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99
“그렇다면 도운 보람이 있군.”
허나 그 순간, 그는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설마 청상이 아직 살아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새로운 우(雨)의 선검을 응집시키고 그를 검령으로 만들었겠어? 그가 입을 꾹 닫고 있는 데다가 청상의 선검에 흠집을 낼 마음은 없으니 마음대로 알아낼 수도 없어 답답하군.”
호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청상 그 애가 아직⋯⋯?”
★ ★ ★
하늘에 회오리가 나타난 그때, 풍요군(風妖郡) 내의 황궁(皇宮) 지하에도 변고가 일어났다.
풍요군의 성지(聖地)인 이곳의 지하 1만 척 아래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마치 벌집처럼 빽빽하게 황성을 중심으로 풍요군 전역에 분포된 동굴이었다.
각 동굴은 연결돼 있어 사방으로 통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황성 아래의 거대한 중심 동굴로 연결되었다.
각 동굴마다 죽음의 기운을 짙게 퍼뜨리는 새카만 유골이 있었는데 이 죽음의 기운은 발산되자마자 통로를 따라 빠르게 흡수되었다. 그렇게 흡수된 기운은 모든 동굴을 채운 뒤 황성 지하의 중심 동굴에 응집되었다.
고리 형태를 이룬 중심 동굴은 그 길이가 1만 척에 달할 정도로 넓었고 중앙에는 높이 솟은 돌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는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흉측한 흉터로 뒤덮인, 무섭게 생긴 여인이었다.
상처는 모두 봉합된 상태였지만 여인의 호흡에 따라 점점 붉은 빛을 띠었다. 수많은 지네가 얼굴을 뒤덮은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얼굴만이 아니라 팔과 손도 그 끔찍한 흉터로 뒤덮인 상태였다.
돌기둥 아래에는 유골로부터 모인 죽음의 기운이 수시로 주위를 맴돌다가 여인의 상처를 타고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때마다 여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듯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문 채 견뎌냈다.
“이한제! 이 요석설에게 이런 고통을 안기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네놈에게 기필코 복수하고야 말겠다! 네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이런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잃은 것도 얼마든지 견뎌내겠어!”
요석설의 눈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한이 드러났다.
그녀는 아버지가 위험에 처한 순간에도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던 무기력함이 마음을 옥죄어왔다. 혈육간의 기이한 감응을 통해 그녀는 아버지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었고 한제에게 복수를 맹세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는 갖은 노력을 다했고 그러는 동안 악몽과도 같은 고통과 모욕을 여러 차례 견뎌내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풍요의 허가 아래 이 풍요군의 지하 동굴에 들어와 전수받게 됐고 심신 안에 울려 퍼지던 기이한 목소리를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난 네게 힘을 줄 수 있고 그 엄청난 힘을 통해 네가 복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허나 그 대가로 네 신식과 영혼은 차차 지워질 것이고 결국 넌 나의 육신이 될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두 눈을 감은 요석설은 다시 한 번 시체의 기운을 흡수했다.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올렸는데 그 손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고 손톱에서는 서늘한 빛이 발산됐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그녀는 그 푸른 손으로 자신의 왼손을 그어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극심한 고통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표정은 냉랭했다. 이런 고통에는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왼손에 상처가 생기자 돌기둥 아래에 모여 있던 죽음의 기운이 용솟음치듯 달려들어 상처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었다. 이에 따라 상처는 느릿하게 맞물렸고 결국 하나의 흉터로 남았다.
“이한제,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녀의 영혼에서 울려 퍼지는 고함은 폭풍이 되어 온 세상을 뒤덮었다.
★ ★ ★
한제는 외부 상공의 회오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강력한 원한의 기운을 느끼고는 풍요군이 있는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느낌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뒤에서 사도환 등이 속속 걸어 나오더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부풍자 외에는 요령의 땅에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한제는 감개무량한 심정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선부가 아니라 연혼 부족이었다. 당시 상황이 너무나 급박히 돌아가 지금 떠올려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연혼 부족은 당시 둔천 스승님의 유언을 완수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아직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십삼⋯⋯.’
한제는 당시 자신을 따르며 깊은 충성심을 드러냈던 십삼을 떠올렸다. 자신의 삶을 통틀어 십삼만큼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는 없었다.
한데 그와 동시에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후포!
십삼의 충성심과 후포의 배신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더욱 깊게 기억에 남았다.
한제는 그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십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헤치고 고요성(古妖城)으로 달려들었던 당시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 그는 후포가 자신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알고 있었다 해도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그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도를 증명하려 했던 것 역시 잊지 못했다.
‘세상사 이유가 없는 일도 있지. 천명을 거스르고 긴 삶을 원하는 수련자라면 본디 화근을 피하고 천운을 바라야 하는 것을! 십삼과 후포는 나의 적도 가족도 아니다. 그 둘을 위해 요장의 처소에 난입하는 것은 천요군을 거스르는 것과 다르지 않아! 무릇 군자는 위태로운 벽 아래 서지 말아야 한다더니…’
한제는 속으로 냉소했다.
‘허나 이 이한제는 세상에 난 이래 규율을 잘 지키는 이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나는 군자도 아니고 소인도 아니며 진실하지도 않고 거짓되지도 않다. 그저 원하는 바는 끝까지 이뤄내는 사람일 뿐! 그리 본다면 나는 수련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으나 사람에게는 꼭 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 법. 만약 십삼을 구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이생에서 어떤 도를 구할 수 있겠는가!’
낯익은 풍경을 바라보던 한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저물대에서 손바닥만 한 돌나침반을 꺼냈다. 네 번째 선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한제는 그것을 사도환에게 건네며 선부 입구의 금제를 해제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사도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제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한제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사도환과 부풍자 은색 옷의 여인을 비롯한 일행의 실력으로 금제를 해제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다만 어려운 것은 선부 안에 있는 마지막 금제였다.
한제가 일러준 대로 돌나침반을 활성화한 사도환은 일행을 이끌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선부에 나타나 금제들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선부에는 수많은 금제가 있었고 이를 모두 해제해야만 중앙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모든 사람들의 목표였다.
천운자나 능천후처럼 천부에 대해 일찍이 통달하여 그 안의 금제를 모두 해제해둔 사람에 비하면 이들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대신 한제는 선부의 영패를 가지고 있으니 요령의 땅 어디에서건 언제든 선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한제의 수준으로는 선부의 영패에 걸려 있는 식신을 약간 변화시킬 수 있었기에 사도환 등은 선부의 영혼으로부터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이한 검은 석상
한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쳤다. 규열기 중기에 이른 그의 수준으로 요령의 땅 전역을 신식으로 뒤덮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제가 신식을 펼친 순간, 화요군 수도에 세워져 있던 검은 석상이 돌연 짙은 검은 빛을 발산했다. 이 빛에는 무궁무진한 서늘함이 깃들어 있었고 발산되자마자 기이한 힘이 뿜어져 한제의 신식과 하나로 융합되었다.
석상이 발산한 검은 빛은 갈수록 짙어져 이내 화요군의 하늘 절반을 뒤덮었고 수많은 연혼 부족원들은 멍하니 선조의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둘 바닥에 꿇어앉기 시작해 결국에는 모든 부족원들이 감격과 숭배심 가득한 눈으로 석상을 올려다보았다.
“선조의 령이 드러났다! 선조의 령이 드러났어!”
특히 구양화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십삼을 쳐다보았다. 십삼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은연중에 모종의 감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조께서 돌아오셨다!”
구양화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희열에 차 외쳤다. 그는 선조인 한제를 깊이 존경했고 심지어 그보다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 수백 년간 연혼 부족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감히 역심을 품지 않은 것이다.
한편, 신식을 통해 자신이 떠났을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불어난 연혼 부족을 확인한 한제의 눈이 밝게 번득였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펼친 신식에 녹아든 기이한 힘이었다. 한제는 1천 년 이상 수련을 해오면서 그간 수많은 힘들과 접촉한 바 있었지만 이는 난생 처음 접하는 기운이었다.
그 기이한 힘이 신식 안으로 흘러든 순간 한제는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연혼 부족원들이 석상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부족원들은 숭배심이 가득한 표정이라 마치 석상의 명이라면 심지어 목숨조차 기꺼이 바칠 듯한 태도였다.
지난 수백 년간 연혼 부족원들이 매일 같이 석상에 기도한 그 과거가 석상 안의 한제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을 생성시킨 것이었다.
그 열광적인 모습에 냉철한 한제조차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화요군 수도 상공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무언가를 열광적으로 외쳐대는 수백만 명의 연혼 부족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꽂힌 깃발들이 펄럭이면서 혼백들의 우짖는 소리가 사방을 뒤덮었다. 한데 이 모든 혼백은 한제가 나타난 순간 진정한 주인을 만났다는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캬아아아!”
“쿠오오오!”
구양화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선조 어르신을 뵙습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말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한제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심신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눈앞의 존재가 수백 년 만에 자신들을 찾아온 선조라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선조 어르신!”
“선조께서 돌아오셨다! 선조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이어서 환호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동시에 내지른 환호성에 대지가 진동했고 하늘에서는 구름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들의 열광적인 모습에 한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하얀 기운의 덩어리들이 수많은 부족원들의 정수리로부터 피어올라 검은 석상으로 흡수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자 석상은 더욱 매끈하고 반질반질해지면서 기이한 느낌까지 풍겼다.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십삼은 한쪽 무릎을 꿇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십삼, 선조 어르신을 뵙습니다!”
이에 수백만 명의 부족원은 다시 한 번 들끓었고 이번에는 더욱 격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정수리에서는 계속해서 하얀 기운이 퍼져 나와 석상으로 흘러들었고 모든 혼번이 검은 파도처럼 펄럭였다.
혼번으로부터 발산된 혼백들은 무궁무진한 검은 안개가 되어 화요군 전역을 뒤덮었다.
한제는 부족원들을 둘러보았다. 개중에는 눈에 익은 이들도 있었다. 그가 이곳을 떠날 당시부터 있던 부족원들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