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
동굴에 딸린 네 개의 석실 중 하나에 들어간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거대한 바위로 입구를 막은 뒤 저물대에서 30자루의 비검을 꺼냈다. 한제의 지시에 따라 비검들은 땅을 파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땅굴이 만들어졌다.
한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하얀색 빛 구슬이 됐고 색이 차차 변하다가 옅은 푸른색이 됐다. 이곳은 지음의 땅 일반 1품이었다. 시체 골짜기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황천승규결을 수련하여 한단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했다.
휙.
그는 몸을 날려 땅굴로 들어갔다. 땅굴 깊은 곳에서는 지음의 땅 일반 3품까지 품질이 올라갔다.
한제는 빛 구슬을 사라지게 한 뒤 눈을 감고 바르게 앉았다.
황천승규결은 이전에 한 번 수련해본 것이 전부였지만 그는 꽤 능숙하게 다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음한기가 천천히 그의 체내로 흡수됐다.
★ ★ ★
사흘 뒤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자신의 이마를 쳐 석주를 꺼냈다. 음한기가 깃든 이슬이 석주 표면에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한제는 그 이슬을 모조리 핥아먹었다.
또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한제는 매일 자리에 앉아 호흡을 하고 황천승규결을 단련시키면서도 음한기가 깃든 액체를 모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액체를 충분히 모으면 하루의 반 정도는 꿈속 공간에 들어가 액체를 마시며 수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단 한 달 만에 새롭게 두 개의 한단을 응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 마지막 한단을 만들어내 융합하면 결단기에 진입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지막 한 알의 한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제는 이미 축기 후기의 절정에 이른 상태였지만 황천승규결의 세 번째 한단을 만들어내는 일은 단순히 시간만 쏟는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처음부터 3개월 정도를 예상했기에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한제는 짬을 내 천천히 마혼(魔魂)을 길들였다. 이전에도 여러 번 시도해보았으나, 마혼의 몸에 신식을 응결시켜 직접 통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신식을 섞은 먹이를 먹이는 방식으로 천천히 길들여야 했다. 마혼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기에 이런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한제는 영혼의 깃발에 있는 영혼을 끄집어낸 뒤 자신의 신식을 찍어 마혼에게 던져주었다. 이 깃발에 깃든 영혼의 대부분은 투사파 제자들로 그중 상당수는 최근 스승의 총애를 두고 상목과 경쟁한 자들이었다.
영혼의 깃발에 있는 대부분의 영혼을 삼켰을 무렵 마혼의 체내에는 마침내 한제의 신식 한 조각이 자리하게 됐다. 심지어 마혼 자신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된 일이었다.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한제는 체내에 세 번째 한단의 형태를 갖춘 상태였다. 그 3개월 동안 그는 몇 차례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마다 모완이 있는 석실이 각종 약초와 재료로 뒤덮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완은 한제가 수련에 들자 곧바로 단약 제조를 시작했는데 심지어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진흙에 약초를 심고 그 주위에 영석으로 진을 배치해 자라나는 약초에 충분한 영기를 주입하기도 했다.
작고 정교한 단로(丹爐)가 놓여 있는 오른쪽 석실에는 제작에 실패한 단약과 옥패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모완은 단약을 만들다가도 어떤 영감이 들거나 막힐 때마다 옥패의 기록을 살피곤 했다.
동굴 안의 석실 네 개 중 한제가 들어가 있는 석실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는 각각 연단방, 재배실, 그리고 모완이 개조해놓은 욕실이었다. 수마해의 안개는 습하고 축축했는데 동굴 안도 예외는 아니라 옷이 몸에 딱 달라붙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습하고 축축한 안개에 몸이 끈적거렸는데 이를 견딜 수 없었던 모완은 적지 않은 힘을 들인 끝에 석실 중 하나를 욕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한제는 욕실을 못 본 척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영력을 전환시키는 것뿐이었다. 옷을 적신 한기도 곧장 몸으로 흡수해 한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에게 안개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교룡의 뼈 덕에 구리시골진의 위력은 대폭 상승된 상태였다. 모완의 말에 의하면 이제 이는 더 이상 구리시골진이 아니라, 구리용교진(九離龍蛟陣)이라고 불려야 했다. 이 진이 활성화되면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를 수개월 동안 붙들어둘 수 있고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도 며칠 정도는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완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교룡이 이미 죽었다는 점이었다. 살아 있었을 때 교룡을 진 안에 흡수시켰다면 진은 공격성까지 갖춰, 원영기 이하의 수련자는 진입하는 순간 죽음을 맞을 것이었다. 심지어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라고 해도 쉽게 견뎌내기는 힘들 터였다.
교룡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교단은 더 좋은 용로를 얻을 때까지 연단을 미뤄두었다. 또한 모완은 거의 한 달이 걸려 비검으로 교룡의 가죽을 벗겨낸 뒤 이를 잘 접어 한쪽에 보관해두었다.
골수와 교단 다음으로 중요한 힘줄 역시 잘 보관 중이었다. 골수는 작은 병에 고이 담아두었다. 골수를 넣은 단약을 만들다가 실패하면 아까워서 어쩌나 싶을 정도로 골수는 중요한 것이었다.
한제는 골수와 힘줄만 챙기고 그 나머지는 모두 모완에게 넘겨 처리하게 했다. 모완의 야무진 손질 아래, 교룡의 가죽은 두 개의 갑옷이 됐다.
한제와 모완은 이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모완은 빙그레 웃으며 고맙다는 말도 없이 곧장 갑옷을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두 개의 갑옷을 만든 뒤에도 교룡의 가죽은 잔뜩 남아서, 한제는 이를 저물대에 챙겼다. 이는 나중에 다른 물건으로 교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 마리의 교룡은 여러 가지의 보물을 남겼다.
또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한제 체내의 세 번째 한단이 마침내 응결됐다. 세 개의 한단은 그의 머리, 가슴, 배에서 음한기를 풍기며 서로 순환했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감격한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눈을 감은 채, 사도환에게서 들은 대로 한단들을 하나로 융합시킬 준비를 했다.
세 개의 한단을 합치는 작업은 기초 융합과 심층 융합으로 나뉘었다. 기초 융합에 성공한다면 결단기에 반 발짝 정도 들어서는 셈이었다. 그 상태에서 심층 융합에도 성공한 순간 천리단을 복용한다면 결단기에 완벽하게 진입할 수 있을 터였다.
모완이 가진 반제품 천리단은 단 하나였기 때문에 완성품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을 최대한 높여야 했고 그러려면 훌륭한 용로가 필요했다. 동시에 모완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혈 덩굴로 차등 품질의 천리단을 만들 준비를 해두었다.
한제는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합치는 데 성공하면 남투성에서 교룡의 가죽으로 용로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걸로도 용로를 구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한제는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 돌입했다.
기초 융합은 조규(祖竅), 기해(氣海), 단전(丹田)에 하나씩 자리한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서 세 개 혈의 평형을 깨트리고 조규의 한단을 가라앉혀, 기해의 한단과 융합시키는 것이었다.
기초 융합에 성공하면 그 뒤에는 단전의 한단을 가라앉혀 이미 융합되어 있는 조규와 기해의 한단에 융합시켜야 했다. 이 경우 확률에 따라 결단기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었으며, 진정한 금단(金丹)도 형성될 터였다.
한제는 가만히 석실 내 땅굴에 앉아 있었다. 지금 이 크지 않은 공간 안에는 진한 음한기가 가득했다. 한제는 두 눈을 꼭 감고 신식을 체내로 불러들여 조규혈에 집중했다.
그가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은 체내의 조규에 맺힌 한단을 아래로 가라앉히는 일이었다.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은 굉장히 어려웠다. 이전에는 그냥 알고만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제 와서 직접 하려고 보니 보통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결단 (1)
조규의 한단을 가라앉히는 데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한제는 거의 매순간 전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조규의 사방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공격하고 때리든 흔적조차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황천승규결을 수련하려면 조규, 기해, 단전 세 개 혈을 세 차례씩 파괴해 한단을 맺게 해야 하는데 이는 갈수록 어려웠다.
첫 번째로 파괴할 때에는 그냥 어려운 정도였다면 두 번째는 무척 어려운 정도였고 세 번째 파괴는 비할 바 없이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한제가 해야 하는 작업은 실제적으로 이 조규혈의 네 번째 파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어려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여러 차례 충격을 주는데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한제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충격을 가하지 않고 천천히 마모시키기로 한 것이다.
무형의 장애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깎여나가 전에 비해 얇아졌다.
그러나 이 작업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한제의 몸이 격렬하게 떨려왔고 구슬땀이 비처럼 흘렀다. 그의 옷은 잠시도 마를 새가 없었다.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은 강력한 의지가 없는 한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의지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대산파 입단 시험 당시 돌계단에 두 갈래의 혈흔을 남겨 사람들을 탄복시킨 그가 아니던가?
한제는 놀라운 의지력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낸 끝에 마침내 3개월 만에 조규혈을 타파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색 한단이 천천히 조규혈로부터 가라앉으면서 가늘고 세밀한 얇은 선을 한제의 체내 곳곳에 뻗쳤다. 그 가느다란 선은 한 갈래씩 퍼져나가 마침내 기해혈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곧바로 두 번째 마찰을 시작했다.
퍼퍼퍼퍽.
또다시 3개월이 지나자 기해혈도 마침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파괴되었다. 그와 동시에 조규에서 내려온 한단과 기해에 맺혀 있던 한단이 맹렬하게 부딪혔다.
한제는 체내에서 나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동시에 충돌이 있던 곳에서부터 엄청난 힘이 생성되어 미친 듯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한제의 얼굴은 삽시간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그의 목울대가 몇 번 일렁거리더니 그는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안개처럼 내뿜은 피는 순식간에 얼어 핏빛 얼음 결정이 되어버렸다.
한제는 살짝 몸서리를 친 뒤 저물대에서 여덟 개의 하급 영석을 꺼냈다. 이 여덟 개의 영석은 서로 부딪혀 가루가 되더니, 어떤 궤도를 따라 그의 몸에 기이한 부호를 만들었다.
이 부호는 미약하게 번득이다가 사라졌고 동시에 검은 비검 한 자루가 저물대에서 나와 한제의 곁을 한 바퀴 돈 뒤 공중에 얌전히 떴다. 마혼의 그림자가 그 비검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마혼은 한제를 힐끗 보더니 반항할지 말지 망설였다. 하지만 한제가 그의 몸에 심어놓은 신식이 효력을 발휘하자 마혼은 순순히 사방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마치자 한제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나 싶더니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한제는 방어진을 배치해놓았다.
마혼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도 바닥에 쓰러진 한제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진짜 정신을 잃은 건가? 그럼 처리할까? 아냐, 교활한 녀석이니 연기하는 걸지도 몰라. 조심해야 해.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는데⋯⋯. 아냐,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어.’
결국 마혼은 한제를 좀 더 살피기로 했다.
★ ★ ★
다음날.
‘하루 종일 관찰했지만 역시 정신을 잃은 거야.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지도⋯⋯. 아냐, 이 자식이 얼마나 교활한데 무방비하게 쓰러져 있겠어? 게다가 쓰러지기 직전에 일부러 날 꺼내놓은 걸 보면 함정일 거야.’
마혼은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한제를 노려보았다.
‘안 속는다, 안 속아. 이한제!’
또 하루가 지났다. 마혼은 이제 아예 한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다시 이전의 욕망이 꿈틀댔다. 그는 으르렁거리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기는 아닌 것 같군. 좋아, 처리하자!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자 처리하자! 처리하자고!’
두 눈이 벌게진 마혼은 몸을 날려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방어용 진은 그에게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았다. 마혼은 한제의 몸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혼은 비명을 내질렀다.
지지직.
가죽이 타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마혼은 얼른 뒤로 물러나면서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이 천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자식, 언제 내 몸에 신식을 심어둔 거냐! 나⋯⋯ 나는 이제 어떻게⋯⋯.”
마혼은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달프게 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혼은 얌전히 구석에 꿇어앉아, 맞은편 벽을 바라보며 슬픔과 분노를 쓸어내렸다.
사흘째 되던 날, 한제가 깨어났다. 그는 일어나 앉으며 쓰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세 개의 한단을 합치는 작업을 얕잡아 봤음을 깨달았다. 두 개의 한단을 합쳤을 때 발생한 이 파멸적인 한기가 바로 융합 작업의 관건이었다.
이 한기를 몸 밖으로 내보냈다가는 융합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몸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그의 몸은 버텨낼 수가 없을 터였다.
한제는 어두워진 얼굴로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전에 황천승규결을 수련했던 사형들은 어떻게 세 개의 한단을 하나로 합쳤던 걸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사도환만 하더라도 황천승규결을 수련하지 않았던가? 그는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도환도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한기를 견딜 수 있는 거지?”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