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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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제의 미간에서 다섯 개의 별 모양 반점이 나타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어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이한 힘이 그의 체내에서 깨어나 충격을 가하는 것 같았다. 당시 그가 얻었던 고신 서사의 기억이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스쳐 갔다.
영이는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제의 미간에 반점이 나타난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허나 그런 기색은 금세 사라졌고 영이는 영혼 속에 숨겨져 있던 기억을 되찾은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의 눈앞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꿈속에서 봐왔던 광경이 다시 펼쳐졌다. 그녀는 제단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아래로는 수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기이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제단 위의 그녀도 마찬가지로 손을 병 모양으로 말아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이한 목소리로 외쳤다.
“스!”
하늘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사방을 향해 퍼져나가면서 그 너머로 푸른 하늘과 거대한 인영이 드러났다.
그 인영의 미간에는 반점이 다섯 개뿐이었지만 다른 고신과는 다른, 오직 왕족만 발휘할 수 있는 기이한 힘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어서 지극히 냉랭한, 세상 그 어떤 것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차가운 눈빛이 영이의 두 눈에 들어왔다.
그 고신은 다름 아닌 한제였다.
“태고 월족의 신노(神奴)인 목령이 고신의 강림을 기원합니다. 저희 부족에게 신력(神力)을 선사하여 탑족(塔族)을 정복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꿈속의 영이는 열광적인 숭배심 어린 표정으로 공손하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제단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도 영이와 같은 열광이 어렸다. 주문을 외는 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폭풍이 된 듯 사방을 휩쓸었다.
그들의 미간에서는 밝은 달의 문양이 점점 밝게 빛났다.
“태고의 월족이 고신을 위해 원력을 준비했으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허상 속의 영이가 병 모양으로 말아 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제단 아래에 있던 모든 월족 사람들의 주문이 절정에 이르렀고 그들 미간의 달 문양은 밝은 빛을 번득였다.
뒤이어 그 문양에 응집되어 있던 상상을 초월하는 원력이 곧장 제단으로 향했다.
줄기줄기의 원력은 유영하는 용처럼 날아들어 영이의 두 손에 놓인 병에 모여들었다. 원력이 응집되면서 그녀의 손에서 병은 점차 실체화되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영이가 고개를 든 그 순간, 병은 주먹만 한 회오리가 되어 천천히 떠오르면서 한제의 모습을 한 고신에게로 향했다.
이 회오리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더니 엄청난 흡입력에 이끌린 듯 곧장 고신의 미간으로 달려들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미간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제처럼 생긴 고신은 손을 들어 올려 아래쪽을 가리켰다. 순간 흘러넘칠 듯한 고신의 힘이 퍼져나가 영이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고신의 힘은 영이의 체내에서 기이한 변화를 일으키며 수천 갈래로 나뉘어 밖으로 발산되었고 제단을 따라 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체내를 뚫고 들어갔다.
영이는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윽고 허상은 사라졌고 수령성(水靈星)의 하늘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산봉우리는 여전히 구름에 휩싸인 상태였고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달라진 것은 영이 뿐이었다. 그녀는 마치 허상 속의 그녀가 그러했듯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제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노⋯⋯.”
한제는 멀리 떨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는 방금 전 영이가 병을 쥐듯 손을 말았을 때, 서사의 기억 속에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이 오랜 시간 쌓여온 먼지의 봉인을 뚫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고신이 힘을 얻는 방법에는 수련성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태고 시기의 사람들, 즉 신노로부터 얻는 것도 있었다.
‘이 세상에는 윤회의 굴레가 있다. 모든 신노에게는 고신이 직접 남긴 낙인이 남아 있고 고신의 위력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신노의 수도 달라지지. 허나 영이의 몸에 남은 낙인은 너무도 강하다. 수만 년, 여러 차례의 윤회를 겪어온 지금도 영혼에 그런 낙인이 남아 있으니⋯⋯. 그러지 않았다면 전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꿈을 수없이 꾸는 일도 없었겠지.’
한제는 미간을 문질렀다.
방금 그 허상은 영이만 본 것이 아니라 한제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월족 사람들이 원력을 응집시켜 만든 회오리가 고신의 미간에 들어왔을 때, 한제는 그 힘이 자신의 체내로 녹아든 듯 미간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 가닥에 불과한 그 힘은 너무나 약했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단단했다. 그 힘은 그의 체내로 들어오자마자 확산되면서 온몸을 뒤덮고 고신의 힘의 일부가 되었다.
시(始)의 경계
혼수상태에 빠진 영이의 미간에는 어느새 하나의 문양이 나타나 있었다.
이 낙인은 계속해서 깜빡거렸는데 한제의 심장 박동과 관계가 있는 듯 그의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문양이 반짝였다.
만약 한제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다면 저 문양은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고 동시에 영이의 삶도 지속되지 못할 터였다.
‘영혼이 무너져 내리면 일체의 흔적은 지워지고 다시는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해. 고신이 죽으면 그의 신노도 반드시 죽는 거야. 영이가 수도 없이 많은 윤회를 거쳐 온 것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렇다면 당시 이 문양을 남겼던 고신은 아직 죽지 않은 거야. 그리고 나는 공교롭게도 이 안에 녹아들어 이 신노의 주인을 대체했어. 나의 문양으로 이전의 문양을 대신하게 된 것이지. 이는 그 고신이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나보다 약한 처지라는 뜻이다.’
한제는 어째서 그가 자신답지 않게 영이를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여태까지는 수령체의 몸을 가지고 있는 영이가 비슷한 처지였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연히 알게 되었다. 이 소녀가 가진 영혼에 아주 오래전에 신노의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서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풀리지 않은 봉인도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어쩌면 주작성 고신의 땅에서 얻은 기억의 유산도 완전한 것은 아닐지도 몰라. 기억의 결정이 더 남아 있는 거지. 그렇다면 남은 기억의 결정을 찾아야만 내가 전수받은 기억의 유산은 완전해지는 것이다.’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좌선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저녁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늘 끄트머리로 해가 점차 사라지면서 온 세상이 어둠에 뒤덮이는 것을 보던 한제는 점차 그 기이한 상태에 다시 한 번 빠져들게 되었다.
한제의 심신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머릿속의 모든 번뇌가 떨어져 나가고 오직 일출과 일몰의 광경만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이 상태가 대체 뭔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1천 년이 넘는 세월의 수련은 그의 감각을 일깨웠고 덕분에 한제는 자신이 이런 상태에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은 굉장히 흔치 않은 우연임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잡을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면 굉장한 큰 이득이 될 것이다!’
한제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처해 있는 상태는 수련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극(極), 도(道), 시(始)의 3대 경계 중 시의 경계의 가장자리였다.
시의 경계는 극의 경계만큼 포악하지 않고 도의 경계만큼 신비롭지는 않았지만 심오하기로는 첫째로 꼽혔다. 또한, 극의 경계가 죽음이라면 시의 경계는 삶이었다.
다만 시의 경계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련계의 역사를 통틀어 원고 시기부터 시의 경계에 이른 이는 매우 적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시의 경계에 진입한 이들조차도 자신이 어떻게 시의 경계에 진입했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시의 경계는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다.
극, 도 시의 세 가지 경계는 영력의 변화의 일종이라는 말도 있었다. 한 번 경계에 진입하면 영원히 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극의 경계와 달리 도의 경계나 시의 경계는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허나 세 가지 경계가 영(靈)과 신(神)으로 나뉜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예컨대 극의 경계는 한제의 영력에 가장 먼저 징후를 나타냈고 그 후에 변화를 일으켜 신식까지 전환시켰다.
오랜 시간 3대 경계에 대해 연구해온 수련자들은 대부분 이와 마찬가지로 도의 경계와 시의 경계 역시 영과 신으로 나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지극(靈之極), 신지극(神之極).
영지도(靈之道), 신지도(神之道).
영지시(靈之始), 신지시(神之始).
비교적 영의 영역에서 경계를 얻기가 더 쉬웠고 신의 영역은 너무나 모호하여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원고 시대부터 시의 경계에 이른 자의 대부분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영지시에 이르렀을 뿐이고 체내의 영력은 그 순간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다만 그 시간이 아주 짧다 보니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많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은 상고시기 유문이라는 연기사(煉氣士)의 기록에 남아 있었다.
유문은 본디 잘 알려지지 않은 상고 시대의 연기사로 천부적인 자질은 뛰어났지만 상고시기에 그렇게 출중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신지시(神之始)에 대한 기록을 남긴 장본인이었다.
누구도 그가 어떻게 신지시를 달성했는지, 그리고 신지시의 체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본래 이름 없던 그가 여러 해의 폐관수련 뒤 돌연 수련계를 뒤흔드는 강자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더욱이 그의 신통력은 누구도 들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 신통술은 모두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고 심지어는 하늘의 도까지 품고 있어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려 했고 그로 인해 피바람이 일었다. 수많은 연기사와 고수들이 달려들었지만 실마리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유문은 미리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자신의 힘으로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행적은 상고 시대 수련계의 전설이 되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사람들은 유문이 3대 경계 중 하나에 진입했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전후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이는 시의 경계였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유문이 전에 없던 각종 신통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주목하면서 시의 경계에 진입하면 자신만의 신통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지만 여태까지 그 소문이 진실인지에 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물론 한제는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그는 기이한 상태에 침잠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 맥락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가장자리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눈앞에 한 줄기 실마리가 맴돌고 있었지만 그것을 붙잡으려 할 때마다 놓쳐버리고 말았다.
한제로서는 여태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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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저녁 해가 결국 어둠에 완전히 뒤덮이면서 사방은 컴컴해졌고 이제는 끊임없는 파도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나 한제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 그 허약한 몸으로 대산파의 계단을 올랐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제는 없었을 것이다.
한제는 침착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맥락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래도 기다렸다.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면서 맥락이 점점 또렷해져서 결국 손에 잡히는 그 순간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