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69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설마 저 연맹성역 동쪽에서 중요한 보물이라도 나타난 것인가?”
염뇌자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파동은 보물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야. 연맹성역 동쪽은 사성종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니 어쩌면⋯⋯ 새로운 성황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지.”
허나 그는 연맹성역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된 터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사성종? 수련자 연맹도 우리에게 대적하지 못하는 상황에 그쯤이야!”
붉은 머리 노인이 오만한 표정으로 비웃듯 말했다. 허나 염뇌자는 노인을 바라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성종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특히 이 파동이 정말로 새로운 성황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는 이 엄청난 원력의 파동에서 어쩐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이 기묘한 느낌은 너무도 또렷해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원력의 파동으로부터 염뇌자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 노인은 나천성역으로부터 연맹성역 서쪽 구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나오더니 마치 성역을 관통하는 듯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사성종의 새로운 성황⋯⋯ 파동에 불 속성 원력이 깃든 것을 보면 주작성황인 모양이군. 상황이 재미있어지겠어. 무극자 연맹성역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는데 네가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 ★ ★
연맹성역 남쪽, 시음종 깊은 곳에는 거대한 검은 관이 있었다. 이 관의 여덟 모퉁이에는 각각 한 가닥의 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그 사슬들의 한쪽 끝은 다른 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관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들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놓여 있었고 각 관의 주위에는 하나하나의 수련성이 맴돌고 있었다.
이때 주작성종에서 시작된 엄청난 파문은 이곳까지 미쳤고 그 순간 수많은 관들 중 중앙의 그 검은색 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러한 때에 사성종에 새로운 성황이 나타나다니, 흥미롭군!”
그의 목소리를 따라 사방의 모든 관에서는 손톱으로 관 뚜껑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 끼치는 그 소리가 퍼져 나가며 심지어 우주에는 균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 ★ ★
수련자 연맹의 4대 세력에서도 이 파동을 느낀 상태였다. 나머지 세력들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그중 가장 강한 세력이자 8성 수련국이었던 출운국에서는 수십 개의 수련성을 통제하여 하나의 진을 형성했다. 그 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출운종이 있는 수련성이었다.
출운종 뒷산 밀실에는 백발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파문을 느낀 순간 자애로운 눈을 번쩍 뜨더니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묵지!”
그 순간, 노인 앞의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푸른 옷의 대머리 사내가 나타나 노인에게 공손히 포권을 했다.
“묵지, 스승님을 뵙습니다.”
“사성종에서 새로운 성황이 나타났다. 극품 선단 다섯 알, 일반적인 선단 1백 알, 선보 1천 개, 그리고 내가 5년 전 제련해놓았던 그 정혼(精魂)을 축하 선물로 보내라!”
“그 정혼⋯⋯?”
묵지는 화들짝 놀라며 무언가를 물으려는 듯했으나, 이내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혼은 굉장히 귀중한 존재지. 허나 그 정도 대가는 감수해야 한다. 이번에 나타난 새로운 성황은 너의 오랜 친구인 것 같더구나. 그 성황과 좋은 관계를 맺어놓는 것은 우리 출운국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노인이 말했다.
“오랜 친구요?”
평생 친구를 둔 적이 거의 없는 묵지는 의아했으나 더는 묻지 않고 물러갔다.
★ ★ ★
사성종에서는 수많은 인영들이 주작성종으로 몰려들었고 짙은 화염으로 뒤덮인 주작성종 안에서는 ‘성황이시여!’ 하는 소리가 기복을 이루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한제는 숨을 깊게 내쉬며 고개를 들어 천둥번개와 화염으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작성황은 감격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웃었다.
“좋아, 우리 주작성종에 마침내 새로운 성황이 나타났구나. 이제 웃으며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뒤이어 그가 오른손을 움켜쥐자 허공에는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세 갈래의 빛이 튀어나왔다.
“이한제, 주작성종의 새로운 성황인 너는 이 세 가지 물건을 갖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는 역대 성황의 피풍(披風)이다!”
노인이 오른손으로 빛을 가리키자 곧장 한제에게로 향하더니 하얀색의 피풍(*披風: 옛날에 추울 때 덧입는 겉옷으로 비바람을 막아주는 용도로 만든 망토)이 되었다. 피풍은 아홉 마리 주작으로 에워싸여 있어 척 보기에도 상당한 위엄이 느껴졌다.
“세 번째 천쇠를 맞기 전까지 내가 한시도 벗지 않았던 것이다. 곧 다시 입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너의 것이다!”
늙은 성황은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 피풍에 정이 단단히 든 모양이었다.
한제가 건네받은 순간, 피풍에서 번득이는 빛이 흘러나와 전신을 뒤덮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졌을 때, 피풍은 이미 한제의 몸에 둘러져 있었다. 한제의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갑옷과 더불어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다.
한제는 그 피풍에서 노련한 기운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피풍은 영원과도 같은 세월을 보낸 모양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 주작성황 역대 성황들의 신분증이라 할 수 있는 주작성령이다!”
노인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두 번째 빛이 한제에게 다가왔다.
한제가 손에 쥐자 그 빛은 화염 모양의 영패가 되었다. 겨우 손바닥만 했지만 한제는 그 안에서 짙은 불 속성의 원력과 좀 전의 그 피풍에서와 같은 노련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우리 주작성종에서 가장 중요한 태고의 성물이다!”
세 번째 빛 역시 한제의 손에 떨어져 하얀 돌이 되었다.
가까이에서 주작성종 태고의 성물을 자세히 보게 된 한제는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표식이 끊임없이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표식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돌은 조금씩 뜨거워졌다.
심신에 이는 강력한 폭풍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돌을 더욱 힘껏 쥐었다. 그는 돌에서 천역주와 비슷한 기운을 감지했다. 분명 존재했지만 아주 옅어서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청림의 미간에는 아직 이 성물의 피가 남아 있다. 언제든 원하는 대로 가져가거라!”
늙은 성황은 이제 해탈한 듯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이 세 물건은 우리 주작성종의 초대 성황이 남긴 것들이다. 성황으로부터 성황으로만 전수된 물건이니 잘 간직하도록 해라.”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잔뜩 초췌해진 몸은 버티기 힘든 듯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런 고통쯤이야 지금의 감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애로운 얼굴로 한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제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늙은 성황은 한제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다.
“오늘부터는 네가 성황이다! 가라! 가서 네 사람들을 보아라! 난 마지막 좌선을 진행할 것이다. 7일 뒤 돌아와라.”
한제는 늙은 성황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떠나갔다.
붉은 갑옷, 하얀 피풍, 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백색 주작 문양. 그 모든 것이 한제의 특수한 기질을 형성했다.
노인은 그런 한제가 멀어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호흡하기 시작했다.
삼세화원(三世火元)의 위엄
한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층 늙어버린 성황의 모습에서 당시의 둔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자 주작성종에 속한 수련성의 모든 수련자들이 분분히 나와 “성황이시여!” 하고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지난 오랜 세월 참아온 그들의 한을 풀어줄 것에 대한 기대와 감격도 느껴졌다.
점점 더 많은 수련자가 한제의 뒤를 따랐는데 어린 사람들의 눈빛에는 공경심이 가득했다.
“주인님!”
감격에 가득 찬 고함이 주작성종 사람들의 외침 사이로 날카롭게 들려왔다.
이 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추고 돌아보니 뇌길과 대두가 긴 빛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제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 멀리서 광기가 뒤섞인 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 이 자식, 드디어 나왔구나!”
어느새 다가온 사도환이 한제를 덥석 끌어안았다. 이에 한제는 밝게 웃었다.
사도환은 부상에서 완쾌됐음은 물론이고 몸에 퍼진 독소도 거의 제압됐을 뿐만 아니라 수준도 한층 높아진 상태였다.
뒤를 이어 은시와 부풍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시는 말없이 묵묵히 한제의 뒤를 따랐고 부풍자는 기쁨이 우러나오는 눈빛으로 공손히 곁에 섰다.
한제가 주작성종의 마지막 주성에 이르렀을 때, 그의 뒤쪽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하늘을 뒤덮을 듯 엄청난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성황이시여!”
“성황이시여!”
우렁찬 목소리들이 온 천지를 가득 채웠다.