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44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서 두 자루의 원신검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원신검은 마혼이 아닌 기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린은 슬피 우는 소리를 냈지만 저항하지 않았고 원신검은 그런 기린의 몸을 꿰뚫었다. 검에 관통당한 기린의 몸에서는 대량의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반경 1천 척을 뒤덮었다.
“나타나라, 수혼(獸魂)!”
능천후의 외침에 기린의 온몸이 쾅 하고 무너져 내리며 녀석의 선혈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그 순간 무너져 내린 기린의 체내에서 혼이 나타났다.
기린의 혼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귀로 들을 수 없는 그 포효는 오직 원신에만 영향을 미쳤고 한제의 원신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기린의 혼이 포효하며 마혼에게 달려든 순간, 능천후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의 마음에서도 피가 배어 나오는 듯한 슬픔이 사무쳤다.
수만 년을 함께해온 기린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그 피로 혼을 성장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다.
“네놈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낮게 고함을 내지른 능천후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이에 사방을 뒤덮은 기린의 피가 솟아오르며 마혼에게 달려들었다.
대량의 선혈에는 약간의 금빛이 감돌았고 그 빛에 사방을 뒤덮은 검은 안개의 반 정도가 흩어져 사라졌다. 이에 기린의 선혈은 곧장 그 마혼에게로 응집되었다.
“이한제, 나를 도와라! 이곳의 위험은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능천후가 도주를 멈추고 싸움을 택한 것은 누군가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아직 여덟 번째 층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들어올 자는 바로 이한제였다.
사실 한제는 능천후의 처량한 몰골과 기린을 죽이는 그의 행태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앞서 여덟 번째 층에 들어온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에 이곳의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함을 깨달은 한제는 검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와 곧장 몸을 훌쩍 날리며 신통술을 발휘하려 했다.
“저것은 어떤 신통술도 삼켜버린다!”
능천후는 크게 외치며 저물대를 두드려 붉은색의 작은 검 한 자루를 꺼내 휘둘렀다. 이 검은 번개처럼 달려들더니 마혼의 근처에 이르렀다. 그 순간, 능천후는 안타까운 마음을 품은 채 크게 외쳤다.
“폭발!”
그 외침에 작은 검이 무너져 내리면서 파멸적인 힘을 형성했고 그 힘은 마혼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캬아악!”
마혼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한제는 그 마혼이 고마(古魔)라는 것을 단박에 파악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산마(酸魔)와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왼쪽 눈에 반점이 있었다. 총 여덟 개의 반점 중 일곱 개는 어두워진 상태였고 남은 하나의 반점은 짙은 마기를 발하고 있었다.
고통에 시달리던 고마의 왼쪽 눈 안에서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했고 유일하게 반짝이는 마지막 반점이 더욱 짙은 마기를 발산했다. 그 순간, 고마는 한층 음산한 기운을 풍기겼다.
포효를 내지르던 고마는 몸을 훌쩍 날려 기린의 혼에게서 벗어나더니 곧장 능천후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꽉 쥐고 주먹을 휘둘렀다. 고신의 허상은 검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고신의 주먹이 날아든 순간 능천후에게 달려들던 고마는 우뚝 멈추더니 바르르 경련했다. 그리고는 능천후를 포기하고 하나의 마영(魔影)이 되어서는 곧장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제가 가진 고신의 기운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한제는 흑백의 두 가지 기운으로 휩싸인 원형의 음양 문양을 소환했다.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교차하는 흑백의 기운은 한제의 도념이 융합된 법보를 형성했다. 곤극 채찍이었다.
짝!
채찍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펼쳐졌고 그 안쪽으로 금빛이 드러났다.
달려들던 마영은 곤극 채찍에 맞는 순간 우뚝 멈추고 말았다.
“끄아아아!”
채찍에 맞은 부분에서 대량의 마기가 분출되었고 고마는 괴로운 듯 비명을 내지르더니 새빨개진 눈을 번득이며 다시 달려들었다.
짝!
한제가 다시 한 번 채찍을 휘둘렀고 이번에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고마의 몸을 후려쳤다. 이에 고마는 다시 경련을 일으켰고 한제는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고마는 곤극 채찍에 잔뜩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허나 수백 척을 물러난 고마의 몸이 갑자기 수축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검은색 손바닥이 되어 한제를 향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조심해! 저 손바닥은 모든 방어막을 관통한다!”
능천후는 그 손바닥을 본 순간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가슴팍에 남은 손자국은 저 손바닥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한제는 그 손바닥을 본 순간 눈을 번득였다. 저 거대한 손바닥은 어딘가 익숙했다.
‘우(雨)의 선계에서 봤던 그 손바닥!’
당시에는 한제의 수준이 충분치 않았지만 지금 그는 규열기 후기 절정에 이른 데다가 고신의 육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리자 당시 우의 선계에서 봤던 거대한 손바닥은 하나의 의지가 되어 그의 손에 녹아들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허상으로 나타난 손바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세를 품은 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그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힘껏 뻗었다.
콰르릉!
하늘과 땅의 기색이 급변했고 대지는 바르르 진동했으며, 주위를 뒤덮은 검은 안개가 광풍처럼 몰아치면서 사방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이어서 고마의 손바닥은 결국 무너져 내려 수많은 마기로 흩어졌다가 다시 응집되어 고마의 모습을 이루었다.
다시 나타난 고마는 놀란 표정으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도망을 치려는 듯했지만 그때 한제의 손바닥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이에 선제의 동굴 여덟 번째 층을 채운 검은 안개가 흩어지면서 한제의 앞에 길고 넓은 길이 하나 생겨났다.
“캬오오오!”
도망치던 고마는 거대한 손바닥에 관통당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고 몸이 갈라져 내리던 순간 왼쪽 눈이 튀어 나갔다.
그 순간에도 한제의 손바닥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밀고 나갔고 누각을 비롯해 앞을 막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 무너뜨리면서 순식간에 여덟 번째 층 중앙 대전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대전의 반 정도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안에 있던 99개의 촛대가 드러났다.
거대한 손바닥이 그곳을 휩쓴 순간, 단 두 개 남아 있던 촛불 중 하나가 격렬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꺼져버렸고 나머지 하나 역시 꺼질 듯한 조짐을 보이면서 마구 휘청거렸다.
능천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검은 안개
“가시죠!”
툭 내뱉은 한제는 손바닥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묵묵히 나아갔다. 허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마음도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사실 그는 그 손바닥의 모든 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 위력을 전부 발휘할 수 있다면⋯⋯ 선제의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능천후는 곧장 한제의 뒤를 따랐다. 앞서가는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깊은 두려움이 드리웠다.
한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악하기 힘든 자였다. 수준은 자신이 훨씬 높았지만 그는 한제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한제는 번개처럼 내달려 잠시 후에는 여덟 번째 층 중앙의 반쯤 파괴된 거대한 궁전에 이르렀다.
이동하는 동안 냉랭한 눈으로 뒤쪽의 능천후를 살핀 그는 대량의 단약을 꺼내 삼킨 뒤 저물대에서 은시를 꺼냈다.
순간 능천후의 눈이 다시 한 번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는 갈수록 짐작할 수 없는 상대로 여겨졌다.
‘정말이지 예측할 수가 없구나. 수준도 신통술도 그 어떤 것도 헤아릴 수가 없어!’
평생을 통틀어 짐작할 수 없었던 상대는 천운자 한 명뿐이었는데 이제는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한제는 이오에게서 받은 선단(仙丹) 중 하나를 삼켜 손바닥을 소환하느라 잃은 원력을 빠르게 보충했다. 손바닥을 소환할 때 사용한 원력의 양은 철검을 사용했을 때 소모했던 원력의 양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행히 방금 용암을 떠나온 한제의 체내에는 불 속성의 원력뿐만 아니라 아직 완벽하게 흡수되지 않은 대량의 원력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수개월간 호흡을 하면서 몸에 새겨진 주작의 문양이 흡수한 불 속성의 원력도 적지 않았다.
한제는 주작의 문양이 흡수한 원력도 자신의 체내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제가 그 용암 안에 그토록 오래 머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허나 한제는 주작의 문양이 가진 불 속성 원력 대신 체내에 남아 있던 흡수되지 않은 원력을 사용했고 단약의 효력을 더해 회복시켰다.
대전 안의 99개의 촛대 중 단 하나 남은 촛불이 발버둥 치듯 휘청거리며 타올랐다.
아무도 없는 대전으로 들어선 한제는 주위를 훑어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능천후는 한제를 따라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막 내려왔을 때만 해도 검은 안개는 없었어. 한데 이 대전에 들어와 아홉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연 순간 세 개의 마영(魔影)이 튀어나와 이곳을 검은 안개로 뒤덮어 버렸지. 그 마영들은 정말이지 괴이했다. 허공자는 순식간에 중상을 입었고 이오는 배이라의 기습에 당하고 말았어. 천운자 역시 배이라를 도왔지. 호연은 손을 쓰기도 전에 아홉 번째 층에 빨려 들어갔고 나는 한 마리 마영에게 부상을 입었다. 검은 안개로 사방이 뒤덮여 신식으로도 주위를 살필 수가 없었어.”
능천후에게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간단히 들은 한제의 미간은 점차 구겨졌다.
천운자가 배이라를 도왔다는 것도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다.
요령의 땅에 몇 차례나 들어왔을 천운자가 배이라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가 천운종(天運宗)에 있었을 때 자계(紫系)의 사형이 요술(妖術)과 같은 신통력을 발휘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또한 한제는 이 요령의 땅에서 능천후와 똑같지만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모습을 한 산마(散魔)의 육신을 얻은 적도 있었다. 그 산마의 육신은 아직도 한제의 저물대에 들어 있었다. 그 육신을 꺼내기만 한다면 능천후는 물론 천운자조차 표정이 변할 터였다.
‘고마(古魔), 고요, 천운자 능천후… 이들 사이에 대체 어떤 기이한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대전을 둘러보던 한제의 시선은 이내 유일하게 타오르고 있는 촛불에 닿았다.
“여기는 어떻게 활성화하죠?”
주일을 위해서도 사도환을 위해서도 한제는 반드시 아홉 번째 층으로 가야 했다. 아홉 번째 층에 들어가면 막대한 위험이 따르리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은인과 같은 두 사람을 포기하는 것은 이한제다운 행동이 아니었다.
“정말 들어가려 하느냐?”
능천후는 머뭇거리며 물었으나, 한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능천후는 이내 피식 웃더니 중얼거렸다.
“그래, 까마득한 후배인 네가 그토록 배포를 부리는데 아끼던 마수를 잃은 내가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천운자도 들어간 곳을 내가 못 가겠느냐!”
말을 마친 그는 곧장 촛대로 돌진했다. 그리고 호연이 했던 대로 지면에 놓인 촛대를 빠르게 이동시켰다.
순간 99개의 촛대가 움직이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고 곧 하나의 거대한 진을 형성했다.
촛대로 이루어진 진에서 발산된 어스름한 빛이 눈 깜짝할 사이 격렬하게 번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