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21
콰르릉!
불기둥은 구름층과 수련성 가장 바깥쪽의 강풍을 뚫고 나가 화염으로 타오르는성역에 나타났다.
이어서 나머지 여덟 개의 수련성에서도 각각 불기둥이 나타나더니 모든 불기둥은 아홉 개의 주작상 중앙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아홉 개의 불기둥이 모여든 순간, 온 우주를 찢어발길 듯 강력한 주작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캬오오오!”
이어서 수련성보다도 거대한 주작이 나타났다.
이성역의 모든 화염이 용솟음쳐 주작에게로 몰려들었다.
“캬아아아!”
주작은 다시 한 번 포효했고 그 진동으로 타오르는성역 전체가 뒤흔들렸다.
이것이 바로 주작의 변화였다. 주작성종(朱雀聖宗)이 수련자 연맹에 패배한 뒤 처음으로 맞는 변화이기도 했다.
주작성종에게 있어 주작의 변화가 갖는 의미는 굉장히 컸다. 이는 주작성황(聖皇)이 될 자격을 갖춘 자가 주작을 깨웠다는 의미였다.
아홉 개의 주작성성에서 나타난 아홉 개의 자홍색 인영은 모두 쇄열기 수준이었는데 그들이 나타난 것 또한 주작의 변화 때문이다.
이들이 수련성보다도 거대한 주작의 진령(眞靈)에게 접근한 순간, 주작의 진령은 다시 한 번 포효했다. 그리고 그 포효는 셀 수 없이 많은 파문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타오르는성역의 화염을 더욱 확산시켰다.
정신술(定身術)
이어서 주작의 진령은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화염 공을 이루었다.
불바다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동안 주작의 진령이 형성한 화염 공 안에는 한 차례 왜곡이 일었고 그 왜곡된 부분에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긴 머리를 휘날리는 사내는 짙은 화염을 발산했고 상반신에는 주작의 문양이 있어 마치 한 마리 주작 같아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한제였다.
허공의 장면 속에는 한제뿐만 아니라 슬픈 표정으로 텅 빈 두 눈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문양 부족의 성조(聖祖)도 나타났다. 그 여인의 앞에는 반짝이는 빛으로 이루어진 청림의 분신이 서 있었다.
그때, 여인이 화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고 텅 빈 눈자위에 아홉 명의 자홍색 인영은 순간 심신이 진동했다.
“저 여인은⋯⋯?”
“문양 부족의 성조 추요영!”
“그 앞에 있는 자는 설마… 선제 청림인가!”
화면 속에서는 허공자와 천운자 등의 사람들도 보였다.
“허공자… 게다가 천운자까지!”
“주작의 각성자가 저런 위험한 곳에 있다니. 수련자 연맹의 중요 인물인 허공자가 주작성종의 각성자를 그냥 둘 리 없어!”
“한데… 저 각성자는 생소한 자로군. 어떻게 주작의 서열에 든 거지?”
아홉 명의 인영이 그 장면을 들여다보던 그때, 흘러넘칠 듯 강력한 신념 한 줄기가 이성역 깊은 곳에서 휙 날아들었다. 너무나 강한 기운에 이성역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도 움찔 멈출 정도였다.
“저자의 정체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 저 주작의 표식은 나의 분신이 부여한 것이니. 너희들은 진령을 안내자로 삼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자를 안전하게 데려오도록 해라!”
강력한 신념이 실어온 목소리가 끝나자 아홉 명의 수련자는 깊은 충성과 존경이 담긴 표정으로 부복했다.
“성황의 명을 받듭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당시에 입은 상처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이제 저자가 우리 주작성종의 희망이다!”
한편, 선제의 동굴에서 반짝이는 빛의 결정으로 청림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는 자신의 주작 문양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그 문양을 살피기도 전에 몇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그중 허공자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주작성종에서 저자의 각성을 알아차렸군!’
문양 부족의 성조(聖祖) 추요영 역시 한제의 몸에 떠오른 주작 문양이 미약한 변화를 일으킨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청림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존재만은 또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수만 년 동안 이곳에 갇혀 있던 그녀가 상대의 분신이 이곳을 봉인한 금제에 스며들어 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을 이곳에 영원히 가둬놓기 위한 처사라는 것 역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청림의 분신이 나타나자 그녀의 원한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청림의 분신이 있는 곳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올랐다.
“청림!”
추요영은 이를 악문 채 외쳤다. 그녀의 미간에서 검은 빛이 한 번 번득이고 복잡한 문양이 나타나 빛을 발하더니 붉은색의 흉측한 마수의 뼈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기(煞氣)가 사방을 뒤덮으면서 주변은 순식간에 한겨울처럼 서늘해졌다. 심지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거대한 얼음층이 나타났다.
체내의 원력을 빠르게 가동해 주작의 성화(聖火)를 온몸에 흐르게 한 한제는 붉은 마수의 뼈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자모도고(子母道枯)?’
한제는 자신의 오른손 손등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흉측한 자모도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색상은 다를지언정 저 문양 부족의 성조가 발휘한 신통력은 자모도고와 같았다!’
한편, 청림의 분신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추요영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청림의 분신으로부터 밝은 빛이 점점이 솟아올랐다. 그의 체내에서 솟아오른 이 빛들은 일제히 청림의 오른손 검지에 응집되더니 곧장 튀어 나가 자신에게 달려들던 붉은 마수의 뼈 주위에서 강줄기처럼 맴돌았다. 그러더니 순간 맹렬히 달려들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곧장 마수의 뼈를 관통하여 그 안에 녹아들었다.
반짝이는 빛은 마수의 뼈 안쪽에서 응집되었고 마수의 뼈는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심지어 안으로 달려든 빛의 힘에 뽑혀 나온 듯 마수의 뼈에서는 붉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반짝이는 빛은 그 기운과 한데 섞이며 붉은 기운을 따라 끊임없이 흘렀다.
마수의 뼈는 순식간에 영혼을 잃은 듯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그 안쪽에서는 순식간에 주먹만 한 반짝이는 빛의 결정이 생겨났다. 그 결정은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빛을 발산하며 예리한 검처럼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분분히 찬 숨을 들이마셨다.
‘잔혹한 봉인이구나! 분신의 힘을 조금도 소모하지 않고 상대의 신통력에서 규칙을 뽑아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아버리는 술법이라니… 저런 신통력은 사형이라 해도 결코 쉽게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허공자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가 금방 탐욕으로 물들었다.
‘청림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그간의 조사에 따르면 저자는 임종을 눈앞에 뒀을 가능성이 9할 이상이야! 그러니 저 허상을 붙잡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우리 수련자 연맹에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을 터!’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순간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마수의 뼈가 강력한 빛에 폭파되더니 무너져 내리면서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빛줄기들이 쏘아져 나가자 주위에 모인 자들은 강력한 수련자임에도 눈이 부심을 느꼈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야 했다.
청림은 냉랭한 눈으로 추요영을 바라보다가 다시 오른손을 들어 기이한 결인을 그려냈다. 이 결인은 순식간에 푸른 빛을 발산하는 문양이 되어 추요영 위로 떠올랐다.
그 첫 번째 결인의 문양이 나타난 순간, 장선지(葬仙池)의 회오리들이 포효하는 듯하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혼백이 쉭 하고 튀어나왔다.
거대한 회오리는 여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 기세에 하늘과 땅이 갈라지려 했다.
회오리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혼백이 있었다. 그들의 거칠고 흉측한 모습과 포효에 나찰지옥의 문이 열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한제는 이 모습을 힐긋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저릿해졌다. 저 혼백 중에는 선인도 있었고 문양 부족 사람들도 있었으며 상고 시대의 연기사(煉氣士)들도 있었다. 심지어 한제가 여태 보지 못한 각종 마수들도 있었다. 그 정체가 무엇이건 그 혼백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위압감을 발했다. 혼백인데도 저 정도 위압감이라면 생전에 막강한 존재들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선제 청림이 직접 장선지에 투입한 혼백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수많은 혼백이 울부짖는 와중에 장선지의 회오리는 마치 성난 파도처럼 추요영의 아래쪽에서 빠르게 회전하면서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한데 놀랍게도 그 흡입력은 추요영에게만 영향력을 미쳤을 뿐, 한제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않았다.
청림은 다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또 하나의 문양을 그려내 추요영의 왼쪽에 떠올렸다. 그 순간, 회오리는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마치 여인을 통째로 삼키려 드는 거대한 심연의 입 같았다.
추요영의 두 눈에서는 더욱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왜… 왜 나를 속였느냐! 왜 그랬어, 왜!”
짙은 한이 어린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그녀의 근처에 떠 있던 두 개의 문양이 곧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게다가 그녀의 입을 타고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주위의 허공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일련의 음폭(音爆)을 이루더니 거대한 폭풍이 되어 청림에게 달려들었다.
한제의 두 귀에서는 피가 흘렀다. 고신의 육신을 가진 그가 영력(靈力)까지 가동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왜⋯⋯ 왜!”
그 순간,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틀었다. 오직 천운자와 허공자 그리고 흑의의 사내만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으나 그 표정은 어두웠다.
허나 청림은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 가벼운 손짓에 달려들던 음파는 순간 우뚝 멈추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하늘의 규칙이 강림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강림시킨 이가 원하는 대로 그 규칙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움직일 권리를 빼앗고 형태 없는 규칙의 힘이 되어 모든 것을 옭아맸다.
‘정신술(定身術)!’
한제의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 안에는 흥분의 빛도 어려 있었다.
정신술은 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신통술이었다. 벌써 여러 차례 정신술을 통해 위험을 벗어난 바 있다. 정신술은 이제 그에게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법술이었다.
허나 그의 정신술은 선제 청림이 남겨둔 옥패를 통해 배운 것으로 그는 자신 외에 다른 자가 이 술법을 사용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 술법을 더욱 정진시키려고 하거나 그 본원을 연구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처음으로 다른 자가 발휘하는 정신술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정신술의 창조자인 청림 본인이 발휘하는 것을 말이다.
이는 청림으로부터 직접 정신술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 말하자면 한제는 청림의 제자라 할 수 있었다.
이는 한제가 꿈꿔온 기회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것을 상세히 연구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었다. 이 기억을 마음 깊이 새겨두었다가 나중에 여유가 생길 때 폐관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음파의 폭풍을 정지시킨 후로도 청림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빠르게 결인을 그려 일곱 개의 문양을 소환하더니 순식간에 추요영 주위로 퍼뜨렸다. 이에 이전에 소환한 두 개까지, 총 아홉 개의 문양으로 이루어진 진이 형성됐다.
이 진은 순식간에 추요영을 포위한 채 기이한 빛을 발했고 그 순간 여인의 발아래에서 회오리가 돌연 폭발했다.
회오리는 급격하게 회전하면서 끊임없이 부풀어 올랐고 그 안의 혼백들은 포효를 내지르며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추요영을 둘러싼 수많은 혼백은 서로 응집해 검은 사슬이 되어 그녀를 옭아맨 뒤 아래로 매섭게 잡아당겼다.
장선지의 회오리는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흡입력을 발산했고 이에 추요영은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청림! 절대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그녀의 미간에서 쉴 새 없이 문양이 번득였다. 그때마다 그녀의 몸을 옭아맨 사슬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무너져 내린 사슬들은 혼백으로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장선지(葬仙池)의 회오리로 다시 흡수되었다. 허나 회오리에서는 곧장 다른 혼백들이 튀어나와 다시 응집되면서 새로운 사슬이 되어 그녀를 옭아맸다.
여인은 비참하게 웃었다. 이곳에 아주 오랫동안 갇혀 있는 동안 본래의 수준을 잃지 않았다면 만약 이 자리에 청림의 분신이 없었다면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조금의 가능성도 없었다.
비참한 웃음과 함께 여인의 텅 빈 눈자위에 약간의 빛이 드러났다. 눈은 없었지만 이 순간 한 덩어리의 푸른 기운이 눈자위 위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