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8
주작의 꼬리 부분이 한제의 목 부분을 감싸며 이어져 미간에서 끝났는데 마치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그의 머리카락이 보라색 화염으로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작의 각성은 한제의 수준을 높여주지는 않았지만 대신 원력을 변화시켰다. 그의 원력은 높은 열기를 품은 채 모든 신통력을 한층 더 두렵게 만들었고 고신의 육신이 뜨거운 화염에 적응하면서 이제는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화염을 소환할 수 있게 됐다.
수준은 여전히 규열기 중기였지만 고신의 육신과 화염의 힘까지 더하면 정열기 중기 수련자와도 붙어볼 만했다.
불바다가 마지막 계의 장벽과 충돌할 때마다 병중계 전체가 진동했다. 무궁무진한 불바다는 계속해서 마지막 계의 장벽으로 달려들었고 어느 순간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침내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콰르릉!
갈라진 하늘은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갈라져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너머로 마지막 층에 있던 고요(古妖) 배이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배이라의 손에는 회색 그림 족자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족자에서 발산된 짙은 선기(仙氣)가 일렁였다. 마치 그 족자의 영(靈)이 배이라의 통제에 따르기를 거부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배이라는 차가운 눈으로 부서진 병중계의 마지막 계와 그 너머 다른 계의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으로 한제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때 그의 손에 들린 족자에서 발산되는 선기가 더욱 짙어졌고 심지어는 성난 고함을 내지르듯 쉭쉭 소리까지 났다.
배이라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족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오른쪽 눈에서 일곱 개의 반점이 빠르게 번득였다. 그 순간, 흘러넘칠 듯 강력한 요력(妖力)이 분출되어 그의 손을 타고 족자로 몰려들었다.
펑! 펑!
족자 안에서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분노한 듯한 포효도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족자는 한 줄기 초록색 빛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러자 포효가 사라졌고 족자에서는 선기가 소멸되었다.
짙은 선기가 맴돌던 자리는 무궁무진한 요기로 채워졌고 색깔 역시 회색에서 초록색으로 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였다. 온 하늘이 흩어져 사라졌고 병 속의 99계는 순식간에 와해되었으며,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듯 혼돈이 찾아오면서 짙은 안개가 확산되었다.
안개는 용솟음치며 불바다에 융합되었고 불바다는 기름을 끼얹은 듯 폭발하면서 더욱 강력한 충격이 되어 곧장 모든 계 밖으로 튀어나갔다.
끝없는 불바다와 안개가 융합되면서 대량의 열기가 발산됐고 그 충격에 온 하늘과 땅은 거대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 ★ ★
선제(仙帝)의 동굴의 나무다리 위. 안개에 휩싸인 사람 앞에 떠 있는 백옥병은 붉은색으로 변해 뜨거운 열을 발산하고 있었고 병 안에가 강력한 힘이 솟구치기라도 하는 듯 나무 마개는 격렬하게 진동했다.
안개 속의 사람은 서늘한 눈빛으로 비쩍 마른 오른손을 들어 나무 마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한 줄기 마기가 분출되어 나무 마개를 타고 백옥병으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쾅!
선제의 동굴이 무너질 듯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백옥병의 나무 마개가 가루로 변하더니 마치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 기운이 어찌나 강렬한지 거센 바람이 불어와 나무다리 위에 있는 사람을 뒤덮고 있던 안개를 30척이나 밀어냈다.
흩어진 안개 너머로 새카만 옷을 입은 남자의 인영이 드러났다. 갑옷에는 복잡한 꽃무늬가 잔뜩 새겨져 있었고 음산한 마기가 맴돌았다.
사내는 나무 마개가 터져나간 순간 자신의 손 역시 뒤로 밀려나자 투구 너머의 싸늘한 눈으로 백옥병을 바라보았다.
백옥병은 용암을 뿜어내는 화산처럼 대량의 화염을 뿜어냈고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가 훅 끼쳐왔다. 그러자 사내가 앉아 있던 나무다리가 그대로 불길에 휩싸였고 아래쪽의 작은 강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끄아아!”
“크아악!”
강물이 사라지자 말라붙은 강바닥 위로 흉측한 마수들이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피 안개로 터져나가며 비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안개로 뒤덮인 사람은 정원에 서 있었다. 사방에는 적지 않은 누각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비취색 대나무들이 있었다.
본래는 청아한 풍경이었으나 짙은 마기에 휩싸여 크게 변한 상태였다. 누각은 음산해 보였고 푸르른 대나무는 검은색을 띠었으며 바닥의 풀들 역시 괴이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이 어떠했건 사실 상관없었다. 병에서 분출된 화염의 불바다가 뒤덮으면서 모조리 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내의 보라색이 어린 검은 갑옷 아래로 백발이 휘날렸다. 불바다에 삼켜지기 직전 솟구쳐 올라간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화염이 모두 분출된 후 백옥병 안에서 머리가 벗어진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오른손에 초록색의 그림 족자를 든 그는 고요 배이라였다.
배이라는 검은 갑옷의 사내를 힐긋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옛날 선제 좌하의 4대 호위무사 중 하나였던 잔도가 고마의 산마(散魔) 중 하나로 전락했다니, 안타깝군!”
배이라의 뒤를 이어 천운자 능천후, 허공자 사도환 그리고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병 위의 노인과 흑룡의 표식을 숨긴 흑의의 사내, 진도삼자와 대두, 온몸이 요기로 뒤덮인 여인과 성흔 담비를 데리고 있는 손 장로가 뒤를 따랐다. 운선 부부와 한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인 것이다.
그때 백옥병에서 또 한 차례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가운데 한제가 훌쩍 뛰어나오더니 화염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모든 시선이 한제에게 집중됐다.
허공자의 표정은 평온했으나 그는 내심 살기를 품고 있었다. 능천후는 한제를 우습게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고 천운자는 잠시 표정이 굳어졌으나 이내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산마 잔도는 음산하고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힐끗 살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문제의 그 불바다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본래 그리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니었던 한제는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서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때, 잔도가 피에 굶주린 듯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허공에 떠오른 채 두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갑옷에서부터 짙은 마기가 발산됐고 두 개의 검은 회오리가 두 팔에서 솟아올랐다.
장선지(葬仙池)의 그녀
“너희들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나는 내 피와 살을 바쳤고 영혼을 헛것으로 만들었지. 그리하여 고마(古魔)의 혼이 될 것이다. 나 고마 타지아의 분화된 산마(散魔)는 마념을 발휘하고 문양 부족의 성물을 빌려 장선지(葬仙池)를 열 것이다!”
배이라는 잔도라 불렀으나 스스로를 타지아라 밝힌 산마는 기이한 웃음을 짓더니 허공에 발을 세게 굴렀다.
쾅!
공간을 찢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불바다에 휩쓸려 폐허가 되어 있던 지면에는 줄기줄기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이 갈수록 많아지다가 눈 깜짝할 사이 하나로 이어졌고 여인은 펑, 펑 소리와 함께 완전히 붕괴했다. 그러더니 거대한 흡입력이 발산되었다.
지면 아래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온 지면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회오리가 있었고 그 안에서는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이 올 것은 타지아 님이 이미 수만 년 전에 예지하셨다. 너희들을 위해 청림이 묻혀 있는 곳을 준비했지. 저 아래에서 기다리마! 크하하!”
강력한 흡입력은 마치 거대한 입처럼 모든 것을 삼켰고 산마는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병중계(甁中界)에서 나오자마자 이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치 거대한 손에 단단히 붙잡힌 듯 거대한 회오리로 끌려 들어갔다. 수준도 떨어지는 편인 데다가 회오리에 가장 가까이 있던 진도삼자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가장 먼저 빨려 들어갔고 대두가 뒤를 이었다.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중년 여인의 네 여제자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그중 곤허의 성녀일 것으로 추측되는 여인을 제외한 셋은 표정이 급변했다.
그 셋은 순식간에 회오리로 빨려 들어갔고 심지어 그중 한 명은 흡입력을 견디지 못한 듯 펑 하고 터져나가 피 안개로 흩어져 버렸다.
그녀의 원신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육신에서 빠져나왔다. 허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회오리 안에서 귀신들이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원신을 둘러싸고 삼켜대기 시작했다. 원신의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한제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는 일찍이 요령의 땅에서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던 심연에 오랜 시간 머문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그는 회오리의 흡입력이 온몸을 뒤덮은 순간 체내의 원력을 가동하더니 발을 세게 굴렀다.
순간 대량의 불바다가 두 발에서부터 발산되었다. 비록 그 불바다는 나타나자마자 회오리에 흡수되어 버렸지만 그 틈에 한제는 1백 척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배이라는 피식 웃더니 회오리의 맹렬한 흡입력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모습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아주 먼 곳에서 나타났다. 이어서 그의 오른쪽 눈이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더니 짙은 요기가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배이라는 그 상태에서 가볍게 숨결을 내뱉었다. 그러자 전방에 파문이 나타났고 배이라는 그 안으로 들어가더니 고개를 돌려 회오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여러 사람 중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한제, 이곳은 유명세를 떨쳤던 청림의 장선지다. 여기서 죽은 선인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지. 저기에 빨려 들어갈 경우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지.”
배이라의 목소리가 회오리 안에서 울려 퍼졌다.
한제는 말없이 저물대에서 열 자루가 넘는 거대한 검을 꺼냈다. 그 검들은 회오리의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여 역류(逆流)를 형성했다. 한제는 이어서 체내의 원력을 가동하여 불바다를 소환하더니 역류하는 대검의 회오리에 섞어 흡입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크아아!”
회오리 안에서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로 거센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회오리의 흡입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고함에 깃들어 있는 힘이 사람들의 심신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는 것이다.
동시에 회오리 안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양들이 허상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문양들은 붉은색이었는데 방금 막 누군가의 몸에서 뽑아낸 듯 살점들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그 문양들을 본 순간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 문양들은 선유족(仙遺族)의 미간에 있는 문양임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성난 고함과 문양에 뒤이어 회오리 깊은 곳에서는 흐릿한 인영이 하나 나타나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기(煞氣)가 훅 끼쳐왔다.
살기가 어찌나 강렬한지 능천후마저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또한 그는 그 흐릿한 인영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는 심지어 천운자나 허공자에게서도 이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이는 수준과는 무관한, 영혼에서 기인하는 떨림으로 천적을 맞닥뜨린 듯한 느낌이었다.
인영은 흐릿하여 알아볼 수 없었으나, 여인임은 분명했다. 그녀가 가까워지면서 얼굴이 드러났는데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빈 채 피로 얼룩져 있었다. 두 줄기의 검은 피가 그 텅 빈 눈자위에서 흘러내렸다. 누군가가 두 눈을 뽑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천운자는 성난 고함에 이어 흐릿한 인영이 나타난 순간 흠칫 놀랐다.
‘설마⋯⋯ 설마 그녀인가!’
허공자 역시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채 회오리 끄트머리에서 나온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곧장 체내의 모든 힘을 가동해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그녀의 제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분홍색 옷차림의 여인을 데리고 위로 솟아올랐다.
‘그녀다! 선제 청림에 의해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구나! 젠장,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일찍이 혼과 넋이 흩어져 사라졌다고 했는데 선제 청림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구나!’
허공자의 얼굴에서 여유로움은 씻은 듯 사라진 상태였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그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시 선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수련자 연맹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연맹 장로단의 구성원이었던 허공자는 다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들까지 꿰고 있었다.
한편, 손선은 흡입력에 저항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다가 흐릿한 인영이 나타난 순간 훅 끼쳐온 살기에 몸을 떨었다. 체내의 원력이 우뚝 멈추었고 몸 역시 회오리의 흡입력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가 두려움에 물든 눈으로 회오리 안쪽을 바라보던 그때, 옷깃에서 고개를 쏙 내민 성흔 담비가 훌쩍 몸을 날렸다. 이 담비는 신비로운 능력으로 이 강력한 흡입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두 눈은 한제를 향해 있었다.
한편, 배이라는 그 흐릿한 인영을 바라보며 오른쪽 눈으로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옛 친구로군. 당시 실종되어 어딘가에서 폐관수련을 하며 요양 중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청림에 의해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을 줄이야⋯⋯. 청림, 정말 강하구나! 당시 선계가 붕괴하면서 그자가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나와 타지아는 어떠한 욕심도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흐릿한 인영을 바라보는 배이라의 눈에 망설이는 빛이 담겼다.
‘저 여인을 구해야 하는가⋯⋯?’
잠시 망설이던 그는 흐릿한 인영 뒤쪽을 힐긋 살피더니 눈을 홉떴다.
‘청림! 정말로 끔찍하구나! 저것으로 봉인을 만들다니… 그렇다면 나의 힘을 완전히 되찾는다 해도 절대 저 여인을 구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까지 붙잡힐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