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5
아무리 신식을 펼쳐보아도 한제의 흔적은 조금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가 눈 깜짝할 사이 세상에 존재하는 규칙에 녹아들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한 와중에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연이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어렴풋이 드러난 전방의 광경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드넓은 바다 상공에 떠 있음을 눈치 채게 됐다. 이 끝이 없는 바다에서는 성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휙휙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는 소금기가 어려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감각이었다.
“크아아아! 어디 갔느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이한제!”
허공자의 성난 포효가 고요한 밤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한제를 찾지 못한 그는 거의 미친 듯 바다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오히려 파도만 더욱 격렬해졌다.
회색 옷의 천운자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 불쑥 솟아올랐다. 너무도 낯선 이 감각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어렴풋이 뭔가를 깨달을 것도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심신은 자꾸만 흔들렸고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 저 먼 곳, 요동치던 해수면에서 붉은 빛이 나타났다.
순간, 회색 옷의 천운자의 눈에는 전에 없던 두려움이 어렸다. 그는 그것이 좀 전까지는 감히 믿을 수도 없었던 규칙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곧장 뒤로 물러났다. 머리가 저릿했지만 어디로 도망을 치든 이 드넓은 바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밝힌 붉은 빛이 갈수록 짙어지더니 이내 시뻘건 태양이 나타났다.
태양 아래 성난 파도가 하늘에 닿을 듯 남실거렸다. 순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육신이 이미 흩어져 밤하늘에 녹아든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성을 잃은 허공자 역시 멍한 표정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고 이성을 되찾을 조짐을 보였다. 순간 그의 두 눈에 격렬한 충격의 빛이 드러났다.
“시⋯⋯ 시초의 규칙!”
한제의 수준은 잔야력을 창조해낸 당시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
파도 소리가 네 사람의 귀를 때렸다. 기이한 박자를 따르는 듯, 세상의 규칙을 품은 듯한 소리였다.
회색 옷의 천운자는 바싹 마른 입안에서 쓴맛이 나는 것을 느꼈다. 다른 두 분신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심장이 요란하게 박동하기까지 했다.
이미 완전히 정신을 차린 허공자도 저 바다 끝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태양이 반 정도밖에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마치 잘 벼린 검과도 같은 빛줄기들이 밤하늘을 조각내고 있었다.
영겁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 같기도 찰나의 순간 같기도 한 시간이 흐른 후, 잔야력의 태양이 해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그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이 힘은 바로 햇살이었다. 시초의 규칙을 품은 태양은 모든 장애물을 파괴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뒤덮고 천도를 진동하게 하고 검은 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밤은 갈가리 찢기고 조각나 흩어졌고 그 자리를 빛이 대체했다.
이것이 바로 잔야력이었다.
그 안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한제의 살기도 어려 있었다.
선제의 동굴에서 내내 쫓기고 천운자와 타지아의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셈이었다.
주작의 두 번째 각성 덕에 태양에서는 한제의 신통술로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뜨거운 작열감까지 훅 끼쳐왔다. 이는 시초의 규칙과 한제의 잔야력이 떠오르는 아침 해에 기대어 세상에 발현된 힘이었다.
한제의 분노를 품은 이 잔야력에 가장 먼저 대면한 것은 거리상 가장 가까운 허공자였다.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햇살의 작열감이 대지를 가로질렀을 때, 허공자는 이미 거의 죽은 상태였다.
첫 번째 천쇠의 실패는 이미 그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어 있었다. 만약 타지아의 표식이 미간에 찍히지 않았다면 그는 진즉 죽어 없어졌을 터였다.
펑! 펑!
두 번의 폭발음과 함께 허공자의 두 다리가 터져나가며 원신의 기운이 되더니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한없는 두려움과 충격에 사로잡혀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허공자의 미간에 찍힌 고마의 표식 역시 잠시 후 쾅 하고 무너져 내렸다.
“끄아악!”
그제야 허공자는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봤지만 망망대해 위에서 태양을 피할 길이 있겠는가!
결국 그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강렬한 햇살에 관통되었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뻥끗거리다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위풍당당한 쇄열기 절정 수준의 강자이자 수련자 연맹에서 혁혁한 지위를 차지했던 수련자.
일평생 남부럽지 않은 위세를 떨치며 수많은 수련자를 죽인 극강의 수련자.
허나 그도 결국 윤회에서, 첫 번째 천쇠에서, 그리고 그 자신이 묻었던 악의 씨앗에서 싹튼 결과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잔야력의 햇살은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나가 천운자의 세 분신을 향해 돌진했다.
“크윽!”
회색 옷의 천운자는 몸 곳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몸이 갈래갈래 찢기는 것 같은, 그로서는 일평생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심지어 이미 독립된 그의 원신까지도 그 고통에 휩싸였다.
강렬한 죽음의 위기감이 닥쳐온 두려움을 애써 누르며 그는 두 팔을 펼쳤다. 순간 그의 체내에서 짙은 안개가 발산되더니 수없이 많은 살육의 기운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끝없는 살육의 기운은 하늘을 거의 다 채우고는 쉭쉭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해수면의 파도 소리마저 덮은 그 소리는 잔야력에 저항했다.
그의 곁에 있던 노란 옷을 입은 분신은 빠른 속도로 몸을 회전시켜 하늘을 꿰뚫을 듯한 폭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순간 하늘의 기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갈라진 밤하늘 위로 수많은 노란색 파문이 일어났고 그 중앙에서 천운일지가 나타났다.
노란 옷의 천운자는 본체의 천운일지 공법을 소유한 분신인 모양이었다.
“하앗!”
낮은 기합과 함께 하늘에 나타난 천운일지는 천지개벽의 기세를 품은 채 곧장 해수면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태양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자색 옷을 입은 마지막 분신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뒤로 자색 안개가 나타나더니 위로 솟아오르면서 밤과 하나로 뒤섞였다. 심지어 자색 옷의 천운자 자신도 흩어져 검은 밤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자색 기운이 더해진 검은 밤에서 흉측하고 거친 인영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를 품은 그 인영들의 모습은 각기 달랐는데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지옥에 갇힌 원귀처럼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천운종 내에서 삼켜진 이들이었다.
한데 이 세 분신이 신통력을 발휘한 순간, 밤하늘은 저 멀리 떨어진 태양에서 발산된 햇살에 관통되어 버렸다.
펑! 펑!
검은 밤 속에서 나타난 살기 어린 인영들은 태양을 향해 달려들다가 햇살에 관통되어 터져나갔다. 마치 불을 보고 달려든 나방처럼 사방을 휩쓰는 햇빛에 불이 붙기도 했다.
이들은 갈라지고 찢어지면서 흩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크윽!”
자색 옷의 천운자는 몸이 왜곡되더니 검은 밤에서 억지로 벗어나려 애썼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해냈고 견디기 힘든 통증에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 무렵 천운일지가 엄청난 기세를 품은 채 아침 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미처 다가서기도 전에 햇빛에 휩쓸려 펑, 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활활 타오르더니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버렸다.
“시초의 규칙… 세상 모든 규칙의 시작!”
노란 옷의 천운자는 창백한 얼굴로 칠규(七竅)에서 피를 흘렸다. 뒤이어 한 움큼 피를 토해내더니 비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회색 옷의 천운자가 소환한 수많은 살육의 기운이 마치 창룡처럼 태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살육의 기운마저 잔야력의 햇빛에 닿자마자 화르륵 불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렸다.
회색 옷의 천운자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빛났다.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그는 자칫하면 이 자리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존의 힘
“크아아!”
회색 옷의 천운자는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 순간, 체내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렸고 두 눈이 붉게 변했으며, 정수리에서 붉은 빛이 도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새빨간 혈검 한 자루가 쑥 빠져나왔다.
이 혈검은 그가 평생 수련한 살육의 기운의 근본이자 모든 살육의 근원이었다. 그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세상은 순간 무궁무진한 살육의 기운에 뒤덮였다.
회색 옷의 천운자가 두 손을 앞으로 뻗자 혈검이 앞으로 돌진했다.
노란 옷의 천운자 역시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두 손을 펼쳤다.
순간 한 가닥 유성처럼 하늘을 향해 돌진한 그의 머리는 엄지를 두 팔은 검지와 중지를 두 다리는 약지와 소지를 그리고 몸뚱이는 손바닥을 이루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손이 되었다.
손은 천운일지와 똑같았지만 크기는 훨씬 컸으며, 노란 옷의 천운자가 가진 모든 힘을 품고 있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태양을 향해 돌진한 손바닥이 허공을 힘껏 움켜쥐었다.
한편, 자색 옷의 천운자는 입가의 피를 닦아낸 뒤 곧장 몸을 날렸다. 그의 뒤로 마치 잔상 같은 수천만 개의 허상이 생겨났다.
하지만 각각의 허상들은 서로 달랐고 자색 옷의 천운자가 태양을 향해 돌진하는 동안 속속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허상이 하나씩 녹아들 때마다 자색 옷의 허공자가 발휘하는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이 세 분신들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필사적인 공격을 펼쳤다. 만약 저 신통력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분신이 동시에 신통력을 발휘할 무렵, 태양 안에서 한제의 인영이 흐릿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빛나는 금빛 햇살은 그의 체내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그가 곧 그 태양인 셈이었다.
아래의 바다에서는 물결에 반사된 빛이 반짝거리면서 요령의 땅을 비추어 꼭 허상과 실재 사이에 존재한 것처럼 느껴졌다.
냉랭한 눈으로 세 분신을 바라보던 한제는 가볍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그 순간…
“잔야!”
콰르릉!
굉음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면서 해수면으로부터 완전히 떠오른 태양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남아 있던 밤의 흔적은 완전히 휩쓸려 나갔고 이제 끝없는 햇살은 사방으로 향해 퍼져나갔다. 시초의 규칙 역시 마음껏 움직이며 이 세상을 채웠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던 자색 옷의 천운자는 수천만 개의 허상과 융합한 순간, 잔야가 폭발시킨 위력과 부딪혔다. 그리고 그 무궁무진한 햇빛과 작열감에 부딪힌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외란 없었다.
그 자색 옷의 천운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두 팔은 순식간에 피 안개로 흩어져 사라졌고 두 다리와 몸뚱이의 절반도 그 뒤를 이었으며,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그 순간, 그의 체내에서 수많은 잔영이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며 태양 속의 한제를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햇빛에 닿은 순간 눈 녹듯 스르륵 스러지며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거대한 손바닥이 되어 강력한 기세로 달려들던 노란색 옷의 천운자는 태양을 잡아챌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접근해 태양을 움켜쥐었다. 허나 한제는 당황하기는커녕 피식 비웃었다.
“크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