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1
“내게 먹인 단약도 목숨을 살려준 은혜도 기회가 된다면 몇 배로 갚겠다! 허나 더 이상 도움은 필요 없다!”
모은미는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말없이 뒤로 물러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다. 그녀는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다가 크게 외쳤다.
“나 역시 그 아이가 보고 싶다!”
슬픔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이는 그녀가 가장 갈망하던 것이었으며 동시에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내내 그녀의 마음속을 맴돈 생각이기도 했다.
‘그 아이’가 누굴 가리키는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한제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이평…’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이 되어 한제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직접 겪지 않는 이상 그 고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네겐 자격이 없다!”
한제는 차게 외치며 곧장 천운자에게로 향했다.
모은미는 비참하게 웃으며 무슨 이야기를 더 하려는 듯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주위에 수련자 연맹의 선인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기 어린 눈으로 선인들을 노려보았다. 복잡한 심경에서 피어오른 분노가 그 선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단검을 쥔 채 번개처럼 그 선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천운자에게 달려든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는 강렬한 푸른빛이 번득였다. 마치 푸른 태양이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한제에게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천운자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제의 눈에서 번득이는 푸른 빛에는 그가 간파하지 못한 신통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천운자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제는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오른쪽 눈에서 번득이는 푸른빛을 응집시켜 청광순을 소환해냈다.
반으로 쪼개졌던 청광순은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진 상태였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푸른빛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대체…?”
순간 천운자의 심신이 거세게 흔들렸다. 설명할 수 없는 위기감으로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 긴 세월 동안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이었다.
그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왼손으로 미간의 두 번째 획을 잡아 뜯었다. 이에 그의 두 번째 봉인이 반쯤 열렸다.
허나 그가 그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기도 전에 거대한 주먹이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엄청난 속도로 천운자를 눌러 으스러뜨렸다.
쾅! 쾅!
굉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했다.
주먹이 거둬진 다음에는 한 쌍의 큰 발이 나타났다.
콰쾅!
그와 동시에 요령의 땅 너머 우주에는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회오리는 수많은 행성을 품은 채 회전했고 곧이어 안쪽에서 마치 실제 같은 광경이 하나둘 나타났다.
단순한 형태지만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기운을 풍기는 거대한 건물들로 가득한 핏빛의 대지였다. 마치 건물들 외에는 무엇도 이 공간에서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발이 쾅 하고 밟자 대지에 균열이 일었고 더불어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됐고 동시에 하늘과 대지를 뒤흔들 법한 분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대지를 밟은 거인은 다름 아닌 고신, 8성급 고신이었다. 또한 그 고신 곁에는 거의 1백 명에 달하는 비슷한 크기의 거인들이 가득했다. 이들 또한 모두 8성급 고신이 분명했다.
저 먼 곳에는 그보다 더욱 큰 인영이 하나 있었다. 8성급 고신도 그 인영의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말로도 그 거대함을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또한 그 인영보다도 더 멀리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요기가 가득했으며, 수많은 고요가 그 요기로 가득 찬 땅에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마기로 가득 찬 땅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고마들이 피에 굶주린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 고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지면에는 지금의 수련자들보다 훨씬 강력해 보이는 연기사들이 있었다.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는 그들의 미간에는 각종 생명의 표식과 도안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들은 곧 광기 어린 살육을 벌이기 시작했다.
실로 엄청난 전쟁이었다. 성역 회오리 너머로 드러난 광경은 그 전쟁의 극히 일부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한제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그 순간 요령의 땅이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때, 그들은 그 전장 안에 들어선 상태였다. 이 모든 광경은 실로 두렵고 끔찍했다.
허나 이 모든 것을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련자 연맹의 어느 선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한데 그가 서 있는 곳에 드넓은 그늘이 졌다. 고개를 든 그는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는 고신의 거대한 발바닥을 보았다.
“흥! 허상 따위를 두려워한대서야…”
그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고신의 발이 그 위로 떨어졌다.
콰르르!
대지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발이 다시 들어 올려졌을 때, 그 자리에는 더 이상 그 선인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짓이겨진 피와 살덩어리가 범벅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원신마저 붕괴한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모두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전방의 어둑한 하늘에서 길이가 약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새가 날아오며 거칠고 날카롭게 울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 같은 날개를 퍼덕였고 이에 하늘에서 진을 이루고 있던 연맹성역 수련자 수백 명의 몸이 순식간에 동강났다. 비명을 내지를 틈조차 없이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워⋯⋯ 원고 시대의 꿈!”
타지아와 여운도 그리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던 선인들조차 우뚝 멈춰서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특히 고마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워… 원고 시대의 전장이란 말인가?”
이는 고신의 꿈이자 원고 시대에 대한 꿈이었고 바로 한제의 청광순 안에 깃든 8성급 고신의 구명 신통술이었다. 8성급 고신의, 그것도 구명용 신통술이니 결코 그 위력이 약할 리 없었다.
대지는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고 1백 명에 달하는 고신들은 대지를 쿵쿵 구르며 수련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고마족과 고요족도 거칠게 돌진했다. 타지아와 여운도 등이 모여 있는 이곳이 전장의 중심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때, 1백 명에 달하는 고신의 뒤에서 8성급 고신조차 개미처럼 보이게 만든 그 거대한 인영의 주인이 움직였다.
머리가 저릿해진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편 고마는 감격한 얼굴로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고마족을 바라보았다.
그 무렵,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난 천운자는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지금껏 유지해온 덤덤하고 침착한 빛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인 그는 거칠게 두 번째 봉인을 뜯어냈다.
“크으으…”
그는 전보다 몇 배는 강력해진 기세로 이를 악물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한제! 나와라!”
두 번째 봉인을 해제한 그의 모습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쉰 살 남짓의 중년 모습이었던 그는 이제 서른 정도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고 극강의 기세가 체내로부터 흘러넘쳤다.
두 번째 천쇠의 수준을 폭발시킨 지금 상태가 그의 한계로 세 번째 천쇠까지는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이한제! 나오란 말이다!”
분노한 천운자가 외쳤다.
그때, 하늘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네 앞에 있다!”
콰르릉!
이어서 천둥보다 몇 배는 더 격렬한 소리가 전장의 모든 소리를 압도하면서 모든 수련자들의 귀를 두들겼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수련자들은 두 귀에서 피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천운자 역시 흠칫 놀라며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전방에는 8성급 고신보다 훨씬 큰 인영이 서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천운자는 그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그 거대한 몸집의 허리 정도였다.
천운자는 고개를 든 순간 귓가를 울리는 기이한 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끝도 없이 높은 곳에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면서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서 하늘에서부터 광풍이 불어왔다. 어찌나 강력한지 그 바람이 닿자마자 대지가 무너져 내렸고 수련자 연맹의 수련자들 역시 으스러져 버렸다.
선인들 또한 당황한 기색이었다. 특히 수련자 연맹에서 중현자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선군은 거대한 고신을 보자마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의 높은 수준과 자제력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입을 벌린 그는 말을 하는 대신 마치 실성한 듯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한 움큼 피를 토해냈고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점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다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하늘에서 불어온 광풍은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멀리서 검은 점 하나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 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주먹이었다. 그리고 이 주먹은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며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주작성종 태고의 성물
천운자는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온몸의 기세를 끌어올리며 삼지창을 하늘로 내던진 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옷이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와중에 그는 두 번째 천쇠의 힘을 발산해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로 돌진했다.
콰르릉!
떨어져 내리던 거대한 주먹은 삼지창과 충돌했다. 그 충돌로 인해 삼지창은 쩌적 하고 금이 갔다. 거대한 주먹은 그 삼지창을 쥐더니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이번에는 천운자와 맞부딪혔다.
콰콰쾅!
좀 전의 충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격렬한 소리와 충격이 거센 돌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그 기세에 원고 시대의 전장은 화폭이 펼쳐지듯 그대로 휩쓸려 흩어졌다.
그 순간, 세상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요령의 땅 너머 우주에 나타난 회오리도 사라졌고 행성들도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었으며, 요령의 땅 역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나 사람들 사이에는 변화가 있었다. 한 사람이 완전히 미쳐버렸고 수련자 연맹의 수련자들 다수가 사라졌으며, 끝없는 공포가 남아 있었다.
천운자는 체내에서 펑 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땅으로 추락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에는 수많은 내장의 조각들이 섞여 있었다. 떨어져 내린 그의 뒤쪽에는 타지아가 있었다.
“고맙⋯⋯. 쿨럭!”
천운자는 거친 목소리로 말을 하려다가 다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타지아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상태였다. 그 역시 천운자와 함께 저항했기에 이 믿을 수 없는 신통력 아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제가 그들 앞에 내려섰다. 허나 그 역시 땅에 발을 디딘 순간 휘청이더니 피를 왈칵 토해냈고 오른쪽 눈에 남아 있던 푸른빛은 청광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청광순은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