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6
주작성황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한제는 걱정스러웠다. 허나 청수가 하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두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너와 청수의 관계를 안다. 네가 구현의 첫 번째 변화에 성공한다면 내가 우(雨)의 선계의 결정을 가지러 갈 때 청수에 관한 소식을 찾아올지도 모르지.”
주작성황의 눈에는 자애로운 빛이 어려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내는 그의 희망이자 주작성종의 희망이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라면 노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요령의 땅에서 그런 위기를 맞닥뜨렸으면서도 벗들을 버리지 않은 자야.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해진 상황에서도 청수를 잊지 않고 있지. 이런 자라면 안심하고 주작성종을 맡길 수 있어. 어떤 신통술이라도 전수해줄 수 있고⋯⋯.’
그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들어 다시금 한제의 등을 두드렸다. 체내의 원력은 끊임없이 한제의 체내로 흘러들어 원신과 섞였고 그 원신 속 불의 씨앗을 맴돌았다.
★ ★ ★
눈 깜짝할 사이 또 1년이 지났다. 이 1년 동안 연맹성역 내의 형세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상태였고 분쟁과 전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성종이 있는 연맹성역의 동쪽은 그 혼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저 연맹 본부의 추살령에 따라 한제를 죽이고자 사성종 내에 잠입한, 대담하지만 어리석은 이들이 몇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순찰 중이던 사성종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설혹 순찰자들을 피해 들어오더라도 결국 사성종 장로의 손에 소멸되어 버렸다.
나천성역과 연맹성역의 분쟁은 계속됐다. 반면 시음종은 비교적 평안했으나 전장에서는 언제나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전사자들의 유해나 완전한 육신을 수거하고 양쪽 세력과 연계하여 그 육신을 판매하기 위함이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시음종은 엄청난 환영을 받게 되었고 대량의 육신들이 끊임없이 나천성역과 연맹성역으로 흘러들었다. 그 대가로 선옥과 법보, 재료 등이 시음종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 연맹성역 전체를 통틀어 전쟁과 담을 쌓은 듯 평화를 이어가고 있는 곳은 곤허경과 연맹 본부뿐인 것 같았다.
지난 1년 동안 한제의 호흡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고 체내에서 터져 나오는 펑펑 소리가 주작성종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때문에 주작성종 사람이라면 한제를 직접 본 적이 없다 해도 그 존재를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이들은 한제가 자신들의 미래 성황이자 주작성종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이 존재하는 법. 주작성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가 한제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제의 존재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제가 등장하기 전에 주작성종 내에서 새로운 성황을 길러내기 위해 선출해낸 세 명은 이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또한 일부의 나이 든 수련자들 역시 성황의 이런 결정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황의 위엄이 너무나 강력한 탓에 감히 반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구현(九玄) 첫 번째 변화
지난 3년, 1천 번이 넘는 낮과 밤이 이어지는 동안 한제는 잠시도 쉬지 않고 호흡을 이어갔으며, 그 뒤에 앉은 주작성황 역시 자신의 원력을 계속해서 한제에게 주입했다. 또한 두 사람이 앉은 하얀 바위도 끊임없이 뜨거운 기운을 피워 올렸다.
한제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졌다. 원신의 부상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그 안의 불의 씨앗은 계속해서 섞여 든 화염 덕분에 반 정도 녹아내리면서 흘러넘칠 듯한 힘을 체내에 고루 퍼뜨렸다. 또한 한제의 오른팔에는 일곱 개의 화염 문양이 보일 듯 말 듯 나타나 있었다.
그의 몸을 맴도는 흘러넘칠 듯한 힘이 그 우렁찬 소리의 근원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호흡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제 체내의 불 속성 원력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에 그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상태가 되었다.
쩍쩍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던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온몸 곳곳을 연거푸 두드렸다. 그의 손가락이 몸에 닿을 때마다 몸을 채운 엄청난 원력은 조금씩 흩어졌다.
연속으로 일곱 번을 두드리자 체내를 채웠던 폭발할 듯한 원력은 순간 사그라졌고 고통도 사라졌다.
온몸에서 흐른 땀으로 옷이 흠뻑 적었으나, 그 땀마저도 이내 주위의 뜨거운 열기에 수증기로 증발되어 버렸다.
“이걸로 여덟 번⋯⋯.”
한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방금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을 여덟 번이나 겪은 그였다.
체내의 원력이 절정에 이를 때마다, 그래서 몸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가 될 때마다 최대한 빠르게 그 전신을 채운 불 속성의 원력을 압축시키면서 더 많은 원력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처음 네 번은 주작성황이 해주었지만 그 뒤부터는 한제 혼자서 해내가고 있었다.
체내의 원력을 압축한 그 순간, 오른팔 위의 일곱 개 화염 문양이 여덟 개로 늘어났다. 완전한 문양이 되기까지 하나가 남은 셈이었다.
“구현의 첫 번째 변화는 구생(九生) 동안의 수련이다. 끊임없이 화염의 힘을 흡수하고 압축해 아홉 개의 화염 문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네가 아홉 번의 생 동안 수행했음을 의미하지. 그것을 전부 폭발시켜 흡수하고 봉인하면 구현의 첫 번째 변화가 완수된다. 변화는 너를 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것이야. 첫 번째 변화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심하고 너를 성황에 앉힐 수 있고 마음 놓고 수련자 연맹에 다녀올 수 있다.”
한제의 뒤쪽에서 성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근래에는 몇 번이나 죽음이 드리우는 것을 느끼고 있어. 최대한 빨리 원력을 흡수하거라.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지만 견뎌내야만 한다. 알겠느냐?”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는 단단한 의지가 드러났다.
“좋아!”
주작성황은 대견하다는 듯 한제를 바라봤지만 이내 아쉬운 기색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내 분신이 당시 네게 주작 낙인을 보냈더라면… 아니면 네 주작의 각성이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났더라면⋯⋯. 휴.”
그 말을 끝으로 주작성황은 고개를 젓더니 더는 아무 말도 않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뒤이어 두 손으로 아래의 바위를 두드리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라 거꾸로 서서 한제의 정수리와 자신의 정수리를 맞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사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주작성황 체내의 불 속성 원력이 한제의 정수리를 따라 흘러들었다. 한제가 앉은 하얀 바위도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렇게 줄기줄기 피어오른 화염의 힘 역시 한제의 몸으로 주입되었다.
한제 체내의 원력은 순식간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증폭되었다. 다만 이렇게 억지로 원력을 불어넣을 때의 고통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한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온몸에서는 땀이 증발하면서 짙은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으으…”
시간이 흐르면서 한제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온몸에 푸른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했고 체내의 원력은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몸 안에서 울리는 우렁찬 소리가 널리 퍼져나갔고 연소성역 어디서라도 그의 고통에 찬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한제는 모든 정신을 체내의 엄청난 원력에 집중해 통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의 몸은 곧장 터져버릴 것이었다.
주작성황 역시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기껏해야 세 달 정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세 달 뒤, 세 번째 천쇠가 다시 폭발하면 그는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날, 한제 체내의 원력은 다시 한 번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와 머리를 맞댄 성황은 전보다 훨씬 더 수척하고 늙어 보였다. 노인을 뒤덮은 죽음의 기운은 한제에게까지 드리워진 상태였다.
허나 얼굴은 잿빛으로 물들었어도 한제를 향한 주작성황의 두 눈에는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죽음이 무슨 대수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주작성종의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가는 것, 그래서 주작성종이 멸망하는 것이었다. 이는 선조와 주작성종 전체에 부끄러울 일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한제는 그의 희망이었다. 웃음을 머금고 구천으로 갈 수 있게 할 기대주였다.
“크아아!”
짧은 포효와 함께 한제의 전신을 채운 원력이 바깥으로 터져 나갔고 그의 체내에서는 우렁찬 천둥소리가 울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려 원력을 봉인하기 위해서였다.
주작성황은 실망했으나 한제를 막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고통을 참아내고 구현의 첫 번째 변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해야만 성공률도 높아지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저 녀석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1천 년 정도 살아온 한 수련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얼굴이 부쩍 초췌해진 주작성황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한데 그때, 한제는 원력을 봉인하기 위해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그대로 멈추었다. 두 눈에 드러난 단단한 빛에는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이 어려 있었다.
“여덟 번째 문양, 개방!”
한제는 몸부림을 치듯 고개를 들고 낮게 외쳤다.
이때 그의 오른팔에 나타났던 여덟 번째 화염 문양이 타오르면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연소성역 안에서 눈부신 화염의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한제가 몸을 훌쩍 날리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화염은 곧장 그의 체내로 뚫고 들어가 온 성역을 다 태워버릴 듯한 화염을 일으켰다.
순간, 연소성역이 부글거리며 뒤틀리는 듯했다. 동시에 연소성역 내의 모든 생령은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분분히 고개를 들었다.
“구현 첫 번째 변화!”
주작성종의 수많은 노인들은 주작이 각성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훨씬 더 감격한 듯 거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주작을 각성시켰다고 해서 성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현의 첫 번째 변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성황이 되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차기 성황이 나타났다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별 사이로 떠오른 한제는 화염으로 휩싸여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주작성종을 맴돌았다.
그의 오른팔에는 일곱 개의 화염 문양만 남아 있었으며, 방금 몸 밖으로 피어난 화염의 꽃과 짙은 불 속성 원력은 다시 체내로 돌아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불 속성의 원력은 마치 폭풍처럼 그의 몸속을 휩쓸었고 펑, 펑 하는 우렁찬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연소성역의 모든 사람은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온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한제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주작구현변(朱雀九玄變)은 아홉 번의 생 동안 모은 원력을 동시에 폭발시킨후 끊임없이 압축시켜 수련자에게 주작의 첫 번째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술법이었다.
체내의 극심한 고통에 한제의 얼굴에 푸른 정맥이 돋아났다. 두 번의 생 동안 모았던 원력을 견뎌낸 것에 불과한 상황인데도 경맥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팽팽했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몸부림치듯 왼손을 들어 오른팔의 화염 문양을 또 한 번 두드렸다.
일곱 번째 문양은 곧장 타오르면서 한제의 오른팔에서 튀어나와 또 한 번 화염의 꽃을 피워냈다. 동시에 한제 체내에서 울리는 소리는 절정에 이르렀고 더욱 강력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간 한제 전신의 땀구멍에서 피 안개가 퍼져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 선혈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타오르는 화염에 증발되어 붉은 기운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세 번의 생 동안 모은 원력이 체내로 녹아듦에 따라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한제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갑옷의 허상을 이루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한제 체내의 엄청난 원력은 배출구를 찾았다는 듯 그 갑옷으로 스며들었고 그 갑옷은 더욱 붉은빛으로 변해갔다.
한편, 주작성황은 기대와 긴장감이 어린 눈을 한제로부터 떼지 못했다. 그는 오른손을 들고 있었는데 이는 한제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면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퍽 실망하게 되긴 하겠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한제는 살려야 했다.
‘내가 마음을 너무 급하게 먹었군. 자질이 평범한 것을 알면서도 너무 몰아붙였어.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노인은 조바심을 냈던 스스로를 꾸짖었다. 한제에게 뭔가 이상한 조짐이라도 보이면 곧장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주작 갑옷 덕에 한제는 고통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이에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왼손으로 다시 오른팔을 두드렸다. 그러자 여섯 번째 화염의 꽃이 피어났고 그 순간 엄청난 원력이 몰려들었다.
‘어떻게든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해. 그래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