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29
그때, 한제의 시야에 세상의 모든 것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제 눈앞의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선제의 동굴 역시 한제의 왼쪽 눈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과 오른쪽 눈에서 타오르는 전광을 저지하지는 못했고 깊은 구덩이는 반투명한 상태로 변하다가 결국 사라져 버렸다.
한제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서로 얽히며 세상을 뒤덮은 칠흑처럼 검은 선들이었다.
이 깊은 구덩이는 그 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광경에 한제는 넋을 놓고 말았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이동함에 따라 깊은 구덩이의 벽면은 사라지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서로 교차된 선들로 변했다.
이 난잡한 선들을 바라보던 한제는 불쑥 어떤 충동을 느끼고는 손을 뻗어 그 선을 한 가닥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선에서 강력한 힘이 발산되면서 한제의 힘을 흩어버렸고 심지어 그의 손을 튕겨내 버렸다.
한제는 몇 걸음 밀려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실망이나 당황한 기색이 아닌 깨달음의 빛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깊은 구덩이 밖으로 튀어나가 사방을 훑어보았다. 선제의 동굴 속 건물들 역시 지금의 한제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건물들도 꽃밭도 한제의 시선이 닿은 순간 와해되면서 서로 다른 색의 선들이 가닥가닥 교차되며 이루어진 존재로 변해갔다.
“배이라 등이 병중계(甁中界)의 99개 계를 관통할 수 있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군. 사도환도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야. 부풍자도 하나를 관통했으니까. 만약 지금 다시 병중계로 돌아간다면 나도 그중 몇 개의 계 정도는 충분히 뚫고 나올 수 있겠지.”
한제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방금 선을 잡아채려 했을 때 엄청난 반동이 가해져 온 건 내 수준이 아직 정열기에 이르지 못해 규칙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한제는 점점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이제 보이지 않는 금제들까지도 한제는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금제들을 보고 있던 한제가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그의 심신에서 천역주(天逆珠)가 가동되면서 그의 미간에서 주먹만 한 회오리가 나타났다.
천역주는 그 회오리 안에서 흘러나와 한제의 앞에 떠올랐고 그 주위에서는 왜곡된 파문들이 나타났다. 천역주는 마치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부된 존재인 것 같았다.
그 순간, 한제는 자신의 심신이 그 천역주와 하나로 합쳐지면서 귓가에서 우렁찬 천둥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이지러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힘이 그의 심신을 파괴하고 모든 장애물을 관통한 뒤 하늘을 향해 곧장 튀어 오르려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요령의 땅 정중앙에서 긴 무지개 한 줄기가 지면 아래에서 나타나 하늘을 꿰뚫을 듯 솟구쳐 올랐다.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이 곧 셀 수 없이 많은 푸른 선들로 변해 교차된 채 흘렀다.
뒤이어 그는 하얀 구름과 대지, 지면의 식물과 수많은 요령의 땅 주민들, 흐르는 강과 개울을 바라보았다.
천역주 안의 기이한 힘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한제의 심신은 끝도 없이 확산되었고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규칙을 목격했다.
그의 눈에 닿는 것 모든 것이 규칙을 의미하는 색색의 선으로 보였다.
그 모든 것을 살피던 한제는 마치 자신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요령의 땅을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내 그는 천역주에서 확산된 기이한 힘에 휩싸인 채 하늘로 곧장 날아올랐다.
그때, 마음속에서 다시 한 번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천역주의 힘에 뒤덮인 그는 천운자 등도 힘으로는 열지 못했던 요령의 땅을 뚫고 들어갔다. 천역주의 힘과 함께라면 세상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았다.
한제의 시야에는 이제 새카만 우주가 들어왔다.
수없이 많은 먼지들과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로 뒤덮여 있는 우주였다.
한제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 침잠된 채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규칙들이 느껴졌다.
멀리서 반짝이는 하나하나의 별들과 부유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운석들, 크기가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먼지들이 시야에 담겼다.
‘규칙⋯⋯.’
세상 모든 것은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에 녹아든 한제는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었고 그의 심신은 그 깨달음 속에서 증폭되었다. 그리고 증폭된 심신은 외부로 확산되었는데 그 속도는 신식의 확산 속도보다 훨씬 빨랐고 그 범위 또한 훨씬 넓었다.
천역주의 대문 앞에 처음 섰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한제는 그 안으로 반 발짝 정도 들어서자 기이한 세계에서 마치 허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한제는 현실의 우주 속에서 그때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다만 현재는 규칙을 찾는 중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류미
심신은 끊임없이 확산되어 눈 깜짝할 사이 하나하나의 별들을 훑었다.
하나의 수련성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일반인이고 수련자고 심지어는 초목이나 짐승 할 것 없이 모든 생명들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수련성에 존재하는 수련자들 중 한제의 심신이 그 수련성들을 훑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규열기 수련자도 정열기 수련자도⋯⋯. 천역주의 힘 덕분에 쇄열기 수준 수련자라 해도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존재를 감출 수 있었다.
한제의 심신은 요령의 땅을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끝없이 퍼져 나갔고 얼마 뒤에는 이 연맹성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을 뒤덮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와중에 천역주의 힘을 빌려 다시 한 번 심신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러는 동안 한제는 수많은 수련자들을 목격했다. 여태 그가 보지 못했던 마수와 싸우는 수련자도 있었고 알고 지내던 수련자들도 있었다.
한제는 이 기이한 상태에 침잠된 채 끊임없이 이 세상의 규칙을 깨달아 가고 있었고 심신이 확산됨에 따라 그의 수준은 절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규열기 후기 절정은 이르기 어려운 고지였다. 수많은 규칙을 충분히 목격하여 일정한 정도에 이르러야만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매우 긴 과정이 필요했고 많은 것을 겪고 많은 규칙을 봐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허나 한제는 천역주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연맹성역 전역에 존재하는 규칙을 봤고 수많은 규칙들의 변화까지 살필 수 있었다.
한제의 심신이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던 이때, 그는 우주 어느 공간에서 불바다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불바다의 선두에는 거대한 주작이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주작이 지나온 허공에는 균열이 일어나 있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심지어 주작이 이끄는 불바다에 접촉했던 곳은 운석들까지 그대로 녹아 재가 되었다. 만약 그 불바다를 이끄는 주작이 수련성들을 피해 움직이지 않았다면 연맹성역 내의 수많은 수련성이 붕괴해 버렸을 터였다.
주작이 이끄는 불바다에서는 화염이 마치 무지개처럼 줄기줄기 따라붙었고 그 무지개 안에는 화염처럼 붉은 옷을 입은 남녀 수련자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는 여섯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주작의 뒤에 따라붙은 수련자는 적어도 1천은 족히 될 것 같았고 그들 또한 수준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데 거대한 주작을 본 순간, 한제는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심신이 닿은 순간, 주작은 몸을 우뚝 멈추더니 높고 우렁찬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한제의 심신이 스쳐간 뒤 주작의 눈빛은 다소 멍하게 바뀌었다.
주작만이 아니라 뒤따르던 수련자들, 특히 여섯 노인들 또한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주작 진령(眞靈)이 왜 갑자기 포효했는지 알지 못했다.
한편, 한제의 심신은 연맹성역 정중앙의 어두운 보라색 운석으로 뒤덮인 구역의 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원형 건물이었다. 그 건물 사방에는 수백 개가 넘는 작은 건물들이 서 있었고 검은 번개가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흘렀다. 멀리서 보아도 기이한 위압감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수련자 연맹의 입구로 오직 이곳을 통해야만 연맹 본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제의 심신은 입구를 통해 수련자 연맹의 본부로 진입했다.
수련자 연맹의 본부는 개별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그 옛날 우(雨)의 선계였다가 수련자 연맹에 점거된 곳이었다.
173개의 거대한 수련성이 수련자 연맹 본부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그중 172개가 하나의 고리 모양으로 배치된 채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은하수의 중앙에는 보라색 회오리가 있었는데 어찌나 거대한지 주위의 모든 수련성들보다도 압도적으로 컸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다.
그 회오리 위에는 수련자 연맹을 이루고 있는 173개의 수련성 중 마지막 수련성이 있었다. 그 수련성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회오리 위에 뜬 채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보라색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회오리 위의 수련성 안 어느 밀실에서는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용모가 무척 준수한 그에게서는 선인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이 밀실에는 천장 정중앙의 주먹만 한 구리 방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제의 심신이 그 밀실 안을 훑은 순간에도 사내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지만 그 순간 그 구리 방울이 청아하게 울렸다.
남자는 날카로운 두 눈을 번쩍 떴으나, 그때 이미 한제의 심신은 그곳을 떠난 후였다.
이어서 한제의 심신은 연맹성역의 북부, 큰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지났다.
수만에 달하는 나천성역 수련자들과 연맹성역 수련자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염뇌자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맹성역 쪽에도 수준 높은 수련자가 다수 섞여 있었고 양측의 교전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도 엄청난 사상자가 생긴 상태였다.
한제의 심신은 이곳을 지나면서 그 모든 것을 목격했으나,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갔다.
한제는 여전히 깨달음 속에 침잠되어 있었고 그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면서 규열기 후기 절정에 이르렀다. 보통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단숨에 해치운 것이다.
심신은 계속해서 퍼져나가 연맹성역의 어느 비밀스러운 곳까지 이르렀다. 이곳에는 황토색 수련성이 하나 있었는데 그 수련성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어떤 생명의 기운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기(靈氣)도 희박했다.
한데 마치 무슨 금지 구역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 수련성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만 리 안에는 수련자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계속해서 확산되던 한제의 심신은 이곳에서 뭔가에 방해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제의 심신은 그 황토색 수련성 내부로 진입했다.
그 안에는 뭔가 다른 존재가 있었다. 또한 이 수련성에는 굉장히 큰 전송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전송진을 이용하면 연맹성역 안의 유일한 9성 수련국, 곤허경(昆虛境)에 이를 수 있었다.
곤허경은 단순히 하나의 수련성이 아니라 자체적인 세상을 이룬 거대한 대륙이었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또한 수련자 연맹의 구성원 대부분이 성지(聖地)로 여기는 곳이기도 했다.
한제의 심신이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곤허경에 이른 순간, 맑은 호수 옆에서 가부좌를 튼 채 좌선을 하고 있던 노인이 두 눈을 뜨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곤허경에 온 도우는 대체 누구인가? 모습을 드러내시게!”
노인은 끝없이 확산되던 한제의 심신을 처음으로 알아챈 사람이었다. 그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칙의 힘이, 존재하는 모든 규칙들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도 기이한 상태에 침잠되어 있는 한제를 깨우지는 못했다.
한데 천역주의 힘에 둘러싸인 채 이 곤허경을 휩쓸던 순간, 한제의 심신은 돌연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노인 때문이 아니라 심신을 통해 본 두 여인 때문이었다.
그중 한 명은 어느 산봉우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절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그녀는 푸른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탈속적인 느낌이었다. 다만 그녀는 기억을 더듬는 듯 씁쓸한 눈빛으로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온몸이 새카맣고 매우 사나워 보이는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엎드려 있었다. 그 호랑이는 수시로 고개를 들어 여인을 살피다가 그 시선을 따라 전방을 바라보곤 했다.
“난 언제쯤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곁에 있는 호랑이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높은 수준에 이르면 떠나게 해주마.”
냉랭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여인은 다급히 일어났다. 그녀의 옆에 엎드려 있던 호랑이도 몸을 바르르 떨었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 역시 여인이었다.
우아하게 쪽빛 치마를 입은 그녀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온 우주의 별도 그녀 앞에서는 빛을 잃을 것만 같았고 그야말로 영혼을 뒤흔들 정도였다. 아무리 수준 높은 수련자라 해도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떨리는 마음을 걷잡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를 연맹성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한다 해도 반박할 사람은 없을 듯했다.
허나 그 아름다운 얼굴은 누구도 쉽게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냉랭했다. 마치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같았으며, 세상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그 냉랭함을 녹이지 못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