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
부러운 시선으로 청년을 힐끗거리던 한제는 잡무실 뒤편에서 큰 항아리10개를 발견했다. 그는 곧장 물통 두 개를 지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샘이 보였다. 샘 주변의 풍경은 그가 상상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심지어 샘물이 흐르는 소리까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태연히 구경이나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한제는 물통을 채워 다시 산으로 갔다.
물 긷는 일은 해질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오후에 고구마로 배를 채우지 않았더라면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허나 발과 어깨는 조금만 움직여도 아플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
한제는 물통에 물을 반쯤 채워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가슴에 품고 있던 석주를 꺼내 물통에 집어넣은 후 잠시 기다렸다가 석주는 건져 올리고 물을 마셨다.
그 순간 뱃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며 온몸의 근육통이 천천히 사라졌다. 이슬만큼의 효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다시 기운을 되찾은 한제는 계속 물을 날랐다. 그날 한제가 채운 양은 한 항아리 반 정도였다.
석주 담근 물의 효과가 제법 뛰어나 별로 지치진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해 한제는 몹시 지친 척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장호도 돌아왔는데 역시나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고구마를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호는 대산파의 수련생이 되면서부터 3년 간 줄곧 나무 베는 일만 해왔다. 처음에는 3, 4일에 겨우 한 끼를 먹고 물로 배를 채웠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장호의 말에 따르면 수련생은 10년간 잡무를 처리해야 하고 매일 밥 세 끼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기초적인 선인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정식 제자들은 잡무도 하지 않고 개별 사부가 있으며, 방도 각자 쓴다. 그들의 주 업무는 바로 수련인 것이다.
이들 외에 정식 제자와 수련생의 중간쯤 되는 제자도 있다. 이현처럼 동자가 된 사람이 그런 제자였다. 사실 동자라고 하지만 거의 하인이나 다름없었다.
대산파에서 이야기하는 자질에 대해서도 장호를 통해 대충 알게 되었다. 자질은 바로 영기(靈氣), 즉 영혼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가진 영기의 양은 달랐다.
영기를 충분히 가진 자가 1년이면 배울 선인술도 영기가 부족한 자는 10년, 100년을 수련해도 익히기 힘들 수도 있다.
자질이 평범한 자는 제대로 된 선인술을 익히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대산파가 제자를 들이는 데 영기를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다.
★ ★ ★
어느덧 한제가 대산파에 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한제는 그동안 매일 석주 담근 물을 마셨고 이제는 힘들게 일을 해도 힘이 남아돌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10독을 채우는데 6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서두르지 않아도 3일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전히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물통을 들고 산으로 갔다. 그가 3일 만에 일을 완수하자 모두가 놀라긴 했지만 그저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많은 수련생들과 알게 됐으나, 그들 대부분은 한제를 깔보며 조롱했다.
허나 한제는 이를 무시했다. 그는 수련생들의 속이 하나같이 꼬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문파의 제일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로 무시당하고 압박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때 한제가 자살 소동으로 문파에 들어오면서 가장 낮은 자가 되었으니 일과 압박으로 쌓인 분을 풀고 괴롭히기에 이보다 좋은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문파 내에서는 강자가 존중받는데 일찍 들어온 수련생들이 신체적으로도 한제보다 강했고 심지어는 간단한 선인술을 익힌 자도 있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덤벼봐야 본인만 손해였으니, 한제는 그냥 무시하는 편을 택했다. 게다가 그는 본디 그리 유약한 편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수련생들이 자신에게 한 모든 괴롭힘과 놀림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실력이 좋아지면 하나하나 모두 다 갚아줄 심산이었다.
한제는 각종 액체라는 액체에는 모두 석주를 사용해보았다. 샘물부터 시작해서 이슬, 땀, 심지어는 피까지 시도해보았다.
그중 이슬, 특히 새벽녘에 석주에 맺힌 이슬이 가장 효과가 좋았고 밤중에 생긴 이슬이 두 번째, 석주가 아닌 다른 물체에 생긴 이슬이 그다음이었다.
이슬을 제외하면 샘물의 효과가 최고였다. 피와 땀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한제는 조롱박을 찾아 깊은 산 외진 곳 여기저기에 설치해 그 안에 이슬을 모아두었다.
그리고 이슬을 채집할 때만 이 조롱박을 꺼내 석주를 담가서 마셨다. 조롱박 하나에는 샘물을 담아서 들고 다니면서 피곤할 때마다 마셨는데 그럴 때마다 피곤이 거짓말처럼 가셨다.
한제는 그 외에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현상을 찾아냈다. 매번 밤이나 새벽녘에는 석주 표면에 꽤 많은 이슬이 맺혀 있으나, 막상 채집할 때면 대부분이 사라져버려 원래 있던 양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양만 남았다.
한제는 이 현상에 대해 석주가 이슬을 흡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 ★ ★
어느 날, 해질 무렵에 물독 3개를 다 채운 한제는 한창 수련 중인 황색 옷의 남자 유 사형에게 다가갔다.
“유 사형, 저 내일은 집에 좀 갔다 오겠습니다.”
유 사형은 한제를 대충 슥 보더니 ‘응’이라고만 간단히 대답했다.
장호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수련생은 해마다 3번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는 언제라도 손 장로에게 신청하면 되는데 그러면 마음대로 문파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는 통행증 겸 부적을 받게 된다.
곧 아버지의 생신이었기에 한제는 집에 다녀올 생각으로 손 장로를 찾았다.
대산파는 5개의 부원(副院)과 6개의 정원(正院)으로 이루어져 있다. 5개의 부원은 각각 금(金), 목(木), 수(水), 불(火), 토(土)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수련생들이 기거하고 있다.
정식 제자와 장로들은 정원에 몸을 담고 있다. 매일 물을 길러올 때 멀찍이서 바라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원에 갈 일이 생긴 것이다.
장로
한제는 정원 앞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둘러본 후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수련생 이한제, 손 장로님 뵙기를 청합니다!”
흰 옷을 입은 젊은이가 건들거리며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한제를 보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이 이한제냐?”
한제는 젊은이의 옷이 흰옷임을 알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산파의 제자들은 등급에 따라 입는 옷 색깔이 다르다. 특히 정식제자는 실력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옷 색깔도 달라지는데 자주색, 검은색, 흰색, 붉은색이 있었다.
흰옷을 입은 젊은이는 입을 한번 삐쭉거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한제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곧 그들은 꽃과 풀이 한데 어우러진 꽃밭에 도착했다. 흰옷을 입은 젊은이는 한제가 왔음을 알린 후 옆에 서 있었다.
이윽고 노쇠한 목소리가 꽃밭에서부터 들려왔다.
“알겠다. 수련생은 들여보내고 너는 가서 일 보거라.”
흰옷을 입은 청년이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자리를 떠났다.
한제가 내심 긴장한 채 꽃밭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진한 약 냄새가 났다. 도대체 저 얇은 문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문 밖에서는 어째서 이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거기 멍청히 서서 무얼 하는 것이냐?”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꽃밭 한쪽에서 들려오자 한제는 얼른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수련생 이한제, 손 장로님을 뵙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내일이 아버님의 생신이라 집에 다녀오려 합니다.”
“네놈이 이한제로구나. 으흠, 본래 선인이란 속세와의 단절을 추구해야 하는 법이거늘, 네놈은 어찌 속세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냐? 그러다가는 평생 선인 문턱에도 못 갈 것이다!”
노쇠한 목소리가 한제를 꾸짖었다.
그간 쌓인 울분이 터져 나온 것일까? 한제는 자신이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제자 아직 어떠한 선인술도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 저를 선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한제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고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 후에야 침묵을 깨고 손 장로가 말했다.
“기한은 3일이다. 이 부적은 천리부(千里符)로 네놈의 걸음을 빠르게 해줄 것이니 빨리 다녀오너라.”
말이 끝나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노란 종이가 방 창문을 통해 날아와 한제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한제는 그 종이를 귀중하게 자신의 품에 집어넣었다.
한제는 이미 장호로부터 가족을 만나러 가는 모든 수련생들은 이런 부적을 받는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산파가 이런 부적을 주는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 앞에서 선인술을 내보이면 더 많은 사람이 아이들을 대산파의 제자 시험에 보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천리부는 다리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사용 방법이 매우 간단했으나, 그걸 제외하면 그리 좋은 부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선인술을 쓸 수 있는 정식 제자 중에도 이 천리부를 꽤나 많이 모으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부적을 내다 팔거나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고 싶은 물건을 위해 부당하게 부적을 사용했고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난다는 핑계로 이미 꽤나 많은 천리부를 모아두고 있었다.
정원에서 나온 한제는 숙소로 돌아가 짐도 싸고 장호와 인사를 한 뒤 산을 내려왔다. 이미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을 때였다.
본래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려 했으나, 천리부가 얼마나 빠른지 가늠할 수 없어 아버지의 생일에 늦지 않도록 밤늦게 길을 나선 것이다.
★ ★ ★
그날 저녁, 방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와 약초를 채집하던 손 장로는 사색이 되었다. 그곳에 심어져 있던 난초가 모두 메말라 있었던 것이다.
손 장로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난초만이 아니라 다른 약초들도 다 시들어 있었다.
오후에 이 약초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봤는데 반나절 만에 다 시들어 버리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그는 시들어 버린 난초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난초들은 수분을 잃어 말라버린 듯했다. 허나 근처 땅의 흙은 적당히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이윽고 손 장로의 입에서 혼잣말이 나왔다.
“오늘 오후, 여기 온 사람은 그 수련생뿐이었지. 한데 그 아이가 어떻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몸을 공중으로 띄웠고 이내 발밑으로 무지갯빛 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수련생의 잡무실에 도착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군가?”
손 장로의 근엄한 목소리에 잡무실을 관리하던 황색 옷의 청년이 황급히 뛰쳐나왔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손 장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