 옷은 타오르는 대신 온몸에서 솟아오른 땀에 젖어 갔다.
불바다는 폭풍처럼 한제의 체내를 종횡무진하며 펑, 펑 하는 요란한 소리를 끊임없이 울렸고 그러는 사이 화염의 기세는 갈수록 격렬해졌다.
한제는 참기 어려운 고통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고신의 육신 덕에 힘겹게나마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감당해내기 힘들 터였다.
겨우 2각 정도 지났을 뿐인데 한제에게는 몇 년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다. 체내의 화염은 더욱 강력해졌고 한제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부릅뜬 한제의 두 눈에서는 두 덩어리의 푸른 화염이 이글거렸다. 이제 그는 완전히 화염에 뒤덮인 상태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화염이 점점 격렬해짐에 따라 한제는 포효를 내질렀다. 천둥만큼이나 우렁찬 포효는 콰르릉 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천운성의 천운종 안, 삼지창 끄트머리처럼 솟은 산의 꼭대기에 가부좌를 튼 천운자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 눈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빛이 드러났다.
먼 거리를 뛰어넘어 한제가 있는 대나성 쪽으로 시선을 던진 그는 조금의 변화도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네가 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곱을 세는 동안 너는 그것을 다시 뱉어내게 될 게야. 하나, 둘⋯⋯.”
천운자는 조용히 숫자를 셌다.
한편, 그 무렵 한제의 온몸은 기이한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체내의 작열감이 절정에 이르면서 온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제의 체내를 계속해서 휩쓸던 불바다는 이제 그의 육신 곳곳까지 퍼져나간 상태였다.
“여섯!”
천운자가 내뱉은 순간, 한제 체내의 불바다가 폭발하듯 쾅 소리를 내더니 피 안개가 분출되었다.
한제는 만약 자신이 이 극양을 토해내지 않는다면 그대로 불타올라 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곱!”
천운자가 일곱을 셌다.
그 순간, 한제 체내의 불바다는 완전히 폭발하면서 퍼져나가 있던 그의 몸 곳곳으로부터 응집되어 원신을 향해 몰려들었다.
허나 바로 그때, 한제의 원신에서 구름이 피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천역주가 모습을 드러냈고 포효를 내지르며 원신으로 달려들던 불바다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천역주 안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갔다.
한제의 눈이 다시 밝게 번득였다. 몸을 뒤덮은 격렬한 고통은 씻은 듯 사라졌고 그 대신 형용하기 어려운 편안함과 상쾌함만이 느껴졌다.
천역주가 모든 화염을 다 흡수해버린 그때, 그 위의 해 모양 표식이 빠른 속도로 번득이기 시작했다. 오직 한제만 볼 수 있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높은 탑 안의 꼭대기에서 한제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던 능천후는 탄성을 내지르며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빠르게 물러났다.
한제 체내의 불바다가 삽시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운자를 마주했을 때도 느껴본 적 없었던 위기감으로 오직 곤허 수련종 안에서만 느껴본 것이었다.
깜짝 놀라다
‘저건 대체 무슨 빛이지?’
능천후는 물러나는 와중에 무형의 빛이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의 미간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면서 검의 허상이 나타나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전방에서 무형의 빛이 나타나 검과 충돌했다.
콰쾅!
다른 사람은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소리였지만 능천후는 그 순간 한 움큼의 피를 왈칵 토해내며 탑의 벽을 뚫고 밀려났다.
검의 허상은 거의 무너져 내릴 듯 바르르 진동하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능천후의 미간으로 되돌아왔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또 한 번 피를 토해낸 능천후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머리가 저릿해질 정도로 놀란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려 지하로 숨어들더니 대나성 중앙으로 돌진했다.
그러고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끊임없이 전방에 수많은 봉인을 만들어냈다. 그의 머릿속에는 최대한 빨리 대나성 중앙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편, 천운성의 산꼭대기에 앉아 있던 천운자의 표정 역시 크게 변했다. 그에게서는 전에 없을 정도로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변한 표정만으로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두 눈에 어린 충격의 빛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천운자는 엄청난 속도로 두 손을 휘둘렀다. 순간 앞에 일곱 빛깔의 구름이 나타나더니 무언가에 저항하듯 전방을 향해 급속도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일곱 빛깔의 구름은 앞쪽으로 5척도 나가지 못한 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과 충돌하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구름이 흩어지는 와중에 허공에서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천운자를 잡아채려는 듯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게 뭐지?”
수만 년간 꿈쩍도 않던 천운자의 자제력은 허공에서 나타나 쭉 뻗어온 그 거대한 손을 본 순간 무너져 내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지금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칠 듯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 그는 곧장 두 손을 합치며 낮게 외쳤다.
“북두칠성의 힘!”
그 외침에 하늘과 땅의 기세가 변하면서 긴 빛줄기들이 하늘에서 강림하며 한데 교차해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이루었다. 이 무지개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는 천운자에게 이르렀다.
천운자는 곧장 오른손으로 땅을 매섭게 후려쳤다. 그러자 일곱 빛깔 무지개가 회오리 형태를 이루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 회오리는 매우 화려했는데 그 안에 일곱 개의 반짝이는 별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련자 연맹에는 오래된 전설이 하나 있었다. 우주에는 남두와 북두가 있는데 그중 남두는 죽음을 북두는 삶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천운자는 신통력을 통해 전설 속의 북두칠성을 소환한 상태였다.
일곱 빛깔의 회오리가 쉭 소리를 내며 천운자와 허공에서 뻗어온 거대한 손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 거대한 손은 너무도 가볍게 그 회오리를 관통했다. 마치 그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듯이…
“흠!”
천운자는 안색이 다시 한 번 크게 변하더니 재차 뒤로 물러나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칠성쇄선(七星碎仙)!”
쾅! 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회오리에 들어있던 일곱 개의 별 중 하나가 폭발했고 이어서 나머지 여섯 개의 별 역시 무너져 내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손은 조금도 멈추지 않은 채 곧장 천운자를 움켜쥐려 했다.
“이⋯⋯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운자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수련자로 지내온 그조차도 이렇게 기이한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낀 그는 몸을 뒤로 물리면서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천운술(天運術)!”
천운술은 천운자가 평생 수련해온 법술의 정수로 목숨에 큰 위기가 닥쳐온 상황에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그가 이 술법을 발휘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망설일 틈도 없었다.
천운자가 낮게 외치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 순간, 천운성의 하늘이 진동하더니 구름층이 빠르게 흩어지면서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이어서 그 하늘에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에 나타난 것은 반경 수만 리까지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원형의 무엇이었다. 거대한 나침반 같기도 한 그것의 위에는 수많은 문양이 빽빽하게 번쩍이며 보는 사람들의 심신을 뒤흔들었다.
천운성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나침반이 나타나자 천운자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고 다시 하늘을 가리키며 신중한 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