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40
한편, 허공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한제가 대체 어떻게 저런 엄청난 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운선 부부와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는 저 대머리 사내는 자신이 완전히 회복되더라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하물며 아직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데다가 원신의 절반이 파괴당하면서 수준도 쇄열기 중기로 떨어진 지금은…
허공자는 심지어 뒤로 물러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엄청난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난 연맹성역 수련자 연맹의 장로 허공자이며, 대장로 중현자의 사제다. 지금 이게 뭐하자는 건가!”
허공자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수련자 연맹까지 들먹였다.
“수련자 연맹이라⋯⋯.”
이오는 냉랭한 눈으로 허공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높으신 분이로군.”
호연은 작게 웃으며 허공자를 훑어보았다. 물론 이 부부는 수련자 연맹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중현자나 수련자 연맹을 얕잡아봐서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지위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오의 고고한 성격은 선계가 건재했을 당시에도 유명했을 정도였다. 오랜 시간 그 고고하고 오만한 성격을 억누르며 지내왔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오와 호연은 당시 선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던 선제 청림의 제자였다.
선계가 건재하고 그들이 유명세를 떨쳤던 당시 수련자 연맹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무리의 연기사(煉氣士)들일 뿐이었다.
배이라도 비웃는 듯한 눈으로 피식 웃었다. 고요인 그는 애초에 수련자 연맹을 우습게 여겼다. 그가 외계에서 이름을 날렸을 당시 내계에는 선계가 존재했을 때였다.
그는 오랜 시간 요령의 땅을 찾은 수많은 수련자들을 통해 수련자 연맹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고 덕분에 어지간한 수련자들보다도 수련자 연맹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네 사형 중현자는 유명하지. 선계가 붕괴하기 전부터 하계의 연기사들 사이에서 뛰어나기로 소문났던 자 아닌가. 그러다가 선계가 붕괴했을 때, 당시 사성종(四聖宗)의 청룡과 다른 유명한 연기사들과 더불어 그곳을 강탈하는 데 가장 먼저 나섰다지. 그리고는 각종 방법을 통해 선계의 유물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것으로 수련자 연맹을 세웠다더군. 그런 인물이라면 이 고요 배이라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배이라의 눈에 더욱 짙은 비웃음의 빛이 드러났다.
허공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눈앞의 세 사람은 모두 그에게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들이었다. 이에 그는 압박감을 이겨내며 한제를 가리키고 말했다.
“나와 저자 사이에는 사적인 원한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저자와의 일은 이 동굴을 벗어난 후에 해결하겠다. 보아하니 도우들도 함께 가려고 우리를 기다린 모양인데 괜히 서로 기력을 소모할 이유가 있겠나?”
허공자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그의 말은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한제와 싸우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을 지적했다.
말을 마친 허공자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한제를 향한 살기를 감추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들끓는 살기는 전보다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한편, 흑의의 사내는 어느새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상황에 조금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듯 좌선하고 있었다. 이에 허공자 곁에 남은 것은 아름다운 중년 여인뿐이었다.
이오는 냉랭한 눈으로 허공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허공자를 죽이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운 일 또한 아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허공자는 쇄열기 수련자였고 중현자의 사제이니만큼 구명 법보 하나쯤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오에게 지금 최우선은 은사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오의 반응을 보고는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한 허공자는 한시름 놓았다. 한데 그 순간, 한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에 허공자는 바짝 졸아든 두 눈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그 순간, 주일은 온몸으로 서늘한 빛을 발산하며 한 자루 예리한 검광이 되어 곧장 허공자를 향해 돌진했다.
“헛!”
때를 같이해 한제도 한 걸음 내딛으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두 눈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이글거리는 화염은 곧장 그의 오른손을 뒤덮었고 그가 몸을 앞으로 날림에 따라 한 마리 주작을 이루었다.
주작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날개를 몇 번 퍼득이더니 주일의 검광과 거의 동시에 허공자를 향해 돌진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냐!”
허공자가 분노를 담아 외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순간 허공에서 한 줄기 노란색 회오리가 나타나 주일과 한제에게 날아들었다.
한편, 이 모습을 본 이오는 어쩔 수 없이 나서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한제와 주일은 위험에 처할 터였다. 검령인 주일도 청상의 시체를 보관해온 한제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전방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남색 물의 장막이 나타나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며 날아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허공자가 소환한 노란색 회오리 앞에 이르렀다.
“봉인!”
이오가 덤덤하게 내뱉은 순간, 오색찬란한 물의 장막은 수증기로 흩어졌다가 노란색 회오리를 단단히 에워싸더니 곧장 수축했고 뒤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회오리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회오리는 회전을 멈추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붕괴한 회오리는 수없이 많은 모래로 흩어져 버렸다.
산붕(山崩)
허공자의 계략은 한제의 선제공격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제의 대담함과 꾀에 허공자는 분노했고 한편으로는 감탄했다.
자신은 한제 나이 때 이렇게 과감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 자신만이 아니라 누구도 저 정도 나이에 저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한편, 회오리가 붕괴된 순간 한제가 소환한 주작이 곧장 뚫고 들어갔고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치솟은 화염이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허공자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그 철검을 다시 꺼내지 않는 이상 한제는 허공자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허공자가 신경 쓰는 것은 이오와 호연, 그리고 배이라였다.
한제의 화염이 달려들던 순간, 허공자는 저물대에서 검은색의 작은 포대를 꺼내 두드렸다. 그러자 보라색 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수렁과 같은 존재로 변하더니 썩는 냄새를 사방으로 풍겼다. 이 악취와 기운은 단숨에 한제와 주일을 뒤덮었다.
그때, 배이라가 씩 웃더니 순식간에 그 수렁 옆에 이르러서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파문이 일어나 수렁은 그대로 배이라의 입속으로 흡수되었다.
배이라는 탐욕스런 눈으로 몸을 날려 허공자에게 다가가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표정이 급변한 허공자는 곧장 뒤로 물러나면서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허공을 몇 차례 두드렸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대전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주작이 내뿜은 열기가 허공자를 뒤덮었다.
“이한제!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허공자의 원신이 나타나 순식간에 육신을 뒤덮더니 주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강력한 힘이 나타나 주작을 산산조각내고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허공자는 옆으로 몸을 날려 배이라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배이라를 뿌리치기란 무리였고 둘이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펑, 펑 하는 소리가 대전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허공자의 얼굴은 조금씩 창백해졌다.
체내의 요기를 끌어올린 배이라는 결인을 그리지도 않은 채 그 요기를 이용해 신통력을 발휘했다.
번득이는 빛 때문에 눈앞이 요란해질 지경이었다. 허공자는 반격하지도 못한 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 수많은 화염으로 갈라져버린 주작이 다시 응집되고 있었다. 심지어 좀 전보다 더욱 강렬한 화염을 이글거리면서 돌진해갔다.
배이라게 쫓기면서도 허공자는 몇 차례나 그 주작을 파괴했지만 그럴 때마다 화염은 흩어졌다가도 다시 응집되었다. 마치 영원불멸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한편, 검광이 된 주일 역시 허공자를 뒤쫓았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허공자를 따라잡지 못한 채 일격을 날릴 기회를 엿보았다.
그때, 한참을 망설이던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허공자를 도우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녀는 한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첫 번째 층을 떠나기 직전 한제가 했던 말과 그 철검의 위력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이내 그녀는 나서려던 것을 포기했다.
그 무렵, 허공자는 갈수록 창백해져갔다. 게다가 이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이라와 협공하려는 듯 이쪽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 더욱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공격을 그만둔다면 앞으로의 여정에서 얻을 그 어떤 것에도 욕심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자네들을 돕겠네!”
그 다급한 목소리에 막 앞으로 나서려던 이오가 멈칫했고 배이라 역시 허공자를 추격하는 속도가 약간 늦춰졌다.
그때, 돌연 대전 밖에서 또 다른 파문이 일더니 천운자가 들어섰다. 그 뒤로 능천후와 호리병 위의 노인이 따라 들어왔다.
능천후는 짧은 순간에 상황을 파악한 듯 흠칫 놀랐지만 천운자는 마치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미묘한 표정으로 허공자를 힐긋 보았다.
“천운자 도와주게!”
허공자는 몸을 훌쩍 날려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한제가 결인을 그려 주작을 다시 응집시켰다. 그러나 그 주작은 허공자를 공격하기 직전에 무너져 내려 화염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때였다. 검광이 된 주일이 차공열 법보와 같은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하면서 허공자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허공자는 맹렬히 몸을 돌리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신통술을 발휘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천운자의 입술이 움찔거렸고 동시에 허공자가 발휘하려 했던 신통술은 우뚝 멎어버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방해당한 것만 같았다.
허공자의 표정이 급변한 그 순간, 검광이 된 주일이 화염을 관통하여 돌진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허공자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쾅!
거대한 소리가 대전 가득 울려 퍼졌고 허공자는 피를 왈칵 토해내며 뒤로 물러나다가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두 다리가 닿은 곳은 쩌적 하고 갈라져 가루가 되었다.
검광이 흩어지더니 주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거의 투명해졌으며, 대량의 영기(靈氣)를 잃고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듯했다. 허공자에게 가한 일격이 주일 그에게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힌 모양이었다.
주일은 이오와 호연 곁으로 물러나 한제에게 소리를 전달했다.
“한제야, 내 일격으로는 저자를 죽일 수가 없구나. 허나 저자의 부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놓았다!”
말을 마친 그는 치료를 하려는 듯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단약을 하나 꺼내 삼켰다. 영체(靈體)의 단약은 환의 형태가 아니라 유동하는 기운과 같은 형태였다.
한편, 허공자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가뜩이나 심각했던 부상이 방금 주일의 일격으로 더욱 심각해진 상태였다. 수준 역시 다시 떨어져 내려, 쇄열기 초기로 떨어질 조짐이 보였다.
허공자는 온몸을 덜덜 떨며 몇 걸음 더 물러나 결인을 그리더니 자신의 몸을 몇 군데 두드렸다. 그러더니 또 한 번 왈칵 선혈을 토해냈다.
잠시 후, 그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카롭게 노려본 사람은 한제도 주일도 아닌 천운자였다.
반면 천운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덤덤하게 허공자의 시선을 받아내고는 이오와 호연을 향해 포권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운선 부부, 내 부탁 하나 하지. 지금까지의 사사로운 원한은 잠시 접어두고 함께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나?”
그런 천운자를 바라보는 능천후의 안색은 어두웠다. 방금 천운자가 몰래 손을 쓴 것을 그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는 말없이 허공자의 곁에 서서 한제를 비롯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편 호리병 위에 앉은 노인은 고민에 잠긴 듯한 얼굴로 냉정하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서 있는 위치로 미루어 그의 마음이 천운자와 허공자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분홍색 옷의 여인이 가벼운 걸음으로 허공자 곁에 서더니 주위를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이 한제에게 닿았을 때,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도우, 이 일에 대해서는 잠시 묻어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곳을 떠난 뒤에는 자네의 일에 우리 곤허경(昆虛境)에서는 관여치 않겠네.”
흑의의 사내 외에는 모든 사람이 이미 태도를 분명히 한 상태였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이오를 향해 포권을 했다.
“저는 아무래도 괜찮으니 선배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