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7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배이라의 오른쪽 눈에서 번득이던 별빛이 흩어져 사라졌고 그는 그 순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어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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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의 동굴 안.
나무다리 위에서 마기 어린 안개에 휩싸여 있던 사람의 두 눈에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그 순간, 그의 체내에서 포효하듯 뿜어져 나온 짙은 마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아래의 작은 강에서 유영하던 검은 그림자들은 그 순간 두려움을 느낀 듯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안개에 휩싸여 있는 사람의 앞에 떠 있는 백옥병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그 안에서 주작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옥병을 뚫고 나오려는 듯했다.
“어찌 봉계의 주작까지 안에 들어간 것인가!”
안개 속의 존재는 중얼거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대량의 안개가 뿜어져 나와 마영(魔影)을 형성했다. 이 마영은 사내의 손짓에 따라 곧장 백옥병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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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 주위의 불바다는 온통 주작을 향해 몰아치고 있었다.
몸길이가 1백 척에 달하는 주작이 날개를 펼치자 더욱 거대해 보였다. 꼬리 부분에서는 줄기줄기 화염이 타오르고 있어 용맹함과 신비로움을 더했다. 특히 서늘하고 냉랭한 두 눈은 한제의 그것과 똑같았다.
일제히 몰려든 불바다는 눈 깜짝할 사이 주작에게 모두 흡수되었다. 주작이 불바다를 뿜어내고 있는 것인지 불바다가 주작에게 흡수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저 먼 곳의 불바다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캬오오!”
주작이 다시 한 번 포효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 순간, 한제가 있는 병중계 가득 퍼져나가 있던 화염이 전부 응집되었다. 한꺼번에 하늘로 솟구치는 열기 안에서 세상 모든 생명체를 단숨에 태워 죽이고도 남을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제의 갈라진 피부도 무너져 내리면서 새 살이 드러났지만 그마저도 금세 균열이 일었다.
마치 세상 모든 화염을 응축한 듯한 작열감으로 이전의 한제였다면 이미 한 줌 재로 변해버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허나 주작이 깨어난 지금은 견뎌낼 만했다.
대량으로 유입된 열기를 흡수하자 점차 체내의 원력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육신이라도 파괴할 것만 같은 이 열기는 주작의 각성에 뒤따르는 난관 중 하나였다.
주작을 각성시킨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부분은 각성과 동시에 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재로 흩어져 버렸을 정도였다.
사성종에는 오래전부터 유물 각성에 관련한 말이 전해졌다.
사성의 각성에 있어서는 현무가 가장 우선되고 백호가 가장 사나우며, 청룡이 가장 강하고 주작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었다.
사실 현무성종(玄武聖宗)의 각성자는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각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백호성종(白虎聖宗)의 각성자는 포악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 일단 각성을 하면 엄청난 살육을 저지르곤 했다.
청룡성종(靑龍聖宗)은 사성종에서 가장 강한 편인데 그 각성자는 드물지만 한 번 각성하면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청룡성황(聖皇)이 되기 일쑤였다.
주작성종(朱雀聖宗)은 각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각성을 하더라도 엄청난 난관을 넘겨야 했기에 성황까지 등극하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천부적인 자질이 놀랄 만한 수준이거나 전설 속 주작의 영체(靈體)를 가진 자라 해도 체내에 흘러넘칠 듯 강렬한 화염의 힘을 축적해 내부에서 표식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런 영체를 갖지 못한 자는 내부로부터의 각성이 불가능해 외부의 힘에 의지해야 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한제도 외부의 힘을 통해 각성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중으로 불바다가 응집된 작열감은 갈수록 강력해지는 중이었다. 고신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진즉 한 줌 재로 변해버렸을 터였다.
한제는 5성급 왕족 고신의 육신으로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만 했다. 몸 곳곳의 균열은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허나 고신의 육신은 이 작열감에 차차 적응해나갔다.
사방에서 몰려들어 주작에게 흡수된 불바다는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한 화염 공으로 응축됐다. 그리고 이 공은 응집된 순간 주작과 한제를 감쌌다.
바로 그때, 주작이 다시 한 번 울부짖으며 한제의 미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더니 그 곁을 맴돌다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문양이 되어 한제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이제 한제의 쩍쩍 갈라진 몸에는 붉은색의 주작 문양까지 더해져 소름 끼치면서도 화려해 보였다. 특히 두 눈은 마치 별처럼 빛났다.
파멸적인 기운이 대지 가득 퍼져나가며 끝없는 불바다에 녹아들었고 화염 공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대지에서 솟아오른 불바다는 곧장 화염 공으로 녹아들었다.
무궁무진한 불바다는 빠른 속도로 화염 공에 녹아들면서 수축했고 불바다가 사라진 곳에는 거울 면과 같은 하얀 바닥이 드러났다.
화염 공은 점점 더 커져 하늘에 이르렀다. 이에 대지를 뒤덮은 불바다는 점점 줄어들더니 화염 공만을 남긴 채 완전히 사라졌고 하늘을 가득 채웠던 검은 연기도 몰려들어 화염 공 주위만을 맴돌았다.
이어서 하늘에서 짙은 마기가 피어오르더니 검은 안개가 되어 달려들었다.
이 마기는 화염 공 근처에서 뿔 달린 마영의 모습을 갖추었다. 거대한 마영은 살육에 굶주린 듯 눈을 번득이며 곧장 화염 공을 향해 흐릿한 몸으로 돌진해왔다.
하지만 화염 공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열기에 마영은 뒤로 한참 물러나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화염 공을 노려보았다.
이 거대한 화염 공 안에서 두 눈을 감고 있는 한제의 몸 위로 주작 문양이 붉은 빛을 번득였다.
붕괴
화염 공에서 솟아오른 대량의 화염은 한제의 체내로 끊임없이 흡수되며 녹아들었다.
덕분에 한제의 몸은 점점 강해졌고 높은 열에 체내의 원력까지 변이를 일으키며 두려울 정도의 열기를 품게 되었다.
한제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전신의 피부가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몸에는 붉은색의 새살이 돋아났다.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으며, 주작의 문양 역시 떨어져 나와 주위를 급속도로 회전했다.
그 순간, 한제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화염 공은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수축하더니 순식간에 수축해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이제 이 사막에 더 이상 화염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 한 줄기의 화염까지 다 흡수한 뒤에야 한제의 모습이 드러났다. 피부는 붉었고 두 눈은 별처럼 반짝였으며 주위에서는 주작이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한제는 주작성황 같아 보였다.
그 순간, 마영이 달려들며 무궁무진한 마기를 뿜어내 검은 안개를 형성했다. 이 안개는 한제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잡스러운 마영이로군.”
한제는 차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상을 파멸시킬 듯한 화염이 그의 몸에서 발산되었다. 이 화염은 그가 흡수하고 남은 것으로 더 지니고 있어봐야 오히려 해로울 것이기에 어차피 분출해야 할 것이었다.
이 화염의 엄청난 열기에는 분천력만이 아니라 주작 특유의 성화(聖火)의 위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발산된 화염은 고리 형태로 확산되었는데 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위로는 하늘을 가리고 아래로는 땅을 덮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영은 마기 어린 안개에 뒤덮여 있던 사람이 보낸 것으로 호기롭게 화염에 달려들었다. 허나 곧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더니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네 마음대로 왔을지 모르나 가는 것은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가 떨어지자 화염이 성난 파도처럼 곧장 마영을 잠식했다.
콰르릉!
“크아아아!”
마영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고 극히 일부만이 겨우 빠져나와 곧장 도망치려 했다.
허나 뜨거운 열기를 품은 불바다는 주작이 각성한 후의 성화와 결합해 분천보다도 강력해진 상태였다. 이 화염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모든 병중계에 영향을 미쳤다.
불바다가 사방을 휩쓸며 지나치는 곳은 어디라도 균열이 일면서 무너져 내렸다. 더구나 이 붕괴는 불바다가 퍼져나감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심지어 공간까지 와해시킬 기세였고 무너져 내린 허공 너머로는 다른 계가 나타났다.
그곳은 검은 모래로 가득했는데 한제가 소환한 화염은 곧장 그 공간까지 불사르고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콰콰쾅!
거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하나하나의 계가 연달아 무너져 내렸고 그때마다 화염은 그 너머의 계로 퍼져나갔다.
화염은 열세 번째 계를 무너뜨린 뒤 마영을 붙잡았고 마영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병중계의 붕괴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끊임없는 충격을 따라 각 계에는 불바다로 이루어진 폭풍에 의해 균열이 일어났다.
또 하나의 계가 무너져 내리자 그 안에 있던 사도환이 분노를 터뜨렸다.
“어느 망할 녀석이 감히 이 몸의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냐!”
허나 그는 괴성을 내지르면서도 불바다로부터 황급히 도망쳤다.
“망할! 이건 또 무슨 불이야?”
사도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그가 있던 계가 완전히 와해되면서 그 너머의 계가 드러났다.
능천후는 갈라지는 하늘과 그 사이로 몰려드는 무궁무진한 불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 불바다의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 순간 머리가 다 저릿해지며 재빨리 달아났다.
한편, 천운자는 무너져 내린 하늘에 나타나 잠자코 상황을 살폈다. 한참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불바다가 덮쳐 온 순간 옆으로 한 발 움직였고 그것만으로 여유롭게 불바다의 영향력에서 빠져나갔다.
이 무렵, 병중계의 모든 사람이 그 불바다에 의한 붕괴를 느끼고 있었다.
경계가 하나하나 무너져 내림에 따라 대두, 진도삼자(塵道三子), 호리병 위의 노인, 흑의의 사내, 심지어 허공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붕괴는 멈추지 않았고 붕괴하는 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된 불바다는 갈수록 강해지고 격렬해지면서 병중계의 끝, 마지막 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계를 파괴하면 이 백옥병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불바다의 힘은 한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화염을 흡수하고 남은 것을 모두 분출한 것일 뿐, 다시는 이와 같은 위력을 낼 수 없을 터였다.
한제의 두 눈에서 번득이던 화염은 점차 흩어져 사라졌다. 더 이상 어떤 제한도 느껴지지 않자 그는 순간이동을 통해 검은 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물대와 대전의 신비한 존재가 준 노란색 결정을 챙겼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바다는 엄청난 힘으로 병중계의 마지막 계를 향해 돌진했다.
98개의 계를 모두 휩쓸며 그 힘까지 더해져 더 이상 누구의 통제에도 따르지 않게 된 화염의 힘은 힘차게 마지막 계의 장벽과 충돌했다.
콰쾅!
하늘이 쪼개지고 땅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병중계의 모든 공간에 울려 퍼졌고 짙은 열기가 발산되었다.
이 무렵, 붉게 달아올랐던 한제의 몸은 점차 본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주작 문양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남아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