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05
발소리는 굉장히 작았지만 이 고요한 동굴 속에서는 모두에게 똑똑히 들려왔다.
더구나 그 안에는 기이한 힘이 깃든 듯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심장 박동과 발소리가 딱딱 맞는 것을 느꼈다. 한 번의 발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쿵쾅 하고 박동했다.
안색이 변한 부풍자는 체내의 원력을 급속도로 가동했다. 원력이 그의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그제야 심장 박동은 그 발소리와 분리되었다.
하지만 진도삼자와 대두 그리고 뇌길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못했기에 발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오직 은시만은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지능을 가졌다고는 하나 시체인 그녀에게는 애초에 심장 박동이 없었기 때문에 이 발소리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다.
한제의 안색도 점차 어두워졌지만 그는 고신의 육신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대전 깊은 곳에서부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처럼 발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진도삼자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대두의 얼굴에도 어느새 푸른 정맥이 불끈 돋아났다.
특히 수준이 가장 낮은 뇌길은 몸을 바르르 떨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낮게 고함을 내지르더니 수백 척까지 몸을 부풀리고 나서야 겨우 저항할 힘을 얻어냈다.
발소리가 대전의 입구에 이른 듯한 순간, 백의를 입은 누군가의 인영이 살짝 드러났다. 뒤이어 거북이 등껍질로부터 뻗어 나온 누군가의 시선이 한제에게 닿았다.
아주 오랫동안 느껴본 적 없던 강력한 위기감이 폭풍처럼 온몸을 휩쓸자 한제는 솜털이 쭈뼛 섰다.
지금의 한제는 당시의 그 어리고 나약했던 이한제가 아니었다. 특히 고신의 육신이 5성급에 이르게 된 후 생명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정열기 후기 이상의 강자가 아니고서는 한제에게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발소리에 이어 인영이 드러난 순간, 한제는 절정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한제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 푸른색의 오른쪽 눈으로 그 인영을 주시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거의 불길하게 느껴질 정도로 류미는 비록 이 여인에 외모 자체는 부족하지 않더라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만큼은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백의를 입은 이 여인은 마치 활짝 피어난 꽃 같았다.
여인은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 채로 한제부터 부풍자를 비롯한 일행 전체를 쓱 살피더니 뒤로 다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한제는 보이지 않는 망치가 심신을 내리친 듯한 충격을 받았고 머릿속에서 뭔가가 쾅 하고 울리면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동시에 그의 몸 역시 빠르게 뒤로 수십 척 밀려났으며, 안색도 어두워졌다.
한제가 이럴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부풍자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고 핏발이 잔뜩 섰다.
그 역시 피를 한 움큼 토해냈고 비대한 육신은 바르르 경련하면서 급속도로 수축하여 단숨에 반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대량의 원력이 심신으로 몰아치면서 수백 척이나 밀려난 뒤에야 창백한 얼굴로 겨우 몸을 멈춰 서더니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화선(花仙)!”
진도삼자(塵道三子)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여인의 눈빛 한 번에 의식이 흩어져 사라지려 했다.
가슴 안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피를 대량으로 토해내며 지면으로 추락했다. 특히 일성자와 일용자는 심신이 예리한 검에 관통당하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극심한 통증에 온몸의 모공으로 피가 솟아나 옷을 물들였다. 이들은 지상으로 추락하기가 무섭게 가부좌를 튼 채 좌선을 시작했다.
경고
대두와 뇌길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특히 뇌길은 거대한 몸으로도 심신에 가해져 온 공격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반쯤 꿇고 앉았으며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오직 은시(銀尸)만이 평온했으나, 그녀마저도 두 눈에 기이한 빛이 살짝 스쳐갔다.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이토록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다니!’
한제는 이 선부에 대한 두려움이 한층 짙어졌다. 바깥층에 불과한 네 번째 선부가 이 정도라면 모든 선부가 열린 뒤에나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선부에는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평생 가장 큰 위험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물론 처음부터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부풍자를 비롯한 이들의 도움을 받고도 바깥층의 선부를 뚫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에 부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백의(白衣) 여인의 인영이 어두운 대전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한제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방금 저 여인의 허상이 자신에게 일종의 경고를 남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특히 한제에게, 절대 그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만약 평소였다면 한제는 일단 피하기로 했을 터였다. 다른 사람의 동굴에 난입한 것은 자신인 데다가 목숨을 걸 마음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주일을 위해서였다. 주일이 현재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청상이 부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청상의 아버지인 청림에게 달려 있다.
주일은 사도환과 마찬가지로 한제가 항상 감사함을 느끼는 상대였다. 사도환은 한제를 수련자의 길에 제대로 오르게 해준 사람이라면 주일은 수련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해준 사람이었다.
만약 당시 그가 준 문정의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쯤 한제는 벌써 죽어 백골이 되었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 줌 흙으로 부서졌을 터였다.
그런 주일의 바람이라면 곧 자신의 바람이기도 했다.
또한 사도환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의 체내에 퍼진 독은 임시로 억눌러 놓은 상태라 최대한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지 알 수 없었다.
한제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두 은인의 희망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한제는 물러날 수 없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평소의 소신과 달리 먼저 다른 이의 동굴에 쳐들어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주일과 사도환을 위해 필요한 일이 곧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정한 이상 끝을 본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거북이 등껍질 밖에 선 채 느릿하게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동굴 안에서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동시에 서늘한 바람이 쉭쉭 불어 닥치면서 줄기줄기 검은 빛이 그 균열 안에서 응집되었다.
잠시 후, 한제의 오른손에 응집된 그 검은 빛은 긴 창의 허상이 되었다.
뒤이어 검은 번개가 내리치면서 파박 하는 소리가 고요한 동굴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한제의 뒤에 고신의 허상이 나타났다.
고신의 허상은 멸신모(滅神矛)를 움켜쥔 한제를 따라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고신의 오른손에서도 멸신모의 허상이 나타났다.
찰나의 순간 흘러넘칠 듯한 힘이 동굴 전체를 가득 채웠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멸신모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동굴 내부의 돌조각들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하나둘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갈이나 돌뿐만 아니라 작은 강에 흐르던 물 역시 흐르는 것을 멈추고 느릿하게 솟아올랐다.
그 순간, 동굴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난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전에 처리했던 네 개의 혼체(魂體)도 그저 이곳에 남아 있던 혼의 조각일 뿐이었지. 지금 하려는 것도 동굴의 통로를 뚫는 것뿐이지 누구를 해할 마음은 없다.’
한제의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드러났고 그 아래 가려져 있던 고신의 반점 다섯 개가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일어난 고신의 힘이 체내로 흘러들었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멸신모를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멸신모가 지나간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거북이 등껍질로 달려들더니 크게 외쳤다.
“부풍자 은시! 나를 도와 이것을 파괴하라!”
부풍자는 이를 악문 채 몸을 날렸다. 반으로 줄어들었던 그의 몸은 다시 한 번 급속도로 수축해 평범한 사람의 체구로 돌아왔고 줄기줄기 금빛이 체내에서 번득이다가 거대한 비석이 되었다.
부풍자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림에 따라 수많은 문양이 새겨진 이 비석은 쉭 소리를 내며 등껍질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비석이 등껍질에 꽂힌 순간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딱 벌어진 은시의 입에서 오색찬란한 연기가 흘러나와 그대로 등껍질을 뒤덮더니 녹이기 시작했다.
두 정열기 수련자의 공격에 등껍질은 격렬하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제가 멸신모를 매섭게 내던졌다.
멸신모는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을 뒤흔들 법한 기세로 곧장 등껍질을 향해 돌진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한제의 손을 떠난 순간 이미 창끝이 등껍질에 닿은 것만 같았다.
콰르릉!
멸신모와 등껍질이 충돌한 곳에서 돌연 한 줄기 고리형 파문이 퍼져나가면서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등껍질은 창끝이 꽂힌 곳에서부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확산됐다.
그 순간, 오색찬란한 연기가 균열 안으로 스며들었고 금빛으로 뒤덮인 비석이 충돌해오자 등껍질은 결국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동굴은 순간 번득이는 빛으로 가득 찼고 조각난 등껍질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한제의 손에서 위력이 절정에 이른 멸신모는 등껍질을 깨부순 뒤 그대로 아래 대전으로 향했다. 오색찬란한 연기가 그 뒤를 따라붙었다.
한데 그 순간, 한제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선 그 위기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심지어 전보다 더욱 큰 위기감이었다.
하얗고 깨끗한 손바닥 하나가 대전 안 어두운 곳으로부터 뻗어 나와 멸신모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 순간 여러 종류의 알록달록한 꽃들이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멸신모의 접근을 저지했다.
오색찬란한 연기 역시 그 손짓에 한 송이의 오색찬란한 꽃으로 변해 허공에 떠오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백의의 여인이 다시 한 번 걸어 나오더니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주시하며 고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순간, 한제는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더니 뭔가를 울컥 토해냈다. 염뇌자가 목숨을 부지하게 해줄 법보라며 주었던 뇌(雷)의 선계의 조각이었다. 그 조각에는 천운자의 신통력으로 인한 한 줄기 균열이 있었다.
한제가 토해낸 조각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방패가 되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한데 선계의 조각에는 갑자기 화려하기 그지없는 기이한 꽃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피어나더니 묘한 향기를 풍겼다.
“경고했을 텐데?”
부드럽지만 싸늘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면서 가득 피어난 꽃들로 뒤덮여 있던 선계의 조각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선계의 조각이 무너져 내리면서 기이한 향은 한제에게로 훅 끼쳐 왔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이 닥쳐드는 느낌이었다. 체내에서는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 움큼 선혈이 왈칵 솟아났다.
깜짝 놀란 한제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 여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부풍자의 말대로 화선(花仙)이란 말인가!’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는 자신이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덕에 겨우 목숨을 구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극심한 고통에 한제는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선계의 조각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에 한제는 심신마저 바르르 떨려왔다. 천운자의 신통력에 흠이 났다고는 해도 극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법보이건만 손짓 한 번에 무너져 내리다니…
백의의 여인은 몇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응시한 채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엄청난 위기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예리한 칼날에 가슴이 관통당한 듯 끔찍한 고통을 느낀 한제는 몸을 다시 뒤로 물리면서 미간으로부터 고신의 힘을 퍼뜨렸다.
가슴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뿌리를 내린 식물의 허상이 나타났지만 그것은 고신의 힘에 그대로 끊어졌다.
백의의 여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