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
한참 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마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혼은 한제가 깨어난 뒤 조심스럽게 그를 훔쳐보고 있다가 얼른 입을 열었다.
“난 계속 잘 지키고 있었어. 한 번도 긴장을 푼 적이 없어.”
한제는 손을 뻗어 마혼을 비검 안에 넣고 몸을 훌쩍 날려 석실을 빠져나갔다.
★ ★ ★
한제는 모완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모완은 단로(丹爐) 옆에 놓인 돌로 된 탁자에 반쯤 엎드려서 고르게 숨을 쉬며 잠들어있었다.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어져 있었고 몇 가닥은 귓가에 걸려 있었다.
그 사이로 살짝 드러난 뺨은 불그스름하면서도 윤이 났다. 아침 햇살에 물든 흰 눈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마치 그림 속 미녀처럼 아름다웠다. 단로에서 피어오른 하얀 연기 때문에 모완은 더더욱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보였다.
약 냄새가 은근히 풍겨왔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한제는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모완과 그녀의 방을 잠시 살피다가 천천히 다음 석실로 향했다. 이 석실의 절반은 바닥에 심어진 약초가 나머지 절반은 여러 재료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교룡의 두개골 반 조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룡의 뼈는 너무나 길었고 두개골은 매우 커서 그것을 전부 구리시골진에 사용하는 것은 낭비였다.
반 조각의 두개골을 바라보던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교룡 두개골은 보라색을 띠고 있어서 뼈가 아니라 무슨 결정체 같았다. 교룡의 몸은 특수한 구조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그것을 한참 관찰하던 한제는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모완이 몽롱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석실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를 본 순간 그녀의 잠기운은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최근 모완은 한제를 보는 자신의 마음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주술을 다루는 사람이니 한제가 언제든 잔혹하게 자신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는 한제가 거의 매일같이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가 본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수련하는 사람은 오빠인 이기경이었으나, 그조차도 한제에 비한다면 나태해 보일 정도였다.
그녀가 보기에 한제는 이미 결단기 진입을 눈앞에 둔 수준이었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결단기에 이를 수 있을 상황이었지만 그 한 발짝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완이 아는 바로는 지난 수천 년간 화분국에서 가장 빨리 결단기에 이른 수련자는 17살에 이미 축기 절정에 이르렀지만 결단기에 이르는 데까지는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가 바로 화분국의 시조이자 화분국의 첫 번째 원영기 수련자로 당시 2성이었던 화분국을 3성으로 승급시킨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있는 한제는 아무리 많이 잡아 봐도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짧은 시간 안에 결단기에 이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고 모완은 생각했다.
당시 한제는 결단기에 이르면 그녀를 보내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에 모완은 다소 좌절감을 느꼈다. 어쩌면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었다. 자신을 옆에 붙들어두기 위한 수작이라는 생각에 비웃음이 나기도 했다.
“수련⋯⋯ 잘 안 돼?”
모완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영혼의 정혈을 한제에게 넘겼기에 그가 자신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면 거절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 모완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더구나 그녀는 사주술을 수련하려면 계속해서 세 개의 기를 흡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대는 몇 개월간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하면서 여자와 접촉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으니 사주술에 병목 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연스레 견제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모완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모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주춤주춤 몇 걸음 물러났다. 얼굴은 다시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겁에 질려 있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난⋯⋯ 단약을 만드는 데에만 응한 거야. 만약 그런 것까지 원한다면 난⋯⋯ 절대 따르지 않을 거야.”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원망하는 것 같기도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우는 것 같기도 호통 치는 것 같기도 했다.
한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모완을 훑어보더니 몸을 돌려 교룡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이 교룡의 두개골은 색깔이 왜 이렇게 된 거지?”
“교룡의 체내에는 독이 퍼져 있어. 두개골이 보라색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모완은 입술을 꼭 깨물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체내에 온통 독이 퍼져 있다고?”
한제는 흠칫 놀라며 교룡의 두개골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살아 있는 교룡의 몸에는 치명적인 독이 흘러. 하지만 죽고 나면 그 독이 교룡의 몸을 보물로 만들지. 고서에는 살아 있는 교룡의 몸은 독, 죽은 교룡의 몸은 보물이라고 나와 있어. 특히 가장 독한 독은 골수인데 정작 교룡이 죽었을 때 가장 값진 보물 역시 그 골수지.”
모완의 목소리는 갈수록 냉정해졌고 표정도 점점 침착해져갔다.
한제는 교룡의 두개골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불쑥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몸이 곧 독이라⋯⋯. 온몸에 독이 흐르는데 교룡은 어떻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거지?”
한 줄기 빛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득였다. 그러나 그 빛은 나타난 것보다 더욱 빠르게 사라졌다.
모완은 한제를 힐끗 살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지켜보던 모완은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교룡이 살아 있을 때에는 온몸이 다 독이라니까. 뼈와 살, 오장육부, 심지어 타액에도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지. 그러니까 당연히 교룡 자신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아.”
한제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듯 어떤 생각 하나가 번뜩 떠올렸다. 그 생각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그의 눈 역시 점점 더 밝아졌다. 그러더니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뻗어 교룡의 두개골을 자신의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내 몸이 한기를 감당할 수 없다면 몸을 한기로 바꿔버리면 되는 거였어. 그렇게 하면 당연히 엄청난 한기가 몰아쳐도 견뎌낼 수 있겠지.”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몸을 틀어 모완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결단 (2)
모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갔다. 등이 동굴 벽에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비참하게 웃었다. 그녀가 자진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한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결단기에 이르는 날, 널 꼭 낙하문에 데려다주지!”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에서 나가 몸을 훌쩍 날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모완은 넋을 잃었다. 온통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샘물처럼 솟아나왔다. 결국 그녀는 벽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제는 토둔술을 통해 전력으로 이동했다. 목표는 시체 골짜기였다. 모완의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은 그는 세 개의 한단을 융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사흘 뒤, 시체 골짜기 바깥에 도착한 그는 곧장 열세 번째 골짜기로 향했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의연하게 열네 번째 골짜기로 들어섰다.
지면을 뒤덮은 푸른색 서리를 밟는 순간, 한기가 발바닥을 타고 그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한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발로 땅을 가볍게 굴러 토둔술을 펼쳤다. 그의 몸은 천천히 서리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땅속으로 들어갈수록 음한기는 더욱 농밀해져, 1천 척 정도까지 들어온 후로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몸은 이미 얼어붙은 상태였다.
더 들어갔다가는 몸뿐만 아니라 영혼과 신식까지도 얼어붙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 열네 번째 골짜기의 맨 아래층은 얼마나 더 현묘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제는 자신의 심장이 계속해서 뛸 수 있도록 집중한 채 천천히 몸을 움직여 가부좌를 틀었다.
‘세 개의 한단을 융합시키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두 눈을 꼭 감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화분국에 닥친 화염 마수의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4성 수련국에서는 수련자들을 파견했고 화신기 고수 세 명을 보낸 끝에야 9일 만에 모든 화염 마수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했다.
잡아들인 화염 마수들을 합쳐 한 마리의 중급 영수로 만들어낸 그들은 그 중급 화염 영수를 데리고 4성 수련국으로 돌아갔다.
마수의 단계는 이수(異獸), 영수(靈獸), 황수(荒獸), 선수(仙獸)로 구분되는데 각 단계는 다시 상, 중, 하 세 개의 급으로 나뉜다. 시체 골짜기에서 죽은 교룡은 중급 영수였다.
석주에 흡수된 화염 영수는 황수로 넘어갈 경계에 걸친 수준의 마수로 상급 영수의 절정에 달한 상태였고 그 자손들은 모두 하급 영수였다.
상, 중, 하 세 개 등급의 차이는 단번에 분간이 가능할 정도로 컸다. 만약 그 화염 영수가 허약기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석주에 의해 흡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정에 이른 한 상급 영수는 꽉 찬 화신기 수련자의 수준에 필적하며, 중, 하급의 영수는 각각 꽉 찬 원영기와 꽉 찬 결단기 수준에 가까웠다.
화염 마수의 재난은 수습되었지만 화분국은 화분국 안에 가득 타오르는 영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선무국과의 전투는 계속됐다. 다만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전투는 많이 줄어, 대부분은 소규모의 전투였다. 화분맹은 점차 안정적으로 선무국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며, 대략 선무국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 후에는 더 나아갈 여력이 없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양국 수련자 사이의 전투 역시 처음처럼 생사가 걸린 것이 아니라, 점차 양국 제자들의 전투 경험을 위한 훈련처럼 변해갔다. 이미 전장에서 사망한 양국 제자들이 알았다면 씁쓸해 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 무렵, 열네 번째 골짜기의 지하 깊은 곳으로 파고든 한제는 고요하게 노승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심장은 매우 느리게 뛰었고 그에 따라 끝없는 극음의 기운이 그의 몸 곳곳을 침투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의 몸속에 쌓인 극음의 기운은 점점 더 커졌다. 반년 뒤, 그의 피부는 이미 푸른색으로 변해 하나의 결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시 반년이 흘렀고 그의 오장육부까지 극음의 기운이 침투해 들어갔다. 피부에는 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두 손과 두 발은 이미 완전한 푸른색 결정체가 되어 살짝만 두드려도 깨질 것만 같았다.
또 다시 반년이 흘렀다. 결정은 더 퍼져나가 그의 두 팔과 두 다리까지 푸른색 결정이 되어버려, 심지어 그 안의 뼈까지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몸에도 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태였다.
2년이 지나고 세 번째 해의 중반쯤에 이르자 한제의 머리도 천천히 결정이 되어갔다. 이제 한제에게서는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천승규결의 조건인 황천의 경계에 이르러 있는 셈이었다.
그의 몸은 7만 척 깊이에 이르러 있었다. 이 깊고 푸른색 공간 안, 그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거대 영수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그 시체들은 어째서인지 이 극음의 땅에서는 살점 하나 보이지 않고 뼈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뼈로 이루어진 바다 같은 이 공간 안에서 모든 시체는 푸른 수정과 같은 색이었다.
한제는 이 뼈의 바다에서 반년 동안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 반년 동안 그는 한 달의 시간을 들여 심장을 회복시켰고 두 달의 시간을 들여 신식을 회복했으며, 세 달의 시간을 들여 세 개의 한단을 감지했다.
그 후, 조규혈에 맺혔던 한단과 기해혈에 맺혔던 한단이 다시 천천히 부딪히면서 파멸적인 한기가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이 한기는, 지금 한제의 체내에 가득한 극음의 기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두 한단은 수월하게 융합되더니 긴밀하게 얽혀 하나로 뭉쳐졌다.
곧이어 융합된 한단이 다시 아래로 향해 단전에 이르렀다. 단전 밖에 자리한 무형의 보호막은 일다경 만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가라앉은 한단이 단전에 맺힌 한단과 부딪힌 순간, 좀 전의 열 배에 달하는 한기가 몰아쳤다. 그러나 이 한기의 농도도 한제의 몸을 가득 채운 극음의 기운보다는 한참 모자랐다. 천천히, 세 개의 한단이 완전히 융합하여 하나로 응집됐다.
하지만 이렇게 뭉쳐진 한단의 색은 금색이 아니라 어두침침한 회색이었다.
한제는 자신이 수련한 황천승규결이 석주와 극의 경계의 영향이 더해져 달라졌음을 알지 못했다. 그가 황천승규결을 익히는 데 이런 고생을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황천승규결이 가장 빨리 결단기에 이르도록 하는 법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정석적인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편법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단을 융합시켜 단(丹)의 시초를 만들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금단으로 만들어 결단기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지금 반 정도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이제 영기 충격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단기는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또한 실패하게 되면 단의 시초도 부서지며 그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제 하나로 합친 한단을 몸에 융합시키는 일이 남아 있었다. 만약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력 충격과 신식 배양을 거친 뒤 금단으로 만들어 결단기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영력 충격은 천리단을 이용해 성공률을 증가시킬 생각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머리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빠르게 균열이 일어났다.
쩌적
균열은 점점 커지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온몸으로 퍼져갔다. 몸을 움직이자 균열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