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88
여인의 시체는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다만 지금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 데다가 몸에서 발산되는 짙은 음기가 눈 깜짝할 사이 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여인의 몸에는 두 줄의 쇠사슬도 매여 있었다. 하나는 어깨를 다른 하나는 골반을 속박하고 있었는데 이 쇠사슬은 칠흑처럼 검었고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일반인이라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만한 악취로 수련자라 해도 수준이 높지 않다면 그 독성에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이 연시를 통제할 수 있다면 정열기 초기로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한제는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이것을 손에 넣었다. 이제 그 위험의 대가를 누릴 차례였다.
한데 그때, 한제는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연시를 거두었다. 뒤이어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궁전을 가득 채웠던 음기와 독기가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잠시 후, 궁전 밖에서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선배님. 저 영이예요.”
쭈뼛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튼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던 영이는 며칠 전 그 거구의 사내가 한제를 따라 함께 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사내의 서늘한 눈빛에 영이는 더욱 위축됐으나,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선배님을 뵙고 싶어서 왔는데 호, 혹시… 저를 들여보내 주실 수 있나요?”
거구의 사내, 타산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냉랭한 눈으로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만약 영이가 한 발만 더 앞으로 내딛는다면 당장 공격할 생각이었다.
궁전의 문이 열리더니 한제가 미소를 띤 채 다가왔다.
“이리 이른 시간에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그제야 영이는 한시름 놓은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얼른 입을 열었다.
“선배님, 날이 곧 밝을 거예요. 수령성(水靈星)의 일출은 정말 아름답거든요. 혹시 선배님도 일출을 보러 가고 싶지 않으실까 해서요.”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전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그녀가 보기에 한제는 자신과 몇 살 차이 없어 보였다.
한데 영이의 말에 한제는 미소를 거두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순간, 내내 한제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영이는 심장이 저 아래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다른 할 말을 찾았다.
“영이 낭자 난 아직 수련 중이라. 혹 혼자 가기 두려워 그런 것이라면 타산을 함께 보내줄 수는 있네만.”
이어서 한제는 타산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분부했다.
“타산, 영이 낭자를 안전하게 모시고 함께 다녀오도록.”
말을 마친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궁전 안으로 향했다.
보병(寶甁)
뒤돌아선 한제는 내심 쓰게 웃었다. 영이의 말에 담긴 뜻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허나 그가 영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그녀가 수령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수하게 어린 후배를 대하는 선배의 너그러움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저 선배님과 함께 일출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설마 이 작은 소원조차 들어주실 수 없는 건가요?”
영이는 자신이 대체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왠지는 몰라도 잠에서 깨자마자 한제를 찾아오고 싶어졌다. 꿈속의 그 장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한제를 찾아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직감이 들었다.
허나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한제는 궁 안으로 들어간 뒤 소매를 휘둘렀다. 궁전의 문은 느릿하게 닫히기 시작했다.
“선배님, 저는 지난 밤 하늘에 나타났던 그 거인의 허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자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본 영이는 다급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 순간, 타산이 얼른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한 줄기 파문을 퍼뜨렸다. 그 파문이 몸에 이른 순간, 영이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버리며 뒤로 수십 척 정도 떠밀렸다.
본디 수준이 높지 않은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체내의 영력(靈力)도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이내 피를 한 움큼 울컥 토해냈다.
길게 한숨을 내쉰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순식간에 궁전 안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내 영이의 곁에 나타나더니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한 줄기 원력이 체내로 스며들면서 영이는 체내의 영력이 점차 안정되었고 방금 입은 내상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 가자꾸나. 가서 함께 일출을 보자.”
한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결정은 그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제 소원을 들어주시는 건가요?”
영이는 아직도 약간 창백한 얼굴로 기쁜 듯 웃었다. 커다란 눈이 반짝이는 것이 퍽 사랑스러웠다.
“이번 한 번 뿐이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평생을 통틀어 모완의 인생 말엽에 함께 일출과 일몰을 본 적이 있었을 뿐,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일출이나 일몰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은 한제의 마음속에 영원한 추억이었다.
영이는 기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목에 걸어놓은 방울을 흔들었다. 맑은 방울 소리가 울리자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와 영이의 상공을 맴돌며 울었다.
영이는 훌쩍 뛰어올라 그 두루미에 올라탔고 한제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선배님, 절 따라오세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두루미는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고 한제는 쓰게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이동하는 동안 영이는 뭐가 그리도 기쁜지 끊임없이 웃음을 흘렸다.
두루미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소녀의 손목에 걸린 방울은 딸랑딸랑, 맑은 소리를 냈는데 소녀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와 섞여 듣는 것만으로도 한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제는 영이가 정말로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평생을 통틀어 눈앞의 소녀처럼 기쁘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없었다. 수련자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을 제외한다면…
★ ★ ★
얼마 지나지 않아 두루미는 어느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구름을 뚫고 오를 정도로 높은 산봉우리였다.
구름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한 산봉우리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
산봉우리의 뒤에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는 바로 수령성을 뒤덮은 바다였다.
두루미는 날개를 퍼덕이며 구름층을 뚫고 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산봉우리의 꼭대기에 이르더니 서서히 착지했다.
영이는 두루미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방울소리와 함께 한쪽의 푸른 바위 위로 올랐다.
“선배님, 얼른 오세요!”
산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날리며 영이의 옆얼굴을 살짝 가렸다. 덕분에 그녀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귀여운 얼굴 등 모든 것이 한제의 눈에 담겼다.
특히 영이의 몸에 담긴 수령체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 순간, 어두웠던 동쪽 바다로부터 느릿하게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주황색 빛이 어둠을 먼 곳으로 밀어냈고 영이의 얼굴 뒤로 떠올랐다.
한제는 이 광경이,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영이의 모습이 영원히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제는 감탄한 눈빛으로 산꼭대기의 바위에 내려와 묵묵히 일출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영이는 말없이 고운 손을 들어 바람에 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한제와 함께 느릿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웃었다.
“설 언니가 이 수련성에 오기 전까지는 저 혼자서 이곳에 와서 일출과 일몰을 보곤 했어요.”
해가 바다 위로 완전히 떠오르고 나서야 영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름답구나.”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방금 전의 기이한 상태는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그 기이한 상태에 침잠되면서 그는 어렴풋이 무언가를 본 것도 같았지만 곰곰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기이한,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곳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소리였다.
“선배님, 지난밤에 하늘에 나타났던 그 거인의 허상이요. 그게 뭔지 알고 싶어요.”
한참 뒤, 영이가 조용히 말했다.
한제는 이미 하늘 위로 완전히 떠오른 태양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 법보에 있는 하나의 기령(器靈)일 뿐이다.”
영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한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속이려 하지 마세요. 그게 기령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아주아주 오래 전에는 이 우주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죠.”
한제의 눈빛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살짝 흔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영이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를 악물고는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어떤 결단과 기이한 감정이 함께 어려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했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꿈인데 한제 앞에서는 알 수 없는 기이한 감정에 털어놓게 된 것이다.
한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무척 놀란 상태였다. 영이를 바라보던 그는 점차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고신을 봤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한제는 한참이나 말없이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침 해가 뜨는 것은 다 봤으니 부탁은 들어준 것이겠지. 이제 가 봐도 좋다. 나는 생각할 것이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라.”
영이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몇 걸음 물러나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녀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유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을 병 모양으로 말아 쥐어 가슴에 댄 뒤 고개를 들었다. 꿈속에 수백 번이나 보았던 그 동작이었다.
그 순간, 한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머릿속에 천둥이 내리 떨어진 듯 큰 충격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