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35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깃든 이 손짓에 대전 안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뒤이어 모래 폭풍이 나타나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고 심지어 비웃는 듯도 했다. 그는 허공자가 장선지에서부터 이미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자신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반항해봐야 헛수고일 터였다.
다행히 이미 두 번째 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어느 정도 찾아낸 그는 상대의 일격에 뒤로 밀려나는 힘을 이용해 그 입구로 향했다. 또한 허공자를 겨냥한 덫도 하나 만들어두었다.
‘이 덫이 너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한제는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두 조각상과 똑같은 결인을 그렸다. 그 순간, 두 조각상의 분노가 담긴 눈에서 두 갈래의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한제를 감싸며 하나의 회오리를 형성했고 이에 한제는 곧장 그 회오리 쪽으로 끌려갔다.
허나 허공자의 눈썰미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한제가 뒤로 떠밀려가는 듯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뭔가 방향을 조절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의심이 든 순간 곧장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노란색 모래 폭풍은 회오리 안으로 들어간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회오리의 속도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제는 그 안에 완전히 들어가기도 전에 모래 폭풍에 죽게 될 터였다.
동시에 허공자는 몸을 훌쩍 날려 한제를 뒤쫓았다.
지극히 귀중한 보물
모래 폭풍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미간의 세 번째 눈을 번쩍 떴다.
이 세 번째 눈은 그의 신통력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허공자라면 어쩔 수 없었다.
“허공자!”
한제의 낮은 외침과 함께 세 번째 눈에서 발산된 한 줄기 붉은 빛이 전방을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한편,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허공자조차 한제의 세 번째 눈이 뜨인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본원!”
허공자는 경악했으나 곧장 정신을 차렸다. 이제 주작성종(朱雀聖宗)도 수련자 연맹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온통 한제의 미간에 생겨난 세 번째 눈에서 발산된 본원의 힘만 들어왔다.
흑룡의 표식을 숨기고 있던 흑의의 사내 역시 멍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반면 중년 여인은 그 둘과 달리 미간을 살짝 구길 뿐이었다.
그때, 본원의 힘을 품은 붉은 빛과 노란 모래 폭풍이 충돌했다. 그 순간, 쇄열기 수련자가 소환한 모래 폭풍이 진동하면서 빠르게 흩어져 버렸다.
한제는 미간에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가 가진 본원의 힘은 본래도 많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모래 폭풍과 충돌하면서 빠르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는 세 번째 눈의 힘을 거두기는커녕 이를 악물고 오히려 더욱 힘을 주었다.
세 번째 단계에 오르려는 수련자에게 본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한제는 허공자가 이것에 욕심 낼 것임을 확신했다.
30척 반경으로 퍼져 나간 부채꼴 모양의 붉은색 빛은 순간 증폭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 몇 배로 확장되었다.
모래 폭풍이 흩어진 직후, 붉은 빛에 깃든 본원의 힘이 곧장 튀어나가 허공자에게로 돌진했다.
허공자의 눈에 담긴 탐욕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었지만 그는 본원의 힘을 취할 흔치 않은 기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허공자는 한제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에 휩싸였다.
빛은 순식간에 허공자를 뒤덮었고 뒤이어 본원의 힘이 퍼져나갔다. 그 무렵, 허공자는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본원⋯⋯ 본원!”
허공자는 탐욕에 가득찬 채 신식을 펼쳐 사방을 관찰했다. 지금의 그는 한제에게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본원의 힘을 간파하는 데만 집중했고 충분히 그럴 자신도 있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허공자의 심장이 쿵쾅댔고 두 눈은 탐욕과 감격이 뒤섞여 번득였다.
한제는 사방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회오리를 따라 회전하면서 점점 그 안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두 눈의 살기는 갈수록 짙어졌다.
덫은 이미 완벽하게 배치된 상태였고 허공자는 미끼를 물었다. 이제 공격할 차례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검집을 꺼냈다. 그 검집에는 철검이 꽂혀 있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철검의 자루를 쥐었다.
그 순간, 한제의 눈에 어린 살기가 사라졌다. 이제 그의 눈빛은 잔잔한 수면처럼 안정적이었다. 마치 그 짙던 살기가 철검으로 모조리 흡수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 잔잔한 눈빛이 살기를 품고 있던 좀 전의 눈빛보다 몇 배는 무섭게 느껴졌다.
한제는 이 철검에 자체적인 영(靈)이 있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다. 잠들어 있다가 지금 막 깨어난 듯한 이 영(靈)은 온 세상을 다 파멸시켜 버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 한제를 주시하고 있던 중년 여인의 두 눈은 충격에 휩싸였다. 저 검집과 검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한제의 눈빛이 침착해지는 모습에 그 옛날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흑의의 사내 역시 한제의 손에 들린 검집을 확인한 순간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서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이 뽑혀 나옴에 따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기운이 검집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어찌나 강렬한지 이 공간 자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두 개의 거대한 조각상에도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한제는 완전히 뽑아낸 검을 들어 올려 허공자에게 맹렬히 휘둘렀다.
한편, 허공자는 여전히 신식을 이용해 본원의 비밀을 파악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그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길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한데 본원의 맥락을 어렴풋이 파악해나가고 있던 그때, 온몸이 서늘해질 정도로 맹렬한 생사의 위기가 느껴졌다.
장선지가 붕괴할 때의 충격보다도 몇 배는 더 강력한 힘이 덮쳐왔다. 허공자에게는 익숙한 기운을 품고 있는 힘이기도 했다.
두 눈이 바짝 졸아든 허공자는 한제가 들고 있는 철검을 바라보았다.
“차공열(次空涅) 법보!”
그 순간, 한제와 허공자 사이에는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섬광을 뿜어내는 거대한 검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거대한 검은 오로지 은빛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검이 발산한 은색 섬광은 곧장 허공자를 향해 내리 떨어졌다.
허공자는 충격을 받은 듯한 눈빛으로 찬 숨을 들이켰다.
공격의 시기가 너무도 정확했기에 피할 시간은 없었다.
은빛 섬광은 쇄열기 수련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허공자의 가슴팍에 꽂혔다.
쾅!
그 순간, 보라색을 띤 허공자의 원신이 엄청난 속도로 밖으로 튀어나와 육신을 감쌌다. 멀리서 보면 허공자의 몸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보통 수련자들의 원신은 너무도 약해서 육신에 의지한다. 하지만 허공자처럼 수준이 높아질 경우 원신이 육신보다도 강력해질 수 있다.
허공자는 지금 원신으로 육신을 감싸 철검에서 발산된 은빛 섬광에 대항하는 중이었다.
은빛 섬광이 격렬하게 번득였고 허공자는 바르르 떨었다. 이어서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한 움큼 피를 토해냈고 원신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육신으로 돌아갔다.
“크으으…”
허공자는 낮게 침음했고 그의 체내에서는 펑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뒤로 밀려나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억지로 멈춰 서며 본원의 힘이 확산된 범위에 머물렀다. 허나 이로 인해 체내의 상처는 더욱 커졌다.
“잡종 같은 놈! 허나 차공열 법보가 있다 해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
허공자는 전보다 더욱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향해 손을 뻗더니 꽉 움켜쥐었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체내의 원력을 검에 쏟아 넣었다. 이 검을 손에 넣자마자 살펴본 결과 따로 제련을 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워낙 비밀스런 검이라 가능한 한 좀 더 연구를 해보고 싶었지만 허공자를 상대로는 자신의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제는 검이 체내의 원력을 흡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미 감안을 해둔 상태였다.
덕분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체내의 원력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한제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허공자가 손을 뻗어온 순간, 한제는 다시 한 번 철검을 들어 올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체내의 원력이 용솟음치면서 철검에서 발산되는 은빛 섬광이 길게 뻗어 나갔고 한제는 곧장 검을 휘둘렀다.
눈부신 은빛 섬광이 번득인 순간, 허공자는 움켜쥔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허공자의 안색은 무척 어두웠다. 본원의 힘 안에 머물면서 그 힘에 공격을 당하다 보니 내상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까 우려되기 시작했다.
체내의 원력에 비해 본원의 힘은 1만 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적었지만 그럼에도 본원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모든 원력을 동원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 본원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구나 더 이상은 한제가 미물만도 못 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차공열 법보까지 가지고 있는 한제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1각 정도만 여유가 있다면 본원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허공자는 저물대에서 보라색 얼음 조각을 꺼냈다. 그 얼음에서는 강력한 한기가 발산돼 대전 안을 순식간에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 법보는 무척 아끼는 것이었지만 허공자는 이를 악물고는 자신의 원신을 반으로 갈랐다. 이제 원신으로 이루어진 허공자가 또 하나 생겨났는데 그는 곧장 그 보라색 얼음을 한입에 꿀꺽 집어삼키더니 번개처럼 한제에게 돌진했다.
‘얼마든지 와라!’
한제는 다시 한 번 철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검의 허상에서 은빛 섬광이 발산되었다.
허공자의 분신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앞으로 뻗으면서 거대한 검의 허상에 대항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허공자의 분신은 약간 어두워지면서 뒤로 밀려났지만 거대한 검의 허상 역시 무너져 내렸다.
한편, 한제는 허공자의 보라색 얼음을 본 순간 자신의 철검과 차공열 화살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기운을 느꼈다. 이는 저 얼음조각 역시 차공열 법보라는 의미였다.
이 무렵, 한제는 체내의 원력이 대량으로 소모되고 있었지만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덫을 놓은 상황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허공자를 죽이거나 최소한 중상을 입혀야만 했다. 그래야만 흑의의 사내와 아름다운 중년 여인까지 겁먹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의 수준으로는 이 철검의 진정한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이 느낀 영의 존재를 믿고 이 검을 사람처럼 대할 생각이었다. 이에 철검을 통제하는 것을 멈췄다.
그 순간, 철검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때를 같이해 허공자의 분신이 다시 한 번 돌진해왔다. 그 체내로 녹아든 보라색 얼음이 발산한 무궁무진한 한기에 한제는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한제의 손에 쥐어진 철검이 위로 들어 올려졌다. 허나 이것은 한제가 들어 올린 것이 아니라 검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 순간, 한제 체내의 원력이 검으로 흘러들었다.
꽈릉!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에서 은색 빛이 발산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검의 허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