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86
한데 그 순간, 두 눈에서 짙은 푸른빛을 번득이던 청룡이 몸을 휙 틀었다. 녀석의 체내에서 한 줄기 푸른 기운이 분리되어 나오더니 청룡의 작은 분신이 되어 곧장 한제의 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한제는 냉소했다. 그의 온몸에서 가장 강한 곳이 바로 미간이었다. 만약 세 번째 눈이 뜨인다면 고신의 육신이라고 해도 그 빛을 잃었다. 게다가 미간에는 천역주도 녹아들어 있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한제의 미간에 한 줄기 균열이 일더니 그 안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번득이며 발산되었고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흡인력이 청룡의 분신을 뒤덮었다.
청룡의 분신은 놀란 눈빛으로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한제와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그리고 한제의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열린 순간, 녀석은 그대로 그 안에 흡수되어 버렸다.
날카로운 포효의 메아리만이 이 넓은 궁전에 남아 쓸쓸히 울려 퍼졌다.
고신의 구명(救命) 신통술
한제의 손에 붙잡힌 청룡은 상당히 허약해진 상태로 발산하는 빛도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한제가 손을 움켜쥐자 청룡은 순식간에 푸른빛의 점으로 흩어졌고 그 빛마저 완전히 사라진 후 한제의 오른손에는 손톱만 조각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그 조각에는 한 마리 청룡이 새겨져 있었다. 살아 있는 듯 생동감 넘치는 조각은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이 조각을 자세히 살피던 한제는 이 조각으로부터 자신의 미간에 있는 주작의 표식과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사성종(四聖宗)은 주작, 현무, 청룡, 백호로 나뉘어 있지. 설마 이 조각이 청룡성종에 소속된 물건인 걸까?”
고민하던 한제는 조각을 저물대에 집어넣은 뒤 푸른빛에 휩싸인 방패로 시선을 돌렸다.
청룡의 문양을 잃은 방패 안에서는 고신의 기운이 맴돌았지만 명확하게 발산되지는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방패를 자세히 살피던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전까지 청룡의 문양이 있던 곳에서는 이제 한 덩어리의 푸른 회오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청룡의 문양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던 그 회오리는 이제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회오리는 비록 강하지는 않았지만 한제는 그 안에 원력이 맴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격성은 전혀 없는 한 가닥의 신념으로 이 신념과 고신의 기운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어째서 이렇게 기이한 융합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의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혼합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신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신의 기운을 꺼내지 않은 이상 그 신념을 분리해낼 수는 없을 터였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부풍자는 절대 이 신념을 분리해내지 못했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고신의 기운에 섞인 신념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역시 그 때문일 터였다.
“방패 안에 남겨진 신념이라⋯⋯ 이상한 일이군.”
한제는 고민했다. 만약 이 신념을 제거해내면 고신의 기운도 밖으로 흘러나올 터였다. 그렇다면 이 방패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위력을 발휘될 수 없었다.
한제는 이내 결심한 듯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렸다.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고신의 힘은 오른손 검지에 응집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제는 방패 측면의 회오리가 있는 그 작은 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한제의 손가락 끝에 응집된 왕족 고신의 힘은 성난 파도와 같은 충격으로 회오리와 충돌했다.
찰나의 순간, 회오리에서 발산된 고신의 기운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빠르게 솟구쳐 올라 한제의 손가락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고신의 기운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 안에 혼재되어 있던 신념이 분리되어 나와 한제의 신식 속에서 위엄 어린 목소리로 울렸다.
“나는 청룡 성황(聖皇)이며 우(雨)의 선계에 갇혀 있다. 나를 구하는 이는 청룡의 첫 번째 서열로 봉해질 것이다! 또한 내 소식을 청룡성종에 전한다면 사성종에서는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나의 기운은 너무나 허약해져 오래 버틸 수 없다. 이 신념을 손에 넣은 자여, 부디 빠르게 나를 구하라!”
한제는 순간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방패에 있던 신념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고신의 기운이 폭발했다.
고신의 기운은 방패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억제되어 있었는지 폭발을 일으킨 순간 폭풍과도 같은 강력한 기세를 퍼뜨렸다.
한제는 안색이 변한 채로 방패를 손에 쥔 채 몸을 훌쩍 날려 궁전에서 빠져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방패 안에 있던 고신의 기운이 빠져나오면서 그 짙은 기운에 한제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끝도 없이 배출되던 고신의 기운은 거대한 고신의 허상이 되어 세상을 뒤덮었다.
허상으로 나타난 고신의 미간에서는 반점이 빠르게 회전했으나 너무 흐릿해 그 반점이 몇 개인지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원래 손바닥만 했던 방패가 번득이는 푸른빛에 휩싸인 채 끝도 없이 커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넘칠 듯한 힘이 흘렀다. 앙증맞기까지 했던 방패는 마침내 길이가 1천 척에 달할 정도로 커지면서 거칠고 포악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진도삼자는 일찍이 이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달려왔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또다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들에게 한제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저건 대체 무슨 법보란 말인가!”
“정말 크군. 저 법보 뒤에 허상으로 나타난 기령(器靈) 보이나? 하늘을 떠받칠 정도로 커! 난 여태 저런 기령은 본 적이 없어!”
“이 도우가 방금 제련해낸 법보인 모양이야.”
진도삼자는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수령성(水靈星)의 수련자들은 좌선을 하다가 심신이 떨리는 느낌에 깨어났다.
수준이 높지 않은 그들은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은 엄청난 위압감에 감히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편, 영이는 가부좌를 튼 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돌연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고 그 순간 그녀의 가슴에서 부드러운 남색 빛이 발산되어 온몸을 뒤덮으며 그 위압감에 저항했다.
영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방에서 나갔다. 하늘 끄트머리 쪼그려 앉은 거인의 허상을 본 그녀는 넋이 나가버렸다.
허리를 숙인 상태였는데도 거인의 머리는 하늘 꼭대기에 닿을 정도였으니, 만약 그 거인이 일어선다면 그 발길질 한 번에 수령성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대두와 뇌길 역시 이 광경에 넋이 나갔다. 뇌길은 몸을 바르르 떨며 존경심 어린 눈으로 그 거대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거마성(巨魔星) 내 황족의 이름으로 금지된 구역에는 성물이 하나 있는데 그 성물에는 눈앞에 보이는 것과 같은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 그려져 있음을 뇌길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부풍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거대한 방패를 바라보았다. 이 방패는 자신이 어떤 적을 죽인 뒤 빼앗은 것으로 한참을 연구한 뒤로는 사성종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저 방패를 최대한 아꼈고 오직 목숨이 위급한 순간에만 사용했다. 방패 측면의 청룡 문양은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으나, 그 아래에 회오리가 하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둔 것이었다.
한데 한제는 그 방패를 손에 넣자마자 회오리 봉인마저 열었다. 이에 그는 한제에 대한 두려움이 전보다 더욱 커졌다.
한제는 침착한 눈으로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고 있는 방패를 바라보았다.
방패의 높이는 이미 3천 척 가까이에 이르러, 이제 높은 성벽 같았다. 거칠고 조악해 보였지만 이 방패의 위력을 얕잡아볼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고신의 법기(法器)였다.
방패 뒤에 나타난 고신의 허상은 방패가 끊임없이 부풀어 오름에 따라 점차 거대해져 수령성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순간, 방패는 웅 하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뒤에 나타난 고신의 허상은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는데 그 머리만으로도 온 하늘이 다 가려질 정도였다.
미간의 반점은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은 전에 없는 충격으로 물들었다.
허상으로 나타난 고신의 미간에는 여덟 개의 반점이 있었다. 그것뿐이었다면 한제가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덟 번째 반점 뒤에 아직 흐릿하여 완전히 응집되지 않았지만 분명 별의 형태를 갖춘 반점이 하나 더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9성급 고신이 되겠구나!’
한제는 찬 숨을 들이켰다. 푸른 빛에 휩싸였던 방패가 이런 고신의 물건이리라고는 그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고신의 미간에서 회전하던 별이 멈춘 순간, 그의 몸은 쾅 하고 무너져 내려 빛 부스러기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수령성(水靈星) 전역은 마치 대낮처럼 환히 빛났다.
허나 그 빛은 이내 느릿하게 흩어졌다가 사라졌고 대지는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
한제의 눈앞에는 높이가 거의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방패가 우뚝 서 있었다. 음과 양을 갈라놓는 거대한 장벽 같은 모습이었다.
방패에서 발산되는 어스름한 푸른빛은 사방의 밤하늘을 희끄무레하게 밝혔고 심지어는 주변을 살짝 왜곡시키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곧장 방패로 다가갔다. 이를 본 부풍자의 두 눈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봉인이 완전히 풀린 방패의 위력을 상상해보기는 했지만 직접 마주한 위력은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에 방패를 다시 빼앗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의 미간에 찍혀 있는 봉인 때문에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방패 근처에 이른 한제는 손을 뻗어 곧장 그 방패에 얹었다.
그의 오른손이 방패에 닿은 찰나, 흘러넘칠 듯한 고신의 힘이 방패에서 튀어나와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그 힘은 광기 어린 포악함과 모든 것을 파멸시키겠다는 의지를 품은 듯 한제의 체내를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 기운이 체내를 몇 바퀴 돌다가 이내 방패로 되돌아간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머릿속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다행히 그가 고신의 육신을 가진 덕에 잠깐의 고통 이후 머릿속의 정보를 차차 흡수할 수 있었다.
정보들을 정리한 후, 한제는 뭔가를 깨달은 듯 외쳤다.
“디!”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매우 기이한 이것은 고신의 언어로 한제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기이한 힘이 거대한 방패를 뒤덮었다.
방패는 푸른빛에 휩싸인 채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결국 손바닥 크기로 돌아오더니 한제의 눈앞에 얌전히 떠올랐다.
한제는 고신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방금 자신의 체내를 휘저은 포악한 힘에 그대로 목숨일 잃었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표정은 덤덤했다.
‘이 법보는 고신의 솥과는 전혀 다르다.’
고신의 솥에도 고신의 기운이 깃들어 있기는 했지만 그 기운은 매우 미약했다. 그래서 고신의 솥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서사가 기껏 만들고도 만족하지 못해 곧바로 내버린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방패는 달랐다. 어떤 고신이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이 방패를 내내 가지고 다녔던 물건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봉인을 푼 순간 그 주인의 모습이 허상으로 나타날 리가 없었다.
등급을 매기자면 이 방패는 진정한 멸신모(滅神矛)보다는 아주 조금 부족한 것으로 오직 고신만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고신이 아닌 존재가 이런 보물을 얻게 된다면 그 위력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법보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한다 해도 그 법보로부터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터였다. 이런 법보들이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오직 고신뿐이기 때문이다.
“부풍자 전력을 다해 내게 신통력을 한 번 발휘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