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04
허나 은시는 이미 시체였다.
두 눈을 번득이던 그녀는 입을 벌려 하얀 안개를 뿜어냈다. 이 안개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여기에 닿은 화령 소녀들은 몸을 떨며 그 안개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안개는 점점 넓게 퍼져나가다가 선부의 상공을 완전히 뒤덮었다. 이에 화령들은 하나하나 그 안에 녹아들었고 꽃밭의 꽃들은 말라 시들어갔다.
그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대전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뒤흔들리더니 대전 밖에 있던 열 개의 선병(仙兵) 조각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조각상들은 열 갈래의 금색 빛이 되어 곧장 하늘로 돌진했다. 은시의 흡수를 저지하려는 것 같았다.
“어딜 감히 나서느냐!”
한제의 분부가 떨어지기도 전에 부풍자가 소매를 휘두르며 한 발 내딛더니 육중한 몸으로 달려들면서 허공에 한 줄기 결인을 그려냈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세 명의 현금(玄金) 선병이 갈라지면서 부풍자의 사냥감으로 전락해버렸다.
“우리도 가세!”
일진자의 지휘 아래 진도삼자 역시 각자 하나의 선병을 맡아 처리했다.
대두는 싸늘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이 더욱 말라붙으면서 피와 살이 머리에 응집됐다. 이제 그의 머리는 전보다 두 배는 커진 상태였고 얼굴에는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솟아났다. 미간으로부터 튀어 나간 정맥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 줄기 근육이 되어 곧장 한 명의 현금 선병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동굴 안이 혼잡해졌다. 하늘을 뒤덮은 하얀 안개에서 은시는 끊임없이 화령을 흡수했고 지면에서는 부풍자 등 사람들은 선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허나 모든 선병들은 양의의 절정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고 고통을 몰랐으며, 육신도 굉장히 튼튼해 규열기 수준의 수련자와도 충분히 맞설 수 있을 법했다. 게다가 종종 번득이는 금빛에는 신통술도 어려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의 선병이 하얀 안개로 달려드는 것을 본 일진자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몸을 날려 그중 하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그 선병을 뒤로 밀어낸 후 다시 소매를 휘둘러 나머지 두 명의 선병과도 맞섰다.
일용자와 일성자가 일진자를 도우러 나섰다.
위기
일용자가 잠시 두 선병(仙兵)을 붙들어맨 사이 일성자는 곧장 하얀 안개를 향해 돌진한 선병을 뒤쫓았다. 그리고 그 선병에게 닿기도 전에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뻗었다.
순간 허공에서 거대한 손이 나타나 그 신병을 잡아채더니 일용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남은 선병은 하나뿐이었다.
이 선병이 막 하얀 안개에 다가갈 무렵, 부풍자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선병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곧장 뒤로 물러났고 부풍자에게 붙잡혔다. 이제 부풍자는 네 명의 선병과 대적하게 된 상태였다.
이 선병들의 육신은 놀랄 만큼 강건했으나 부풍자에게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한제는 이 광경을 보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당시 그가 요령의 땅에서 벗어나지 않고 선부(仙府)의 금제를 풀기 위해 끝까지 집착했다면 이곳까지 어떻게 왔다 해도 화령(花靈)이나 선병을 절대 당해낼 수 없었을 터였으니 말이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선부 내부의 네 개의 누각으로 둘러싸인 대전으로 향했다.
한데 그의 몸이 그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대전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네 개의 누각이 순간 한제의 눈앞에서 흐릿해지며 허상이 되더니 강력한 빛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력한 빛은 융합되면서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허상을 형성하더니 대전을 더욱 엄밀하게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네 갈래의 푸른 연기가 그 등껍질에서 피어오르더니 청의(靑衣)를 입은 네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그 네 명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혼(魂)의 형태였고 규열기 초, 중기 사이의 수준이었다.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짙은 선기(仙氣)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중 한 노인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나부끼는 가운데 두 눈을 번득이며 한제를 향해 낮게 외쳤다.
“하계(下界)의 천민이 감히 선부에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말을 마친 그는 한제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선부 안의 선기가 몰려들더니 그의 손에서 회오리를 하나 형성했다.
그 회오리는 노인의 손짓에 곧장 무너져 내렸지만 그러는 와중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너져 내린 회오리 안에서 한 마리 짐승이 튀어나왔다.
온몸이 새카만 털로 뒤덮인 그 짐승은 거대한 원숭이였다. 키가 수십 척에 달했고 팔이 무릎보다 아래로 내려와 있는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장 한제를 잡아채려는 듯 달려들었다.
음침한 얼굴의 노인은 몸을 날려 푸른 빛줄기가 되더니 그 원숭이의 뒤에서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나머지 세 노인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은 손을 들어 올리면서 모래바람으로 된 폭풍을 형성했다. 이내 길이가 1천 척이 넘는 검은 구렁이가 된 그것은 시뻘건 입을 쩍 벌린 채 한제를 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다른 한 명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두 팔을 펼쳤고 그런 그의 몸에서 푸른 연기가 마구 솟아올랐다. 선부 안의 선기가 응집되자 그는 한 마리 거대한 독수리로 변해 엄청난 속도로 한제를 향해 돌진해왔다.
마지막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위쪽을 향해 뻗으며 외쳤다.
“선산포공(仙山布攻)!”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선부의 천장에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산봉우리가 허상으로 나타나 한제를 압박해왔다.
네 명의 노인이 동시에 공격을 쏟아부은 순간, 그들의 선술은 서로 합쳐지면서 한제를 공격했다.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거대한 원숭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은 순식간에 원숭이의 가슴팍에 꽂혔다.
펑! 펑!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는 사이, 거대한 원숭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녀석은 단 세 걸음 뒤로 물러난 순간 상반신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려 위로 떠오르더니 오른손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자모도고(子母道枯)!”
그 순간, 그의 오른쪽 손등의 자모도고 도안이 검은 빛을 번득이면서 순식간에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허공에서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음산하고 흉측한 마수의 두개골이 되었다. 이 두개골에서는 짙고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고 텅 빈 두 개의 눈구멍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그 순간, 놀랍도록 짙은 살기(煞氣)가 사방을 뒤덮었고 한제를 향해 달려들던 거대한 독수리는 허공에 그대로 멈춰 회색 빛을 번득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석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검은 구렁이가 강력한 흡인력을 발산하는 입을 쩍 벌린 채 돌진해왔다. 훅 끼쳐 오는 비릿한 냄새에 한제는 싸늘한 얼굴로 물러나면서 저물대를 두드렸다.
“삼구지검(三九之劍)!”
순간 총 스물일곱 자루의 금빛 검들이 나타나 한제의 곁을 선회했다. 이 거대한 검들은 급속도로 교차되더니 하나의 검진(劍陣)을 이룬 채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다.
쾅! 쾅! 쾅! 쾅!
엄청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는 사이, 거대한 구렁이는 스물일곱 자루의 검에 둘러싸인 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캬아아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선부의 상공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흘러넘칠 듯한 기세를 발휘하는 산봉우리의 허상이 하얀 안개를 뚫고 한제를 내리눌렀다.
허나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만 쩍 벌렸다. 그러자 18지옥이 된 봉선인(封仙印)이 튀어나더니 곧장 부풀어올라 산봉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르릉!
웅장한 소리와 함께 봉선인과 산봉우리가 충돌했다.
한제는 그 틈에 손을 들어 올리며 낮게 외쳤다.
“호풍(呼風)!”
순식간에 하늘의 기색이 변하더니 모든 생명을 꺼버릴 듯한 검은 바람이 한제의 손에서부터 나타나 세상을 뒤덮었다. 이어 그 바람에서 네 마리의 흑룡이 나타나더니 포효를 내질렀다.
“쿠오오오!”
거대한 원숭이를 소환해낸 노인은 경악한 얼굴로 그 흑룡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배… 백범의 선술!”
그는 곧장 몸을 물리려 했으나, 이미 달려든 한 마리의 흑룡이 단숨에 그를 삼켜버렸다. 산봉우리의 허상을 소환한 노인을 제외한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은 노인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거북이 등껍질 위에 오른발을 대더니 기이한 주문을 중얼거렸다.
순간 거북이 등껍질에서 빛이 번득였고 그 빛이 물 흐르듯 흘러들면서 노인의 기세가 끊임없이 상승했다.
한제가 이를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외쳤다.
“정(定)!”
그 순간, 노인의 눈빛이 멍해졌다. 그는 자신의 몸이 갑자기 셀 수 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얇은 실로 칭칭 얽매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신을 잃어가는 사이, 그가 중얼거렸다.
“정신술(定身術)⋯⋯.”
그 말을 끝으로 마지막 노인 역시 흑룡에게 그대로 삼켜졌다.
마지막에 본 노인의 기이한 표정에 한제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단숨에 거북이 등껍질에 이르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고신의 팔이 허상으로 나타나 한제의 기합과 함께 거북이 등껍질에 매섭게 내리꽂혔다.
쾅!
거대한 소리에 선부 전체가 진동하면서 지면에서는 쩌적 하고 한 줄기 균열까지 생겼다. 거북이 등껍질은 격렬하게 번득였지만 무너져 내릴 기색은 없었다.
그 무렵, 부풍자와 일행은 선병을 모두 처리한 상태였다.
하늘을 뒤덮었던 하얀 안개도 급속도로 수축하더니 은시(銀尸)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걸어왔다.
수많은 화령을 흡수한 그녀에게서는 몇 가지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 진을 파괴해!”
한제의 말에 일행은 모두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 위력은 일제히 거북이 등껍질에 떨어졌다.
콰르릉! 쾅!
거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거북이 등껍질은 다시 번득이기 시작했고 지면은 진동했으며, 멀리 떨어진 돌다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거북이 등껍질은 번득이던 광채가 약간 어두워졌을 뿐 여전히 멀쩡했다.
한제는 내심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고신의 주먹은 물론 여러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협공에도 멀쩡하다니, 이 거북이 등껍질 허상은 그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천운자와 능천후 등의 선부에도 이런 것이 있을지 모르겠군. 있다면 그들은 대체 어떻게 이것을 처리했을까?’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돌연 거북이 등껍질이 번득이기 시작했고 그 빛 너머로 대전이 점점 드러났다.
대전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대전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