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0
모은미는 마치 유유하게 춤을 추는 나비처럼 곧장 날아가 한제를 잡아챘다. 그를 바라보는 심경은 도저히 설명할 길 없이 복잡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가 이 사내와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숨을 내쉰 모은미는 허공을 움켜쥐어 한 줄기 균열을 일으켜 그 안에서 옥병을 하나 꺼냈다.
매우 공을 들여 정교하게 만든 듯한 이 옥병은 그 안에 든 딱 한 알의 단약이 그 효력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금제가 걸려 있었다. 그런 병에 담겨 있는 단 한 알의 단약이라면 얼마나 귀중하고 값질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모은미는 그 단약을 꺼내 한제의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단약은 씹어 삼킬 필요도 없이 유백색의 두 줄기 기운이 되어 한제의 코와 입으로 흘러들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앞서 너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은미는 고개를 들어 그 아름다운 얼굴로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서는 서늘한 살기가 풍겨 나왔다.
“곤허의 성녀!”
천운자는 무거운 얼굴로 삼지창을 든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그의 시선은 곤허경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여운도!”
천운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곤허경에서까지 이 일에 관여하려 하는가!”
노인, 여운도는 천운자를 힐끗 보더니 타지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추억에 잠긴 듯했다.
“나의 목적은 저자다!”
여운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타지아를 가리켰다.
타지아는 마염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여운도를 바라보더니 전보다 더욱 신중해진 얼굴로 등이 굽은 칼을 휘두르며 음산하게 외쳤다.
“너였구나!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다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죽었어야 하나 당시 청림 형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비록 원한이 깊은 사이지만 청림 형님이 내 목숨을 구해준 이상 난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 오늘 난 너를 통해 그 빚을 갚을 생각이다!”
여운도는 고마 타지아를 앞에 두고도 덤덤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하앗!”
타지아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몸을 날려 온몸으로 하늘을 뒤덮을 듯 검은 안개를 일으켰다.
마영(魔影)이 된 안개는 포효를 내지르며 입을 쩍 벌려 여운도를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그와 여운도가 있는 곳은 검은 안개로 뒤덮였고 그 안에서는 고마의 우렁찬 포효와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한편, 모은미는 한제를 내려놓은 뒤 말없이 천운자에게로 돌진했다.
천운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곤허의 성녀! 난 곤허경과 갈등을 빚고 싶지 않다. 이한제는 너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 않느냐. 난 저자를 죽일 생각이고 누구든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너에게는 저자를 죽일 자격이 없다!”
모은미는 차게 내뱉으며 천운자에게 접근하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분신들이 퍼져나갔다. 분신은 총 여덟 개였다.
“영허쇄원(靈虛鎖元), 연천화기(煉天化氣)!”
모은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녀가 입을 연 순간 여덟 개의 분신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거대한 기운을 일으켰다. 그 기운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한 줄기 원기의 기둥이 되어 강림했다.
천운자는 기이한 눈빛으로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 원기의 기둥은 곧장 진동하기 시작했다.
모은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게 내뱉었다.
“네 천운술은 내게 아무런 소용도 없다!”
말을 마친 그녀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무궁무진한 기운을 응집시켰다. 이내 그 기운은 하나의 죽간이 되었고 그녀의 손짓에 따라 펼쳐지더니 일곱 빛깔 광채를 발산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빛 안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표식들이 모은미의 전신을 감쌌다.
모은미가 고운 손으로 앞을 가리키자 그녀를 맴돌던 표식들이 순간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온 우주가 그 상상을 초월하는 원력에 변화를 일으켰고 그 안의 원력은 전부 원기의 기둥으로 응집되었다.
그 순간, 주위의 모든 원력이 마치 천운자를 거부하듯이 일제히 그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이제 천운자에게 남은 원력은 체내에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모은미는 곤허경의 모든 원력을 통제할 수 있지만 천운자 체내의 원력은 이미 전환이 된 상태라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허나 지금 보인 것만으로도 말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신통력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천운자 또한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일찍이 곤허의 성녀가 막대한 신통력을 가졌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원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곤허의 성녀는 선계가 존재했을 때도 선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지. 4대 선계 아래의 4대 성역에는 원고 선역에서부터 그 이름을 계승하는 자가 한 명씩 있고 또한 각 성역마다 존재하는 성녀들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더니. 당시 내가 곤허경에 들어가 수련했을 때 곤허의 성녀에 관한 소문을 적지 않게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
모은미는 말없이 손을 들어 원기의 기둥을 가리켰다. 순간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기둥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결정의 빛을 반짝이는 단검으로 변했다.
그 단검을 쥔 모은미는 나비처럼 유려하고 민첩하게 천운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한제에게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은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자가 죽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또한 그녀의 머릿속에는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어떤 생각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생각 때문에라도 그녀는 다른 누가 이한제를 죽이게 둘 수 없었다.
그 생각은 그녀의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맴돌면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 생각으로 인해 수련 중 퍼뜩 정신을 차리는 일도 허다했다. 곤허경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올라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궁무진하게 불어나며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그 생각은 그녀 마음대로 접을 수가 없었다.
이런 복잡한 심정에 감히 한제를 볼 엄두도 내지 못한 그녀는 한층 속도를 높여 천운자에게 돌진했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편, 원력이 봉쇄된 천운자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제 그의 천운술은 상대에게 아무런 효력도 미치지 못할 터였다.
천운술은 세상과 소통하는 술법으로 이 소통을 통해 형태 없는 규칙을 만들어내고 그 규칙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허나 천운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들고 있던 삼지창을 휘둘러 세 갈래 빛을 만들어내 모은미에게 쏘아 보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하늘에서 격돌하는 천운자와 모은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멍한 빛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듯한 빛이 동시에 드러났다.
‘벌써 곤허의 성녀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군.’
게다가 그는 류미를 떠올릴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영혼마저 꿰뚫는 듯한 고통에 제아무리 애써도 이평과 그가 느꼈을 씁쓸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제는 말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때의 그는 모든 신통력을 다 사용한 상태로 더 이상 자신의 운명에 저항할 어떠한 힘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아직 하나 있다!’
한제는 고개를 번쩍 들고 방금 전 검의 폭풍으로 갈라진 하늘 사이로 드러난 우주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갈라진 틈을 통해 요령의 땅으로 스며들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청광순은 쪼개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지. 그 안에는 8성급 고신의 목숨을 구할 일격이 깃들어 있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약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한제의 오른쪽 눈이 푸르게 번득였고 그의 눈동자에서 청광순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다만 청광순은 반으로 갈라져 있어 한제의 눈으로 빠르게 섞여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8성급 고신의 구명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었을 터였다.
물론 충분한 고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되어야겠지만.
한제는 고신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이미 생각해둔 상태였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분신과 본체를 분리해 계속 흡수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당장 효과를 낼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런 방법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운자와 모인미의 교전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이 단단하게 변해갔다.
‘나에게는 저 여인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 빚을 지고 싶지도 않고!’
침묵하던 한제의 미간에서 고신의 별 다섯 개가 드러나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대량의 고신력이 피어오르더니 그의 오른쪽 눈으로 스며들어 청광순에 섞여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눈에서 번쩍이는 푸른 빛은 빠르게 증폭돼 마치 보석처럼 빛났다.
스스로의 고신력으로 청광순을 채우는 것은 실로 큰 대가였다. 별을 부수지는 않았지만 대량의 고신력을 잃게 되면서 다섯 번째 고신의 별은 점점 흐릿해지다가 결국 빛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허나 부서진 것은 아니니 언젠가 다시 보충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청광순에 필요한 고신의 힘이 적지 않았던 터에 이제 네 번째 별마저 점점 흐릿해진다는 것이다.
오른쪽 눈의 푸른빛은 점점 격렬하게 번쩍여 반경 1만 척을 뒤덮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은미와 천운자로서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미간의 별들은 점점 빨리 회전했고 곧 세 번째 별과 두 번째 별마저 어두워지더니 결국 마지막 남은 하나의 별 역시 빠르게 빛을 잃었다.
그 순간, 한제의 오른쪽 눈에 깃든 푸른빛이 줄기줄기 예리한 검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향한 곳은 천운자의 신통력으로 우뚝 솟아오른 기둥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닿은 순간, 기둥은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원고 시대의 꿈
순간 하늘 위의 끝없는 우주에서 강렬한 빛이 줄기줄기 나타났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하늘을 찢고 요령의 땅으로 진입했다.
선두에는 온몸을 선기로 두른 선인이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선인들과 수련자 연맹의 수련자들이 속속 도착해 주위를 에워쌌다.
수련자 연맹에게는 사성종도 천운자도 타지아도 모두 적이었다.
한편, 선인들은 선제 청림이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당시 이름을 널리 떨치던 청림은 지금까지도 선인들의 심신을 덜덜 떨게 만들 만한 존재였다. 내로라하는 강력한 선군들도 그 옛날 청림 앞에서는 허리를 조아렸으며 감히 역심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허나 이후 오랜 세월, 이들은 수련자 연맹의 숭상을 받으며 군림해왔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청림이 깨어날 바에야 고마가 청림의 육체를 빼앗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으나, 고마 또한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존재였다.
“대열을 갖춰!”
요령의 땅에 들어선 순간, 선두의 선군이 크게 외쳤다. 이에 그의 뒤를 따른 선인들과 수련자 연맹의 수련자들은 빠르게 결인을 그려 엄청난 힘으로 강력한 빛을 발하는 아홉 자루의 검을 형성했다. 이 검들은 허공에 꼿꼿이 선 채 반경 1백 리를 완벽히 포위했다.
“연도(煉道)!”
연맹성역의 수련자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우렁찬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면서 그들의 진을 활성화했고 그 순간 반경 1백 리의 공간은 밝은 검광으로 뒤덮였다.
한편, 선인 대부분은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 특히 타지아와 여운도가 맞붙고 있는 검은 안개 쪽으로 돌진했다. 나머지는 대체로 천운자에게로 향했다.
순간 이 공간은 혼돈에 빠져들었다.
한데 그때, 한제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푸른빛이 천운자가 만들어낸 한 기둥을 무너뜨리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져 나갔다.
푸른 빛에 관통당한 기둥은 와르르 무너져 내려 눈 깜짝할 사이 폐허가 되어버렸고 짙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몸을 물렸다.
한제도 몸을 움직여 천운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련자 연맹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한제가 발휘한 신통력에 천운자는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리더니 삼지창을 휘둘러 모은미를 떠밀어낸 뒤 외쳤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모은미가 다시 돌진하려던 그때, 한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