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3
줄곧 한제를 주시하던 사도환 역시 곧장 그를 뒤쫓아 함께 도망쳤다.
다음은 이오와 호연이었고 이어서 모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천운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채 전방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몸에서 회색빛이 번득이더니 회색 옷의 천운자가 나타났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천운자의 본체를 한 번 훑어보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뒤 금제를 향해 돌진했다.
수없이 많은 살육의 기운이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금제들을 꿰뚫었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넓게 펼쳐져 있던 금제들이 격렬하게 번쩍였다.
하지만 이곳의 금제들은 한제만이 아니라 금제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호연과 이오 등이 함께 배치한 것이었다.
덕분에 회색 옷의 천운자라도 쉽게 제거할 수는 없었고 한제 등은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오는 후퇴하는 와중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한 줄기 수막을 형성했다.
수막은 순식간에 바닷물로 이루어진 거인이 되더니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하늘을 후려쳤다. 순간 온 세상이 뒤흔들리면서 커다란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호연은 도망치지 않고 저 멀리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끊임없이 금제를 쏘아 보냈다.
한제는 역시 도망치는 와중에 결인을 그려 이 부부와 함께 위쪽을 공격했다. 다른 수련자들도 힘을 보탰다.
콰르릉!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 가득히 굉음이 울렸다.
★ ★ ★
요령의 땅 밖 우주 공간. 주작진령 주위의 여섯 노인은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더니 한 손으로 중앙의 주작진령을 가리켰다. 그러자 주작을 이루는 화염이 더욱 짙어졌다.
잠시 후, 주작진령은 주작명(朱雀鳴)을 울렸다. 이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바다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열기를 품은 이 화염은 주작성종 사람들을 제외함 모든 것, 심지어 먼지까지 불살라버렸다. 이제 그곳에 남은 유일한 존재인 요령의 땅이 똑똑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캬오오오!”
주작진령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주작진령은 요령의 땅을 두른 봉인에 계속해서 충돌했고 봉인은 점차 느슨해졌다.
여섯 명의 쇄열기 수련자들도 끊임없이 신통술로 봉인을 공격했다. 선계가 존재하던 당시 청림이 직접 만들어놓은 봉인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외부의 충격은 요령의 땅 안, 심지어 선제의 동굴 안에서도 똑똑히 느껴졌다.
안팎에서의 끊임없는 공격 아래 선제의 동굴과 요령의 땅을 막은 벽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회색 옷의 천운자가 호연의 금제를 뚫고 튀어 나갔다. 호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뒤로 물러났고 이오가 곧장 그녀를 낚아채 벽 너머로 돌진했다.
그때, 타지아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음산한 미소를 드리운 입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끝없는 마기가 퍼져나가면서 한 마리 검은 용이 되더니 한제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악!”
진도삼자 중의 둘째가 순식간에 용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제는 그를 구하려 했으나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검은 용은 이어서 곤허경 중년 여인의 제자 중 하나인 천령을 칭칭 감았다. 이어서 용이 그녀를 막 집어삼키려는 순간, 분홍 옷의 여인이 움직였다. 그녀는 휘날리는 눈꽃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천령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을 두른 눈꽃과 검은 용이 충돌했고 여인은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아내느라 약해진 상태였던 눈꽃 법보는 결국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분홍 옷의 여인은 끝끝내 천령을 끌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대두와 진도삼자 등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수련자들도 강자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아직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타지아가 한 발 나서며 손을 뻗더니 허공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크윽!”
“컥!”
그 손짓에 방금 막 동굴을 벗어나 요령의 땅을 밟은 사람들은 엄청난 힘이 몸을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특히 천령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뿜어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분홍 옷의 여인도 바들바들 떨면서 붕괴했으나, 그 순간 곤허경의 법보가 번쩍이더니 피 안개로 흩어진 그녀와 천령의 원신을 감쌌다. 덕분에 완전히 흩어지지는 않았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 두 여인의 원신은 뒤섞여버렸다.
진도삼자 중 셋째의 육신도 무너져 내렸으나, 일진자가 재빨리 그의 원신을 건져내 재빨리 도망쳤다.
뇌길은 비록 수준은 떨어졌으나 강력한 육신 덕에 온몸의 절반 정도가 무너진 후 겨우 살아남았고 요행히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대두와 함께 달아났다.
정열기 수준인 부풍자와 사도환은 울컥 피를 토하긴 했지만 잘 견뎌냈다. 다만 사도환은 표정이 변한 것으로 보아 방금의 충격 때문에 체내의 독소가 발작하기 시작한 듯했다.
본래 고마의 신통술이라면 이들을 모두 소멸시키고도 남았을 터였다. 허나 타지아가 손을 뻗은 순간 이오와 호연이 큰 부상을 당할 것을 감수하고 그 충격의 상당부분을 감당해냈다. 이는 한제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한 행동이었다.
한제 역시 이들과 함께 고마의 신통술을 적지 않게 막아냈다. 그 대가로 검은 피를 토해내더니 낯빛이 어두워졌고 체내의 원신 역시 큰 부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었다.
체내의 불 속성 원력은 무궁무진했지만 원신이 흩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한제는 이오에게서 받은 납환을 꺼내 부순 뒤 한입에 집어삼켰다. 이 신비로운 단약을 복용하자 원신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오와 호연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지만 눈빛만큼은 견고했다.
“이한제, 우리 부부는 죽을 각오로 고마에게 저항할 것이다. 스승님을 부활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겠구나. 그러니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를 대신하여 청상을 살려내라!”
이오는 오른손을 움켜쥐어 앞쪽에 균열을 일으키더니 그 안에서 주일을 꺼내 한제에게 던져주었다. 그런 이오의 표정은 무척 복잡해 보였다.
그때 타지아가 벽을 넘어 모습을 드러내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크하하! 청림, 너는 네 육신을 빼앗은 나를 이곳에 가둬두려 했지. 그래서 네 육신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금제를 만들어두었지만 나의 환술에 넘어간 저자들이 네가 정한 규칙을 파괴하고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너를 구하고 싶어 하던 자들 덕에 네가 그토록 막으려던 일이 터진 것이지! 기분이 어떤가? 말해보아라! 크하하하!”
타지아는 말 그대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에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줄곧 느껴온 불길함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특히 고마의 눈빛을 본 순간 그의 동공은 바짝 졸아들었다.
“이제 너희에게 이 몸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타지아는 광오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콰르릉!
갑자기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왜곡되더니 허상이 하늘에 나타났다.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바다를 이룬 공간 가운데 있는 한 궁전의 모습이었다.
“고마⋯⋯ 나의 부군 청림이 만든 규칙 중 하나야 네가 좌절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이 동굴 밖으로 나온 순간 부군의 두 번째 규칙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몰랐던 모양이구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허상의 궁전으로부터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화비!”
왕림
허상의 궁전은 화비가 나타나자 점차 실체화되어갔다. 마치 동굴 안에 있던 것을 그곳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이어서 그 궁전은 사방의 다양한 꽃들과 함께 순식간에 축소되더니 줄어들더니 화비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그녀가 고운 손을 움켜쥐자 궁전은 체내로 녹아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는 슬픔과 비통함이 섞인 눈으로 타지아를 바라보았다.
지척에 있음에도 만날 수 없었던 남편을 수천 년만에야 다시 보게 됐지만 남편은 다른 존재에 점령된 상태였다. 겉모습은 틀림없는 남편이지만 지금의 남편은 혼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타지아는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화비를 바라보았다. 피에 굶주린 듯한 흉악함과 탐욕이 어린 눈빛으로 그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일찍이 청림은 여복이 넘쳐 여덟 명의 비가 모두 아름다웠으나 그중에서도 화비가 으뜸이라는 소문이 있었지. 풍(風)의 선계에서 온, 풍선계의 선제 남운의 여동생이라고 했던가? 당시에는 연이 없어 보지 못한 그 여인을 오늘에서야 보다니, 과연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군! 허나 네 남편의 육신은 이 몸의 것이 되었다. 이제 너를 제물로 삼을 차례로구나! 크하핫!”
타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한 손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허나 여유로운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화비가 아니라 청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화비의 말대로라면 청림은 일찍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화비의 출현도 그런 대비책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청림은 당시 가장 강한 선제로 계외의 존재였던 나 역시 그의 소문을 들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예측과 계획에도 뛰어나 어느 것 하나 대충 넘기거나 빠뜨리는 법이 없었지!’
타지아가 몸을 날린 순간 요령의 땅 전체가 진동했고 하늘에는 시커먼 안개가 나타나 사방을 뒤덮었다. 그가 손을 뻗자 검은 안개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변화하더니 거대하고 시커먼 팔이 되어 화비를 낚아채려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곁에 있던 인영이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아직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쉭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허공자는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벅찬 듯이 숨을 헐떡였는데 마치 지친 야수의 헐떡임처럼 꽤 멀리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데 그는 숨만 헐떡거리는 것이 아니라 입가로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툭 불거져 나온 눈은 충혈된 채 광기에 젖어 있었고 늙은 얼굴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역시 한제를 노려보았다. 마지막 기억 속에 한제에 대한 한과 살의가 남아 있던 그는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더니 인영의 뒤를 따라 곧장 돌진했다.
반면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의 천운자는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선제의 동굴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자신의 예상과 계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능천후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저항하는 듯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편, 이오와 호연이 그 인영과 허공자를 막아섰다. 다만 이 부부는 중상을 입은 상태인 데다가 인영은 너무도 기이해서 그들의 승부가 어떻게 갈릴지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던 허공자는 두 사람이 자신을 막아서자 눈빛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한제뿐이었다. 누구든 그 앞을 막는다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크르르!”
이오가 달려든 순간 허공자는 마치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며 온몸의 근육을 꿈틀거렸다. 그 기괴한 모습에 이오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