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37
흑의의 사내는 곧장 몸을 날려 두 조각상 사이에 이르더니 한제가 했던 대로 두 번째 층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허공자와 중년 여인 역시 뒤를 따랐다.
★ ★ ★
선제의 동굴 두 번째 층. 중앙 부근의 어느 정자 밖에 보라색 빛이 번득이는더니 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쇄열기 수련자를 죽이기란 정말 어렵군. 허공자는 분명 중상을 입긴 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그 여인도 있지.’
보라색 빛에서 걸어 나온 한제는 곧장 한 움큼 선혈을 토해내더니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철검의 위력은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만약 다섯 개의 검집을 채울 다섯 자루의 철검을 손에 넣어 한꺼번에 사용한다면⋯⋯?’
한제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듯 가늘게 떨었다. 허나 다섯 개의 검을 동시에 사용한다면 그의 몸은 결코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철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저물대에 집어넣은 한제는 단약 몇 개를 꺼내 삼킨 뒤 이를 악물고 질주했다.
그는 거의 모든 힘을 소진했으나 허공자에게 중상을 입혔고 다른 둘에게도 위협을 가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처를 치료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선부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최대한 빨리 그들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한제는 수많은 금제들을 빠르게 통과하며 이동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지도에 그려진 금제의 눈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열려 있었다.
상대가 몇 번째 층까지 진입했을지 한제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 선부의 여섯 번째 층까지는 구조가 거의 비슷해 한제는 머지않아 두 번째 층의 중앙에 이르러 곧장 세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진입했다.
그 시각, 흑의의 사내와 아름다운 중년 여인, 그리고 중상을 입은 허공자도 두 번째 층에 이르렀다.
지금 허공자에게서는 본래의 패기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곧장 금제를 뚫고 들어가는 대신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며 나아갔고 덕분에 한제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두 번째 층의 대전에는 아무런 조각상도 없었고 바닥에는 돌로 된 아홉 개의 촛대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 공간을 한참이나 관찰했고 어느 순간 그의 시선은 촛대들 주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뭔가가 이동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몇몇 흔적은 깊었고 다른 흔적들은 얕은 것으로 보아 여러 번의 이동이 있었던 듯했다
한제는 더욱 혼란에 빠졌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쪼그려 앉아 더욱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두 눈이 밝아졌다.
그는 이 아홉 개의 촛대에서 한 줄기 검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흔한 검기였기에 보통은 누군가가 이 촛대를 파괴하려다가 남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터였지만 한제는 달랐다.
‘주일 선배의 검기다! 이곳에 검기를 남겨 놓았다는 것은 벌써 세 번째 층에 들어가셨다는 뜻이야. 한데 왜 이 검기를 남겨 놓으신 걸까? 혹시⋯⋯?’
그동안 어느 정도 원력을 회복한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아홉 개의 촛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빛은 순식간에 한제의 온몸을 감싸더니 그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그렇게 세 번째 층으로 진입했다.
촛대 근처의 이동시킨 듯한 흔적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함정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세 번째 층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그저 초에 불을 붙이는 것뿐이었다.
다시 나타난 주일
시간은 천천히 흘러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치료를 하는 잠깐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데 쏟았다.
금제는 다음 층으로 넘어갈수록 강력해져, 금제에 일가견이 있는 데다가 지도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는 한제조차 한참의 시간을 들인 뒤에야 안전하게 지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곳은 각 층 중앙의 대전이었다. 각 대전마다 숨겨진 수수께끼 때문에 심사숙고한 뒤에야 다음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옥패에는 네 번째 층부터는 물건들이 저장된 공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보다 한 발 앞선 누군가에게 털린 상태였지만 아직 누구도 건드린 적 없는 공간들이 있었다.
한제는 그런 공간을 찾을 때마다 그 안의 모든 것을 저물대에 쓸어 담았다. 지난 두 달 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 공간은 규모와 안에 담긴 물건들의 양도 엄청나 한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일개 문파가 1천 년을 사용해도 충분할 정도의 선옥이 들어 있기도 했다. 또한 그 외에도 다른 물건들이 많았다.
한제는 청림이 이 동굴 곳곳에 이런 저장 창고를 만들어둔 데에는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옥패의 기록에 따르면 여섯 번째 층에는 두 개의 저장 창고가 있는데 그중 한곳에는 선계가 무너지기 전 저장되었던 수많은 단약이 있을 터였다. 그런 단약들은 지금 한제에게는 그 어떤 법보보다 귀한 것이었다.
한제는 여전히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육신의 부상은 고신의 강인한 회복력으로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손실된 원력과 철검을 사용하면서 위축된 원신은 단약 없이는 단기간에 회복시키기가 어려웠다.
한제의 저물대에 있던 단약도 이제 거의 바닥났고 선부 곳곳에는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니 단약이 저장되어 있다는 그 공간이야말로 한제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었다.
★ ★ ★
여섯 번째 층 가장자리에서 밝은 빛이 번득이더니 한제가 걸어 나왔다.
그곳은 누각으로 둘러싸인 화단 같았다. 전방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고 작은 개울이 영롱한 소리를 내며 그 사이로 구불구불 흘렀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옥패 속 지도의 정보와 눈앞의 광경을 비교한 후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했다. 이어서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그 약들,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빠른 속도로 금제들을 피하던 한제는 돌연 우뚝 멈춰 섰다.
‘누군가가 있다!’
지금까지 앞서간 이의 흔적을 봐왔지만 누군가와 맞닥뜨린 것은 첫 번째 층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 전방에서 약간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겠지?”
전방의 석가산(石假山)쪽에서 한 쌍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선인의 느낌이 풍기는 수려한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뒤의 여인은 놀란 듯한 눈으로 한제를 보고 있었다. 둘 다 한제를 보는 눈빛이 부드러웠다.
‘운선 부부!’
한제는 덤덤해 보였지만 경계심만큼은 더욱 높아졌다. 아직 수준을 완벽하게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칫 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한제는 어느 금제의 가장자리 근처에 이르더니 운선 부부에게 포권을 했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한제는 운선 부부의 뒤쪽을 힐끔 살폈으나 주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네는 금제를 아주 잘 알고 있더군.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했던 모양이야.”
이오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제가 그 수많은 금제를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금제술이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한제가 매우 약한 상태라는 것도 단박에 눈치 챘다.
한편, 한제 입장에서도 운선 부부는 기이한 존재였다. 이전에 선제의 동굴이 열렸을 때 다들 함께 들어왔으니 이들 역시 병중계(甁中界)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병중계가 무너져 내릴 때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이제야 이곳에서 나타났으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제는 두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는 주일도 없으니 더더욱 그럴 필요도 없었다.
“두 선배님께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제는 곧장 몸을 물려 단약이 저장되어 있다는 그 공간으로 향했다.
이오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한제를 막아 서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제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야.”
곁에 있던 호연 역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중한 성격이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는데 당신 때문에 겁을 먹고 도망쳐 버렸잖아.”
이오는 껄껄거리며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 때문에 겁을 먹은 게 아니라 갈 곳이 있는 것 같던데? 한데 방금 금제의 가장자리만 밟으면서 물 흐르듯 움직이는 거 봤어?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금제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어. 이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거나 금제에 대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는 거지.”
호연은 한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자의 나이로 보면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지.”
이오는 웃음을 머금은 채 호연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동의해. 저자는 이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더 재미있지. 한데 그 검령(劍靈)에게 동료가 있을 거라고 했지? 내 생각대로라면 저자가 그 동료일 거야!”
호연은 흠칫 놀라더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정말 그렇다면 저자는 적이 아니네.”
“저자의 행적을 봐. 만약 정말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선제가 단약을 보관해놓은 곳으로 갔을 거야. 가서 보자고. 검령도 거기 있을 테니까. 그 둘 사이에 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지 확인해야지!”
이오는 웃으며 몸을 훌쩍 날려 전방으로 향했다.
호연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런 이오를 바라보았다. 이오의 분석과 계획에 대해 언제나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녀는 말없이 남편의 뒤를 따랐다.
한편, 한제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 여섯 번째 층의 금제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했기 때문에 이동 속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금제들은 단숨에 통과할 수 있었지만 어떤 금제들은 한참이나 살피고 분석한 뒤에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꼬박 7일이 지난 후에야 반원을 그리듯 빙 돌아 단약이 저장된 공간 근처에 이르렀다.
옥패의 지도에 따르면 이곳에는 연단방(煉丹房)이 있고 그 안에 단약이 저장된 공간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저 멀리 연단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제는 신식을 펼쳐 가까운 금제들을 관찰했다. 그 금제들의 파동을 이용해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연단방은 크지 않았고 그 옆의 정원에는 말라버린 잡초만 가득했다.
한데 연단방에 가까워진 순간, 한제는 우뚝 멈춰섰다. 그는 그 안의 금제가 옥패의 지도에 그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도의 내용에는 오차가 없었다. 한데 이 연단방의 금제가 지도와 다르다는 것은 누군가가 이 금제에 손을 써놓았다는 뜻이었다.
한제는 다소 어두운 안색으로 금제를 자세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허나 실마리를 파악할수록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가 보기에 연단방의 금제는 본래 있던 금제를 기초로 그 위에 뭔가가 덧씌워진 것이었다. 약간의 변화만 줬을 뿐이지만 기이하게도 그 첨가된 금제는 원래의 금제와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금제는 변화막측했다. 시연자의 성격과 경력, 수준 그리고 금제에 대한 이해에 따라 같은 금제라도 천양지차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