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8
“아직입니다!”
“너⋯⋯?”
주작성황은 한제의 두 눈에 깃든 광기를 볼 수 있었다. 그 눈에는 결코 복종하지 않겠다는 빛이 어려 있었다. 천도에 제압당해 구천에 봉인된 절대적인 마혼 같은 모습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굴복하지 않을 의지였다.
순간, 주작성황은 눈앞에 있는 한제의 도가 역도(逆道)임을 알 수 있었다.
“반항적 수련이 도를 이루고 반항적 도는 천(天)을 이루고 반항적인 천은⋯⋯ 운명을 바꾸지⋯⋯.”
몸이 불타고 있는데도 한제는 저항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체내의 원신이 미간으로 돌진했고 미간에서 회오리와 함께 태고의 뇌룡 형태의 원신이 번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캬오오오!”
미간을 뚫고 나온 원신은 하늘을 향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태고의 뇌룡이 나타나자 연소성역은 천둥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이어서 번개가 줄기줄기 우주 전체로 퍼져나갔다.
콰르릉!
진정한 천둥소리가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뒤덮었다.
번개는 줄기줄기마다 한 마리 춤추는 은빛 뱀처럼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몰려들었다. 어찌나 빠른지 성역 내의 모든 수련자는 하늘을 스쳐 가는 한 줄기 빛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끝없는 전광이 파도처럼 한제를 향해 몰려들었다.
한제의 몸은 계속해서 타오르는 가운데 줄기줄기 천둥번개를 흡수해 마치 번개와 불이 교차되는 지점에 놓인 것만 같았다.
그때, 백색 주작이 곧장 달려들어 한제의 체내에 녹아들었고 그의 몸을 감쌌던 붉은 갑옷은 문양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주작 체내의 원력이 한제에게로 몰려들었고 갑옷 안으로 분산되었던 원력도 거꾸로 흘러 다시 한제에게로 되돌아갔다.
이 순간, 한제의 몸은 아홉 번의 생 동안 모은 원력으로 가득 차게 됐다. 지난 3년 동안 여덟 차례 봉인하고 압축하여 모아두었던 원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는 불로 만들어진 화인(火人)이 된 것 같았다. 짙은 화염이 몸 밖에서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거대한 화염 회오리를 이루었고 동시에 연소성역의 모든 화염은 부름을 받은 듯 일제히 그에게로 응집되었다.
성역 내의 영원한 존재였던, 단 한 번도 꺼지지 않고 수천만 년 동안 타오르던 화염이 움직이면서 연소성역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붉은 화염과 은백색 천둥이 교차되며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 ★ ★
청룡 성종 안, 한 무리의 흡혈 마수들이 윙윙 소리를 내면서 거대한 나무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것은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언덕만 한 자색 흡혈 마수였는데 녀석은 비행을 하던 도중 우뚝 멈춰 추니 멀리 떨어져 있는 주작성종 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두 눈에 감격의 빛이 드러났다.
녀석만이 아니라 청룡성종의 모든 사람이 주작성종의 변화를 눈치챘다.
청룡성종 중심의 초록색 수련성에는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세 명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주작성종의 새로운 성황이 탄생하려 하는군!”
세 노인은 서로를 돌아보면서 놀랍고도 기쁜 표정으로 몸을 훌쩍 날려 주작성종 쪽으로 날아갔다.
★ ★ ★
비슷한 일이 백호성종과 현무성종에서도 일어났다.
특히 현무성종 안의 어느 연못에는 1백 척 정도 되는 두꺼비가 있었는데 녀석은 게으른 모습으로 엎드려 졸고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녀석이 게슴츠레한 두 눈을 번쩍 떴고 전신에서 전광이 흘러 반경 1천척을 가득 채웠다. 고개를 든 녀석은 감격에 겨운 눈으로 주작성종 쪽을 바라보았다.
현무성종 안의 여러 장로들도 분분히 일어나 주작성종으로 향했다.
“새로운 주작성황의 탄생은 우리 사성종에 아주 중요한 일이지!”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장로들 뒤로 긴 빛이 그려졌다.
★ ★ ★
주작성종은 거의 끓어오르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수련성에서 튀어나와 우주를 거의 가득 채웠다. 대부분은 짙은 감격에 휩싸인 채였다.
허나 개중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이전까지 차기 성황 후보였던 세 명의 수련자도 그런 이들이었다.
두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으로 이들은 재능이 걸출했을 뿐만 아니라 외모 역시 빼어났다.
특히 그중 40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 임도후는 이미 정열기 초기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뒤에는 네 명의 노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의 표정 역시 밝지 못했다.
그러나 임도후의 표정은 침착했다. 그는 이 우주를 채운 화염이 빠른 속도로 깊은 곳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현 첫 번째 변화⋯⋯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나오운, 봉선, 둘은 결정을 내렸나?”
임도후의 곁에는 다른 성황 후보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임 사형, 전 3년 전 요령의 땅에서 일어났던 전투에 참여했었습니다. 저는 이한제 그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군요.”
나오운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도 말투도 결연했다.
나오운은 본디 매우 오만하고 고고한 사람이었으며 자질도 충분했다. 때문에 주작성종 사람들 중에는 임도후보다 나오운이 차기 성황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한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3년 전 참여한 전쟁에서 본 상대를 떠올릴 때마다 식은땀이 맺혔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대두와 친해진 그는 한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호감까지 생기게 된 상태였다.
세 사람 중의 유일한 여인인 봉선은 잠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나오운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가 구현에 성공했다면 이 봉선은 그를 성황으로 모실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사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임도후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했다. 한데 그가 막 입을 열려던 그때, 갑자기 우렁찬 포효와도 같은 소리와 함께 우주의 화염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전광과 섞여들었다.
다시 나타난 묵지
이 무렵, 한제는 혼자서 연소성역의 모든 화염과 천둥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보는 주작성황의 표정은 감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궁무진한 화염을 흡수하던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봉일(封一)!”
순간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손이 닿은 가슴팍으로 주위의 화염들이 더욱 빠르게 응집되었다.
동시에 그의 뒤로 허상의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한제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온몸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인영이었다.
그 인영이 나타난 순간, 연소성역에서 타오르던 불바다는 마치 굴복하듯 일제히 아래로 몰려들었다.
한제의 오른손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몸 곳곳을 두드렸다.
“봉이(封二)!
봉삼(封三)!”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손은 그의 몸을 연속으로 아홉 번이나 두드렸고 그때마다 사방의 화염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왔다. 그리고 뒤쪽에 나타난 허상의 인영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마침내 한제는 낮게 호령하듯 외쳤다.
“봉구성현(封九成玄), 첫 번째 변화!”
그러자 허상의 인영은 완전히 또렷해져 또 다른 한제가 되었다. 이 한제는 분신이 아니라 구현 중 첫 번째 변화로 만들어진 영혼이었다.
이 영은 한 걸음 내딛어 한제의 체내로 들어가더니 한제의 원신 속 불의 씨앗에 녹아들었다. 한제의 원신 속에 또 하나의 원신이 생겨난 셈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한제는 두 눈을 떴고 순간 한 줄기 작열하는 빛이 온 세상을 뒤흔들면서 사방의 화염들을 춤추게 했다.
또한 그의 눈빛에는 극치의 천둥 한 줄기가 배어 있었다. 이에 한제의 눈빛이 닿는 곳마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화염이 솟구쳤다. 그 둘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상태였다.
“성황이시여!”
“성황이시여!”
특수한 감응 체계를 가진 주작성종 사람들은 새로운 성황의 출현에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분분히 감격에 차 울부짖었다.
오직 임도후만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굳은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계가 붕괴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세력인 사성종이 생겨난 이래 새로운 성황의 출현은 언제나 엄청난 충격을 일으키곤 했다.
비록 사성종은 우(雨)의 선계를 존중했지만 네 명의 성황이 모두 존재했던 시기에는 우의 선계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새로운 성황이 나타나면 축하 선물을 보내곤 했다. 수련자 연맹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다만 사성종의 강력한 힘을 견제하기 위해 우의 선계에서는 곤허성역 안에 사성종과 곤허경을 함께 두기로 결정했고 곤허경은 선계를 위해 하계의 모든 연기사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제가 구현의 첫 번째 변화에 성공한 순간, 세상의 원력은 주작성종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여파는 연맹성역에도 미쳤다.
연맹성역 서쪽과 북쪽을 차지한 나천성역 곳곳에서는 뇌선전의 사자들을 볼 수 있었다. 두 개의 커다란 구역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뒤 뇌선전은 이곳의 최고 통제자가 되어 있었다.
작은 산과 같은 검은 대전들은 우주에 뜬 채 이동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대전 밖에는 대량의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몰려 있었다. 이런 대전 수백 개가 끝도 없이 늘어서서 대군을 형성한 해 성역 중앙의 수련자 연맹 세력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허나 들리는 소리라고는 비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뿐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전투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 나천성역 수련자들에게서 이전과 같은 앳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서는 서늘한 살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때, 강력한 원력의 파동이 푹 끼쳐왔다.
대부분의 수련자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대열 끝에 선, 열 개의 대전을 합쳐놓은 크기의 궁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염뇌자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이어서 그와 함께 있던 10여 명의 노인들 역시 긴장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연맹성역 동쪽에서 시작된 파동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