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38
그렇기에 지금 이 금제는 한제 입장에서는 좀처럼 파악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금제에 대한 그의 이해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렇게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니… 누구도 다른 사람의 금제를 억지로 바꾸면서 이렇게 완전한 상태를 갖추게 하지는 못해! 더구나 이곳의 금제는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 한데 어떻게 이런 금제를 이렇게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거지? 그게 가능한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이곳의 모든 금제가 장난처럼 보일 거고 아홉 개 층을 통과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겠지.’
한제는 충격을 받은 채 다시 금제를 살폈다. 살피면 살필수록 소름이 끼쳐왔다. 연단방 사방의 금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마치 원래 금제를 배치해둔 당사자가 다시 와서 보강한 것만 같았다.
‘설마⋯⋯?’
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선제의 동굴에 존재하는 모든 금제를 배치한 사람과 이 금제를 바꾼 사람이 동일인이란 말인가!’
한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의 상황을 완벽히 설명하는 추측이었으나 동시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추측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그 추측이 맞을 거야. 그렇다면 이 금제를 배치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설마… 운선 부부?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없어! 나에게는 그 단약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금제를 분석하며 계산을 시작했다. 이 복잡한 금제의 목적은 분명 다른 사람이 연단방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예 금제 앞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저물대에서 나침반 하나를 꺼냈다.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그곳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은 채 금제를 분석하는 데 주력했고 어느새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날, 한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금제 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았다. 그리고 이어서 세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다섯 번째 걸음을 내딛은 순간, 한제의 눈에 잠시 망설이는 빛이 드러났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이 다섯 번째 걸음은 정답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어느 쪽으로 내딛든 틀릴 것만 같았다.
그곳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던 한제의 얼굴에 어느 순간부터 미소가 번져갔다.
‘다섯 번째 걸음은 없다!’
한제는 다섯 번째 걸음으로 허공을 밟으며 곧장 튀어 올랐다가 지면에 착지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여섯 번째 걸음이 되었다.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며 자신이 아무런 금제도 촉발시키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장 그 금제에서 벗어나 연단방의 문 앞에 나타났다.
한데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순간, 한제는 다시 표정이 급변하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쾅!
그와 동시에 연단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줄기 검광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검광은 한제를 확인하자마자 다급히 방향을 틀었다.
뒤이어 검광이 흩어지더니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의 인영이 드러났다.
“주일 선배…”
한제는 역시 뒤로 물러나던 것을 멈추고 결인을 그렸던 오른손도 풀었다.
한제의 눈이 열린 연단방의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 문의 안과 밖은 마치 단절된 두 세상의 경계선처럼 신식으로도 건너편을 살필 수 없었다. 문 앞까지 이르러서도 한제와 주일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인 듯했다.
“여기까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주일은 추억에 잠긴 듯한 눈으로 한제를 살피며 웃었다.
한제는 주일에게서 많은 변화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주일의 몸에서 차공열(次空涅) 법보와 비슷한 기운이 풍긴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운선 부부의 정체
“주일 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님과의 약속을 어찌 잊겠습니까. 이곳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반드시 청상의 육신을 가져올 겁니다!”
다시 주일을 만난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다. 주일은 그의 평생을 통틀어 몇 안 되는 은인 중 한 명이었다. 한제는 앞으로 어떤 수준에 이르든 평생의 은인에게는 공손하게 굴 생각이었다.
주일은 따뜻한 눈길로 한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형님이라 부르도록 해라.”
그리고 그 순간, 주일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한데 누가 네게 이런 해를 끼친 것이냐? 원신이 어두워져 불명확하고 회복이 더뎌 상처들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구나!”
한제는 쓰게 웃으며 허공자와의 싸움을 간단히 설명했다. 허나 본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주작의 각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만 했다. 주일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원에 관련한 사항이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허공자!”
주일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어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보며 혀를 찼다.
“내가 네게 청상을 맡기지 않았더라면 이런 위험을 겪지 않았을 텐데⋯⋯. 허공자 내 그자를 기억해 두겠다!”
그 말을 끝으로 주일은 그 일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한제를 건드리는 것은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주일의 성격이라면 기회가 생기는 즉시 허공자에게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할 터였다.
“여기까지 온 것은 단약 때문이겠지. 이곳에 단약이 많기는 하나 이미 운선 부부가 대부분을 가져간 상태다. 남은 단약도 영체(靈體)에게나 효과가 있지. 이런 종류의 단약은 저장하기가 까다로워 운선 부부도 가져가지 않고 남겨둔 거야.”
주일은 이내 화제를 바꾸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걱정하지 마라. 네 상처를 치료할 단약을 얻어 올 테니.”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한 줄기 검광이 되더니 연단방의 금제를 곧장 관통했다. 뒤이어 허공에서 허상의 형태로 나타난 그는 전방을 향해 포권을 했다.
“두 선배님, 이자는 이 주일의 옛 친구입니다. 단약을 좀 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저 멀리 보라색 숲의 어느 금제에서 빛이 번득였다.
뒤이어 그 빛에서 이오와 호연이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의 보폭은 크지 않았으나 기이하게도 세 걸음 만에 연단방 앞에 이르렀다.
이오가 오른손을 흔들자 연단방 근처에 있던 금제들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광경에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이한제. 자네와 이 검령 사이에 인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지.”
이오는 웃으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전방에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여섯 개의 보라색 옥병이 튀어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이 여섯 개의 병은 5품 응선단(凝仙丹)이다. 네게 도움이 될 게야.”
이오가 손을 휘두르자 여섯 개의 병은 곧장 한제에게로 날아왔다.
옥병으로부터 짙은 선기가 피어올랐다. 냄새만 맡아도 기운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한제는 다시 한 번 포권을 하고는 그 여섯 개의 옥병을 거두어 신식으로 살핀 뒤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호연은 한제를 자세히 살피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너, 파멸금(破滅禁)의 전수자냐?”
한제는 무척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전수자는 아닙니다. 그저 조금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때, 주일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오를 향해 포권을 했다.
“이오 선배님, 한제는 저와 친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제게 큰 은혜를 베푼 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봉인되었을 때 구해준 것도 한제였지요.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저와 선배님의 만남도 없었을 겁니다.”
그 말에 이오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주일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균열 안으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옥병이 나타났고 이오는 그 옥병들을 그대로 한제에게 던져주었다.
“이 병 안에는 다섯 알의 단약이 들어있다. 장천단(藏天丹)이라는 4품 선단(仙丹)이지. 복용하면 원신에 입은 부상을 대대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게야.”
한제는 받아 든 옥병을 신식으로 살핀 순간, 짙은 선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받은 여섯 개의 옥병에서 느껴졌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짙었다.
그러나 주일은 아직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를 악물더니 다시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는 제가 우(雨)의 선검의 검령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의 선군(仙君)인 청상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그 말에 이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이내 균열에서 또다시 세 개의 병을 꺼내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한제에게 건넸다.
그 옥병을 신식으로 살핀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 세 개의 옥병에서 피어오르는 선기는 지금껏 받았던 단약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짙었기 때문이다.
“저는 당시 우의 선계에서 한 여인의 시체를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선옥으로 탑을 지어 그 여인의 시체를 보존하며 그 육신이 썩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했지요.”
주일이 몽롱한 목소리로 당시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선군 청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껏 거의 변화가 없었던 이오의 표정도 이 순간만큼은 미묘하게 변했다. 곁에 선 호연의 눈도 흔들렸다.
이오는 균열 안에서 각양각색의 옥병 수십 개를 꺼내 한제에게 건네더니 주일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말해 보거라.”
주일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더 많은 단약을 얻어내려는 의도임을 깨달은 한제의 표정도 묘하게 변했다.
“결국 저는 정아를 데리고 우의 선계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한제를 만났습니다.”
주일의 목소리는 더욱 몽롱해졌다. 아름다운 기억에 흠뻑 빠져든 듯 그의 얼굴에서는 슬픈 미소가 드러났고 당시 우의 선계에서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곁에서 듣고 있던 한제도 당시의 기억에 빠져들었다.
이오와 호연은 특히 주일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누군가가 청상의 시체를 훔쳐가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던 호연은 살기를 드러냈다. 이오의 눈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발산되면서 강력한 위압감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저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 했고 그 어느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주일이 중얼거렸다.
그가 청상의 시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의 혼백을 태웠고 문정기 후기에 이른 뒤에야 깨어났으며, 그럼에도 조금의 후회도 없다는 이야기에 호연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슬픈 인연이로다!”
이오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 오랜 삶을 통해 주일의 말에 일말의 거짓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청상의 체내에서 그를 1천 년 동안 사랑에 빠지게 했던 잔혼이 깨어나 거의 죽기 직전에 이르렀던 주일을 새로운 우의 검령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이오와 호연은 마음이 묵직해졌다.
한참 뒤에야 길게 한숨을 내쉬던 이오는 주일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주 형의 큰 은혜에 대해 이 이오가 청상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혹여 이전에 제가 주 형께 못되게 군 부분이 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곁에 있던 호연 또한 슬픈 표정으로 주일을 바라보며 몸을 숙였다.
“주 형의 은혜를 저희 부부는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일의 말에는 조금의 허점도 없었고 그가 지금 우의 검령의 검혼이라는 점은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한제, 자네는 청상의 육신을 위해 온 것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