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06
“이 동굴에 쳐들어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고운 손을 들어 옆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도망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부풍자 주위에서 꽃이 만개했다.
꽃들에서 풍기는 짙은 향에 얼굴이 곧장 창백해진 부풍자는 그 얼른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체내로 퍼진 독을 몰아내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주위에서 피어난 꽃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그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멀리서 보면 끝없이 넓게 피어난 꽃들만 보일 뿐, 부풍자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진도삼자(塵道三子)와 대두 등은 화들짝 놀라 얼른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어느새 그들 주위에도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그들은 무슨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은시(銀尸) 역시 이미 수많은 꽃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은 허공에 떠 있는 한제뿐이었다.
여인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다시 한 번 심신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 눈으로 푸른빛을 번득인 한제의 전방에 청광순(靑光盾)이 나타났다. 뒤이어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공에 나타난 꽃들이 청광순에 그대로 갈라져 수많은 꽃잎으로 흩어져 떨어져 내렸지만 그 기이하고 독한 향만은 짙게 피어올랐다.
백의의 여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꽃 모양으로 조각된 비녀를 머리에서 뽑더니 내던졌다.
쐐액!
순간 육신을 관통하여 원신까지 파멸시킬 것만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지면서 비녀는 곧장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찌나 빠르던지 한제는 어디서 비녀가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때, 다시 한 번 강력한 위기감이 한제의 온몸을 뒤덮었다.
한제는 그 여인의 수준을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당시 염뇌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느꼈던 것보다 지금 저 여인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여인은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기이한 결인을 그리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장화(葬花)!”
그 말과 함께 세상에 눈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끝없이 많은 꽃들이 피어났다. 만개한 어마어마한 양의 꽃에 동굴은 꽃의 세계가 되어버린 듯했다.
세상을 뒤덮은 꽃들은 만개하기가 무섭게 급속도로 꽃술이 말라버리면서 꽃잎도 하나둘 떨어져 내렸는데 꼭 꽃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꽃잎들은 여인의 손짓에 따라 한제를 향해 몰려들었다. 한제는 금방이라도 그 꽃잎들에 뒤덮일 듯했다.
백의의 여인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진 한제는 실로 오랜만에 까딱하다가는 그대로 소멸되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얼른 결인을 그리더니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호풍(呼風)!”
꽃으로 가득한 세상에 검은 바람이 일어나 한제의 오른손을 맴돌다가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네 마리 흑룡이 되었다.
“캬오오오!”
꽃잎들 속에서 포효를 내지르던 흑룡들은 음산한 기운을 뿜어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또다시 결인을 그리며 외쳤다.
“환우(喚雨)!”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떨어져 내리며 사방을 뒤덮었다. 모든 빗방울에는 이 동굴의 짙은 선기가 녹아들었다.
호풍과 환우는 곧장 한데 섞여들면서 빗속의 검은 바람은 더욱 서늘해졌고 바람 속의 비는 더욱 강력해져 동굴 안을 가득 채운 빗방울들은 쩌적 소리와 함께 얼음 결정으로 변했다.
한제의 손짓에 따라 포효를 내지른 네 마리 흑룡과 얼음이 된 빗방울들은 폭풍을 형성해 백의의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두 눈이 약간 붉어진 그는 두 팔을 펼치며 다시 결인을 그린 뒤 외쳤다.
“살두성병(撒豆成兵)!”
그의 외침에 따라 한 줄기 검은 빛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18지옥이 된 봉선인(封仙印)이었다.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빛을 번득이던 봉선인에서 전혼(戰魂)들이 튀어나와 동굴을 가득 메웠다.
백범의 선술 세 개를 동시에 발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몰아치는 검은 바람에 꽃잎은 뒤로 나가떨어졌고 얼음 결정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펑, 펑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또한 살두성병으로 소환된 수많은 전혼, 특히 그중 혈조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사방을 휩쓸었다. 세 개의 신통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폭풍이 거칠게 몰아쳤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어서 한제의 체내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의 몸은 곧장 1천 척 높이로 불어나기 시작했고 왕족 고신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청광순 역시 수백 척으로 커져 한제의 곁을 맴돌았다.
한제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폭풍 안으로 녹아들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의 위력에 광풍까지 몰아치면서 3대 신통력이 융합된 폭풍은 더욱 빨라졌고 모든 것을 갈라버리며 여인에게로 달려들었다.
백의의 여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거대해진 한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신⋯⋯?”
그녀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바닥에서는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기이한 빛 덩어리가 소환되었다.
그 빛 덩어리가 나타난 순간, 한제는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위기감을 느꼈다. 저 빛 덩어리에서 풍기는 위기감이었다.
백의의 여인은 한층 더 싸늘해진 얼굴로 손바닥에 소환된 빛 덩어리를 내던졌다. 순간, 그 빛 덩어리는 곧장 폭풍을 향해 날아들어 충돌했다.
아무런 충돌음도 터져나가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제는 심장이 덜컥했다.
그 빛 덩어리는 폭풍과 충돌한 순간 그대로 갈라져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3대 신통력이 융합되어 이루어진 폭풍은 진동하면서 퇴화하는 듯하더니 삽시간에 세 개의 신통력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이어서 모든 신통력은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살두성병으로 소환된 전혼들 역시 강력한 힘에 떠밀려 18지옥으로 되돌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한제는 보기 드물게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날린 주먹의 위력은 폭풍을 잃은 상태로도 여전히 여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백의의 여인은 여전히 무표정하고 냉랭한 모습으로 또 하나의 빛 덩어리를 소환해 내던졌다. 이번 빛 덩어리는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본원!”
한제는 그 빛 덩어리 안에 본원의 힘이 깃들어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3대 신통력의 위력을 상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만약 저 빛 덩어리에 가격당한다면 제아무리 고신의 육신을 가진 한제라 해도 그대로 무너져 내릴 터였다.
위기의 순간, 돌연 한제의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나타나 번쩍 뜨이더니 붉은 빛을 발산했다. 세 번째 눈의 힘이 완전히 발휘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부채꼴 모양으로 붉은 빛이 펼쳐지면서 전방의 빛 덩어리를 뒤덮었다.
세 번째 눈으로 본원의 힘과 겨루는 것은 그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데 한제의 세 번째 눈이 번쩍 뜨인 순간, 여인의 표정이 처음으로 급변했다.
빛 덩어리는 붉은 빛에 뒤덮인 채 빠른 속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제의 세 번째 눈에 포함된 본원의 힘 역시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두 본원의 힘이 서로를 갉아먹는 듯한 형국이었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제에게는 수백, 수천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빛 덩어리가 완전히 흩어져 버린 순간, 세 번째 눈에서 발산된 붉은 빛은 어두워진 채 미간으로 돌아갔다.
식은땀으로 옷이 축축해진 한제는 가늘게 떨며 뒤로 물러났다.
여인은 그런 한제를 추격하지 않고 진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고신의 몸, 백범의 선술, 거기에 본원의 힘까지… 대체 넌 누구지?”
여인의 질문에 한제는 다시 한 번 심신이 떨려왔다. 문득 좀 전에 청의의 노인이 정신술을 본 순간 드러냈던 기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한제는 도박을 즐기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목숨만 건진다면 고요 배이라를 찾아 이곳을 뚫게 하면 된다. 어떻게든 선부 안으로 들어가고야 말겠어.’
이를 악문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키며 정신술을 발휘했다.
그 순간, 백의의 여인의 표정이 또 한 번 변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선옥으로 만들어진 탑을 꺼내 그 안에 있던 청상의 시체를 자신과 백의의 여인의 사이에 두었다.
그 순간, 백의의 여인은 지금껏 지켜오던 평정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는 멍하니 청상의 시체를 바라보며 가늘게 떨었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두 눈을 감았지만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은 그녀의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제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여인의 반응을 주시했다. 그는 저 여인이 반드시 정신술을 알고 있고 청상을 알고 있으리라는 데에 도박을 건 상태였다.
기습을 하기에 좋은 기회이긴 했지만 한제는 감히 나서지 않았다. 저 여인은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심지어 염뇌자조차 본원의 기운만 약간 풍겼을 뿐인데 저 여인은 방금 전 본원의 힘을 발휘했다. 그런 적에게 기습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저 옅은 꽃향기만이 사방을 채웠다.
2각 정도가 흐른 후에야 백의의 여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청상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뭇거린 끝에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동굴 안 저 멀리서 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고요했던 터라 그 소리는 너무나 명확하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욕설을 내뱉는, 사도환의 포악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감히 도망을 쳐? 내 마음에 든 보물 중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없다!”
저 멀리서 한 줄기 하얀 빛이 급속도로 달려들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병이 들어 있었다. 그 백옥병은 멀리서 보기에도 반들거려 꼭 살찐 양 같아 보였다.
그 작은 병 뒤쪽으로 검은 기운을 내뿜는 사도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병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결인을 그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그 작은 병 앞의 허공에 짙은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 허상의 마수로 변해 백옥병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작은 병은 우뚝 멈춰서더니 느닷없이 펑 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나뉘어 날카롭게 마수의 몸을 관통한 뒤 다시 응집되었다. 그러더니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크하하! 점점 마음에 드는 녀석이로군!”
사도환은 호탕하게 웃더니 다시 병을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