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4
한데 그가 뒤로 물러난 순간 허공자가 입을 쩍 벌리더니 짙은 비린내가 풍기는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 순간 허공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체내의 피를 전부 뱉어낸 것이었다.
대량의 검은 피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물 형태를 이루더니 이오에게 달려들었다.
이오는 뒤로 물러나면서 결인을 그려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거대한 빙산이 나타나 앞을 막아섰다.
한데 이 빙산은 그 검은 피의 그물에 닿자 삽시간에 녹여내리더니 시커먼 물로 변해버렸다.
“이한제! 쇄열기 절정에 이른 상태에서 다섯 번의 천쇠 중 첫 번째 천쇠의 육쇠(肉衰)를 겪는 자의 얼굴이다. 이자의 육신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고 결국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다가 그대로 소멸될 것이다!”
이오는 다급하게 외치며 허공자를 계속해서 저지했다.
한편, 인영과 교전을 벌이던 호연은 부상 탓인지 밀리는 형국이었다.
이오는 재빨리 손을 휘둘러 한제 앞에도 커다란 빙산을 세운 뒤 호연에게 다가가 그 기이한 인영에 맞섰다.
막는 사람이 없어지자 허공자는 입가로 끈적한 침과 검은 피를 질질 흘리며 한제에게 돌진했다. 짐승처럼 변한 그의 모습은 수련자 연맹의 장로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저게 첫 번째 천쇠를 겪는 모습이라니⋯⋯.’
두 번째 단계에 이른 뒤부터는 수명의 제한이 거의 없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원기가 끝없는 생기가 되어 전신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이 하나의 생명을 영원히 존재하게 둘 리가 없었다. 쇄열기의 천쇠는 끝없는 천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준이 쇄열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안락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재난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허공자는 격렬하게 숨을 헐떡이면서 곧장 빙산 앞까지 들이닥치더니 다시 그 피의 그물을 쏘아 보냈다. 그 피에는 심지어 썩은 내장 조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화비는 타지아가 만들어낸 검은 팔이 덮쳐온 순간 고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순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둘러싸인 공 하나가 나타났다. 공 주위는 수없이 많은 환영의 꽃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쾅!
그 작은 공과 충돌한 순간, 거대한 팔은 바르르 떨리더니 곧장 무너져 내려 수많은 검은 기운으로 흩어졌다.
타지아는 내심 당황했으나,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곧장 화비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결인을 그려 두 팔을 휘둘렀고 그러자 하늘을 가득 뒤덮은 검은 안개가 한데 응집되더니 순식간에 검은 안개 덩어리들로 변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에게는 익숙한 신통술이겠지?”
타지아는 비열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장성(葬星)!”
그 순간, 하늘을 채운 수많은 검은 안개 덩어리들은 더욱 빠르게 꿈틀거리며 눈 깜짝할 사이 하나하나의 공이 되어 빛을 발산했다. 깊은 밤이건만 하늘은 빛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부군의 일, 월, 성 중 장성술⋯⋯.”
화비는 복잡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너는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녀의 말에 타지아는 다시 한 번 차게 웃으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안개의 공들은 더욱 밝게 빛나면서 점차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고 그의 손짓에 따라 화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치 그녀를 이곳에 묻어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만약 부군이 장성술을 발휘했다면 1만 명, 10만 명에게도 충분히 대적할 만한, 성역 하나를 뒤덮을 만한 힘을 소환했을 것이다.”
화비의 눈에 경멸의 빛이 어렸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그 별빛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한 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향기를 토해냈다. 순간 그녀의 주위에 아홉 개의 공이 나타났다.
본원의 힘이 깃든 이 아홉 개의 공은 화비의 곁을 맴돌면서 진법을 이루었고 하늘을 채우며 교차된 별빛들은 일제히 그녀의 몸에 응집되었다. 그 순간, 그녀가 선 곳은 이 하늘 아래 가장 밝은 곳이 되었다.
★ ★ ★
한편, 우주에서는 주작진령이 끊임없이 충돌한 끝에 요령의 땅을 감싼 봉인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낮과 밤을 가르는 시초의 규칙의 빛이 우주를 비추었다.
요령의 땅의 하늘 또한 붕괴해 마디마디 부서지고 갈라졌으며,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주작성종의 왕림이었다.
★ ★ ★
천운자의 표정에 처음으로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선제의 동굴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계산 안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는 이 동굴이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선제 청림의 예상대로임을 심지어 천운자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것 역시 그 예상의 일부분임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선제 청림과 싸우고 있는 셈이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냉철한 천운자조차 심장이 쿵쾅댔다.
한데 당시 선제의 계획에는 정말 빈틈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천운자 자신이 그보다 한 발 앞선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천운자에게 이 기회는 매우 소중했다. 성공한다면 그의 도심은 대폭 높아질 것이고 선제 청림의 계획을 예측했다는 사실에 큰 자신감까지 생기면서 이전에 입은 부상을 완벽히 회복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실패하게 된다 하더라도 천운자에게는 꿈에 그리던 기회였다. 이 수만 년을 뛰어넘는 예언 대결을 통해 그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위해 그는 어떠한 대가도 아끼지 않았다. 타지아가 무슨 소용이고 수련자 연맹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온 세상을 뒤덮을 재난이 몰아친다 해도 자신이 도심을 추구하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해봐야 선제 청림의 육신이나 신통술이었고 더 나아가봐야 세 번째 단계에 대한 단서 정도였다. 허나 자신의 목적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예언을 통한 선제 청림과의 결투였다.
‘청림, 당신은 고마를 봉인하고자 여러 수단을 심어 놓았다. 허나 난 그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고마는 단지 당신과의 결투를 위한 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천운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자신의 심산을 눈치챌 사람이 있다 해도 능천후 한 명뿐일 것이다.
한데 그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일어났다. 바로 한제가 이곳에서 주작을 각성시킨 것이다. 그때부터 천운자는 약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허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의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타지아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환술로 여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몰아세워 그들로 하여금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뚫게 한 것도 그가 예측한 바였다.
허나 이번에는 더욱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바로 이한제가 주작의 두 번째 각성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 역시 천운자의 예상을 벗어난 것으로 이제 그의 예측에는 조절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주에서 일어난 변화로 천운자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이제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왔군.’
눈을 감은 순간 천운자의 체내에서 일곱 가지 색의 빛이 번득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색이 섞여 있었으니 그의 몸은 여덟 가지 색으로 빛난다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이내 그의 채내에서 여덟 명의 서로 다른 색 옷을 입은 분신들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회색 옷의 천운자도 섞여 있었다.
비록 생김새는 똑같지만 각자 확연히 다른 기운을 뿜어내는 이들은 곧장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한제와 운선 부부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 세 명의 분신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하늘로 향했다.
필사적으로 싸우다
그 무렵, 별빛에 둘러싸인 화비의 온몸에 응집된 빛이 쾅 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홉 개의 공을 두르고 있던 화비는 가볍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은 어두워졌지만 표정만큼은 그대로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타지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등이 굽은 칼을 소환했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 보냈다.
화비가 돌연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하늘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녀는 당시 청림이 남겼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다. 선령천경이 붕괴할 때 난 깨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때, 타지아가 쏘아 보낸 검기가 하늘로 돌진했고 화비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면서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몸을 두른 아홉 개의 공을 휘둘러 그 검기에 대적했다.
쾅! 쾅! 쾅!
연이은 굉음과 함께 느껴지는 강력한 반동에 화비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났고 기회라 여긴 타지아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한제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기 어린 모습으로 달려들던 허공자는 이오의 빙산까지 무너뜨리면서 곧장 그를 덮치려 들었고 회색 옷의 천운자가 냉랭한 눈으로 달려들었으며, 그 외에도 두 개의 분신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넷은 하나하가 모두 엄청난 강자들이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살기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한제는 곧장 뒤로 몸을 날렸다.
한데 그때…
콰쾅!
돌연 하늘이 무너지면서 그 너머 우주에 나타난 시초의 규칙이 요령의 땅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거울처럼 깨져버린 하늘 바깥에서는 주홍색 화염이 몰려들었고 이에 하늘은 산산조각이 나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 주홍색 화염이 몰려든 순간, 요령의 땅에 주작진령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캬아아아!”
큰 위기 앞에 도망치기에 바빴으나 한제는 익숙한 힘이 사방을 채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령성의 절벽에서 몇 개월에 걸쳐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그가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낸 신통력인 잔야력에서 기인한 익숙함이었다.
어둠을 찢으며 떠오른 아침 해로부터 깨달은 잔야력!
천운자의 분신 셋과 허공자에게 쫓기고 있던 한제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자신을 쫓던 존재들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온 세상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시초의 규칙이 그에게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듯 몰려들었다.
한제는 기묘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모두 사라지더니 당시 수령성에서 보았던 광경만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밤을 찢어내던 떠오르는 아침 해의 힘!
한제를 향해 달려들던 회색 옷의 천운자는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고 심지어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곁에 있는 다른 두 분신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회색 옷의 천운자가 찬 숨을 들이마셨다.
오직 허공자만이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 육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첫 번째 천쇠를 겪는 원신에 불과했다. 토해냈던 검은 피도 내장도 모두 원신으로 이루어진 허상일 뿐이었다. 그의 육신이 완전히 썩어 문드러질 때 그의 원신 역시 소멸할 터였다.
이성을 잃은 그는 한제를 집어삼키겠다는 일념만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제로부터 1백 척 앞에 이른 순간, 허공자의 눈에 비친 한제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밤이 되어 버렸다.
무너져 내린 하늘 사이로 떨어진 화염도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이 순간, 한제가 선 곳만이 별개의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하늘만 어두워진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귓가에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천운자의 세 분신 역시 그 끝없는 어둠에 잠긴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