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4
“그것을 내놓아라.”
냉랭한 그 목소리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기에 상목은 혼란스러워졌다. 어릴 때부터 수마해에서 자라난 상목은 악을 알아보는 눈썰미만큼은 확실했다. 수준 높은 마도 수련자들은 대부분 냉혹하고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들의 냉혹함은 눈앞의 저 사내에 비하면 그저 흉내에 불과했다. 한제의 냉혹함은 마치 영혼을 꿰뚫는 듯 차갑고 시렸다. 특히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눈빛은 상목의 몸을 절로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감히 반항할 수 없던 그는 얼른 손에 쥐고 있던 마수의 뼈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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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해 바닥에서부터 빠르게 솟아오른 한제의 손에는 영혼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깃발에는 1백 개가 넘는 영혼이 봉인되어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상목의 것이었다. 이 영혼의 깃발은 본래 상목의 것이었으나, 이는 예상치 못하게 그가 죽음을 맞이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목을 죽이기 전 한제는 많은 정보를 캐냈다. 우선 수마해의 범위는 이곳으로부터 반경 5백만 리까지 뻗어 있으며, 이곳에는 수많은 문파가 있다는 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중 하나인 투사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목의 스승 장교(掌敎) 유태상은 결단기의 절정에 이른 수련자로 수마해 외곽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수마해 외곽은 자원이 부족하고 영맥도 드물어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원영기 수련자는 드물었다. 그들은 대부분 수마해 중부에서 생활했다.
뿐만 아니라 수마해 외곽에는 영수의 뼈가 거의 없었다. 강력한 영수는 보통 수마해 중심 지대에 있었다. 가끔 영수들이 외곽으로 나온다 해도 그들을 죽일 만한 실력자가 외곽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부터 반경 1백만 리 안의 범위에는 소위 ‘3대 위험지역’이 있는데 그곳에는 시체 골짜기가 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적지 않은 마수들의 뼈가 있어 인근 문파들은 마수의 뼈가 필요할 때마다 그곳으로 향한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그 시체 골짜기 안에 일정 시간마다 영수의 시체가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이 영수들은 워낙 강력해 그 시체 골짜기에 올 이유도 그곳에서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상목이 그의 사형을 죽이는 데 사용한 뼈는 아현수(鴉玄獸)의 척추 뼈로 만든 것으로 역시 시체 골짜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한제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 뼈의 독이 축기 수준 수련자에게나 통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나마도 축기 후기 수준의 수련자에게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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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어느덧 시체 골짜기에 도착했다. 주위에는 연이은 해저 산맥들뿐이었다. 높은 봉우리도 있었고 낮은 봉우리도 있었다. 그것들은 이어지면서 크고 작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시체 골짜기의 안개는 비교적 옅었다. 다만 한제는 골짜기로부터 바깥의 그것과는 품질이 전혀 다른 음한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한제는 곧장 오른손으로 결인을 하고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순간 붉은색 빛이 그의 앞에서 모여 들더니 하얀색 빛의 구슬을 이루었다.
이 빛 구슬은 나타나자마자 다시 색이 변하더니 결국에는 푸른색이 됐다. 극음의 땅이 가진 품질을 가늠하게 하는 바로 그 구슬이었다.
구슬이 푸른색을 띠고 있다는 것은 이곳이 그 드물다는 지음의 땅이라는 뜻이었다.
“휴우.”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빛 구슬은 앞으로 둥실 떠갔고 한제는 느긋하게 그 뒤를 따르면서 동시에 마수의 뼈를 찾았다.
신식으로 골짜기를 훑어본 한제는 몇몇 수련자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마수의 뼈를 찾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서로 마주치더라도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한 마디의 말도 섞지 않았다.
골짜기는 크고 작은 많은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마주치는 수련자가 적어졌다. 당연히 찾을 수 있는 마수의 뼈도 더 많아졌다. 또한 빛 구슬의 색 역시 점점 짙어졌다.
아홉 번째 골짜기를 지나자 더 이상 다른 수련자는 보이지 않았고 영수의 뼈는 점점 더 많아졌다. 어떤 것들은 놀랄 만큼 커서 골짜기의 절반 가까이를 뒤덮고 있었다.
한제는 그 거대한 뼈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이내 관심을 접었다. 그것들은 그저 크기만 클 뿐, 안에 깃든 영력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영수가 아니라 그저 몸집이 큰 짐승의 뼈인 모양이었다.
한제는 잠시 움직임을 멈춘 채 신중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신식을 펼친 그는 아홉 번째 골짜기와 여덟 번째 골짜기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는 말하기 힘들었지만 아홉 번째 골짜기에 들어온 순간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제는 냉소하며 극의 신식을 펼쳐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그를 살피던 눈빛들이 순간 흩어져 사라졌고 골짜기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수의 뼈를 몇 개 골라낸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열세 번째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퍽-
빛 구슬이 문득 소리를 내며 둘로 나뉘었다. 이는 지음의 땅 등급이 일반 10품을 돌파하여 우수 1품에 진입했다는 의미였다. 스산한 한기가 열네 번째 골짜기에서 흘러나왔다.
한제는 약간 긴장한 채 사방을 둘러본 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하기에는 최적이었으나, 위험하기로 유명한 수마해에서도 3대 위험지역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주변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한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마수의 뼈를 상당량 모아놓은 상태였기에 잠시 고민했다. 이 정도면 구리시골진의 위력을 조금이나마 더 높일 수 있을 터였으나, 그렇다고 곧장 떠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열네 번째 골짜기는 이전까지의 골짜기들과 상당히 달랐다. 우선 그 면적부터가 앞선 열세 개 골짜기를 합한 것만큼이나 거대했다. 또한 시체나 뼈도 보이지 않았고 지면에는 푸른색으로 아롱거리는 서늘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
허나 이곳도 끝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중간쯤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향을 돌렸다.
“으아아아!”
그렇게 막 떠나려던 순간, 갑자기 멀리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길이가 1만 척이 넘는 거대한 교룡(蛟龍)이 갑자기 안개를 뚫고 나왔다.
깜짝 놀란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땅속으로 숨어들면서 신식을 펼쳤다. 그리곤 재빨리 교룡을 살폈다.
교룡의 거대한 몸이 움직이자 사방으로 세찬 기운이 퍼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교룡은 열세 번째 골짜기를 지나 열네 번째 골짜기로 날아들었다.
후두둑.
그런데 그렇게 교룡이 지나갈 때 뭔가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교룡의 복부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몸통의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길고 깊은 상처였다. 그렇게 교룡이 지나온 곳에는 길게 혈흔이 남아 있었다.
교룡은 열네 번째 골짜기 상공에 멈췄다.
“으아아아-!”
상처에서 난 피로 몸이 범벅이 됐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교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길게 포효를 내질렀다.
이 포효는 성난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파문에 다른 골짜기에 있던 마수의 뼈들이 달각 소리와 함께 재가 되어버렸다.
한제는 땅속에 있었지만 거센 파동에 땅이 3척 깊이까지 깎여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룡의 힘은 원영기 수련자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한제는 땅속에서 부르르 떨었다.
교룡의 포효는 30분이나 지속됐다. 눈빛이 점점 어두워져 가던 교룡은 마지막 힘까지 쏟아낸 듯 머리를 툭 떨구었다. 그리곤 머리가 마치 물에 가라앉듯 지면의 푸른색 서리를 깨뜨리며 땅에 박혔다.
한제는 순간 지면을 박차고 나와 곧장 열네 번째 골짜기 안으로 향했다. 그는 허공에 뜬 채 한손으로 이미 서리 속에 반 정도 잠긴 교룡의 꼬리를 잡고 세차게 잡아당겼다.
교룡은 서서히 밖으로 끌려 나왔다. 한제는 터질 듯한 심장을 안고 교룡의 시체를 짊어진 채 빠르게 시체 골짜기를 빠져나갔다.
교룡의 시체는 굉장히 무거워, 한제는 이를 옮기는 데 온 영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시체에 자신의 뼈가 짓눌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방금 죽은 교룡의 시체를 얻은 대가에 비해 이 정도 고통은 별것 아니었다.
세 개의 한단
비틀거리며 골짜기를 빠져나온 한제는 다른 골짜기에서 마수의 뼈를 찾고 있던 수련자들을 볼 수 있었다. 각자 방어 법보를 꺼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그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골짜기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교룡이 날아오른 순간 곧장 흩어져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동을 일으킨 교룡 때문에 온몸이 부서진 수련자도 몇몇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수준이 높은 편이거나 판단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 시체 골짜기에서 찾은 것들을 판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방금 죽은 강력한 영수의 시체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직 한 군데도 부패하지 않은 교룡의 시체!
대부분의 수련자들은 이성을 잃었고 탐욕으로 두 눈이 물들었다.
분위기를 눈치 챈 한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교룡의 시체를 짊어진 채 허공에서 내려와 토둔술을 펼쳤다. 그리고 교룡의 시체와 함께 빠르게 멀어져갔다.
한제는 땅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극의 신식을 펼쳤다. 따라서 그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던 주변의 수련자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교룡의 시체가 어찌나 무거운지, 영기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때문에 한제는 시체를 짊어진 채 천천히 이동했다.
★ ★ ★
토둔술로 천천히 움직이다보니 시체 골짜기에서 동굴로 돌아오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
한제는 땅에서 고개를 내밀어 신중하게 주위를 살핀 뒤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훌쩍 뛰어나와 교룡의 시체를 땅에 내던졌다.
쿵
순간 지면이 크게 진동했고 그 소리에 놀란 모완은 한제가 신식으로 소환하기 전까지 꼭꼭 숨어 있었다.
한제의 부름을 받은 뒤에야 진을 열고 고개를 쏙 내민 모완은 거대한 교룡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의 뼈로 진을 배치하면 충분할까?”
모완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애써 정리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어느 고서에서 본 적이 있는 교룡으로서, 원영기 후기 수준에 필적하는 강력한 존재이며 보물 같은 몸을 가진 영수였다.
녀석의 머리에 들어 있는 교단(蛟丹)은 천연적인 단약으로 조금만 가공하면 수준을 높여주는 약이 될 터였다. 또한 그 가죽은 방어용 갑옷을 만드는 데 제격이었고 뼈와 힘줄도 모두 하나같이 얻기 어려운 보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진귀한 보물은 교룡의 골수였다. 오래 산 교룡일수록 골수는 적지만 그 효력은 더 뛰어났고 진정한 용으로 탈변한 후의 골수는 한 알의 용단(龍丹)이 됐다.
용단은 상고시대 수련자들이 애타게 갈구하던 것으로 소문에 의하면 그것을 복용하고 난 뒤에는 수준이 성장하는 데 어떤 걸림돌도 없으며, 결계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제는 교룡을 모완에게 넘긴 후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이번 외출의 수확은 훌륭했다. 상목을 통해 용로를 비롯한 도구는 연기종(煉器宗)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도 성과였다.
연기종의 지부는 굉장히 많고 여러 지역에 점포를 두고 있었다. 이 동굴에서 가장 가까운 점포는 40만 리 정도 떨어진 남투성(南鬪城)에 있었다.
용로는 상당한 고가였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투사파 장교가 문파 내 영석의 절반 정도를 들여 훌륭한 용로를 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제 한제는 남투성에서 용로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선택안이 생긴 것이다.
한제는 용로에 대해서는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우선은 교룡의 뼈를 이용해 구리시골진을 더 강화한 후, 결단기에 이를 때까지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