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3
챙챙!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이 산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한 듯, 비검이 내리친 곳도 멀쩡했다.
한제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30개 이상의 비검들이 단번에 튀어나왔다.
극의 신식으로 고정되어 있던 비검들은 한제의 지시에 따라 일순간 산을 폭격했다. 머지않아 산허리 부근에는 네 칸의 석실이 딸린 커다란 동굴이 하나 만들어졌다.
모완은 30자루 정도의 비검을 한 번에 다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내내 본 한제의 능력이라면 그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영석들을 꺼내 사방에 진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완은 잠시 놀란 기색이었으나, 몇 개의 진을 천천히 살피더니 오히려 경시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순식간에 스쳐지나갔으나, 한제는 이를 눈치 챘다.
그래서 한제는 영석을 잘 놓아둔 뒤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 동굴에서 한동안 머물 것이다. 허나 누군가 진을 부수고 난입하면 그대로 떠나버릴 생각이다. 네 생사는 스스로 책임져라.”
그 말에 모완은 이를 악물더니 저물대에서 검은색의 작은 깃발을 꺼내 사방에 펼쳐놓았다. 이어서 여러 개의 진을 만들었고 마지막으로는 한제가 만들어둔 진들과 연결하기까지 했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다가 저물대에서 파란 빛깔의 짐승 뼈를 꺼내 몇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녀는 신중한 표정으로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한곳에 그 뼛조각 중 하나를 놓았다.
이후 그녀는 골똘히 생각한 뒤 짐승의 뼛조각을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18개의 뼛조각을 모두 배치했을 때는 이미 세 시진이 지나 있었다. 모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사형이 배치한 진까지 총 214개의 진이 있지만 대부분은 초급 진에 불과해 축기 수준 이하의 수련자만 막을 수 있었지. 방금 내가 수정 괴물의 뼈로 설치한 진은 구리시골진(九離尸骨陣)이야.
영수의 뼈가 충분하지 않아서 3층의 위력밖에는 발휘하지 못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가 오면 최소 한 시진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옥패 하나를 한제에게 내던졌다. 옥패에는 구리시골진(九離尸骨陣)에 진입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자세히 살핀 한제는 옥패를 부숴버린 뒤 모완을 바라보며 진을 가리켰다.
모완은 천천히 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제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녀의 몸에 신식을 남긴 뒤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안전하게 진을 뚫고 들어가 동굴에 진입한 뒤 모완은 저물대에서 또 하나의 작은 깃발을 꺼내 살짝 흔들었다. 순간 동굴 밖의 진이 회전하더니 이내 진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밖에서는 이 동굴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동굴에서 한제를 마주하게 된 모완은 창백한 얼굴로 몇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사형, 지금 천리단(天離丹)을 만들까?”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에는 불신이 깃들어 있었다.
이에 모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한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사형은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야. 어떻게 해야 날 믿겠어?”
그녀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허나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
“난 네게 힘든 일을 강요할 생각도 과분한 요구를 할 생각도 없어. 그러니 천리단을 내놓으라고도 할 수 없지. 넌 그저 내가 결단기에 이를 수 있도록 단약을 만들어주고 수마해를 떠나면 돼.
다만 그때까지는 단약에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네 영혼의 정혈을 내게 맡겼으면 좋겠군.”
모완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오른손을 미간에 대 한 방울의 피를 냈다. 그리곤 그 안에 영혼을 넣어 한제에게 건넸다.
영혼의 정혈을 받은 한제는 몇 개의 저물대를 모완에게 넘겼다.
“모든 재료는 이 안에 들어 있어. 무슨 단약을 만들지는 네게 맡기지.”
신식으로 저물대들을 살핀 모완은 깜짝 놀랐다.
“이건 황목(荒木) 뿌리네. 단황초(丹黃草)도 있고 여기에는 분금 뿌리랑 천영초(天靈草)까지.”
저물대를 살필수록 놀라웠다. 그 재료의 반 이상이 결단급 약초였고 심지어 이미 화분국에서 소멸돼 역외 전장에서 돌아온 제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약초들도 있었다.
모르는 이름들이 나오자 한제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십여 개의 저물대를 건넸다. 모두 그가 최근에 손에 넣은 것들로 안에 들어 있던 법보와 영석 등은 모두 따로 챙긴 뒤 잘 알지 못하는 재료들만 남긴 상태였다.
모든 저물대를 살핀 모완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울적한 기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잔뜩 흥분한 채 저물대들을 챙기며 물었다.
“사형, 정말 이것들 다 내 마음대로 써도 돼?”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두 네게 맡길 테니 단약만 만들어줘.”
모완은 한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웃음이었다.
“이 정도면 수준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황영단(黃玲丹) 300개, 피독단(避毒丹) 50개, 그리고 크고 작은 효과를 가진 다른 단약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다 만들고 나면 하나하나 설명해줄게. 이 재료들 중 가장 중요하고 진귀한 재료는 바로 이 마혈(魔血) 덩굴이야.”
모완은 저물대에서 볼품없는 붉은 덩굴을 꺼냈다.
“이 마혈 덩굴은 천리단의 가장 중요한 재료야. 책으로만 봤지 직접 본 건 나도 처음이야. 그런데 다른 재료들은 대체품을 써야 하니까 효과는 좀 떨어질 수도 있어.”
한제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단약 만드는 일에는 참견하지 않을게.”
말을 마친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잠시 외출을 좀 할 생각이야. 빠르면 사흘, 늦어도 보름 안에는 돌아오도록 하지.”
말을 마치고 막 나가려던 한제에게 모완이 말했다.
“사형, 갔다 오는 길에 연단로(煉丹爐) 좀 구해다 줄 수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일반 단로(丹爐)에서 만들면 다른 단약은 몰라도 천리단은 성공률이 절반 정도로 떨어질 거야.
실제로 여태까지 천리단을 완성품으로 만들 때는 문파 내에 있는 천지용로(天地熔爐)로 만들었거든.”
한제는 한동안 말없이 모완을 바라보다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가버렸다.
동굴 밖으로 나온 한제는 조나라가 있는 방향을 한기가 깃든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등화원, 기다려라. 내가 원영기에 이르는 그날, 조나라로 돌아가 등가성을 피로 씻어주겠다.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라.”
말을 마친 한제는 발을 가볍게 굴러 토둔술을 펼쳤다.
★ ★ ★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은 영수의 뼈를 찾기 위해서였다. 모완의 말대로라면 더 많은 영수의 뼈가 있으면 더욱 큰 위력의 구리시골진(九離尸骨陣)을 펼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위험한 수마해에서 한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수련을 하려면 반드시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또한 한제가 배운 전신전의 연기술에서도 반응로(反應爐)를 만들려면 영수의 두개골이 필요했다. 그러니 영수의 뼈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
옥패의 지도에 나와 있는 설명대로라면 수마해의 이 짙은 안개 속에는 적지 않은 마수가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미 죽은 마수의 뼈들이 바다 바닥에 가득 깔려 있을 것이었다.
허나 마수의 뼈는 이미 많이 도굴된 상태라 한참을 찾아도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안개가 너무 짙어서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이에 한제는 신식을 이용해 사방을 분간해야만 했다.
그런데 한동안 마수의 뼈를 찾으려 걷고 있던 한제의 표정이 일순간 바뀌었다. 그는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 순간, 뒤쪽의 안개 속에서 어두운 검광 한 갈래가 나타나 삐뚤빼뚤한 모양새로 다가오더니 방금 한제가 있던 공간에 내려앉았다.
한제는 그 검광을 쏘아낸 수련자의 모습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략 마흔 정도인 그 자는 축기 초기 수준으로 표정이 어둡고 호흡이 가빴다.
마치 독에 중독된 듯 체내의 영력도 혼란스러웠다. 좀 전의 검광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듯한 느낌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검광에 이어 곧바로 붉은색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무지개에서 나타난 사람을 본 한제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투사파(鬪邪派)
무지개에서 나타난 수련자는 응기 15단계를 거의 가득 채운 젊은 남자였는데 얼굴이 옥처럼 희었고 두 눈은 가늘고 길었다. 어딘가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손에는 검은 마수 뼈가 들려 있었다.
청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중년 수련자를 추격했다. 그는 끊임없이 마수의 뼈에 숨을 불어넣었는데 그때마다 마수의 뼈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는 곧장 가느다란 선으로 변해 중년 남자의 몸을 파고들었다.
“사형, 꽤 빠르네요. 열여섯 종류의 독에도 이토록 오래 버틸 줄은 몰랐어요.”
청년은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형, 이 사제가 사형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독들이 어떤가요? 마음에 드시나요?”
그러나 중년 남자는 이를 악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받치고 있는 비검은 여전히 비틀거리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형은 이미 많이 늙었으니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이 사제가 탈기법으로 삼켜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어때요?”
청년과 중년 남자 사이의 거리는 어느덧 매우 가까워져 있었다.
한제는 흥미로운 눈으로 청년의 손에 들린 마수의 뼈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년 남자는 힘겹게 도망치면서 욕을 내뱉었다.
“상목, 이 천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놈! 애초에 내가 사부님께 간청한 덕에 제자가 된 네가 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 사실을 스승님께서 아시면 어떻게 될지 두렵지도 않은 게냐?”
청년은 비릿하게 웃었다.
“하하하! 사형 순진한 구석이 있군요. 스승님께서 묵인하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감히 이 마수의 뼈를 가지고 사형을 기습했겠습니까?”
“쿨럭.”
중년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시커먼 피를 토해내더니 맥이 풀린 듯 비검에서 떨어졌다.
청년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중년 남자를 수차례 찌르더니 그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시체를 짊어지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선 채 식은땀을 흘렸다. 전방의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인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사형을 뒤쫓으며 신식을 펼쳐 주변을 살펴보았을 때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분명 그의 앞에는 한 인영이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이 자신보다 훨씬 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시체를 내려놓고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이전의 사악한 얼굴과 달리 순박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투사파의 제자 상목이 선배님을 뵈옵니다. 제 앞길을 막고 서 계신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십니까?”
한제는 천천히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와 냉담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에 상목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결단기에 이른 사부 앞에서나 느끼던 압박감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저 자가 설마 결단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상목은 떨리는 마음으로 더욱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개의치 않는 듯, 상목이 가진 마수의 뼈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툭 한 마디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