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7
“각성자를 보호하라!”
일곱 마리의 주작이 수놓인 옷을 입은 쇄열기 노인이 크게 외쳤다. 동시에 여섯 노인은 곧장 한제 곁으로 다가갔고 1백 명에 달하는 주작성종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한제 주위를 꽁꽁 감싼 그들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다른 이들을 노려보았다.
붉은 갑옷 위에 새겨진 백색 주작의 문양, 거기에 바람에 휘날리는 백발은 한제에게 기묘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체내에 주작진령이 녹아들면서 짙은 불 속성 원력을 갖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다.
시초의 규칙 끝자락을 살짝 더듬고 있는 수준에 불과한 그가 그 힘을 과하게 발현한 탓이었다.
더구나 이번 잔야력은 예상치 못하게 녹아든 시초의 규칙, 주작진령의 화염, 거기에 두 번째로 각성된 한제의 주작에 필사적인 그의 의지까지 뒤섞여 절정의 위력을 낸 것이다. 만약 다시 한 번 잔야력을 발휘한다면 방금과 같은 위력은 내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그의 원신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고 혈검의 일격도 비록 겉으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체내에는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가슴팍으로부터 먹먹한 고통이 전해져 그의 얼굴은 더더욱 창백해졌다. 만약 고신의 몸이 아니었다면 진즉 죽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5성급 고신 왕족의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체내의 부상과 고통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제의 체내에 남겨진 혈검은 서늘한 살육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살육의 기운은 살육의 근본으로 한 신통력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도 한제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주작성종 사람들 너머로 천운자와 타지아를 바라보았다.
체내의 불 속성으로 인해 한제는 불에 대한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이에 허약해진 원신은 마치 얼음 속에 갇힌 듯 추위를 느끼기도 했다.
“저희는 주작성종에서 파견된 선발대입니다. 곧 더 많은 주작성종 사람들이 각성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출발했을 겁니다.”
좀 전에 외쳤던 노인이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주작성종이라⋯⋯.”
한제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가슴 안쪽에서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는 끝끝내 고통을 참아냈다.
주작성종이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이곳에 와준 고마움은 잊지 않기로 했다.
허나 주작성종 사람들에게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타지아의 음산하고도 기이한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얼른 주작성종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자신들은 타지아나 천운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와야 할 이들은 모두 온 것 같군.’
타지아는 입술을 핥으며 붉은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반드시 죽여야 할 자였다.
사실 처음에는 한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비록 고신의 몸을 가지긴 했으나 그것은 고족의 유적에서 유물을 찾는 데 필요한 준비물에 불과했다.
허나 지금까지 그가 보인 놀라운 실력과 좀 전의 그 충격적인 신통술을 본 후로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한제의 출현이 선제 청림이 준비해둔 수일 거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자를 죽이지 않고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설명하기 힘든 감일 뿐이었지만 타지아의 생각은 또렷했다.
“몇 차례나 나의 예측을 깨뜨린 이한제는 이 선제의 동굴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다. 저자를 죽여 변수를 없애야만 선제 청림이 세워둔 계획이 뿌리 뽑히리라!”
천운자의 목소리가 이곳에 울려 퍼졌다. 그 말에 타지아의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타지아는 갑작스레 돌진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인영이 뒤를 따랐다. 또한 천운자 역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그러자 남은 여섯 분신이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서 천운자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옷자락이 마구 나부꼈고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흑백의 빛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서로 뒤얽히면서 혼돈과 같은 기묘한 형상을 이루었다.
천운자는 곧장 왼손으로 결인을 그린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이면서 주문을 외웠는데 소리가 너무 작아 뭐라고 하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주문을 외움에 따라 고래(古來)의 소리가 혼돈 안에서 흘러나왔다. 속삭임처럼 또렷하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마치 천적을 맞닥뜨린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동시에 그 목소리를 따라 강림한 위압감이 사방을 압도하면서 거대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콰르릉! 쾅!
눈 깜짝할 사이 그 진동은 절정에 이르렀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에는 수없이 많은 균열이 일어났다. 한참 멀리까지 뻗어 나간 이 균열은 서로 연결되기까지 했다.
순간 지면의 반경 1백 리 범위의 가장자리를 따라 균열이 일면서 그 범위 안의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굵직한 기둥이 하늘을 꿰뚫고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이 기둥의 끝은 흑백의 혼돈을 겨누고 있었다.
한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땅은 여전히 약하게 진동하고 있었고 흑백이 교차된 안개로 뒤덮여 신식으로도 그 너머를 살필 수가 없었다.
한편,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타지아의 모습에 주작성종의 여섯 노인은 묵직한 표정으로 각자 결인을 그렸다. 순간 불바다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흥! 얕은 재주로군!”
타지아는 냉소하며 등이 굽은 칼을 휘둘렀다. 순간 그 칼에서 튀어나온 빛이 사방을 휩쓰는 불바다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뒤를 이어 천운자의 분신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오와 호연은 이를 악물고 그들에게 대적했고 화비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앞으로 날렸다.
여섯 노인들의 뒤에 선 주작성종 사람들은 누군가의 지휘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가부좌를 틀더니 결인을 그렸다.
곧 그들의 정수리로부터 불빛이 번득이면서 각자의 원신이 떠오르더니 곧장 열을 내뿜었다. 뿐만 아니라 1백 명에 달하는 이들의 원신은 돌연 한데 섞이기 시작했다.
원신은 한 수련자가 일평생 수련해 맺은 정수로 각자의 도념이 서로 다르면 섞일 수가 없다. 원신이 섞였다는 것은 서로에게 삼켜졌다는 뜻이므로 하늘을 거스르는 법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공존할 수가 없는 법이었다.
한데 지금 이 1백 명에 달하는 원신들은 서로에게 빠르게 섞여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척에 달하는 화염 거인이 되었다. 이 거인은 나타나자마자 포효를 내지르면서 타지아에게 달려들었다.
이 광경을 본 한제는 주작성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여섯 명의 쇄열기 수련자들과 1백 개의 원신이 합쳐져 만들어진 화염 거인은 타지아와 격렬하게 대적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오와 호연, 그리고 화비가 천운자의 여섯 분신에 맞서고 있었다. 또한 부풍자와 발작을 시작한 독소를 애써 억누른 사도환, 대두 등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특히 화비는 천운자의 분신과 인영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고 있었다. 반경 1백 리 대지에서는 계속해서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렸고 갖가지 신통력의 빛이 요란하게 반짝거렸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체내의 부상이 너무 컸고 가슴팍의 고통도 극심해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부상까지 치료할 여유는 없었기에 일단 단약을 삼키고는 억지로 참아냈다.
그때, 저 멀리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천운자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제를 바라보며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1백 리 밖 흑백의 혼돈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고 그 안에서 머리 없는 사람이 걸어 나왔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오른손에 붉은 창을 한 자루 쥐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흉악하고 거친 기운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의 체내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그의 몸을 맴돌며 검은 갑옷을 형성했다.
그는 한제에게 돌진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검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든 그자는 붉은 창으로 한제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이 무렵, 한제는 기운이 쇠진한 상태였다. 허나 그렇다고 쉽게 죽을 한제가 아니었다. 그의 오른쪽 눈이 파랗게 번득이더니 청광순이 소환됐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붉은 창과 푸른 방패가 충돌했다. 균열이 나 있던 청광순은 더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뒤로 주춤 밀려났다.
한편 세 걸음 정도 밀려났던 머리 없는 사람의 검은 갑옷이 번득였고 그는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한제가 봉선인을 토해내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반짝이는 결정의 빛이 나타났고 그 순간 한제는 손을 거칠게 휘두르며 크게 외쳤다.
“살두성병(撒豆成兵)!”
그 한 마디에 흩뿌려진 결정의 빛은 순간 눈부시게 번득였고 봉선인에서는 흐느끼는 듯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 안에 갇혀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한 혼백들이 앞다퉈 빠져나오더니 그 결정의 빛 하나하나에 녹아들면서 실체를 갖춘 존재처럼 짙은 음기를 발산했다.
심지어 18층에 있던 허공자의 혼백도 밖으로 나오더니 광기 어린 붉은 눈빛으로 야수처럼 포효하며 머리 없는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사제지간의 전쟁
살두성병(撒豆成兵)을 발휘할 때마다 한제는 백범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했다. 죽인 사람들의 혼이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이를 신통술로 사용하다니. 하늘을 거스르는 이 신통술은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행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허공자의 혼이 튀어나오자마자 눈에 보일 것처럼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생전에 쇄열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답게 그 혼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허공자의 혼백이 머리 없는 사람에 대적하자 다른 혼들도 얼른 그를 도우면서 상황은 단박에 뒤집혔다.
하지만 한제가 치러야 할 대가도 적지 않았다. 선제 백범의 선술 중에서도 특히 살두성병은 선력의 소모가 엄청났다. 만약 현보 상인의 원신이 아니었다면 선력이 진즉 바닥났을 터였다.
허나 현보 상인의 원신이 있다고 해도 한제의 선력은 계속해서 신통술을 발현하느라 상당히 부족해진 상태였다. 만약 새로운 선인의 원신을 얻지 못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백범의 신통술을 발휘할 수는 없을 터였다. 호풍은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 위력은 선력을 이용한 신통술의 위력에는 비교도 안 될 것임을 한제는 알고 있었다.
그때, 천운자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여태까지도 한제에게 신통술을 발휘할 힘이 남아 있을 줄은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허나 그는 곧 냉랭한 눈빛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다시 하늘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사방을 채운 흑백의 혼돈이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리면서 거대한 구렁이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이 구렁이의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고 비늘은 칠흑처럼 검었으며 또렷한 문양까지 새겨져 있어 상당히 거칠고 흉악해 보였다.
녀석은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쉭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혼돈 안에서는 몸의 반절 정도가 썩은 검은 기린이 튀어나왔다. 녀석에게서는 끔찍한 썩은 냄새와 썩은 기운이 풍겨 나왔지만 눈만큼은 검은 빛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이 기린 역시 곧장 포효하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게다가 그 뒤를 이어 혼돈에서는 머리 없는 사람 다섯이 더 나타났다. 마치 그 혼돈에는 수많은 생령들이 끝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섯 명의 머리 없는 사람들은 기린의 뒤를 바짝 따라 허공자를 포위하더니 끊임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한데 십팔지옥 안에서 천운자의 분신들을 소환하려 했던 한제는 잠시 멈칫하더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운자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천운자가 지금 생령들을 소환하여 나를 습격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 두 분신을 꺼내게 하려는 수작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저자 앞에서 그의 분신들의 혼을 꺼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검은 구렁이가 눈 깜짝할 사이 짙은 비린내를 풍기며 가까이 접근해 왔을 때,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붉은 갑옷에서 짙은 붉은 빛을 발산했다. 그러자 그 위에 새겨진 백색 주작 문양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갑옷으로부터 튀어나가 검은 구렁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구렁이의 쉭쉭 소리와 주작명(朱雀鳴)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두 눈을 감고 있던 천운자는 미소를 지었다. 두 분신의 혼뿐만이 아니라 저 주작도 기다리고 있었던 그는 곧장 앞으로 한 발 나섰다. 그리고 그 한 걸음만으로 한제의 코앞에 이른 그는 백색 주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운사령(天運四靈) 중 주작령만 모자란 상태였지. 오늘 그 주작령마저 채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
백색 주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하늘을 뒤덮을 듯한 화염을 내뿜었지만 천운자의 거대한 손은 그 화염을 그대로 관통하며 주작을 잡아챘다. 그러자 주작과 맞서고 있던 검은 구렁이는 몸을 틀어 다시 한제에게 달려들더니 입을 쩍 벌려 단숨에 그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한제의 미간에 회오리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위축된 원신이 쑥 빠져나왔다. 태고의 뇌룡과 같은 형태의 이 원신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포효를 내질렀다.
“캬오오!”
그 거대한 포효를 내지른 후로 한제의 원신은 더욱 위축됐지만 대신 구렁이는 잔뜩 겁에 질린 눈빛으로 황급히 물러났다.
그때, 한제로부터 1백 리 정도 떨어진 곳의 혼돈이 순간 용솟음치면서 안팎으로 천둥소리가 울렸다.
이 광경에 천운자조차도 넋을 잃고 말았다.
뒤이어 번개가 줄기줄기 내리 떨어지더니 혼돈을 관통하여 곧장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다.
수없이 많은 번개가 혼돈을 관통해 달려들자 검은 구렁이의 온몸은 전광으로 뒤덮였고 천운자 역시 그 안에 포위되어 버렸다.
콰르릉! 콰쾅! 쿠르릉!
요란한 소리의 천둥번개가 연달아 내리 떨어지던 중 검은 구렁이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한제에게 이런 신통력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천운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여전히 한 손으로는 백색 주작을 거머쥔 채 몸을 훌쩍 날리며 다른 손으로 한제를 거세게 후려쳤다.
“누구도 널 살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