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2
“잠깐! 이 요괴들은 쇄국용 진에 갇혀 있어야… 어서 보고해야 해요! 어서요!”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상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때, 한 줄기의 강력한 신식이 불쑥 나타나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움직이다가 한제의 몸에 내려앉았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영기가 깃든 액체를 꺼내 한 모금 마신 뒤 곧장 이모완의 손목을 잡고 토둔술을 십분 발휘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악”
이미 한참 멀리 날아갔던 화염 요괴들은 순간 하나둘 우뚝 멈춰서더니 하늘을 뒤흔들 듯 포효하며 방향을 되돌려 다시 한제를 뒤쫓았다. 하지만 양쪽의 거리는 이미 크게 벌어져 있었다.
또한 한제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염 요괴들이 뒤쫓는다고 해도 금방 따라잡히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이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 이모완은 불현듯 저 화염 요괴들의 목표가 화분맹이 아니라 눈앞의 이 청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5행의 은둔술은 매우 신통한 것으로 대량의 영력을 필요로 할뿐만 아니라 천부적인 자질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제가 수련한 토둔술은 가짜였기에 그리 뛰어난 자질이 필요치 않았고 계속해서 사용할수록 점점 숙련돼갔다.
한제는 비록 깨달음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토둔술을 계속해서 사용해왔기에 이미 상당히 숙련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모되는 영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연이어 사흘간 토둔술을 사용하면서 한제는 이모완을 데리고 화분국을 가로질렀다. 그를 뒤따르는 화염 요괴들은 이미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였기에 그들의 포효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화분국 국경에 이른 한제는 땅을 뚫고 나와 먼 곳의 수마해를 바라보았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의 움직임에 지쳐 얼굴이 창백해진 이모완에게 말했다.
“화염 요괴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천리단을 완성시킬 수 있겠어?”
그녀는 지금 한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화염 요괴의 목표가 한제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화염 요괴들이 화분맹을 놔두고 자신들을 뒤쫓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기까지 오는 내내 화염 요괴들이 보인 모습으로 미루어 이 남자에게 엄청난 원한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두려운 이유는 또 있었다. 그녀는 결단기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사흘간 연이어 이런 은둔술을 사용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상대는 매번 영력이 약해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액체를 마시곤 했는데 이모완은 두려운 와중에도 그 액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한제의 질문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총명한 그녀는 상대의 말이 품고 있는 뜻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천리단을 완성해낼 수 있다면 상대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냉정한 청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가진 천리단의 반제품만을 빼앗은 뒤 그녀를 내버릴 것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모완은 가녀린 몸을 덜덜 떨었다. 화염 요괴들에게 찢겨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봤던 그녀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도대체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모완의 추측이 완전히 정확한 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시간 내에 완성품을 만들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한제는 반제 천리단이라도 챙긴 뒤 그녀에게 목숨을 보호할 수 있는 법보를 주려고 생각했다. 어차피 화염 요괴들의 목표는 자신이니 그렇게만 하면 이모완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꽤 높았다.
이모완은 미간을 찌푸린 한제를 보고 덜덜 떨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와, 완성품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단약을 만들 수는 있어요. 낙하문의 모든 단약은 내가 만드는 거니까요. 게다가 상고시대의 단약을 만드는 방법들도 난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재료만 있으면 뭐든…”
그녀의 말에 한제는 흠칫 놀라며 이모완을 바라보았다.
그때 저 하늘 끝에 붉은 빛이 다시 나타났다. 한제는 이모완의 손목을 붙잡고 수마해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이모완은 자신의 말이 한제의 마음을 흔들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제가 보기에 이모완은 움직이는 연단방이었다. 그녀를 잘만 활용하면 수준을 대폭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제는 생각했다. 이는 손유재가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옥패를 보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수마해는 움푹 들어간 형태로 매우 넓었다. 거대한 대야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이 대야 안에는 산봉우리가 많았고 비록 나무는 없었지만 기이한 형태의 식물도 많았다. 이는 상고시대부터 존재해온 해양식물들이었다.
지금은 수마해의 안개가 가장 짙어지는 시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안개는 바닷물로 변했다가 한 달 정도에 걸쳐 다시 안개로 증발할 것이었다.
이모완은 한제의 손에 이끌려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가녀린 몸을 벌벌 떨면서 입술을 꽉 깨문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수마해잖아요!”
“맞아.”
한제가 냉랭하게 답했다.
이모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마해의 안개 속에 들어온 순간 음한기가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한제는 흠칫 놀랐다. 이런 곳에 음한기가 존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그는 뜻밖의 수확에 기뻤다. 수마해는 얼음 같은 상태로 화분국의 뜨거움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다.
이모완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은 수마해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라 점점 불안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전보다 조금 더 창백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수마해의 안개 속에 멈춰 섰다. 이곳의 안개는 지나치게 짙지는 않았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화분국의 경계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빽빽하게 들어찬 붉은 구름은 화염 요괴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들은 수마해의 경계에서 멈춰 서서 끊임없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기만 할 뿐, 앞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수마해의 경계에 이른 화염 요괴의 수는 점점 많아졌지만 단 한 녀석도 들어서지는 않았다. 마치 수마해와 자신들 사이에 무형의 저지막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뒤, 마침내 한 마리의 화염 요괴가 앞으로 나섰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안개에 닿자마자 녀석은 비명을 내질렀고 이내 빠르게 줄어들면서 짙은 하얀색 연기를 피워 올렸다. 피부색 또한 옅은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막 화로에서 꺼낸 숯을 얼음물에 던져 넣은 것과 같은 변화였다.
한제는 그 광경을 본 후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는 화염 요괴들을 이쪽으로 유인해 수마해의 생물들이나 수련자들과 싸우게 만들 생각이었다. 게다가 옥패의 지도상으로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설명을 보면 수마해는 화분국의 1천 배에 달할 정도로 넓었다.
이렇게 넓은 수마해 안에서 도망친다면 제아무리 화염 요괴라 해도 자신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개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한제는 이모완이라는 움직이는 연단방을 이끌고 안개 속을 가르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신식을 펼쳐 사방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어서 동굴을 하나 만들어냈다. 최대한 빨리 결단기에 이르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다. 결단기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면 원영기 이하의 수련자는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래야 이 수마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수마해의 물안개는 짙고 빽빽했으며, 심지어 음한기까지 서려 있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옷이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이 무렵 모완은 창백했던 얼굴이 붉어졌고 심지어 윤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옷이 흠뻑 젖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어지간한 남자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허나 한제에게 그녀는 그저 움직이는 연단방에 지나지 않았다. 한제는 모완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녀가 단약에 일가견이 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수마해는 거대한 분지였다. 한참이나 아래로 내려갔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확실히 음한기가 더욱 짙어졌다.
안개 속에서는 이따금씩 기이한 생물들이 나타났다. 그중에는 영력 파동을 발산하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조심스레 행동한 덕에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모완은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는 수마해에 대해 많은 소문을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법도 통하지 않고 실력만이 유일한 무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게다가 수마해에는 여자가 많지 않아 여자 수련자가 잘못 들어갔다가는 끔찍한 최후를 맞기 십상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화분국에 변고가 생기기 전에는 수마해와의 경계에 항상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가 다수 주둔해 있었다. 수마해에서 튀어나와 약탈을 일삼는 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수마해의 진정한 강자들은 중심부에 있어 변두리에 있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약했기에 잘만 방비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얼마나 수마해 안으로 날아 들어왔을까. 한제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모완은 미처 멈추지 못하고 그의 등에 부딪히고 말았다. 허나 한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안개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꺼져.”
곧 안개 속에서 마르고 키가 큰 검은 인영 세 개가 나타났다. 안개 때문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셋 모두 남자 수련자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고 축기 중기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자하구나! 이곳은 우리 투사파(鬪邪派) 구역이다. 네 뒤에 있는 그 여자 수련자를 넘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제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말이 많군.”
수마해에서는 힘이 곧 법이요, 강자만이 존중받았다. 한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곧장 오른손을 흔들어 극의 신식을 펼쳤다.
번쩍.
순간 붉은 번개가 쳤고 이에 따라 세 사람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그들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신식까지 파멸되자 그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한제는 그들의 저물대를 챙긴 뒤 시체를 짙은 안개 속으로 차 버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던 길을 재촉했다. 허나 그와 달리 모완은 자신이 본 광경에 매우 놀랐다.
모완은 한제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한제는 자신과 같은 축기 중기 수준의 세 사람을 반항할 틈도 없이, 그것도 기이한 수법으로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투사파(鬪邪派)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모완은 문득 오라버니 이기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선무국 국경에서 있었던 전쟁에서 축기 수준의 수련자들이 교전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뒤, 공중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는 기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기경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대략 2백여 명의 수련자가 이렇게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모완은 당시에 그 이야기가 그저 뜬소문일 것이라 여겼지만 방금 한제의 행동을 보니 자연스레 그때 들었던 소문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제의 뒤에 따라붙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사형은 화분맹에서 어느 부대 소속이었어?”
한제는 여전히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
“제10대대.”
순간 모완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소문의 그 사건이 바로 제10대대의 담당 구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이 냉혹한 청년이 선무국의 축기 수련자를 대량 학살한 주인공임을 거의 확신하게 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완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저항심마저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도망치려는 생각도 흩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방금 사용한 거, 사주술(死?術)이야?”
한제는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단지 걸음을 멈추고 반문했다.
“사주술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그 반응에 모완은 방금 한제가 사용한 술법이 어렵기로 소문난 사주술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주술은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신통한 법술이었다. 이 법술은 익히기가 정말 어렵지만 수련에 성공하기만 하면 한 마디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 있다고 했다.
상고시대 마도의 가장 악랄한 법술이라 불린 이 법술을 수련하려면 세 개의 기를 하나로 모아야 했다. 첫 번째 기는 음기(陰氣)로 여성의 기를 뜻하며 채음술(采陰術)을 사용해 모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인 사기(死氣)는 시체의 기를 흡수해야 만들어졌다. 이 역시 음(陰)에 치우쳐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세 번째는 살기(殺氣)로 일정 수준까지 살육을 하다 보면 생겨나는 의기를 수련을 통해 살기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세 개의 기(氣)를 하나로 합친 뒤 다른 사람들과 목숨 건 경쟁을 통해 살아남으면 기초적인 사주술을 장악할 수 있었다.
허나 사주술을 수련하면 매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참아야 하고 3년에 한 번씩 구사일생의 도태(淘汰)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런 작업을 반복해봐야 사주술의 효과가 눈에 띄게 커지지도 않고 계속 수련하다가는 스스로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주술이 큰 효과를 낼 때까지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즉, 분명 위력은 대단하나 너무도 잔혹했기 때문에 마도 수련자 중에도 이 법술을 다루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완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따라서 한동안 둘은 대화 없이 이동했고 마침내 바다의 바닥에 이르렀다. 그곳은 안개가 더욱 짙었고 음한기 역시 매우 강력했다.
역시나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훌쩍 뛰어올랐다. 곧 그는 높이 솟은 해저 산봉우리의 산허리에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섰고 저물대를 두드려 비검 한 자루를 꺼낸 뒤 오른손으로 산을 가리켰다. 비검은 곧장 한제가 가리킨 산으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