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5
“정신술(定身術)!”
좀 전의 공격은 명해에게서 틈을 만들어 정신술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 순간, 명해는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얇은 실에 얽매인 듯 그대로 우뚝 멈춰버렸다.
한제가 제아무리 고신의 육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실제 수준은 규열기 중기에 불과해 정열기 수준에 상당하는 선인을 옭아매려면 엄청난 반동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명해의 몸이 멈칫한 순간, 일곱 빛깔의 폭풍이 달려들었다. 이 폭풍은 명해의 오른쪽 눈썹 위 상처로 향하더니 순식간에 그의 온몸으로 녹아들었다.
“크아아아!”
명해의 입에서 맹렬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명해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발버둥을 치듯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그를 뒤쫓는 대신 곧장 모든 법보를 거둬들였다. 살두성병의 혼백들과 봉선인은 분천의 화염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거둬둔 상태였기에 그는 곧장 검은 탑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분천의 화염이 퍼져나가면서 사방에서 한제를 삼킬 듯 달려들었다. 훅 끼쳐오는 열기에 옷이 타올랐고 한제는 오른쪽 눈을 번득여 청광순으로 재빨리 불을 껐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고신의 솥을 이용해 순식간에 1천 척을 이동해 곧장 검은 탑으로 들어갔다. 사막의 모든 것을 태우고 녹여버린 분천의 화염이 이 탑에는 전혀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기가 다가오는 속도가 한 발 빨랐는지, 한제가 탑으로 들어서기 직전 등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과 뜨거운 기운이 체내로 밀려들었다.
다행히 직접적으로 불에 닿은 것은 아니었기에 한제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저물대에서 단약을 꺼내 삼킬 수 있었다.
기운을 차린 한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검은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던 그곳은 온통 불바다였다. 심지어 하늘이 있던 곳은 허무의 공간이 된 상태로 이따금 거울 면과 같은 하얀 부분이 언뜻 보였다.
한편 저 먼 곳에서는 명해가 허공에 뜬 채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끊임없이 포효했다. 그의 오른쪽 눈썹 위쪽에서는 일곱 빛깔 광채가 번득였고 일곱 가지 색의 가루가 그 상처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 이마의 상처가 봉쇄된 그 순간, 명해의 머릿속에 박힌 채 마기를 발산하고 있던 조각이 일곱 빛깔에 뒤덮이면서 마기의 흐름이 끊겨버렸다. 이제 명해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멍한 눈으로 하늘이 있던 곳을 올려다보며 비참하게 웃었다.
“마화(魔化)가 되다니… 선제, 이 명해의 불충(不忠), 죽어 마땅합니다!”
비참하게 웃던 명해의 아래쪽에서 무궁무진한 화염이 솟아올라 온몸을 감쌌다. 화염이 지나가자 그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명해가 한 줌 재로 사라진 곳에서 일곱 빛깔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불바다를 뚫고 검은 탑으로 다가왔다.
한편, 이 광경을 바라보던 한제는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탑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 그는 아까 거둬들였던 사람들의 머리를 저물대에서 꺼내 허공에 띄우고는 기이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청수 사형이 전수해준 유명인로(幽冥引路)가 지금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들 체내의 마기를 이용한다면 여기서 떠날 통로를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앞에 떠올라 있던 머리들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더니 한제의 결인에 따라 암적색의 회오리가 되었다. 이 회오리는 끝없이 뻗어 나갔고 이에 통로가 생겨났다.
“음?”
한제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흠칫했다. 회오리 안쪽으로부터 짙은 마기가 발산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회오리는 마기의 인도 아래 어딘가를 뚫고 들어갔다. 한제는 유명인로(幽冥引路)로 병중계(甁中界) 밖으로 나갈 통로를 뚫으려 했지만 회오리 안의 마기가 솟아오르면서 유명인로는 더욱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간 것이다.
회오리가 뚫고 들어간 곳으로 향한 한제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곳에는 마기로 둘러싸인 대전이 있었는데 그 상단부의 거대한 의자 위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짙은 마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한제는 그 마기를 느끼자마자 얼른 뒤로 물러났는데 얼굴에는 그에게서 보기 드문 짙은 충격의 빛이 배어 있었다.
그의 평생을 통틀어 겪었던 가장 짙은 마기는 예전에 산마(散魔)에게서 피어오르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 통로를 뚫은 이 회오리로부터 발산된 마기는 산마의 마기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회오리 안의 마기는 마치 세상 모든 마기의 근원인 것처럼 순수했다. 여기에 비하면 산마나 명해의 마기는 보름달 앞의 반딧불보다도 못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제는 마기로 둘러싸인 대전과 그 상단의 의자에 앉은 사람을 힐긋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저릿해지고 심신이 진동했다.
이 순간 한제는 숨 쉬는 것마저 잊었고 지금 그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는 자신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한제는 곧장 유명인로 술법을 발휘한 신통력을 끊어버렸다. 이에 회오리는 쩌적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려 했다.
한데 그때, 통로에서는 지금까지 한제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원한이 잔뜩 어린 얼굴로 한제를 노려보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고 그들의 몸은 회오리를 따라 일그러지고 왜곡되었다.
그때 보좌에 앉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탁한 눈빛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통로를 지나 한제에게 닿았다. 그 순간, 그의 흐릿한 두 눈에 초점이 잡혔다.
그 순간, 한제는 오른쪽 눈에 푸른 빛을 번득여 청광순을 소환함과 동시에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대전의 보좌에 앉은 자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바깥쪽으로 휙 내던졌다.
한 줄기 노란 빛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회오리에 닿은 순간, 대대적인 붕괴가 일어났다.
콰르릉!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회오리는 노란 빛에 관통당해 곧장 와해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회오리 안에서 나타났던 수십 개의 허상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분분히 폭파되었고 검은 결정들로 부서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노란 빛은 무너져 내린 회오리 밖으로 튀어 나가 곧장 청광순에 떨어졌다. 그리고 청광순을 무시한 채 그대로 달려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코끝으로부터 3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회오리는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고 검은 탑 안쪽도 평화를 되찾았지만 한제는 식은땀을 흘렸다. 바로 코앞에서 멈춘 그 노란 빛 안에 마름모꼴 결정 하나가 들어 있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한제는 불안정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노란색의 마름모형 결정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한제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유명인로를 잘못 사용한 게 아니야. 누군가의 방해를 받은 거지. 그래서 내 통제에서 벗어나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통로를 뚫어버린 것이다.’
한제는 손 위에 올려진 결정을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고 곧 지금의 상황을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를 방해한 자는 분명 대전의 그 인물이겠지.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나를 방해한 것은 내게 이 결정을 주기 위해서였어!’
한제의 미간이 점차 구겨졌다. 이 선제의 동굴은 너무나 기묘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었다.
“혹시… 그가 청림은 아닐까? 청림이 맞건 아니건, 이 결정을 내게 준 이유가 뭐지?”
한제는 결정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몇 걸음 물러난 뒤 가부좌를 튼 채 그간의 부상과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호흡을 시작했다.
그는 사막에 있는 동안 크고 작은 부상을 많이 입었고 분천의 화염에 엄청난 양의 피가 증발했으며, 이제 원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심지어 선력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청수 사형이 준 선력을 너무 많이 잃었다. 최대한 빨리 보충해야 해. 검은 사막에서의 전투는 내 평생 겪은 전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위험했어.’
명해의 분천술(焚天術)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탑 밖에서는 여전히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쳐다보고 있노라면 두 눈이 불타버릴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사도환 선배와 다른 이들은 대체 어떻게 됐을지…’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탑 안에 앉아 있노라니 마치 세상에 혼자만 남은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이나 호흡을 한 결과 이전에 복용한 단약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육신의 부상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유백색의 불빛 한 덩어리를 꺼냈다. 그 빛에는 매우 순도가 높은 선력이 맴돌고 있었다.
‘현보 상인의 원신을 이렇게 쓰게 되는군!’
한제는 그 빛 덩어리를 코밑에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두 갈래 선기가 그 빛 덩어리에서 흘러나와 코를 타고 체내로 흡수되었다.
주작(朱雀)의 각성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며칠 뒤 두 눈을 번쩍 떴을 때 한제는 체내의 선력이 회복된 상태였고 심지어 이전보다 약간 더 늘어나 있기까지 했다.
한제는 체내에 너무 많은 선력을 남겨뒀다가는 경지가 흩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고신의 육신은 회복력이 상당해 며칠 만에 모든 상처는 물론 현기증도 씻은 듯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원력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아닌 바깥이었다면 앉아서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연 상태의 힘을 원력으로 흡수할 수 있으니 원력을 보충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허나 지금은 며칠이나 호흡을 했는데도 체내의 원력이 쌓여가는 속도는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이곳에는 자연적인 원력 역시 많지 않은 모양이군. 게다가 그나마도 저 밖에서 타오르는 분천의 화염에 융합되어버렸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마름모형 결정을 지나 탑의 가장자리에 선 채 바깥을 내다보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화염은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늘이 있던 곳의 거울 면과 같은 표면도 불바다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로 뒤덮인 상황이었다.
‘원력을 보충할 수 없다면 수준을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없어. 그럼 저 결정을 살필 수도 이 탑을 떠날 수도 없다!’
신식을 펼쳐 탑 안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한 한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이를 악물더니 탑 밖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의 발이 땅을 디딘 순간, 분천의 화염이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제는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방에서 달려들던 화염이 한 줄기 분리되어 그의 손으로 들어왔고 한제는 곧장 몸을 물려 탑 안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달려들던 화염은 간발의 차이로 탑 전체를 뒤덮었고 한참 뒤에야 차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마치 썰물처럼 물러났다.
한제는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콩알만 한 불꽃이 짙은 열기를 내뿜으면서 그것을 쥔 한제의 오른손은 금세 바짝 말라버렸고 곧 균열이 생겨났다.
불꽃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불꽃이 타오르면서 그의 얼굴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지금 그는 어려운 선택 앞에서 갈등하는 중이었다.
1각이 지난 후에야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위험하긴 하지만 계산을 마쳤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야. 더 이상 고민해봐야 소용없으니 일단 해보자!’
생각을 정리한 그는 오른손으로 몸을 툭 쳤고 그러자 저물대가 저 멀리 날아가더니 금제로 봉인됐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손가락 두 개로 그 콩알만 한 불꽃을 집어든 뒤 곧장 입가로 가져가 꿀꺽 삼켰다.
그 불꽃이 체내로 들어온 순간, 엄청난 열기가 체내로부터 폭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에 그의 온몸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쩍 벌린 입에서 고통에 찬 포효가 튀어나와 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동시에 대량의 화염이 모공으로부터 튀어나와 옷을 단숨에 재로 만들어 버리고도 멀리까지 뻗어 나가 반경 30척을 휩쓸었다. 온몸에서 솟은 땀이 곧장 증발해버리며 수증기를 내뿜었다.
“크으으…”
한제는 이 극심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고신의 피갑으로 보호받는 원신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지만 체내의 원력은 그 불꽃에 녹아들어 함께 체내를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원신에 녹여 넣어야만 흡수를 통해 원력을 얻을 수 있어!’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가슴팍을 두드렸다. 순간 원신을 두르고 있던 고신의 피갑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고신의 피갑이 사라지자 체내의 불꽃과 융합되어 있던 원력은 곧장 그의 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태고의 뇌룡 형태인 한제의 원신은 자신을 둘러싼 화염을 곧장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한제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으며, 심지어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원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서서히 사라졌고 화염이 된 원력 역시 원신과 융합되면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한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두 눈은 피곤함에 젖어 있었다. 한데 그 순간, 주위를 가득 채웠던 불바다가 그의 모공을 통해 순식간에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