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33
한제는 수많은 건물이 가득 세워져 있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검은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고 그 안개 사이로 한 귀퉁이가 희마하게 드러났다.
그곳이 동굴의 중심이지만 한제는 이마저도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에서 두 번째 층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옥패의 지도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선제의 동굴에 대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마지막 두 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총 아홉 층으로 이루어진 선제의 동굴은 첫 번째 층의 금제만 해도 그토록 강력했건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고 무서워질 터였다.
‘산마(散魔)가 백옥병으로 방해를 하는 바람에 모두 병중계(甁中界)로 들어갔던 것일 뿐, 전송진을 통해 이 선부에 들어왔을 때 사실은 곧장 이곳에 도착했어야 하지. 병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산마가 장선지(葬仙池)를 무너뜨리면서 우리를 다시 한 번 흩어놓았다. 그의 목적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일 터.’
옥패의 지도는 7층까지만 나와 있어 마지막 두 층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를 지운 것이라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한제의 앞에는 커다란 선옥이 깔려 부드러운 빛이 발산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에 발을 디딘 한제는 저 멀리 검은 안개로 뒤덮인 땅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작은 길의 양옆에는 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다양한 색상에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꽃에도 적지 않은 금제가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선옥이 깔린 길 위에도 금제가 배치되어 있어 나아가는 방향이나 발을 딛는 순서가 맞지 않으면 곧장 발동될 터였다.
허나 옥패의 지도에는 이 금제들을 해제하는 방법까지 새겨져 있지는 않았어도 금제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금제에 일가견이 있는 한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허점이나 틈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제는 워낙 신중한 성격이라 그 옥패의 지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기에 계속해서 하나하나 확인하며 이동했다.
차공열(次空涅)
한제는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 저물대에서 그 철검을 꺼내 신식으로 조심스레 살폈다. 허나 강력한 저항력에 가로막혀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특히 검 곳곳의 녹슨 자국이 그 저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신식을 거둔 한제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이건 대체 무슨 검일까?’
한제는 탁삼의 사자가 이것과 똑같은 검을 손에 넣었을 때 엄청난 보물이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흥분했던 때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그 사자의 눈빛은 검 자체가 아닌 녹슨 자국에 닿아 있었다.
한제는 검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손가락에 암적색 녹이 묻어나왔다.
코앞으로 가져와 냄새를 맡아보자 옅은 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냥 녹일 뿐인데…’
한제는 다소 실망한 듯 왼손을 내렸다. 한데 그 순간, 녹이 묻은 손가락이 지나간 허공에서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겨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약간의 떨어져 있던 꽃밭의 꽃들이 암적색 빛을 발산하며 기이하게 말라붙어 버렸고 그 안에 깃들어 있던 금제 역시 파괴되었다.
“이게 무슨…?”
한제는 삽시간에 폐허가 된 꽃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왼손 손가락에 묻은 녹의 흔적을 살폈다.
몇 걸음 물러난 한제는 녹이 묻은 왼손으로 이번에는 다른 쪽의 꽃밭을 가리켰다. 순간 그 꽃밭 역시 꽃들이 급속도로 말라붙어 폐허가 되어 버렸다.
한제의 손가락에 묻어 있던 녹의 흔적 또한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멍한 눈으로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 미간의 세 번째 눈을 떴다.
그 순간, 세 번째 눈 안에서 붉은 빛이 튀어나와 철검을 뒤덮었다. 그 안에 깃든 본원의 힘은 한제의 시선을 따라 검 위의 녹슨 흔적에 떨어졌다. 이에 따라 철검은 점점 투명해졌으나, 녹슨 흔적만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세 번째 눈에서 발산된 본원의 힘이 닿자마자 철검에 흐르던 무형의 기운은 마치 본원의 힘을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곧장 튀어나왔다.
한제는 발휘하던 신통력을 끊고 재빨리 본원의 힘을 거둔 후 세 번째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무형의 힘은 우뚝 멈췄다가 다시 철검으로 돌아갔다.
한제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 철검을 회수하려 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뭔가 번득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철검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하더니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뒤이어 그는 저물대에서 다섯 개의 검집을 꺼냈다. 당시 주작성에서 얻은 것들이었으나, 그 효능을 알지 못했다. 다만 어떤 비검을 이 겁집에 집어넣으면 그 비검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자 철검이 그중 하나의 검집에 들어갔다. 남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꼭 들어맞았다. 허나 그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제는 그 철검을 뽑아 다른 검집에 차례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네 번째 검집에 꽂아 넣은 순간, 검집에 조각된 문양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두려운 기운이 철검과 검집 안에서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한제는 얼른 검집을 쥐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검집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냈다.
한데 검을 다 뽑기도 전에 검집에서 흘러나오던 두려운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한 힘이 그 안에 봉인되어 있는 듯했다. 검을 완전히 뽑아내면 그 힘은 곧장 하늘로 솟구쳐 올라갈 것만 같았다.
한제는 일전에 이와 비슷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현보 상인의 차공열(次空涅) 화살이었다.
‘차공열⋯⋯.’
한제의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넣은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곧장 질주했다.
마치 한 줄기 유성처럼 이 작은 길을 따라 앞으로 돌진하던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길가의 누각 옆에 이르렀다.
크지 않은 2층짜리 누각은 척 보기에 평범해 보였으나, 옥패의 지도에 따르면 누각에는 선제의 첫 번째 층 금제의 첫 번째 눈이 있다고 했다. 또한 그 금제의 눈 여덟 개가 다 열리면 검은 안개 속으로 들어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도 설명되어 있었다.
한데 누각을 살피펴보니 이미 누군가가 이 누각의 금제를 연 상태였다.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제의 표정이 한층 신중해졌다. 이곳의 금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당시 장선지가 무너져 내렸을 때 모든 사람이 흩어졌다. 나보다 먼저 금제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있는 거야.’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은 크지 않아 신식으로 전체를 살필 수 있을 정도였으나,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수많은 금제가 깔려 있는 이곳을 신식으로 살필 리는 없었다.
한제는 몸을 날려 누각을 선회해 풀밭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 채 앞으로 나아갔다.
옥패의 지도에는 풀밭 위의 금제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어 한제는 그중 어느 것도 촉발시키지 않고 빠르게 풀밭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 ★ ★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 북동쪽 구석의 정자 밖. 미간에 흑룡의 표식을 숨기고 있는 흑의의 사내는 서늘한 눈으로 정자를 바라보았다.
그 정자의 다른 한쪽에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촌부처럼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었다. 정자를 사이에 둔 채 흑의의 사내를 바라보는 그녀의 안색은 어두웠다.
“도우, 이것은 그저 간단한 금제일 뿐인데 어찌 내게서 빼앗으려 하는 겐가!”
중년 여인의 목소리는 거친데도 불구하고 듣기 좋았다.
그녀 역시 장선지의 붕괴로 어느 금제 안으로 떠밀렸지만 다행히, 금제가 강하지 않았던 터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저 멀리 검은 안개를 보고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녀도 그쪽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자신이 데려온 분홍 옷의 여인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대사저로부터 받은 호신용품이 있으니 문제없을 터였다.
다만 이 선제의 동굴에는 금제가 너무도 많아, 벌써 몇 차례나 위험을 맞닥뜨린 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정자를 본 순간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고는 자세히 살피려던 중인데 흑의의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그저 평범한 금제일 뿐이라면 도우가 물러나면 될 일 아닌가.”
흑의의 중년 사내는 피식 웃으며 대꾸하더니 정자로 들어가려 했다.
이에 중년 여인의 눈에 살기가 어리더니 한 줄기 잔영이 되어 곧장 달려들었다.
“허!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흑의의 사내는 냉소하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쭉 뻗었다. 그 순간 검은 안개가 분출돼 거대한 용이 되더니 여인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이에 여인은 오른손으로 삼단 같은 머리카락 세 올을 뽑아 훅 불더니 주문을 외웠다. 순간 그 머리카락들은 왜곡되면서 커다란 검은 구렁이가 되더니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면서 용의 형태를 한 검은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수준 높은 수련자의 신통력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기세의 폭풍을 일으켰다. 이에 거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으나, 이 소리는 1천 척 안에서만 메아리쳤다. 두 사람 모두 큰 소동을 일으켜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둘 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적은 규모로 이 전투를 끝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검은 안개로 뒤덮인 정중앙의 궁전으로 가지 않고 어찌 내가 눈여겨둔 이곳을 빼앗으려 하느냐!”
여인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오색찬란한 빛으로 온몸을 뒤덮은 뒤 다섯 자루의 예리한 검을 앞으로 날렸다.
흑의의 사내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검은 기운을 내뿜는 검을 소환했다. 이 검은 사내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다섯 자루의 검과 충돌했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야말로 어찌 그곳으로 가지 않느냐? 이 정자의 전송진을 보아하니 어느 저물대와 같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전송진인 듯한데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을 굳이 감추려 들 이유가 있는가?”
여인의 표정은 침착했으나 눈빛은 서늘했다.
상대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이 정자를 두고 굳이 상대와 싸우고 있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은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억제했으나, 법보까지 사용하자 그 소리는 어렴풋하게 퍼져 나갔다.
“너와 나의 수준은 서로 같으니 이렇게 해서는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다 다른 이들에게 발각되느니 함께 전송진으로 들어가 취한 것을 반으로 나눠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인의 제안에 흑의의 사내는 피식 웃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동시에 법보를 거두더니 동시에 정자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멀리 떨어진 누각 쪽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누각에서 나타난 한제는 역시 정자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을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멈춰 섰다.
한제를 본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흑의의 사내는 기이한 미소를 지었고 중년 여인은 표정이 살짝 굳더니 경계하는 눈빛이 드러났다.
‘기이한 일이로군. 저자를 처음 봤을 때 비록 정열기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해도 실제 수준은 규열기 초기에 불과했어. 한데 다시 봤을 때는 규열기 중기에 이르러 있더니 지금은 규열기 절정이란 말인가? 여태 진짜 수준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 짧은 시간에 저토록 수준이 올랐다는 건데…’
“이 도우도 이곳에 왔군. 이렇게 되었으니 셋이 함께 들어가 얻은 것을 똑같이 나눠 갖는 것이 어떻겠는가?”
아름다운 여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한제가 막 답을 하려던 순간, 돌연 지면에서 진동과 함께 분노에 찬 포효가 터져 나오더니 바깥쪽을 향해 퍼져 나갔다.
눈으로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제의 동굴에는 금제가 너무도 많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사람이라도 각각 다른 두 개의 금제를 건드린다면 서로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기 십상이었다.
순간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대나무 숲으로 들어간 인영이 생각보다 빨리 그곳의 금제를 모두 파괴하고 빠져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인의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날린 한제는 검은 안개의 중심인 궁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가 누각에서 확인했던 금제의 눈은 이미 완전히 열려 있었으므로 그보다 앞선 누군가가 벌써 이 선부의 두 번째 층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정자에 이른 것은 궁전으로 가는 길 중 이쪽 길이 금제가 가장 적게 배치된 곳이기 때문이다.
분노에 찬 포효가 울려 퍼지고 한제가 표정이 급변해 달아나는 모습에 흠칫 놀란 흑의의 사내는 곧장 한제를 뒤따랐다. 반면 중년 여인은 망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